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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미야베 미유키 : 헤이시로-유미노스케 시리즈 (얼간이, 하루살이, 진상)

by 만술[ME] 2015. 10. 21.

이미 몇 번 블로그에서 다루었지만, 중기적인 독서 프로젝트 중 하나로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시대물을 읽고 있습니다. 블로그에서는 지난번 처음으로 오하쓰 시리즈를 다루었고, 읽기는 모시치 시리즈 두 권(<혼조 후카가와의 기이한 이야기>, <맏물 이야기>)과 개별 작품인 <메롱>을 거쳐 얼간이 무사 헤이시로 시리즈 세 권을 완료했습니다. 원래는 한 시리즈가 끝날 때마다 간단한 서평을 쓰려 했는데, <메롱>은 다른 개별 작품들을 끝낸 뒤 묶어서 다룰 생각이고, 모시치 시리즈는 올해 초 <맏물 이야기>가 제법 많이 팔린지라 저까지 정리한 글을 블로그에 올릴 필요는 없을 듯하여, <헤이시로-유미노스케 또는 얼간이 무사 시리즈>로 건너뛸까 합니다.



[가능한 대로 스포일러는 없이 글을 썼지만, 행여 조금의 정보라도 스포일러라고 생각하시는 분이라면 여기서 다른 글로 넘어가 주세요.] 



헤이시로-유미노스케 시리즈는 <얼간이>, <하루살이>, <진상>의 세 권이 출간되었고, 모두 북스피어에서 번역 출간했습니다. 미야베 미유키의 인터뷰를 볼 때,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후속작이 나올 가능성도 높습니다. 등장인물들의 면면을 보아도 아직 성장할 여지가 많고 숨겨진 사연들도 많을 듯합니다. 더구나 세 권의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수많은 등장인물이 얽히고설킨지라 등장인물끼리 만들어 놓은 사연들을 펼쳐놓을 가능성도 큽니다.


작품의 구조는 앞 두 권은 단편들(밑밥)-장편으로, 마지막 권은 장편-단편들(후일담)로 돼 있습니다. 부수적인 듯 보이는 이야기들이 하나의 큰 줄거리와 연결되는 구성이야 흔하지만, <진상>과 같이 후일담이 전체의 1/3을 차지하는 경우는 드물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저는 영화를 보건 소설을 보건 후일담을 듣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영화는 블루레이 등의 부가 영상물로 이 후일담을 대신하곤 합니다) 이런 구성이 마음에 들었지만, 취향에 따라 사족으로 느끼는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에도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피비린내 진동하는 범죄와 그것을 해결하는 명석하고 잘생긴 무사의 이야기를 기대하신다면 주소를 잘못 찾으신 것이고, 범죄를 메인으로 하는 다양한 이벤트가 펼쳐지는 에도시대 테마공원 탐방 정도로 생각하시는 편이 좋습니다. 쉴 틈 없이 다양한 사건이 펼쳐지고 (더구나 상당 부분은 큰 줄거리랑 상관없는 곁가지 이야기이기까지 합니다) 읽는 것만으로 입맛을 다시게 하는 다채로운 먹거리가 등장하고, 역사책이 가르쳐 주지 않는 여러 풍속이 등장하며, 이런저런 일에 종사하는 여러 등장인물이 등장합니다. 저같이 디즈니랜드 가면 탈것도 좋지만 꾸며놓은 테마들을 구경하고 캐릭터 옷을 입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보는 것도 즐거운 사람이라면 아주 좋아할, 글로 여행하는 에도시대 테마공원입니다.  



주인공 헤이시로는 못생긴 말상에 아주 명석하지도 않고, 천성이 게을러서 순찰 나갔다가 반찬가게 아줌마랑 농담이나 따먹거나 그 반찬가게 방에서 노골적으로 뒹굴 거리는 것이 주특기일 정도고, 그를 도와주는 유미노스케는 명석하고 하늘이 내려준 미남자지만 밤에 오줌을 지리는 어린아이니 엄청난 등장인물을 기대하면 그 또한 실망일 수 있습니다. 이 둘 이외에도 정말 다채로운 등장인물들이 활약하는 데, 모두 나름의 개성이 있고, 매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들이 얽히고설키는 모습을 보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즐거움이 되죠. 물론 이 다채로운 등장인물들이 엄청나게 심오한 캐릭터 성을 지니고 있지는 않습니다. 제가 앞서 테마공원이라 한 맥락과 일치하게 그 다채롭고 흥미로움은 딱 테마공원 수준입니다. 때로는 복잡한 듯 위장해서 한 꺼풀 벗기면 바닥이 드러나는 캐릭터들이죠. 



테마공원의 놀이기구와 퍼레이드에도 감동이 있듯, 에도시대 테마공원 여행도 감동이 있습니다. 작가의 몇몇 묘사들, 헤이시로의 입을 통해 말하는 인생의 경구들은 정말 절묘하고 재미있을 때가 많습니다. 쉽고 재미있는 말로 핵심을 찌르죠. 찾고자 한다면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 같은 류의 경구를 많이 찾아낼 수 있습니다. (톨스토이만 멋진 말을 하는 건 아닙니다^^.) 


세권은 시간순으로 진행되고 상당수의 등장인물이 계속 나오면서 발전하고 그들의 뒷사정도 하나하나 드러나기 때문에 <얼간이>, <하루살이>, <진상>의 출간/시간 순서대로 읽는 것이 좋습니다. 물론 작가가 최대한 단행본 느낌을 살리기 위해 앞 이야기 중에서  필요한 부분은 곳곳에 설명하기 때문에 전편을 읽지 않았다고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자잘한 재미를 위해서도 순서대로 읽는 것이 좋습니다. 




한 권만 먼저 맛보기로 읽는다면, 일반적인 흐름으로 미스터리를 파헤치는 내용을 좋아하신다면 아마 첫 번째 이야기인 <얼간이>가 가장 좋을 것입니다. 비슷한 방식이 <하루살이>는 책도 상하로 분권 되어 두 권이나 되죠. <진상>은 상하권을 합하면 무려 1,100쪽에 육박하는 데, 다채로움과 아기자기함에서는 전작들을 훨씬 넘어섭니다. 등장인물들에 친숙해져서인지 다소 산만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그 산만함 자체로 매우 좋았습니다. (산만한 이야기 싫어하면 호불호가 갈릴 듯합니다) 책이 길지만, 그냥 미드 <프랜즈> 보는 느낌입니다. 등장인물들이 뭘 하든, 스토리가 어찌 진행되든, 지금 읽고 있는 이야기가 본 줄거리랑 큰 상관이 있든 없든 그냥 보는 것이 즐겁다는 것이죠. 더구나 미야베 미유키는 던진 떡밥을 후속작에서도 잘 이용하고 회수하므로 떡밥이 커지는 것을 보는 재미도 있습니다. (물론 떡밥을 아귀가 딱딱 맞게 모두 회수하는 것은 아닌데 인생이란 것이 아귀가 모두 맞아 들어가면 오히려 재미없죠)




에도시대 테마공원 ㅡ 제가 붙인 명칭이지만 이 보다 이 시리즈를 잘 설명하는 말은 없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테마공원에서 맛보는 공포는 순간은 짜릿하지만, 현실처럼 모든 저항의 의욕을 무기력하게 만들지 않으며, 테마공원에서 벌어지는 비극은 그 규모가 아무리 커도 극복할 수 있고, 다음 순간은 웃어버릴 수 있습니다. 등장인물은 나름의 고민을 하고 그 고민이 비극을 만들기도 하지만 그들은 햄릿이 아니며, 상황에 따라 절묘하고 의미 있는 경구들을 내뱉지만 일자무식한 그리스 노인네의 한마디보다 깊은 울림을 가지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이 테마공원에도 즐거움 말고 감동이 있고 먹먹함도 있습니다. 테마공원이 다 거짓이고 꾸며낸 것이라 해도, 화려한 성은 화강암이 아닌 스티로폼으로 만들어졌다 해도 그 공원에서 느끼는 즐거움과 감동은 진짜입니다. 


아무튼, 에도시대 테마여행 한번 떠나보시죠.


MF[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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