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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

[영화]<그녀가 부른다>

by 만술[ME] 2014. 12. 2.

사실 이 포스팅의 초고에는 본격적으로 영화를 소개하기 이전에 영화를 소개하게 된 배경 설명이 몇 단락 있었는데, 대다수 방문객에게는 관심들이 없을 만한 내용이라 생각해 생략했습니다. 따라서 다소 뜬금없는 영화소개의 글을 포스팅하는 점 양해 바랍니다. (비록 두번 본 영화지만 마지막으로 본 지 두어달이 지난지라 일부 부정확한 정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 영화는 순전히 윤진서라는 배우 때문에 보게 된 영화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윤진서라는 배우의 팬이거나 잘 아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윤진서에 대해 검색해 보고 나서야 <올드보이>에 나왔다는 것을 알았을 정도니까요. 윤진서에 대해 관심을 두게 된 것은 좀 특이한 경로를 통해서였는데, 교보문고 북뉴스의 <책상 엿보기>에서 윤진서 편을 보고 나서입니다. 배우가 '책상'을 공개하고 '책'에 대해 이야기 하고, 또 책을 직접 썼다는 것이 생소했습니다. 수필집 정도는 제법 많은 배우, 연예인들이 출간했지만, 작가로서 자신의 책에 대해 사람들을 모아놓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은 새로워 보였습니다. 따라서 윤진서라는 이름의 배우는 제게 조금은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인터뷰의 내용도 독특했고, 그렇게 책들과 함께 있는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영화 <그녀가 부른다>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부른다>는 그야말로 윤진서를 위한 윤진서에 의한 윤진서의 영화라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영화 속 윤진서의 모습은 그냥 진경인 듯했습니다. 아마도 현실 속의 윤진서는 영화 속에서 보이는 진경보다 따뜻하고 친절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런 윤진서의 모습은 (영화 내내 거의 노골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진경의 속 모습에 담겨 있기에 ㅡ 이런 점이 이 영화에서 윤진서 연기의 가장 큰 장점이라 생각합니다 ㅡ 관객은 진경이라는 캐릭터를 영화에서 겉으로 드러난 모습으로만 판단하지 않고 그녀의 내면을 주목하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영화 속 주변인들이 진경이라는 인물에 끌려드는 것처럼 관객도 점차 그녀를 알아가면서 그녀의 <부름>에 응하게 됩니다.



영화 내내 윤진서의 모습은 아름답습니다. 진경의 표정, 대사, 말투, 보온밥통에 눌어붙은 밥을 꾸역꾸역 먹는 모습까지 왜 그녀 곁에 많은 사람이 모이는지를 느끼게 해줍니다. 그리고 감독이 특별히 그녀를 예쁘게 잡으려 노력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음에도 그녀는 화면에 매우 아름답게 나옵니다. 늘 편안하게 옷을 입지만, 그리고 수수하지만 그래서 화면을 빛으로 가득 채우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그냥 화면 속에 수채화처럼 녹아있는 이미지입니다. 그리고 어느덧 그녀를 이해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매력을 관객이 느끼게 되죠.





윤진서 이외에 다른 배역들의 연기도 좋고, 이들이 연기하는 캐릭터가 낭비되지 않는 점도 좋습니다. 등장하는 캐릭터는 그 나름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고, 그 이야기는 진경과 연결되지만, 그 연결이 억지스럽거나 부자연스럽지 않고 자연스럽습니다. 캐릭터들은 때로는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지만, 하나같이 매력적인데, 그렇다고 그 매력을 발휘하기 위해 주인공 자리를 위협하거나, 흐름에 어울리지 않게 튀거나 하기보다는 자기의 할 일을 정확하고 적당하게 해냅니다. 아까운 캐릭터가 활용되지 못하거나, 잘 키운 캐릭터라 해서 남용되는 법이 없습니다. 주인공인 진경의 캐릭터조차 주인공 보정을 받아가며 구구절절하지 않고, 아주 깔끔하게 이야기 속에 녹아듭니다. 그녀가 가난한지, 잘 사는지, 어떻게 그 실력에 성악과를 나왔는지, 몇 살인지, 엄마는 어떤 여자였는지, 아빠는 있는지, 현재는 뭐 하는지 등등 구구절절한 설명 없이, 영화는 그냥 딱 관객이 알아야 할 만큼, 그리고 주변 사람이 알아야 할 만큼만 알려주고, 그래서 관객은 주변 다른 사람들처럼 그녀에 대해 더 알고 싶어지고, 친해지고 싶고, 결국은 그녀의 <부름>에 응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으면 로맨틱 코미디 스타일의 이야기가 전개되리라는 것은 알게 됩니다. 아울러 어떤 과정, 어떤 결론을 겪게 될지 관객은 쉽게 눈치챌 수 있습니다. 다만 진경이 그를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혼자의 길을 갈 것인가에 대한 약간의 궁금증이 있을 뿐이죠. 그렇다면 진부한 결론, 뻔한 스토리라 할 수도 있겠지만, 인생은 이런 어찌 보면 뻔한 일상들이 모여 뭔가 자잘한 변화를 이루어 나가는 것 아닐까요? 이렇게 진경의 일상을 쌓아 가면서 감독은 살살 우리를 진경에 다가가게 하고, 진경과 함께 밥이 안 넘어가고 '법은 먹었냐'라는 대사에 울먹이게 합니다. 


영화에 몰입하며 진경의 매력을 느껴온 관객의 입장에서 마지막에 고쳐달라는 진경의 이야기에 '그래요 고쳐줄게요'라고 하지 않는 대답은 뻔하면서도 아주 좋습니다. 관객도 지금까지의 진경을 사랑해왔기 때문이죠. 그런 그녀가 고쳐지는 건 관객도 원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로 음대 출신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그녀의 노래는 더 마음에 와닿고 아름답습니다.

 


영화 속에 나온 상징들, 특히 매표소의 상징은 재미있습니다. 매표소는 진경에게는 대피소입니다. 사람들은 그 매표소에 접근할 때 늘 뒷문으로 들어오려 합니다. 하지만 진경은 늘 그들을 창구로 오라고 하죠. 그녀에게는 그 정도의 구멍만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안전한 간격이니까요.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진경이 도저히 못 참고 스스로 문을 열고 나가는 장면은 매회 표를 바꿔 달라는 아저씨 때문이고, 그 아저씨는 바로 진경 자신의 모습이었죠. 결국, 그녀는 자신의 모습에 못 참고 그 안전지대를 나가며, <입장권>(세상에 입장하는 자격이라는 알레고리)을 바꿔 줌으로써 자신과 화해합니다. 더구나 그 표는 구차한 중간을 생략한 마지막 회차의 입장권이죠. 한 회 한 회를 그냥 그렇게 넘길 수 없고 곧바로 진실 또는 현실과 마주 해야 하는 입장권이죠. 진경은 이렇게 자신과 다를 바 없는 모자 쓴 사내에게 <마지막회 입장권>을 발급하는 과정을 거쳐 마침내 경호에게 자신을 고쳐달라고 마음을 열게 됩니다.


이 영화에서 진경이 늘 타자에게 응대하는 "할 말 있어요?"는 단순히 <용건만 간단히>의 의미가 아니고, 제발 자신에게 말을 걸어달라는 표현이 아니겠나 생각됩니다. 특별한 용건 없으면 꺼리라는 것이 아니고 사실은 할 말이 있어 달라고, 그리고 그 할 말을 해달라는...



<그녀가 부른다> 영어 제목은 <Do you hear she sings?>입니다. 하지만 우리말 제목은 <부른다>의 중의적 표현이 담겨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녀가 다른 사람을 자신에게 <부른다>(call)는 의미와 그녀가 자신의 노래를 <부른다>(sing)는 의미가 있는 것이죠. 그녀는 끊임없이 자기를 봐달라고, 자기를 고쳐달라고 <불러왔던> 것이죠. 어쩌면 그래서 영어 제목은 그녀가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을 듣고 있느냐고, 들을 수 있느냐고 묻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마침내 성악과 출신이지만 결코 겉으로는 노래하지 않던 그녀가 <속>이 아닌 <겉>으로 <부릅니다>... 이제 그녀를 듣는 사람이 나타났으므로...


MF[ME]


*영화는 다음이나 네이버에서로 DRM없이 다운로드해서 보실 수 있습니다. (해상도는 다음만 720P를 지원하니 그쪽을 택하시면 됩니다.)

*참고로 <그녀가 부른다>는 올해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10선에 뽑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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