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K 딕의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Do Androids Dream of Electric Sheep?)>를 원작으로 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상 주인공의 이름과 직업 등 몇몇 설정들 외에 스토리라인까지도 많이 다른 전혀 다른 영화인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를 함께 포스팅 하는 이유는 오랜만에 영화관련해서 뭔가 포스팅 해야겠다는 압박이 있는데 딱히 <블레이드 러너>만 쓰자니 너무 짧아질 것 같고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 제가 뭔가 많이 보텔 것도 없을 듯 하기 때문입니다. (소설은 황금가지판, 영화는 Final Cut 기준입니다)
소설은 제목부터 모든 것을 말해 줍니다. 인간은 잠을 자면서 양의 꿈을 꿉니다. 또는 필립 K 딕이 묘사하는 세계에서는 동물들이 거의 멸종했기 때문에 전기양이 아닌 진짜 양을 애완 동물로 갖는 것을 꿈꿉니다. 그렇다면 안드로이드는 밤에 잘 때 전기양의 꿈을 꾸거나 단지 전기양을 소유하는 것을 꿈꾸는 것일까요? 만약 안드로이드가 진짜 양을 꿈꾼다면 (또는 갖기를 소원한다면) 그건 그가 안드로이드가 아닌 인간이라는 증거일까요?
V-K 테스트는 유일한 안드로이드와 인간을 구별해 내는 방법입니다. 이 테스트는 인간의 공감 능력을 기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안드로이드는 생명, 인간에 대한 아니 동료 안드로이드에 대해서도 동정심 따위는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이 공감능력의 유무가 인간과 안드로이드를 구별하는 유일한 지표입니다. 동양적으로 말하면 4단 -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이죠.
소설에서는 이 인간과 안드로이드의 경계가 점차 허물어 집니다. 로젠사는 안드로이드를 점점 더 사람에 가깝게 만들어 V-K 테스트로는 구별해 내기 힘들게 만들어 갑니다. 조작된 기억, 조작된 감정을 이입하는거죠. 한편 인간들은 점점 공감능력을 잃어가면서 점점 안드로이드에 가까워 집니다. 주인공 데커드 자체가 안드로이드들을 추격하면서 공감과 동정심을 잃어가죠. 이 경계의 아슬아슬함, 그리고 사건이 해결후 머서주의의 깨달음 뒤의 득템인 두꺼비가 결국은 만들어진 것임을 알게 되는 반전을 통해 필립 K 딕은 인간성에 대해 멋진 풍자를 합니다.
물론 소설은 로이가 자신을 미끼로 데커드를 유인하려다 아내 이름가드가 먼저 은퇴하게 되었을 때의 절규가 자신의 작전이 실패한 것에 대한 분노인지 아니면 아내의 죽음에 대한 분노인지에 따라 소설에서 이야기하는 “공감”과 “동정심”의 의미가 많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작가는 그렇지만 아직은 데커드와 아내의 재회를 통해 인간이 한시적인 우위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고 끝을 맺습니다.
영화는 앞서 말한대로 원작과는 전혀 다른 진행을 보여줍니다. 대머리에 퉁퉁한 전형적 아저씨(스카페타 시리즈의 마리노 경감 정도 급?)인 데커드는 그나마 말쑥한 해리슨 포드로 대체 되었고, 절벽가슴 로리콘의 대상인 레이첼은 풍만한 숀 영이 되었으며, 애완동물이 가지는 모든 상징은 삭제되었습니다. 원작이 버려진 디스토피아를 위해 모두 떠나고 버려진 널널함의 극치인 황폐한 샌프란시스코를 묘사했다면, 영화는 반대로 가난한 유색인종들이 북새통을 이룬 LA를 묘사함으로써 “버려짐”을 다른 스타일로 보여줄 수 있었습니다.
소설의 주인공이 늘 데커드이고 데커드에 맞춰져 있다면, 즉 인간과 안드로이드의 정체성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도 데커드요, 그 고민을 독자에게 안겨주는 주역도 데커드라면 영화의 데커드는 이런 고민 따위는 전혀 하지 않습니다. 레이첼과의 관계도 전혀 고민하지 않고 본론으로 진입하죠. 오히려 이런 인간성, 존재의 가치에 대해 고민하고 행동하는 것은 안드로이드인 로이입니다. 그가 지구로 온 목적부터 시한부 생명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투쟁(소설은 안드로이드에게 이런 고민은 없습니다)이고 데커드를 구원함으로써 자신의 존재가치를 스스로 증명하는 것도 로이이며, 그가 말한대로 그 짧은 존재의 시간속에 진짜 인간임에도 데커드 따위가 감히 해보지 못할 경험을 했던 것도 안드로이드인 로이죠. 따라서 사실 영화의 주인공은 인간인 데커드가 아니라 안드로이드인 로이입니다.
때문에 그간 수없이 반복되어 온 데커드 안드로이드설에 대한 답은 비록 리들리 스콧 감독이 데커드는 안드로이드였다고 20여년이 지나 인터뷰했다고 해도 그가 인간일 때 영화의 가치가 더 빛난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인간인가 아닌가에 따라 영화 전반은 물론 결말이 전혀 다르게 느껴지니까요.
1. 데커드가 인간일 때 - 데커드는 안드로이드지만 자신의 생명을 구해주는 인간다움을 발휘한 로이의 행동, 그리고 그가 말한 감히 자신은 생각조차 못했던 경험들을 듣고 인간답게 산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고 레이첼에 대한 단순한 욕정을 넘어서는 “새로운” 사랑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녀가 살아 있다는 사실에 진정으로 기뻐하고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그리고 진짜 사람답게 살기위해 기존의 비인간적인 삶을 뒤로하고 레이첼과 떠난다.
2-1. 데커드가 안드로이드일 때 (자신이 안드로이드임을 모른다는 버전) - 데커스는 스스로 인간인줄 아니 그의 동기와 행동은 위 1번과 같지만 관객은 “그래 안드로이드라도 인간성의 개념을 깨달으면 4년이나마 인간답게 살 권리를 획득했다고 봐도 되겠지. 열심히 주어진 시간 동안 살아봐.”
2-2. 데커드가 안드로이드 일 때 (자신이 안드로이드임을 모종의 각성으로 알게 되었다는 버전) - 안드로이드도 다른 안드로이드를 구원함으로써 사람다움을 실천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안드로이드 데커드는 본인도 그 구원을 얻기 위해 다른 안드로이드 레이첼을 구원하기로 하는데... 뭐 이정도?
저는 데커드 안드로이드 떡밥은 잘해야 “오 알고보니 데커드가 안드로이드였어? 반전이네 반전!” 정도의 영화적 효과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그냥 영화적 긴장감을 위해 그가 안드로이드 일지도 모른다는 정도의 밑밥이면 충분하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 밑밥은 데커드가 집착(?)하는 옛사진들만으로 충분하구요.
MF[ME]
* 어린시절부터 스마트폰을 손에 쥠에 따라 아이들이 면접적 관계를 하는 시간이 줄어들고 때문에 공감능력을 키우는데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연구가 있더군요. 스마트폰의 운영체제중 하나의 이름이 "안드로이드"인건 의미심장한 듯합니다. 애들보기 귀챦다고 스마트폰 던져주면서 놀라고 하다가 나중에 애들이 부모마음 몰라준다는 이야기 하지 말고 스마트폰을 쥐어주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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