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음악 - 예술 - 공연

[음악]칼 뵘(Karl Bohm) - 이런 저런 생각들 또는 왜 요즘은 칼 뵘을 안들을까?

by 만술[ME] 2011. 3. 23.

아래 진행되는 이야기는 읽으시는 분들의 기대와 달리 칼 뵘에 대한 심도 있는 이야기나 영양가 있는 이야기는 하나도 들어 있지 않으니 제 "헛소리"를 들을 마음이 없으시면 그냥 뒤로가기 해주세요^^.

음악 애호가
음반 수집가들에게는 어떤 음반에 대한 집착이 있게 마련입니다. DG의 몇대 미스터리니 하는 이야기들이 나오게 된 배경도 이런 집착이 한몫하는거죠. 진짜 음악만을 원한다면 자주 언급되는 쥴리니의 브람스 교향곡집 정도는 무손실 압축음원(FLAC)으로 쉽게 구할 수 있으며, 솔직히 그 음반들을 내놔도 많이 팔리지도 않을겁니다.


아무튼 제게도 이런 집착을 불러일으키는 음반들이 제법 많은데, 옛 LP시절에 소장했던 음반들에 대한 향수입니다. 예를들어 요훔의 브루크너 3번 같은 경우는 우울한 날이면 주구장창 틀었던 곡이라 꼭 CD로 구해두고 싶었지만 낱장이 없어서 망설이고 있었다가 요훔의 다른 버전의 3번을 구해들었지만 늘 아쉬움이있었고, 결국은 염가 박스로 전집이 풀리면서 구해진 케이스죠.

칼 뵘 - "피델리오" 서곡의 경우

오늘의 에피소드들의 주인공인 칼 뵘의 경우도 이런 음반이 있었는데, 성음 라이센스로 가지고 있던 베토벤 교향곡 제1번 LP입니다.

 
제가 이 음반에 집착을 갖게 된 것은 메인 어트랙션인 교향곡1번 때문이 아니고 필업으로 들어간 "피델리오" 서곡 때문입니다. 당시 늘 듣던 "피델리오" 서곡은

카라얀의 서곡집

이었죠. 카라얀의 연주가 (당시에 듣기에) 장황한 반면 뵘의 연주는 매우 타이트하면서 간결하고 (뵘에게 이런 표현이 이상한데) 시대연주를 듣는듯 가벼우면서도 중저역의 무게감도 있었죠. 뵘의 전곡반에서 발췌되었기에 (아마 맞을겁니다) 오케스트라도 비인 필이 아니고 드레스덴 스타츠카펠레였는데, 이 악단의 울림이 "피델리오" 서곡과는 정말 잘 어울리는 듯하더군요. 특히나 팀파니 소리!

이후 이런 저런 (이라고는 하지만 LP시절에 구할 수 있는건 몇종류 안됬죠) "피델리오" 서곡을 들어 보고 당시 제가 맹종했던 푸르트뱅글러를 들어보아도 칼 뵘의 연주가 주던 쾌감은 줄수가 없었습니다. 아마도 이 쾌감이 단순한 음악적 감흥에 (당시는 잘 몰랐던) 오디오파일적 쾌감이 더해졌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LP의 시대는 가고 CD의 시대가 도래했지만 뵘의 "피델리오" 서곡은 낱장으로는 구할 수 없더군요. 전곡판 CD 조차도 구할 수 없었구요. 결국 오르페오의 78년 바이에른 실황을 구해 보았지만 서곡만을 볼 때 10여년 사이에 뵘이 많이 노쇠했구나를 느꼈을 뿐입니다. (오페라 자체도 베렌스의 노래는 차치하고 뵘이 페이스를 유지 하기 위해 눈물겨운 노력을 하는 듯 보입니다)

cfile7.uf@176C594C4D884FEF16BD9F.jpg

 

다행히 DG는 2005년 염가판으로 뵘의 69년 드레스덴 "피델리오"를 발매했고, 그 서곡이 바로 제가 찾던 그 연주였습니다. 구입했을 당시 감격스런 마음으로 들어보니 제가 좋아했던 느낌들은 분명히 살아 있는데, 옛날 그 감동은 아닌겁니다. 아뿔사!  이미 아르농쿠르의 서곡집을 몇년간 들어왔던 제게 옛날 뵘이 주었던 감동의 요소는 이제 식상할 수 밖에 없었던거죠. 더 재미 있는 것은 카라얀의 서곡과 비교해 들으면, 카라얀의 접근이 다소 장황하기는 하지만 이제는 더 박진감 있고, 장중하고, 멋스럽고, 세련되게 들리더군요. 

무엇이 뵘의 연주를 평범하게 만들었을까?

아르농쿠르의 음반에 비해 뵘이 설득력이 없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예전과 달리 카라얀 보다 못하게 들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봤습니다. 

제가 그간 시대연주의 영향, 그리고 그로인한 베토벤 연주의 트렌드가 바뀌었음에 익숙해졌다는 것이 첫번째 이유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앞서 이야기 했듯 스타일에서 뵘 보다 더 낡은 느낌을 주는 카라얀의 연주를 더 좋아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이건 이유가 아닐 듯합니다. 저는 이걸 뵘의 연주스타일, 녹음, 그리고 제 오디오의 변천과 연관시켜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뵘이 80년대에 제게 어필 했던 것은 앞에서 얘기했듯 날렵한 듯 긴장감 있는 듯 보이는 오묘한 조화에 생동감 넘치는 연주였는데 이건 어찌보면 제 허접했던 오디오 때문일 수 있다는 겁니다. 카라얀의 연주를 지금의 오디오로 들어보면 다이내믹 레인지가 넓고, 템포의 진폭도 넓습니다. 특히나 약음이 주는 긴장감이 폭발때의 긴장감으로 잘 이어지며, 단순히 큰 흐름뿐 아니고 세부적인 가지들도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게 낡고 재생능력이 충분하지 않은 예전 오디오(인켈 고급형 콤포넌트 + AR4 스피커)에서는 약음과 디테일이 뭉개져서 설득력이 없고, 힘과 밀도가 없으면서 장황하게만 느껴진 반면 지금은 그 연출의 묘미가 제대로 전달되고 있는거죠. 반면 뵘에 있어서 그 무뚝뚝함, 일방적임, 가볍고 단단한 저음은 낡은 오디오에서는 힘과 날렵함, 추진력으로 느껴지지만 지금의 오디오에서는 다소 싱겁게 느껴지게 됩니다. 아울러 이 날렵함과 강약의 대비는 시대연주들이 더 멋지게 구현하고 있으니 뵘의 연주의 장점은 부각되기 힘들죠.

이렇게 녹음과 오디오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는 비슷한 경우가 뵘의 모짜르트 교향곡 40+41번 음반입니다. LP시절 유명한 뵘의 40+41번 음반을 어머니께 부탁했더니 저는 전집의 베를린 필 녹음을 원했는데, 빈 필 음반으로 사오셨더군요. 이후 욕심에 베를린 필 음반도 구입했습니다. 두음반의 녹음 시기는 10여년의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베를린 필이 더 빠릅니다) 해석의 차이는 크지 않습니다. 다만 베를린 필의 음반이 더 장중하고 구조감 있게 들리고, 빈 필의 연주는 더 생동감 있으며, 다채롭게 들립니다. 그래서 41번은 베를린 필 연주를, 40번은 빈 필의 연주를 선호했습니다.

해석이 거의 달라지지 않았는데 두 녹음이 왜 차이를 보이는 것일까 생각해보면 악단의 차이도 있지만 답은 바로 녹음의 시기에 있습니다. 베를린 필에 비해 빈 필의 녹음이 더 좋으며, 그 이유가 빈 필의 연주를 더 생동감 있고 가벼운 느낌이 들게 한 것이죠.

푸르트뱅글러가 드뷔시와 말러를 즐겨 연주했다면 그는 "전설"이 되었을까?

녹음과 그 음반에 대한 평가는 이런 해석도 가능하게 합니다. 푸르트뱅글러의 낡은 녹음들이 아직도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이유는 그의 레파토리들이 베토벤, 브루크너 같은 뼈대와 구축이 중요한 분야에 치중된 원인도 있습니다. 그가 드뷔시나 말러를 주 레파토리로 했다면 그는 그냥 단순히 "전설" 정도였을겁니다. 애호가들 사이에 독일음악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경향의 한 원인은 그 음악들이 오디오가 구식이어도 연주회장의 음향이 좀 안좋아도, 그래서 음악의 디테일이 살아나지 못해도 그냥 그 추진력과 굵은 뼈대만으로도 감동을 선사할 수 있는 스타일의 곡들이기 때문이죠. 파르테논 신전이 반파되어도 (어느정도 상상력으로 공백을 메우며) 그 경이로움에 감동을 받을 수 있지만, 노트르담 성당이 반파되어 그 디테일들이 사라지고 뼈대만 남았다면 그닥 감동을 받기는 힘든 것과 유사합니다. 푸르트뱅글러의 녹음들은 말하자면 파르테논 신전이죠^^.

카라얀과 뵘 - 그리고 오디오적 해답

다시 뵘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뵘이 활동하던 시기, 그리고 그의 사후 LP가 대표적인 재생매체로 자리하고 있을 동안은 뵘의 음반들은 늘 카라얀과 어께를 나란히 했습니다. 어떨 때는 카라얀의 얍삽한 상업주의 때문에 고통 받는 진정한 예술가로 숭상되는 경우까지 있었죠. 지금 그의 음반중에 언급되는 음반들, 그리고 들어야할 가치가 있다고 평가되는 음반들의 수는 카라얀에 비하면 보잘것 없는 정도죠. 당시의 오디오들은 뵘의 타이트하지 않은 통제력, 계산되지 않은 디테일도 그냥 "독일적" 뚝심으로 받아들일 수준이었죠. 하지만 현대적인 오디오는 해상력과 다이내믹, 음장감 등에 있어 예전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비단 오디오 시스템 뿐 아니고 얼마전 구입한

DT 880

이나 포터블로 쓰고 있는

e3c 이어폰

의 경우로 볼 때 헤드폰이나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어도 해상력과 미묘한 음악의 뉘앙스의 재생은 옛 명기들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이런 환경에서는 오케스트라를 거의 완벽에 가깝게 통제하고 약음의 디테일이 음악적 완성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게 치밀한 해석을 한 연주를 남긴 카라얀이 상대적으로 커다란 붓으로 큰 그림만 그린 뵘에 비해 월등히 유리할 수 밖에 없습니다. (반면 포터블 오디오와 MP3가 창궐하는 팝과 가요 시장에서는 "라우드니스 워"(loudness war)가 벌어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죠. 저급한 장비 저급한 음원은 어쩔 수 없이 약음을 없애고 부스팅 해야 음질 좋고 박진감 있게 들리니까요.)

비슷한 사례로 LP가 중요한 매체던 생전에는 수많은 현역 음반을 자랑하던 솔티가 지금은 거의 언급조차 안되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그의 음악들은 저역의 강조와 탄력에서 나오는 힘으로 대표될 수 있는데, 이런 스타일의 녹음은 예전 오디오에서는 오디오파일적인 쾌감과 박진감으로 다가올 수 있었지만 광대역을 표현할 수 있는 지금에 와서는 중저음의 불필요한 부스팅에 의한 균현감의 파괴일 뿐이고, 상대적으로 믿믿한 연주일 뿐이죠.

음악은 예술입니다. 그 음악을 담는 레코딩과 음반의 발매도 예술적 행위의 하나임은 분명합니다만, 그 예술도 경제적 논리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고 시대정신에 영향을 받습니다. (그 엄청난 크기의 대리석이 없었다면 다비드상은 존재할 수 없었죠) 래틀이 베를린 필의 상임에 앉을 수 밖에 없는 것은 그래야 장사가 되고 장사가 되어야 예술이 생존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르네 야콥스의 모짜르트 오페라들을 보면 실황(DVD) 보다 음반이 더 극단으로 치닫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그 이유를 그가 살아남기 위한 하나의 방식으로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뵘은 당시에는 그 자신의 생존 방식이 있었습니다. 카라얀과의 일종의 대척점이 있었죠. 그랬기에 DG는 비슷한 급의, 같은 오케스트라를 지휘해온, 비슷한 레파토리를 (물론 카라얀의 레파토리가 훨씬 넓지만) 공유하는 지휘자 둘을 로스터에 가지고 있으면서도 같은 레파토리들을 녹음하고 음반화 할 수 있었던 거죠. 즉, 카라얀 스타일의 음악 만들기를 싫어 하는 고객에게 대안을 줄 수 있었다는 겁니다. 다만, 시대의 변화, 오디오의 변화, 녹음기술의 변화는 카라얀의 손을 들어준 것이구요.

이게 왜 요즘은 칼 뵘의 음반이 별로로 들리는가에 대한 제 나름의 해답입니다.

MF[ME]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