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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 예술 - 공연

[음악]베이비복스 이야기

by 만술[ME] 2007. 5. 31.
저와 함께 불법복제 레이블인 Turandot & Fox Music을 운영하고 있는 B차장이 늘 비난하는 저의 음악적 취향의 문제점중 하나가 여성 뮤지션에 대한 외모지상주의입니다. 솔직히 클래식 음악에 대해서도 표지사진을 보고 음반을 고른다는 걸 인정 안할 수는 없더군요. 클래식이 그럴진데 가요나 팝, 재즈는 오죽하겠습니까...^^ 정확히 표현하자면 외모가 맘에 안드는 여성뮤지션에 대한 편견은 없지만, 외모가 맘에 드는 여성뮤지션에 대한 편애는 있다 정도...

B차장이 그 극단적인 예로 드는 뮤지션이 "베이비복스"입니다. 평상시 제가 즐기는 음악의 성격, 그리고 취향 등을 고려할 때 "음악적" 이유에서 베이비복스를 좋아할 뿐 아니고 높게 평가하기 까지 하는 것은 말이 안되고 순전히 다른 이유에서 베이비복스를 선호하는게 아니냐는 것이죠. 한때 회사 광고 모델로 베이비복스를 써야 한다고 "공식적" 주장까지 했으니 B차장이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일리는 있습니다만 저도 할 이야기는 있습니다.



첫째 광고모델과 관련해서는 저희 업종에 가수를 모델로 쓴적이 없었고 (베이비복스가 CF모델로 나온적도 거의 없죠?) 한번 계약에 다섯명의 모델이 생기는 것이니 경제적으로도 유리하며, 상품 컨셉에 따라 이 다섯을 적절히 이용하면 광고 효과도 좋을 것이며 각종 이벤트에 초청해서 가수라는 점을 활용하기도 좋을 것이라는 매우 "순수"하고도 전략적인 선택이었습니다. 물론, 보수적인 회사의 분위기상 제 의견이 체택되지는 않았습니다.^^

둘째 오늘의 포스트의 키포인트인데 저는 진짜로 베이비복스를 "음악적" 그리고 "엔터테인먼트적"으로 매우 높게 평가한다는 점입니다. (물론 요즘 나와 있는 베이비복스 리브- 한번도 안봐서 어떤지 모릅니다-에 대한 것이 아닌 기존 베이비복스를 말합니다.) 그럼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이야기 해보죠.

저희가 알고 있는 오리지널 베이비복스는 김이지, 이희진, 간미연, 심은진, 윤은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만 원래 1집부터 이 멤버로 구성되어 있던 것은 아닙니다. 당초 1집의 구성은 김이지, 이희진은 같지만 세명은 차유미, 정현전, 정시운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컨셉 자체도 외모가 뛰어난 섹시 여성그룹 보다는 파격적 이미지의 페미니즘 그룹이라 할 수 있었구요.

1집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전설"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수년전 모 영어학원에서 베이비복스 매니아 한명을 만났는데 제가 베이비복스의 1집에 대해 아는 것에 놀라더군요. 베이비복스에 대해 좀 알아도 모두 2집 "야야야"정도만 알았으니까요. 사실 베이비복스 데뷔시절 가요를 거의 안보는 저로서는 우연한 기회에 "머리하는 날"을 듣게 되었고, 한방에 베이비복스의 음악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시작했기에 나중에 "야야야"가 베이비복스의 노래란 사실에 오히려 충격을 받았죠^^.


아무튼 1집은 매우 독특한 위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베이비복스의 주력인 김이지, 이희진이 1집에서는 거의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며 (특히 김이지는 어느파트에 참가했는지 알기조차 힘들답니다) 방출된 세명의 멤버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고, 음악적으로도 이후의 베이비복스의 행보와는 너무나 다른 내용과 형식을 담고 있습니다. 특히 그 페미니즘이나 저항의식 등이 넘치는 가사와 드라마틱한 음악적 구성은 당시로서는 매우 언더그라운드스러웠죠.

특히나 타이틀곡으로 "남자에게(민주주의)"를 내세운 것은 거의 사회와 음악계의 관행에 도전하는 무모한 시도였다고 할 수 있고, 조금 뒤이은 시기에 등장한 SES나 핑클이 "여성적"인면을 강조했던 것에 대비되는 그야말로 "전사적"인 모습이었습니다. 결과는 흥행참패에 금지곡 지정이었죠. 결국 후속곡으로 부랴부랴 "머리하는 날"을 내세웠지만 그 역시 대중의 구미에는 맞지 않았고, 남자에게 매달려야 하는 전형적 여성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습나다.

"남자에게(민주주의)"가 얼마나 파격적인 음악인가는 (시대상황을 감안하고) 들어보시면 됩니다. "머리하는 날"도 당시(10년전)로서는 생각할 수 없던 여성의 남자에 대한 일방적인 절교선언이고 오히려 남자가 나중에야 내가 왜 머리를 짧게 잘랐는지 알게 될 것이며, 지금 눈물이 나는 이유는 단지 자른 머리가 아깝기 때문이라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여기에 "미혼모"라는 노래까지 가세하면 도대체 기획사가 음반을 팔려고 만든 것인가 싶기까지 합니다. "미혼모"의 가사는 자신 때문에 아기의 삶이 시작부터 잘못되었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소중한 삶을 아기와 바꿀 수 없다는 관념적인 미혼모의 정서가 아닌 지나치리만큼 현실적인 미혼모의 정서를 노래하고 있죠.

가사뿐 아니고 음악적으로도 노래들의 구성이 파격적이며 차유미, 정현전의 보컬이나 정시운의 랩은 매우 뛰어난 노래를 들려줍니다. 여기에 한번 들으면 잊기 힘든 독특한 보이스인 이희진, 김이지가 가세 했으니 탄탄한 기본이상을 갖춘 것이죠.

허나 도전적인 "여전사"들은 대중들의 외면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대수술을 거쳐 사실상 새로운 "베이비복스"가 탄생했죠. (1집 "머리하는 날" 후반에 간미연이 들어 왔습니다) 베이비복스의 출세작인 "야야야"는 솔직히 누가 불러도 히트를 했을 그런 곡입니다. (2집부터 심은진, 이가이가 참여 했는데 "나이사건"으로 이가이가 나가고 윤은혜가 멤버로 되어 지금 알고 있는 멤버로 고정됩니다.) 철저하게 대중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내용과 구성으로 채워졌죠.

이후 3집 부터는 우리가 흔히 아는 베이비복스의 컨셉을 갖춰 나가죠. 헌데 3집 이후의 음반들을 들어 봐도 주로 프로모션 되었던 곡들은 댄스음악이지만 의외로 좋은 발라드들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이후의 활동을 보면 본격적인 엔터테이너들로서의 활동이구요. 음악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지 않고 그냥 댄스가스로 분류되게 되죠.

하지만 음악적으로도 그녀들의 음악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대중적인 것이 나쁜것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니까요. 일단 그녀들의 음악은 매우 친숙합니다. 누가 주도하지 않고 돌려가면서 노래를 하는데 각자 보이스의 개성을 살리면서 융합되어져 있는게 균형감을 느끼게 해줍니다. 물론, 라이브에서의 노래를 들으면 좀 너무한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었지만 현재 통용되어지는 용어로서의 "가수"를 지칭할 때 라이브를 잘해야 할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일단 그녀들의 음반에서 노래는 들을만 하니까요.

여기에 그녀들의 무대를 보면 프로의식이 대단함을 느끼게 됩니다. HOT 덕분에 많은 안티를 지니고 있었던 베이비복스이기에 공연장을 가득메운 HOT팬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꺼져라"를 연호하는 살기 넘치는 무대에서 표정하나 변하지 않고 끝까지 노래를 마치는 그녀들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울러 각소절마다 저리 정신없이 손발을 놀려대는게 보통일이겠냐 싶고, 특히 간미연이 절정부에서 특유의 고음을 내지르며 그 난해한 아크로바틱한 동작들을 해내는 것을 보면 카타르시스까지 느끼게 되더군요.

베이비복스는 부수적으로 국내에 일반적으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던 2PAC을 알리는 공헌도 하게 됩니다. 닫혀진 세상에서 "음악성"과 "저항"을 이야기하면서 사는 뮤지션들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사건이었겠지만 베이비복스는 죽어서 전설이 된 2PAC을 자신들의 7집에 끌어 들이는 파격을 시도합니다. 물론 상업적 선택이었을 수 있고 닫혀진 곳에 서식하는 뮤지션들 입장에서는 매우 불쾌했을 수 있었겠지만, 피쳐링 자체가 합법적인 과정을 통했다면 이하늘에게 받은 것처럼 말도 안되는 비난을 받을 일은 아니었죠. 솔직히 바흐도, 베토벤도, 차이콥스키도 피쳐링 되는 마당에 2PAC은 피처링 안되기를 기대하는 히팝 뮤지션들이 순진한걸까요? 아니면 "나라면 감히..."라고 말한 김진표처럼 웃기는 우상주의에 빠져 있는 걸까요? 감히 희대의 영웅 연개소문을 드라마로 만들어 상업적으로 이용한 SBS는 문을 닫아야겠죠.

1집과 그 이후의 베이비복스는 음악적으로나 비쥬얼적으로나 매우 다릅니다. 하지만 컨셉과 전달하려는 내용에 있어서는 "섹시"가 가미되었을 뿐 유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7집까지 그녀들은 핑클과 같은 요정이나 SES같은 여신의 이미지는 없었죠. 즉, 남성의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또는 막연한 동경을 자극하는 이미지로 승부하지 않고 (표현이 좀 그렇지만) 팜므 파탈적인 이미지가 강했습니다. 히트곡들의 가사들도 그런 경우가 제법 됩니다. 팜므가 파탈하려면 섹시는 필수죠...ㅋㅋ

우리나라 같은 상황에서 여자 다섯명으로 구성된 그룹이 그것도 대중음악계를 좌지우지하는 10대 여성들이 좋지 않게 볼 섹시를 컨셉으로 7집까지 활동했다는 것만으로도 사실 불가사의 합니다. 엄청난 안티에도 버티며 지속적으로 음악을 해왔다는 그 업적만으로도 대단하죠.^^

결론 - 가수는 "주로" 음악으로 이야기 합니다. 때로는 다른 것으로 이야기 하기도 하고. 그 종합적인 면에서 베이비복스는 휼륭하고 대중들도 그점을 받아들였으며(7집까지 냈고, 해체 이유가 대중의 외면 때문은 아니었죠) 음악적 측면에서도 그녀들의 음반에서 "남자에게"와 같은 음악은 물론 "야야야", "Killer", "Why", "배신", "인형", "나어떡해", "우연" 등의 수많은 곡들을 들어보면 매우 큰 즐거움을 준다는 것, 그점에 있어서는 부정할 수 없을 듯합니다. 음반으로 판단할 때 그녀들은 음악만 들어도 괜챦은 가수들이었죠.

지옥이 얼어붙는 일도 벌어지는 마당에 언젠가 그녀들이 다시 뭉쳐보기를 기대해 봅니다.

MF[ME]

*본문의 노래제목 링크를 찍으시면 "남자에게(민주주의)"와 "머리하는 날"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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