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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

[영화]킹덤 오브 헤븐 - 사실과 허구들 (Kingdom of Heaven)

by 만술[ME] 2013. 6. 14.

요즘은 영상 매체에 투자를 못하는 관계로 TV에서 해주는 영화를 보거나 예전에 박스로 질러놨다가 미쳐 못본 영화, 미드 중심으로 연명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가끔은 이전에 본 영화를 다시 보기도 하죠. 밤에 애들을 재워놓고 와이프가 외출한 틈을 타서 오랜만에 “킹덤 오브 헤븐”을 다시 보았습니다. 오늘은 심심해서 영화속의 사실들과 허구들에 대해 다뤄볼까 합니다.





1. 판본 이야기 - 어떤 판본을 볼 것인가?


리들리 스콧 감독의 “킹덤 오브 헤븐”의 DVD는 무려 세종류의 판본이 있습니다. 첫째는 극장판이고, 여기에 부가영상들을 덧붙인 딜럭스 에디션(D.E)이 있고, 마지막으로 감독판(Director's Cut)이 있습니다. 반지의 제왕의 경우는 극장판과 확장판으로 나뉘고 감독 스스로가 “확장”판이라는 용어를 쓰지만 “킹덤 오브 헤븐”의 경우는 “감독판”이란 용어를 씁니다. 그리고 내용의 전개를 볼 때 사실상 감독판이 진짜 리들리 스콧의 영화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반지의 제왕도 확장판이 훨씬 더 좋습니다) 따라서 이 포스팅은 감독판을 기준으로 하고 있고, 영상물 구입시는 꼭 감독판으로 보실 것을 권합니다.


2. 영화 이야기


영화는 십자군 전쟁의 (사실 “십자군 전쟁”이란 용어 자체가 매우 유럽적 시각의 용어입니다. 아랍의 입장에서는 유럽애들이 왜 이러는건지, 뭐하는건지 제대로 인식조차 못하고 있었고, 수백년에 걸친 그 사건들을 하나의 시리즈라고 생각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이야기중 가장 인상 깊은 장면중 하나인 예루살렘 왕국의 함락 또는 살라딘(살라흐 앗 딘)의 예루살렘 탈환을 다루고 있습니다.


리암 닐슨은 콰이곤 진의 이미지와 겹쳐지기는 해도 그럴듯한 영주이자 아버지의 이미지를 표현했습니다. 올랜도 블룸은 자신의 이미지에 잘 맞는 역할이고, 주인공이지만 어찌보면 역사를 주도하기 보다는 상황을 따라가는 이미지기 때문에 이점에서 크게 블룸의 캐스팅은 잘 어울립니다. 에바 그린은 그냥 좋아요!^^ (프랑스 여자가 이쁘기까지 하다면!) 제레미 아이언스는 어디선가 본 듯한 이미지이지만 이게 티베리아스의 캐릭터와 잘 어울립니다.    


영화는 역사적 흐름을 커다란 차원에서는 매우 정확하게 따라가고 있습니다. 세트와 장비 등의 고증에 있어서도 매우 그럴듯합니다. 전쟁의 양상도 과장되지 않고 실감납니다. 캐릭터들도 실제처럼 생생하면서 허구적인 색깔이 적절히 베어들어 있습니다. 예전과 같이 아랍과 십자군을 선과 악으로 다루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긴 런닝타임이 최소한 제게는 전혀 길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전 호빗을 보며 “지루하다는 놈이 누구야? 충분히 확장판도 만들겠구만!”했으니 참고하세요) 지루한 영화 잘 못보는 와이프도 영화를 쉬지않고 끝까지 다보고는 지루하다는 사람이 누구냐고 반문하더군요. 정말이지 영화적이지 않고 화려한 "동영상"을 좋아하신다면 몰라도 "영화"를 좋아하시면 지루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냥 중세시대의 역사 한부분이 궁금하시다면 그시대로 타임머신을 탄 것처럼 생생하게 보실 수 있는 멋진 영화라 추천할 수 있습니다. 


3. 영화와 다큐 사이에서 - 허구와 변경된 사항들


영화는 다큐가 아니라는 스콧 감독의 이야기처럼 영화는 이런 저런 부분에서 역사상의 내용을 바꾸고, 등장인물을 각색하고 흔히 말하는 주인공 보정도 많이 했습니다.


발리앙 - 주인공이니 당연히 수많은 보정을 받았습니다. 일단 나이부터 영화와 달리 40대 후반~50정도의 나이었습니다, 아울러 당연히 대장장이도 사생아도 아닌 제대로된 영주의 셋째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일찍죽은 큰형, 그리고 다른 영지를 받은 둘째형덕에 이블랭의 영주를 물려 받게 됩니다. 아울러 예루살렘 함락시 엄연히 유부남이었고, 와이프는 무려 동로마 제국의 황제인 마누엘 1세의 조카이자 시빌라의 의붓어머니인 마리아 콤네누스입니다. (유럽의 결혼, 친족관계는 너무 복잡!)




시빌라와 기 드 뤼지냥의 관계 - 정략결혼에 앙숙은커녕 시빌라가 기를 엄청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어느정도냐면 정치적 이유로 둘이 이혼해야 왕위계승권을 갖게 되는 상황이되자 이혼을 해서 왕위를 얻고는 다시 기 드 뤼지냥과 결혼 후 왕위를 기에게 줘버립니다. 


시빌라와 발리앙의 애정전선 - 오히려 시빌라와 발리앙은 정적이었습니다. 보두앵(볼드윈) 5세(영화에서 시빌라의 아들)가 죽자 왕위 계승권으로 시빌라는 발리앙의 의붓딸인 이사벨라와 다투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앞서이야기 한 대로 시빌라는 기와 이혼을 전제로 왕위 계승을 하고는 기와 다시 결혼함으로써 발리앙 - 레몽3세(영화에서는 영지 이름중 하나인 티베리아스로 불리죠)의 뒤통수를 칩니다. 이러는 와중에 그리고 20살정도 젊은 당대 최강 미남자 기 드 뤼지냥을 놔두고 늙은 발리앙과 시빌라가 애정전선을 형성하기는 어려웠겠죠?



정리를 하면 영화에 나온 문둥이왕 보두앵4세와 시빌라의 아버지는 알마릭1세이고, 알마릭1세는 아그네스와의 사이에 보두앵4세, 시빌라 등을 얻고, 이혼 한 뒤 동로마제국과 친교 등의 이유로 마리아 콤네누스와 결혼합니다. 그리고 둘 사이에 이사벨라가 태어나죠. 그뒤 알마릭1세는 죽고 마리아 콤네누스는 발리앙과 결혼을 했으니 발리앙은 유력한 왕위계승권을 가진 이사벨라의 의붓아버지가 되는 겁니다. 이러니 영화에서 처럼 발리앙이 갑툭튀가 아니라 오히려 무진장 고귀하신 분인거죠.   


티베리아스 - 영화에서는 지배하고 있던 영지의 하나인 (사실은 와이프의 영지) 티베리아스의 이름으로 불리지만 정식 명칭은 트리폴리 백작 레몽3세입니다. 레몽3세는 문둥이왕 보두앵4세 초기에 섭정을 하여 권력의 최정점에 있었으나 주위의 경쟁자들의 감언이설에 혹한 보두앵4세에 의해 쫒겨났고 그런가 했더니 보두앵4세가 죽을 때가 되니 아무래도 조카를 얼굴밖에 볼게 없는 기 드 뤼지냥과 남편에 눈먼 여동생 시빌라에 맡길 수 없었던지 다시 불러 보두앵5세의 섭정으로 임명합니다. 섭정의 조건은 보두앵5세가 일찍 죽는 경우는 (그럴게 뻔했죠) 교황,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등이 예루살렘 왕국의 왕을 임명한다는 조건이었습니다. 


보두앵5세가 죽고 완벽한 권력을 잡을 찰라, 경쟁자들의 꼬임에 빠져 레몽3세는 티베리아스에 가게 되고 그틈에 구테타가 일어나 반 레몽3세파가 예루살렘을 장악합니다. 레몽은 구테타군을 척결하기 위해 앞서 이야기한 발리앙의 양녀 이사벨라와 그 남편인 험프리4세를 앞세우는데, 험프리4세는 오히려 기 드 귀지냥에 충성을 해버리죠. (역사에서 난 왕이되기 싫어요한 녀석은 발리앙이 아니라 이녀석이라는...) 결국 영화처럼 티베리아스로 귀향. 이후의 행보는 영화와 거의 같구요.


보두앵4세(볼드윈4세) - 보두앵4세는 제법 현명하고 정세판단을 잘하는 국왕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영화에서 처럼 평화주의자는 아니었고, 위기시에는 협상을 통해 국가의 존속을 위협하는 전쟁을 억제하면서 기회가 되면 역공을 펼치는 스타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영화에서 암시하는 내용과 달리 살라딘과는 계속 평화였는데 르노(레날) 드 샤띠옹이 뻘짓해서 망한게 아니고 중간 중간에 제법 많은 무력충돌이 있었습니다. 


영화에서 르노(레날)이 첫번째 뻘짓으로 살라딘의 대군이 밀려왔을 때 십자가를 들고 출정하는 모습은 실제로 알 카라크 전투에서 벌어진 모습과는 다르지만 어찌되었건 큰 충돌이 없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레몽3세의 도움과 결혼이 벌어지고 있는 성은 공격하지 않겠다는 살라딘의 명분이 적절히 조화되어 알 카라크는 무사할 수 있었죠. (살라딘은 전쟁을 계속하기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후계 구도에 대해서도 현명해서 믿을 수 없는 여동생과 남편에 나라를 맡기지 않고 조카인 (다행히 기의 아들은 아닌) 보두앵5세에게 나라를 맡기면서 레몽3세를 섭정으로 임명하고, 보두앵5세가 오래살지 못할 경우는 교황,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등이 왕을 정하게 함으로써 예루살렘 왕국의 존속을 위해서는 필수인 유럽의 세력을 끌어들일 수 있으리라 생각되는 방법으로 왕위를 계승토록 정해놓은 것을 볼 때 매우 현명한 왕이었죠.    




하틴의 뿔 - 가장 큰 차이점은 발리앙도 출전했다는 것이죠. 이때 기 드 뤼지냥이 좀 현명해서 레몽3세의 조언대로 소모전, 지구전을 했다면 병참에서 불리했던 살라딘측이 적당한선에서 타협하거나 전투를 유리하게 끌고 갈 수 있었음에도 하룻밤에 전략을 바꿔 예루살렘 왕국의 군사력 자체를 와해시켜 버린 기 드 뤼지냥의 위대함이 돋보입니다. 이 전투에서 레몽3세는 대인배스럽게 (또는 은근히 “비극적 결과”를 바랬는지도^^) 살라딘의 유인책에 속아 자신의 와이프 등이 포위되어 있는 티베리아스를 구원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으나 오히려 겁쟁이 소리를 듣죠. 


참고로 하틴 전투 이후 발리앙은 티레로 피신했다가 예루살렘에 가족들 데리러 간다고 살라딘에게 허락받고 예루살렘으로 갔다가 시빌라 등에 의해 발목 잡혔습니다. 덕분에 졸지에 예루살렘의 수호자가 됬죠.  


기 드 뤼지냥 - 역사상의 행적들을 보면 영화처럼 찌질하기는 한데, 생존력이나 운빨은 매우 좋은 듯합니다. 예루살렘 왕국으로 흘러들어온 것 자체가 프랑스에서 대형사고를 쳐서 (살리스베리의 백작 패트릭을 습격!) 리처드1세에 의해 추방을 당해 형이 발판을 구축한 예루살렘 왕국으로 흘러들어 온 것이죠. 별것 없던 처지에서 예루살렘 왕국의 보두앵4세의 여동생을 꿰어차고, 결국은 왕이 되죠. 


하틴 전투에서 레몽(티베리아스)의 말을 안듣는 뻘짓으로 포로로 잡혔다가 시빌라와 티레로 갔는데, 그가 포로생활 할 당시 풍비박산이던 (하틴의 패전으로 사실상 예루살렘 왕국의 군대 자체가 와해됬습니다) 왕국을 근근히 유지하던 발리앙과 콘라트 같은 이들이 성에도 들여보내 주지 않아 성밖에서 노숙한 덕에 제3차 십자군을 먼저 만나게 되고 과거에 추방했던게 미안했던지 리처드1세의 도움으로 시빌라의 사후 왕권 다툼속에 상당기간 자리를 보존할 수 있었는데다가 (물론 결국은 왕위를 잃습니다) 리처드1세가 귀국하면서 자신이 원정올 때 점령했던 키프로스를 선물로 줌에 따라 졸지에 키프로스의 왕이 됩니다. 아무튼 발리앙 따위는 상대가 안되는 십자군 최고의 미남, 십자군의 장동건이었다고 합니다.       


엔딩 - 발리앙은 대장장이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애초 대장장이도 아니었으니 어디로가요?^^) 영화와는 달리 사자심왕 리처드1세가 주도한 제3차 십자군원정에도 참여하여 그럭저럭 공도 세웠고, 죽기직전까지 예루살렘 왕국의 국왕인 기 드 뤼지냥과 대립합니다. 시빌라는 예루살렘 왕국의 남은 부분이었던 아크레 공성전 당시 사망했구요. 아무튼 발리앙은 리처드1세와 살라딘의 휴전협정 당시에도 십자군측에서 협상에 공헌했다고 하니 영화에서 보여준 전사 보다는 외교관에 더 가까운 캐릭터였다고 하겠습니다. 


번외 이야기 - 당시 유명한 왕인 리처드1세나 신성로마제국의 프리드리히1세(바르바로사)의 행적들을 보면 흔히 동화책에서 나오는 왕하고는 천지차이인 삶을 살았습니다. 온통 영토분쟁에 십자군 전쟁까지 시달리느라 왕궁에 기거한 기간은 거의 없고, 주구장창 전쟁터에서 살았죠. 리처드1세는 잉글랜드의 왕었지만 재위기간 중 국내에 거주한 시간은 반년정도이며, 3차십자군 이후 포로에서 해방되어 동생 존왕의 쿠테타를 처리하고 1개월만에 섭정에게 나라일은 맡기고 다시 출정을 할 정도로 바쁘게 살았습니다. 영어도 못했고 영국 날씨가 싫어 영국에 머무는 것도 싫어 했다고 합니다. 전장에서는 먼치킨 사기캐릭이었지만 갑옷 안입고 설치다가 죽고말죠. 프리드리히1세도 이탈리아로 무려6번의 원정을 했고, 자국내 반란등이 끊이지 않았으며 결국은 제3차 십자군 원정에 출전했으나 가는도중 의문사(공식기록은 익사)합니다.


아무튼 역사적으로 완벽하지는 않지만 영화적으로 보았을 때 설득력 있는 변경이라 생각됩니다. "브레이브 하트" 보다는 수십배 더 나은 설정인듯하구요. 영화 자체도 훨씬 멋지고 볼만합니다. 물론 감독판으로요^^.


MF[ME]


*참고로 티베리아스의 대사중에 십자군 전쟁이 신을 핑계로한 영토와 재물을 위한 전쟁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런저런 책들을 본 결과 개인적으로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냥 우리시대의 "관점"으로 "해석"해보면 맞을 수도 있겠지만 당대의 시각에서는 "진짜로" 구원을 위해 출정했습니다. 수많은 왕들과 영주들이 자기 재산 팔고, 영지를 버리면서 십자군에 참여했습니다. "돈"만 중요시 하는 시대에는 과거 어느시대에는 사람들이 돈보다 더 중요시 하는 것들이 있었다는 것을 믿기 힘들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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