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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 예술 - 공연

[음악]로린 마젤 (Lorin Maazel) 1930. 3. 6 ~ 2014. 7. 13

by 만술[ME] 2014. 7. 14.




제가 음악을 들으면서 처음 구입했던 음반은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 LP였는데, 바로 아쉬케나지와 마젤이 협연한 음반이었습니다. 사실은 어머니께 다른 음반을 말씀드렸는데, 음반점에 그 음반은 없었고, 대신 추천받아 사오신 음반이 아쉬케나지-마젤의 음반이었죠. 정말 처음으로 클래식을 듣던 시절이라 마젤은 이름만 들어보았고, 아쉬케나지는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연주자였습니다. (아쉬케나지는 어머니께서 좋아하시던 연주자였습니다)


그때 제가 기대했던 연주는 러시아라는 나라를 생각할 때 떠오르는 거친 매력, 웅장함, 그리고 강력한 타건, 끓어오르는 열정이었는데, 마젤과 아쉬케나지의 음반은 전혀 제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죠. 그야말로 "나의 차이콥스키는 이렇지 않아~!"하는 기분이었다고나 할까요.





시간이 흐르고 음악을 많이 듣게 되면서 아쉬케나지라는 연주자에 대해서도 좀 더 알게 되었고, 서서히 이 음반의 매력도 느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쉬케나지의 음색은 매우 영롱하고 아름다우며, 균형 잡힌 연주를 들려줍니다. 더불어 마젤이 지휘하는 LSO도 결코 피아니스트와 대결하려 들지는 않지만 정말 훌륭한 배우자로서 조화를 보여줍니다. 그야말로 '협'주곡의 정석을 보여주는 연주라 할 수 있죠. 2악장에 이르면 아쉬케나지와 마젤의 조합은 천상의 음악을 만들어 냅니다. 거의 실내악이라 여겨질 정도의 피아노와 각 악기군의 주고받음은 연주자에 따라서는 밋밋하게 만드는 이 악장에서 갖은 재미를 찾아내 들려주는 듯합니다. 3악장에서 흔히 기대하는 폭발감은 느낄 수 없지만, 기다렸다는 듯 강력함과 야성의 거칢을 이제는 숨기지 않고 들어내는 마젤의 LSO와 아쉬케나지의 조화는 제법 색다른 매력을 제공합니다. 치고 받는 대결도, 함께 어울려 땀과 열기로 범벅된 조화도 아니지만 마치 오케스트라의 한 파트를 담당하듯 자연스럽게 오케스트라와 조화되는 매력이 있죠. 이 땀으로 범벅되어야 할 악장마저도 아쉬케나지의 피아노는 영롱합니다.


덕분에 제는 향후 이 음반을 '가장 듣기 좋은' 차이콥스키 피아노협주곡 1번으로 여러 명에게 추천했습니다. 이후 아쉬케나지는 여러 협주곡을 녹음했지만, 이 음반에서의 마젤 만큼 정교하게 아쉬케나지와 어울리는 음반도 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젊은 시절 마젤은 이 음반에서 느낄 수 있는 대로 타고난 천재성으로 정교하고 치밀하면서도 그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지게 하는 재주가 있었습니다. 


*  *  *


마젤은 1980년에서 1986년까지 빈 필의 신년음악회를 지휘했습니다. 이때만 해도 방송이 무조건 시청률만을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인지, 아니면 이런 프로그램이 인기가 있었던 것인지 또는 (전두환 휘하에서 '땡~전~' 뉴스를 하던 시절에 그럴리는 없지만) KBS가 공영방송의 역할을 잘 수행했던 것인지 모르지만, 신년연휴 기간 동안 제법 볼만한 저녁 시간에 방송을 해줬습니다. 87년 카라얀이 등장하기까지 수년간 마젤이 지휘를 했으니 몇 년간 마젤의 신년음악회를 지휘하는 모습을 계속 보았고, 덕분에 마젤 = 신년음악회라는 인식이 제법 오랫동안 남아있었습니다. 물론 이 환상은 87년의 카라얀, 89년의 클라이버(88년의 아바도는 죄송)를 보면서 다 깨졌지만 말이죠. 


아무리 이후의 훌륭한 신년음악회들을 보았다고는 해도, 제게 마젤의 모습을 각인시킨 것은 이 신년음악회에서의 이미지들입니다. 온화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가 빈 필 악단원들, 그리고 청중과 교류하는 모습은 그의 사망 소식을 접한 오늘까지 한시도 잊진 적이 없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MF[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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