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포스팅은 불친절하게 바로 의견을 개진할 생각이기 때문에 이 글을 읽기 전에 또는 읽고 나서 이해가 안되는 분들은 아래 링크 글들을 읽어 보실 것을 권합니다.
1. 무엇이 논란인가?
문제는 간단하게 정리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의견 (1)
자본주의 사회에서 저자가 자신의 시대물 소설을 어떤 국가에 피똥을 싸가며 띄워준 기존 출판사가 출판의사를 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작품과 달리) 이런 저런 정황상 일단 베스트셀러가 될 것이 뻔해 보이는 어떤 작품을 비싼 인세를 주는 다른 출판사에 넘기는 것은 자유다.
아울러 기존 출판사가 이런저런 마케팅으로 수년간 이 작가의 시대물들과 현대물에 어느 정도 입지를 올려놓은 것, 더구나 시대물에 대해서는 전작출판을 하겠다고 독자들에게 공언했음에도 불구하고 돈 될 것으로 보이는 <특정작품>을 상대적으로 높은 인세를 주고 출판하는 것은 법적인 것을 포함 전혀 문제가 없다.
더구나 미야베 미유키의 소위 <에도 시리즈>라는 건 에도 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런 저런 시리즈와 스탠드 얼론 작품을 뭉뚱그려 말하는 것이고, 이런식을 <해리 보슈>와 같은 <시리즈>라 칭하기는 어렵지 않겠는가? 따라서 이번 작품을 시리즈로 묶은 건 그쪽 의견이고 시리즈가 아니라고 보는 건 이쪽 의견이다.
의견 (2)
기존 출판사가 자신의 작품들의 입지를 높이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경주했고, 극히 마니아적인 내용을 담은 시대물들을 꾸준히 출판해온 점, 더구나 각종 인터뷰와 연락 등을 통해 출판사의 철학 등을 잘 아는 저자가 막상 돈 될 작품은 돈 좀 더 주는 다른 출판사에 넘기는 행위는 부당하다.
또한 기존 출판사가 본 작가의 시대물을 띄우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알고, 전작 출판을 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음을 알고 있음에도 다른 작품 다 놔두고 돈 될 <특정작품>을 쏙 빼먹는, 그것도 출판계의 거대기업이 영세한 기업이 감당하기 벅찬 인세를 제시해서 가로채는 행위는 부당하다. 더구나 (비록 뽕빨 다 빨아 먹은 책이기는 해도) 그 출판사도 미국서 별로 안팔리는 책을 마케팅 잘해서 <교양필수서적>의 지위에 올려놓았더니 다른 곳에서 가로채어가는 사태를 당한 경험이 있고, 그에 대해 언론플레이도 제법하지 않았던가!
2.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면 도의적 책임은 없는 것인가
천박한 자본주의논리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기존의 거래와는 상관없이 (기존 출판사도 자기 책 팔자는 생각에 그 시리즈 띄워 준 것 아니겠습니까) 필요한 재화를 높은 가격을 주고 사고, 높은 가격에 파는 것은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법적인 문제와 도의적인 문제는 엄연히 다른 차원입니다. 소비자에게 질소를 팔면서 과자를 조금 서비스로 끼워주는 행위는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는 행위인 것처럼 말이죠.
작고 기특한 출판사가 신제품 하나 발굴해서 수년간 인지도 올려놓고 이제 돈 좀 벌어 볼까 했더니 알짜만 골라서 쏙 빼먹는 행위는 정말 아니죠. 더구나 두 출판사는 규모에 있어서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 아닙니까? 국내에 번역되지 않은 장르소설들이 얼마나 많으며, 소개되지 않은 작가는 또 얼마나 많습니까? 하다못해 예전에는 나왔다가 판권이 끝나서 절판되어 버린 검증된 명작들도 부지기수죠. 이런 것들 다 놔두고 하필 그 책이어야 했는지? 출판사도 뭔가 구린지 이건 니네가 말하는 그 시리즈가 아니야라고 하고 있지만, 그렇다면 오하쓰 시리즈와 모시치 시리즈, 여기에 외딴집 같은 스탠드 얼론 작품들까지 통털어 <미미여사의 에도물>이라 부르며 일관된 시리즈로 출간하는 출판사와 그것을 시리즈 개념으로 접근하는 독자들이 이상한 것일까요? <시리즈고 말고 내가 웃돈주고 사와서 내겠다는데 뭐 하자있어?>라고 말하는 게 더 맞는 자세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면 <정의> 운운했던 자기들의 모습이 웃기니 요건 니네 시리즈랑 (뭔지는 몰라도) 달라 하는 것이겠지만 말이죠.
우리나라가 책이 잘 팔리는 나라고 장르소설이 장사가 되는 분야라면,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 중 에도 시대를 다룬 소설들을 싸잡아 하나의 시리즈록 묶는 행위, 그리고 다른 출판사에서 기존의 출판사에서 내던 소설들의 주인공과는 다른 주인공을 다룬 연작을 출판하는 것에 툴툴거린다는 행위는 오히려 웃기는 행위일 수도 있겠지만, 국내의 상황이 모시치는 니꺼, 오하쓰는 내꺼, 미시마야 변조는 쟤네꺼 같은 구분을 하기는 힘들지 않냐는 겁니다.
흔히들 기업의 목적은 이윤의 추구라 하지만, 인간 삶의 목적이 먹고-싸고가 아니라면 기업의 목적도 단순히 이윤추구 따위는 아닙니다. 그런데 사람도 그냥 냅두면 자꾸만 게을러져 먹고-싸고만 하고 싶은 것처럼 기업도 냅두면 근로자들 월급 깍고, 품질을 나쁘게 만들어서라도 이윤을 추구하고픈 욕구를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어떤 부분은 법으로 제한을 두죠. 삼성과 LG가 TV가 아니고 포장마차 떡볶이로 경쟁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니까요. 그렇지만 모든 것을 법으로 시시콜콜 정할 수는 없고 상당부분은 자율과 상생에 의지합니다. 사람들의 관계도 법보다는 예의, 존중, 배려가 더 중요한 삶의 지침인 것처럼 말이죠.
간단합니다. 제가 보기에 예의, 존중, 배려가 없는 일이 벌어진 겁니다. 그런데 동급인 경우는 그냥 예의 없는 정도겠지만, 이 정도 체급의 차이가 나는 상황에서라면 그냥 양아치 짓인 겁니다.
3. 누구에게 도움이 되는가?
미야베 미유키와 <특정작품>을 출판한 출판사에는 우선 금전적으로 도움이 되겠죠. 출간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베스트셀러로 등극했으니, 출판사가 선인세를 얼마나 주었는지는 몰라도 손해 볼 일은 없을 듯도 합니다. 기존 출판사의 골수팬들도 처음에는 분개해도 많은 분들이 궁금해서 사볼 가능성도 있고요.
하지만 우리나라 출판시장 전반에 있어서, 그리고 독자의 입장에서는 좋을 일이 하나도 없을 듯합니다. 미미여사가 이번 인세를 <한번 일어난 대박사건> 정도로 생각할지 <그래, 나는 이정도 받아야 하는 작가야> 정도로 생각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앞으로 그녀의 시대물, 현대물의 인세는 오를 게 분명해 보입니다. 더불어 주위 동급 작가들의 인세도 오르겠죠. 안그래도 책 하나 내려면 이것저것 재고 따져야 할 터인데, 재고 따지는 기간이 더 길어질 것이고, 손익계산서 뽑아보고 그냥 덮는 책들이 늘어날 것입니다. 한마디로 조금 더 출판사 하기 힘든 시장이 되는 거죠.
독자들 입장에서도 책값이 오르거나 신간이 나오는 간격이 길어지는 불편이 있을 겁니다. 아울러 꼭 나왔으면 하는 책들이 나오지 않을 확률은 더 늘어난 것이고요. 통일되고 예쁜 표지 디자인으로 시리즈를 모을 가능성이 희박해진 것은 덤이죠. 이번 책의 판권계약이 몇 년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반적인 5년의 판권 기간을 전제로 5년 뒤에 <기존출판사판>으로 만날 수도 있기를 기대해야 겠습니다.
4.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별것 있습니까? 앞으로 또 유사한 사태가 일어나는 것을 막자면 그냥 그 책을 안사보면 그만입니다. 다른 출판사들이 이 시리즈 독자들은 유별나서 어느 출판사에서 내지 않으면 사보지 않더라, 그래서 잘못하면 선인세도 못건지고 망한다는 생각을 각인시켜주면 됩니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요? 작가와 작품의 인지도를 보았을 때 아마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냥 별 재미 못봤다 정도면 몰라도요.^^ 그래도 꿈틀 거리는 거라도 안보여주면 자꾸 밟힙니다.
MF[ME]
*그런데 좀 묘한 게 작년에 이 사건이 터지지 않았다면, 아마 저는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시대물을 읽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겁니다. 솔직히 전혀 관심이 없던 시대, 작가였거든요.^^
'책 - 게임 - 취미생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독서]알라딘 사은품 <끝내주는 책> 관련 주절주절 (0) | 2015.07.17 |
---|---|
[독서]덜 익은 시인은 흉내만 내고, 성숙한 시인은 훔쳐온다 (6) | 2015.06.19 |
[독서]우주에서 불멸의 오페라 듣기 (2) | 2015.04.17 |
[독서]매거진<B> No.35 HELVETICA (0) | 2015.04.13 |
[독서]<클레이모어> 정식 출간본 완결 및 약간의 반성문 (6) | 2015.04.0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