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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게임 - 취미생활206

[독서]댜길레프의 제국 - 발레 뤼스는 어떻게 세계를 사로잡았나 (루퍼트 크리스천슨 지음 / 에포크) 위대한 춤은 허공을 가로질러 공간을 조각한 뒤 향수처럼 차츰 사라진다. 창시자가 떠나고 나면 짧고 불확실한 생이 남는다. 안무는 시나 그림 같은 영원한 힘을 거의 갖지 못한다. 카메라는 안무를 그저 이차원으로 납작하게 만든다. 춤의 외형적 움직임은 비디오와 기보법을 통해 전달될 수 있지만 춤의 영혼은 그럴 수가 없다. 피부밑에서 이뤄지는 미세한 동작과 의미를 추적하는 일은 안무가 본인이나 그와 함께 일한 사람들에게 달려 있다. 그러나 거리가 늘어남에 따라 기억이 다른 것을 더하거나 빼기도 하고, 단지 잘못 기억해서 원형을 바꾼다. 다른 물체나 감각과 맞아떨어지도록 귀퉁이가 잘리고, 뉘앙스가 흐릿해지고, 모서리가 뭉툭해지고, 움직임은 진화해 다른 어떤 것이 된다. 기억은 생명체다. 우리는 우리 선조들과 다.. 2025. 4. 14.
[독서]취향에 따라 흥미로울 수도 있는 책 몇권 소개 - <폼페이, 사라진 로마 도시의 화려한 일상>, <차·향·꽃의 문화사>, <대명제국의 도시생활> 근래에 읽은 책 몇 권에 대한 짧은 소개입니다. 우연찮게 모두 글항아리 출판사에서 발간된 책인데, 딱히 출판사와 연관이 있거나 일부러 골라서 읽고 평을 올리는 것은 아닙니다만, 뭔가 글항아리에서 출간하는 책이 제 취향과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있다는 반증이기는 하겠습니다.   (메리 비어드 지음 / 글항아리) 제 이탈리아 여행의 남방 한계선은 로마였기에 폼페이를 가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렇다 보니 제가 생각하는 폼페이의 모습은 어린 시절에 본 영화 (1959), (2014), 그리고 이런저런 다큐와 로버트 해리스의 소설 를 통해 형성된 것입니다. 2014년 영화가 당초 계획대로 로버트 해리스의 소설을 원작으로 로만 폴란스키가 감독했다면 아마도 제대로 된 폼페이에 대한 영화가 되었을 터이지만, 감독의 사정으로 .. 2025. 3. 31.
[게임]아즈텍(Aztec) 어떤 분이 무시무시한 연식을 또 이야기하시겠지만, 지금도 가끔 즐기는 게임에 아즈텍(Aztec)이라는 게임이 있습니다. 80년대 가정용 컴퓨터 붐 속에 청계천 세운상가에서 팔던 Apple II+ 복제품을 가지고 놀다가 큰 마음먹고 디스크 드라이브를 구입했습니다. 당시 대세는 마치 LP플레이어처럼 일본 나쇼날의 벨트 드라이브 방식이 대세였지만, 아수카 같은 곳에서 내놓은 다이렉트 드라이브 방식이 그 아성에 도전하던 시기였는데, 저는 조용함이 마음에 들어 아수카의 드라이브를 구입했습니다. 당시야 (회사에서 디스크를 사용하신 분들이라면 친숙할 2HD 방식 보다 전 세대인) 1SDD 방식이 최신이던 시절이지만, 최신 게임도 주로 한 장이면 되었고, 단순한 게임이라면 한 장에 몇 가지가 들어갈 수도 있었습니다. .. 2025. 3. 20.
[독서]사카나(魚)와 일본 - 비릿 짭짤, 일본 어식(魚食) 문화 이야기 (서영찬 지음 / 동아시아) 참치가 고급 생선의 지위에 오른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고, 에도시대에는 가다랑어가 최고급 생선으로 맏물을 맛보기 위해서 지금 돈으로 한 마리에 수백만 원의 돈을 지불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요즈음 우리가 먹는 스시인 니기리즈시의 역사도 생각보다 짧아서 19세기 초에 에도에서 탄생했고, 그 이전에 스시라고 하면 최소 몇 개월을 삭힌 우리나라의 홍어 같은 나레즈시를 칭하는 말이었습니다.  좋은 친구들과 밥을 먹으면서 슬쩍 잡학다식을 자랑하며 분위기를 띄우기 좋은 일본 어식(魚食) 문화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각각의 품종을 단위로 해서 풀어놓은 책이 입니다. 저자는 일본 출신이거나 일본에 살아본 것은 아니지만 다양한 일본어 출전을 섭렵해 단순한 음식이나 물고기 이야기를 넘어 역사와 문화, 설화 등을 음식 재.. 2025. 2. 28.
[독서]말과 글의 달인이 되는 법: 우리말 어원 사전 (조항범 지음 / 태학사) 과거 가짜뉴스도 이런 그럴듯하지도 않은 가짜뉴스가 있냐고 생각했던 일이 제법 많은 사람들이 을 4일로 생각하며, 을 로 아는 사람들도 있고 심지어 기자 중에도 이라는 표기를 쓴 경우도 있다는, 그래서 문해력이 문제 되는 사람들이 제법 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가 몇 년 주기로 반복될 때마다 정말 극히 일부에서 벌어지는 일을 과장해서 뉴스화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최근의 정국과 이런저런 말들의 오감을 보면서 학력이나 직업, 나이에 상관없이 저런 이야기들을 믿고, 저렇게 생각하고, 믿거나 생각하지 않아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공공연히 그렇게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사람들이 이토록 많은 세상인데 을 4일로 생각하고 우기고 고치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 세상이 이상한 세상은 아닐 수도 있겠.. 2025. 2. 3.
[독서]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 - 구스타프 클림트부터 에곤 실레까지 전시와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추천 국립박물관에서 3월 초까지 오스트리아 레오폴트 미술관과 협업으로 전시를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의 미술을 이야기하면 당연히 클림트가 가장 유명하니 클림트의 작품을 많이 기대하고 가실 텐데, 클림트 보다는 실레의 작품이 훨씬 많다고 합니다. 물론 저같이 이런저런 이유로 이 시절 비인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전시 작가 모두가 소중하지만, 회화 쪽에 관심이 많은 일반적인 애호가들로서는 공예품도 상당수 전시된 이번 전시가 약간은 실망스러울 수도 있을 듯합니다만, 분리파 예술에 있어 건축과 공예는 매우 중요한 위치라는 것을 참고하시면 이번 전시가 사실은 매우 알찬 면모가 있음을 확인하실 수 있을 듯합니다. 그리고 이런 이해를 위해 사전/사후에 읽으면 좋을 책 두 권을 소개할까 합니다. 첫 번째는 전시의 제목과 같.. 2025. 1. 16.
[독서]식물도시 에도의 탄생 - 도쿠가와 가문은 어떻게 원예로 한 시대를 지배했는가 (이나가키 히데히로 지음 / 글항아리) 도쿄(에도)에서는 소바(메밀국수)를 많이 먹고, 오사카는 우동을 먹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생쌀을 먹지 못하게 엄명을 내렸던 이에야스의 지시는 정말로 그 전황을 바꿀 정도로 중요한 결정이었을까요? 벚꽃은 정말 죽음을 숭상하는 무사정신의 표상으로 추앙되기 시작한 것일까요? 이런 소소하고 재미있는 역사적 사실들이 식물과 그 생태에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에 기반하여 흥미로운 에피소드 중심으로 풀어낸 책이 이나가키 히데히로의 입니다. 책의 원제는 조금 더 추상적이자 센고쿠-에도막부 시대를 아는 사람이라면 좀 더 흥미를 자아낼 제목인 인데, 책의 종반부에서 이 문제를 다루고 있으니 궁금하신 분은 찾아볼 수 있을 겁니다. 저자인 이나가키 히데히로는 잡초생태학을 전공한 학자로 농림기술연구소 등을 .. 2025. 1. 13.
[독서]시민권의 이론 - 동 시대 민주정들에서 다원성을 조직하기 (판 휜스테런 지음 / 그린비)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에 점령당한 네덜란드의 공무원이라는 극단적 사례에서 [중략] 종전 후 수많은 공무원들이 외세 치하에서 공무원으로서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는 혐의로 법정과 조사위원회에 출두했다. [중략] 많은 경우 그들은 형법을 어기지 않았고, 반인도적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으며, 해당 직책을 규정하는 명시적 규칙을 위반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전쟁 중 그들의 처신은 잘못으로 치부되었고, 징계와 강등, 해고 처분이 그들에게 내려졌다. 무슨 근거로 이렇게 한 것일까? [중략] 공무원들은 특수한 상황, 곧 외세 점령 및 통치 하 공무원이라는 상황에 처한 시민에게 요구된 바를 저버린 시민이라는 자격으로 책임을 진 것이었다. 운명은 그들을 어려운 상황으로 몰아넣었는데, 이 상황에서 그들은 시민들 사이에 존재하던 .. 2025. 1. 3.
[독서]쿠데타, 대재앙, 정보권력 -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새로운 신호들 (데이비드 런시먼 / 아날로그) 원제 를 번역한 은 트럼프 1기 집권기인 2018년 출간되었는데, 다소 자극적인 번역 제목에도 불구하고 작금의 트럼프 2기와 국내상황을 고려할 때 여전히 시의적절한 인사이트를 주는 책입니다. 이 책은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으로 국내 제목에서 내세운 세 가지를 다루고 저자의 의견을 개진하는 방식으로 되어있습니다. 쿠데타와 관련해서는, 폭력적이고 국가를 한 번에 전복하는 방식의 쿠데타는 21세기 민주국가에서 발생하기 거의 불가능하지만, 소리 없이 다가오는 현대적인 방식의 쿠데타는 가능하고 이런 상황하에서 국민은 쿠데타가 일어나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기도 힘듭니다. 이미 권력을 가진 행정부가 민주주의의 진행을 유예하거나 행정권의 과용으로 민주주의라는 형태는 유지한 채 점진적으로 민주적 체제를 약화시키는 방.. 2024. 12. 26.
[스포츠]프로레슬링 또는 WWE에 얽힌 이야기들 난… 너희들이 믿지 못할 것들을 봤어.헐크 호건이 얼리밋 워리어와 격돌하는 순간들.마쵸맨 랜디 새비지가 엘리자베스와 결혼하던 것.숀 마이클스가 마티 자네티에게 슈퍼킥을 날리며 더 락커스에 종지부를 찍던 장면.더 락이 락키 마이비아로 데뷔하던 장면과 스티브 오스틴이 링마스터로 등장하던 장면도.렉스 루거가 요코주나를 들어 매치던 순간이나 브렛 힛맨 하트가 몬트리올에서 배신을 당하던 순간도 봤지. 트리플 H가 헌터 허스트 험슬리라는 재수덩이 귀족 기믹을 수행하며 금발을 날리던 장면과 어디서 닮지도 않은 가짜 디젤과 레이저 라몬을 끌어다 등장시킨 장면도 말이야.   김일이 국민영웅으로 추앙받고, 그 후계자는 천규덕이라 생각되던 시절, 프로레슬링을 즐겼습니다. 아마 이 시절의 프로레슬링은 차범근의 축구나 고교야구.. 2024. 11. 27.
[독서]여성, 오래전 여행을 꿈꾸다 (의유당관북유람일기, 호동서락기, 서유록) 비록 그렇다 해도 산의 거대함을 못 보고, 마음으로 사물의 많음을 겪지 못한다면 변화에 통달하고 그 이치에 이를 수 없으므로 그릇이 비좁고 앎이 트일 수 없다. 그래서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하고 슬기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는 것이다.나는 결정했다. 아직 결혼하지 않은 나이지만 강과 산이 아름다운 경치를 두루 돌아보겠다고. 강에서 목욕하고 언덕에서 바람을 쏘인 뒤 노래하며 돌아온 공자의 제자 중점을 본받겠다고 하면 성인께서도 마땅히 뜻을 함께 하실 게다.이제야 알았네 하늘과 땅이 크다 해도 내 가슴속에 담을 수 있음을.- 김금원, (최열, 에서 재인용> 최열 선생의 역작인 시리즈 중 근간인 편을 읽다 이 인용글을 마주쳤을 때, 그 글의 작가가 조선시대 여성의 몸으로 14세 때 남장을 하고 여행을 나서.. 2024. 11. 20.
[독서]팬데믹 이후 첫 여행을 준비하며, 그리고 <중국은 어떻게 실패하는가> 팬데믹 직전 독일 쾰른과 프랑크푸르트 인근을 다녀온 이후 해외여행을 다녀오지 않았습니다. 팬데믹 전에는 몇 년간 와이프와 아이들은 다양한 나라를 매년 한 나라씩 한 달 유람 스타일로 다녔고 저는 동참했다가 휴가 일정 때문에 초반에만 함께하다 귀국하곤 했고요. 한 달 유람을 시작하기 이전에는 제가 모든 일정을 계획하고 준비했지만, 한 달 유람을 하고 나서는 아이들을 혼자 챙겨야 하는 와이프가 일정을 준비할 수밖에 없었던지라 그 몇 년 간이 와이프는 좋기도 했지만 나름 스트레스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팬데믹으로 인해 외유가 불가능해지자 핑계김에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며, 이후에도 국내 여행에만 치중하고 해외여행은 전혀 내켜하지 않았더랬습니다.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합병과 관련해서, 별로 신경 쓰지 .. 2024. 11.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