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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과 달리 풍족한 놀 거리가 많지 않았던 시절에 살았기 때문인지, 어린 시절 지도를 보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해외여행 자체가 국가의 허가를 받아야 가능했던 시절인지라 어린아이가 해외여행을 나간다는 건 그야말로 상상 속의 이야기였죠. 그래서인지 해외의 문물을 접할 수 있는 TV 다큐멘터리들도 제법 인기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집에서 도보 10분 거리에 있는 고모님 댁에는 저 같은 아이에게 보물 같은 책들이 제법 있었는데 (친지의 강매에 의에 산 장식용 책일 것 같습니다) 김찬삼의 해외여행기 세트, 라이프의 세계대전 세트 같은 책들이죠. 아울러 저희 집에는 <뷰마스터>라는 일종의 슬라이드 필름용 루뻬가 있었는데, 동네에서는 떠돌이 아저씨가 다양한 필름을 가지고 다니며 편당 얼마씩 받고 아이들에게 보여주기도 했죠. 원형으로 된 슬라이드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만화도 많았지만, 세계 각국의 문물을 보여주는 것들도 제법 많았습니다. 요즘의 3D 방식과 유사하게 슬라이드 필름 두 장을 좌우 각각의 눈으로 보는 구조로 되어 있어 나름 입체로 해외의 풍광을 감상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 저는 만화도 좋았지만, 해외 풍물도 많이 좋아했고 몇몇 세트는 소장하기도 했습니다. (장비와 필름은 아직도 가지고 있습니다) 요즘은 디지털 시대에 맞는 버전도 나오고 있더군요.




사진은 흔히 볼 수 있는 외부 광원을 이용한 제품인데 제가 가진 것은 내부에 꼬마 전구가 있어 날씨에 상관없이 볼 수 있는 업그레이드 제품이었습니다.



이렇게 책, 지구본, 지도는 어린 제게 세계에 대한 관심과 상상을 키워주는 도구였습니다. 도법에 대한 이해가 없었기에 공산주의자들이 자리 잡은 소련의 크기는 너무나 위압적으로 보였고(아마 종북좌빨에 대한 공포정치가 아직도 국내에서 먹히는 이유는 이 왜곡된 세계지도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적도 인근의 아프리카가 사실은 소련 따위는 상대도 안 되는 크기며, 미국과 캐나다를 집어삼키고도 남는다는 것을 몰랐지만 말이죠.


사실 초중고교 때 받는 교과서 중에 집에 두고 볼 정도의 수준을 가진 것은 사회과부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세계지리는 물론 각종 통계자료, 연표, 역사적 사건의 지도상 표기 등으로 볼 때 이런 수준의 책을 서점에서 구입하려면 제법 비싸거든요. 물론 세계는 시시각각 변하고, 인터넷을 조금 잘 활용하면 최신자료를 얻을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책으로 펼쳐놓고 보는 것과 인터넷을 뒤지는 것은 상상력의 자극에서는 많은 차이를 보이는 것 같습니다.


<세계지리>라는 기준에서 볼 때, 뒤적거리면서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올해 초 출간된 <세계지리 : 경계에서 권역을 보다> 보다 더 좋은 책은 없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솔직히 상상력을 자극하는 용도로 쓰기에는 넘쳐나는 정보를 담고 있는 책입니다. 무려 760쪽에 다양한 지도와 통계자료, 사진 등을 담고 있습니다. 더구나 해외의 책을 번역한 것이 아니고 우리나라의 저자들이 쓴 책이라 유럽중심의 지리관을 벗어나 권역과 경계를 객관적인 시각으로 보여주며, 올해 출간된 책답게 최신정보를 가득 담고 있습니다.





저자들은 일반적인 권역별 서술을 넘어 다양한 경계지역의 관점에서도 바라볼 수 있는 길을 보여줍니다. 슬쩍 넘어가던 카리브, 캅카스, 지중해, 중앙아시아의 지리와 역사가 제법 상세히 기술되어 있으며, 서구열강의 정책들이 경계지역을 비롯해 세계 각국의 현재 상황에 어떤 지정학적, 문화적 영향을 주었는지를 보여줍니다. 데이비드 프롬킨이 <현대중동의 탄생>에서 중동문제의 기원을 보여준 것만큼 상세할 수야 없지만, 현대사회의 많은 문제의 기원을 지리의 수준에서는 제법 다양하고 상세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책 곳곳에 자리 잡은 <지리스토리>라는 코너는 <심포지움>의 기원에서 <월레이스 라인>, <해방신학>, 그룹 <마룬 5>의 음악적 기원까지 지리와 연관된 다양한 짧은 이야기로 재미를 배가 합니다. 여기에 국내에 상당수인 색각이상자를 위해 대부분의 지도와 도표를 색으로만 구분하지 않고 알파벳 기호를 이용해 구분해 놓고 있습니다. 이런 감동적인 배려는 아마도 저자의 상당수가 학교에서 가르치시는 분들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세계지리 : 경계에서 권역을 보다>가 친 서구적인 지리서의 틀을 탈피했다는 점에서는 성공적이지만, 제목과 달리 <경계(의 입장)에서> 권역을 보고 있지는 않습니다. 물론 저자들이 경계지역을 별도로 다루고, 권역의 서술에서도 권역만 동떨어진 개념으로 서술하지는 않고 <경계>와 문명의 교류와 접합이라는 부분을 늘 염두에 두고 저술했다는 점에서는 어느 정도 제목의 취지를 반영했다는 생각은 듭니다. 사실 권역 중심의 세계지리는 무시할 수 없는 일이니 제목만으로 좀 더 경계의 입장에서 권역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입장을 기대한 제가 너무 큰 기대를 한 것일 지도 모르죠. 그런 점에서 저는 남미나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 대한 서술에 조금 더 그 지역에 대한 공감적 시선이 있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만, 이 책 정도의 서술 방식도 서구중심의 사고에서 많이 나아간 것은 사실입니다.


다수의 저자가 각각의 부분을 나누어 서술했음에도 책 전반적으로 일관된 시각이 균형 잡혀 있으며, 이 때문에 통독이 재미있기 힘든 종류의 책임에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나가면서 매우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아울러 일반적인 지리서와 달리 통독의 가치도 충분히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책의 수준과 만듬새로 볼 때 비싼 가격은 아닙니다만) 책 가격이 싸지는 않고, 세월이 흐르면 어쩔 수 없이 낡은 정보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분야지만, 여유가 되시고 관심이 있으면 집에 한 권 갖춰 두고 통독을 한 번 한 뒤, 틈날 때마다 뒤적여 보기 좋은 책으로 추천합니다.   


MF[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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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만술[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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