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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다른 글을 통해 이야기했던 것처럼 올해부터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시대 시리즈물(출판사인 북스피어에서는 <미야베 월드 2막>이라 부릅니다)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읽고 있는 시리즈물이 적지 않음에도 국내에 번역된 것으로만 15권이나 되는 시리즈를 새로 시작한다는 것이 부담이 되기는 했지만, 북스피어 사장님의 추천 순서대로 <말하는 검>, <흔들리는 바위>, <미인>의 세권을 읽고 나서 드는 생각은 시작하기 잘했다는 것입니다.


주인공이 같은 책을 15권씩이나 읽으려면 좀 지루할 수도 있지만 <미야베 월드 2막>의 작품들은 다행히 몇 개의 시리즈와 단일 에피소드로 묶여 있는 느슨한 시리즈입니다. 제가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이 시리즈를 새삼 언급하는 이유는 그중 초기작의 한축을 맡고 있는 오하쓰 시리즈를 모두 끝냈기 때문인데, 위에 언급한 세권 이후에 더 이상 오하쓰를 주인공으로 하는 작품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이 시리즈의 표지와 책등은 정말 아름답고 시리즈의 느낌을 고스란히 전하고 있습니다



미미여사(미야베 미유키를 다들 이렇게 부릅니다)의 인터뷰(<르 지라시> 3호)에 의하면 앞으로 오하쓰를 주인공으로 하는 작품은 나올 가능성이 없어 보입니다. 


“오하쓰는 나이를 먹지 않지만.” 미야베 미유키는 단숨에 대답하더니, “―저는 나이를 먹습니다”라고 말을 이으며 살짝 웃었다. 오하쓰 시리즈에서 고난에 맞서 사건을 해결하는 건 초능력을 지닌 오하쓰나 말하는 고양이 데쓰였다. 이때 오하쓰와 데쓰는 사건의 당사자이기보다는,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외부에서 뛰어드는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메롱』을 기점으로 작가는, 구원이란 초능력을 지닌 외부의 존재가 주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 평범한 다른 이들과의 유대를 통해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임을 절실하게 깨달았다고 한다. “나이를 먹”었다는 것은 좀 더 현실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는 표현이리라. 그러고 보면 ‘거울’, ‘미늘 갑옷’ 등 일종의 신물神物을 사용하여 ‘괴이’를 잠재우는 패턴은 『미인』에 등장하는 말하는 고양이 데쓰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에 나타나지 않는다. 외부에서 온 존재에게 구해지고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유대가 낳는 끝없는 힘을 그렸기 때문에, 사령의 망집에 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마음을 모아 맞서는 『메롱』의 결말은, 그래서 이전 미야베 미유키 시대물과는 다른 느낌을 줄 수밖에 없지 않나 생각해 본다.


이 인터뷰는 <미인>을 읽기 전에 읽었고, 때문에 무슨 뜻인지는 어렴풋하게만 이해되었었습니다. <미인>을 읽고 나니 미미여사의 고민을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 오하쓰가 아무리 부교나리의 비밀지령을 받고, 인근에서 잘 알려진 오캇피기인 로쿠조의 여동생이라 할지라도 후루사와의 말대로 <밥집 간판 아가씨>가 탐문하고 해결할 수 있는 사건의 범위와 해결 방식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특히 오하쓰는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시체를 만지거나, 용의자를 만나거나, 사건현장에 방문하는 등의 접촉을 해야하는 데, <밥집 간판 아가씨>가 그러자면 많은 사람들의 협조를 받아야하고 그 협조의 과정에서 피치못하게 쉬쉬하고 있는 영험한 오하쓰의 능력이 알만한 사람에게는 모두 알려질 수밖에 없게 됩니다. 한편으로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라 시리즈물이라면 이건 치명적인 문제죠. 시리즈 몇편 더 진행하면 <영험한 오하쓰>라고 간판 걸고 밥집 대신 퇴마사무소를 차려야 할 판이라고 할까요.


2. 우쿄노스케, 로쿠조, 하다못해 고양이 데쓰까지 캐릭터들이 모두 매력적입니다. <미인>의 경우 잠깐 등장하는 후루사와 부자에몬의 대사와 행동까지 매력적이니 영화로 따지면 거의 <어벤저스> 수준인 거죠. 등장인물 한번씩 보여주고 나면 끝나는 일일극도 아니고 이런 매력적인 캐릭터들 속에서 공식적인 능력이나 처지에서는 다른 캐릭터들에 상대가 안되는 오하쓰가 주인공을 맡아 사건을 이끌고 가야하니 무리수를 둔 장면들이 등장하게 됩니다. 오하쓰가 워낙 당찬 성격이니 가미카쿠시 당한 처자들의 집을 탐문하는 것 정도는 이해하는 데, <몸값>을 직접 들고 간다거나, 오캇피기인 오빠는 올케나 챙기고 살인범은 제가 잡을께요 하는 식으로 밀대를 들고 살인범을 때려잡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은 이 시리즈가 계속 이대로 나가면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3. 오하쓰의 힘은 <인지>의 능력이지 퇴치의 능력이 아님에도 다른 세상에서 온 존재와 대결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니 아이템이 필요해지고 전설템(거울)에 마부(도사의 도장)를 해서 최종보스를 잡아야하는 거죠. 용의 영혼으로 데스윙 잡는 거랑 비슷한 거랄까요? 작가 입장에서는 다양한 상대에 맞춰 각종 아이템을 장만하고 마부하고 보석 박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닐 겁니다.


물론 1~3의 구도에서도 시리즈물을 재미있게 쓸 수 있을 겁니다. 특히나 (에도가 아닌) 동경 밖에 모르는 제가 에도 기행문(이 시리즈 독파하겠다고 <미야베 미유키 에도산책>도 읽었습니다)을 읽으면서 키득거리게 할 정도의 문장력을 지닌 미미여사라면 말이죠. 하지만 요점은 <오하쓰는 나이를 먹지 않지만. ―저는 나이를 먹습니다>라는 말에 있습니다. 속뜻을 추정한다면 오하쓰는 미미여사의 초기 작품이고 젊은 시절의 작품이라 이런 캐릭터, 이런 진행, 이런 해결 방법을 써도 될 만 했지만, 이제 미미여사는 이 바닥에 거장이 아닙니까? <양판소 초년 작가도 아닌 제가 그런 방식으로 글을 쓸 수는 없지요>하는 말이 아닐까요?


<미인>의 원작이 1997년 출판되고 아직 후속작이 없는 것을 보면 미미여사의 의지는 확고한 듯합니다. 아직 읽을 책이 많이 남은 입장에서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이 좀 그렇습니다만, 위대한 거장들도 절정의 시기에 가끔 천진무구한 작품들을 내기도 하는 법이니 언젠가 미미여사도 호러가 곁들인 로맨틱 코미디물을 다시 쓰고 싶으면 오하쓰-우쿄노스케의 뒷이야기를 들려주었음합니다. (장편이 뭐하면 단편으로도 환영입니다)


MF[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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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만술[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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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마야

    만술님 추천이라 질렀습니다.
    읽는 순서 보고 과감하게 미인까지 질렀는데 재미 없으면 책임지세요..ㅋ

    2015.03.17 17:5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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