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우연챦게 제가 예전에 올렸던 글들을 마주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감회가 새로우면서도 부끄러운 감정이 들더군요. 오늘은 2002년에 어떤 동호회(음악과는 관련이 없는 곳입니다)에서한 회원님과의 문답을 올릴까 합니다. 부끄러운 과거를 뭍어 버릴 수도 있지만 그래서는 안된다는 하나의 본보기랄까요?^^ (원문을 그대로 옮기다 보니 좀 오탈자가 있을 수 있고, 지금의 제 의견과는 다른 내용들도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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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만술님의 조언이 필요합니다^^
클래식 음악 중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게 베토벤피아노 협주곡 황제인데
(사실 들어본 거는 폴리니 봄이 같이 한거 밖에 없어요..)
계속 이것만 들으니 좀 질려서
좀더 파워풀한 연주자나 오케스트라 거를 들어보고 싶어서요..^^
길레스나 브렌델을 원래 좋아하는데 별로 추천을 사람들이 안하는 거 같기도 하고
박하우스나 켐프는 반신반의 하고 있으며
코바체비치나 제르킨은 음질에대한 두려움이 있고
침머만이나 피셔는 첨 듣는 사람들이라..
멀 사봐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만술님께서 한넘 딱 집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호홋
특히 전 최근의 연주자들 앨범을 아주 좋아하므로 요즘 새로 나타난 좋은 사람이 있으면 소개해 주셔도 됩니다.
근데 늘 핫뚜랙스에 에리히 클라이버의 운명과 카를로스 클라이버의 라트라비아타가 드왔길래 충동구매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으음..
워낙 물건이 없어노니 들어온걸 보니 클릭하게 되더군요..
호홋
좋은 조언 부탁드립니다..
[답변]어줍쟎은 조언^^
폴리니-뵘의 "황제"는 제가 대학초반에 즐겨듣던 음반이죠. 약간 둘이 어긋나는 부분도 있긴 하지만 뵘의 써포트도 훌륭하고, 이후 4번 녹음은 더 좋은 결과를 가져왔죠.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폴리니의 "황제"는 뒤에 아바도와 한 것보다 이 연주가 더 좋습니다.
말씀하신 연주자들 중심으로 이야기 하자면, 길렐스의연주들은연주의 파워 등에 있어서는 만족하실 듯 하지만 음질이 신경 쓰이시는 분들이면추천불가, 브렌델의 연주는 솔직히"황제"보다는 4번 같은 명상적인 느낌에 어울리는 연주로 한때 이런 느낌을 좋아해 많이 들었지만 **님이 원하는 타입은 아닌 듯하고... 구하신다면 요즘 나와 있는 래틀과의 협연보다는 하이팅크와의 협연이 더 우리나라 사람들의 귀에는 어필 할 듯합니다.
박하우스와 캠프는 몇종의 음반들이 있고 연주의 수준도 높지만 좀 음질 등에서 약간 고색창연함을 느끼실듯하여 제외...^^ 만약 구하실 것이면 박하우스의 경우 흔히 유통되는 이쎄르-쉬테트와의 협연이 아닌 클라우스나 쉬리히트와의 협연을 구하심 되고, 캠프는 그냥 구하시 쉬운 라이트너와의 것을 구하심 될 듯.
코바세비치의 경우 두종의 "황제"가 있으나 자신이 지휘까지한 EMI 것은 오케스트라는 처지지만 연주는 더 성숙한데폐반이된 것 같아 구할 수 없을 것 같군요. 하지만 필립스에서 녹음한 옛날 것은 콜린 데이비스의 협연이 아주 훌륭하여 제게는 가장 즐겨듣는 음반입니다. 코바세비치의 연주도 최상이고요. 특히 이 연주는 <필립스 듀오>라는 2 for 1 음반으로 구하거나 아예
이런 압권에 버금(아니 어쩌면 더 뛰어난) 연주가 피셔 - 푸르트뱅글러의 협연입니다. 허나, 음질은 언급된 연주들중 가장 오래되었기 때문에 역시 일반적인 추천은 되지 못합니다. 하지만 푸르트뱅글러의 협연과 피셔의 만남은 그 자체가 하나의 역사라 할만큼 좋은 결과를 내놓고 있죠.
제르킨의 경우 연주-녹음 등에 있어 평균적인 수준이라 할 수 있을 듯하고, 사실 제르킨 애호가 아니면 별로언급되지 않는 음반입니다. 침머만의 경우 데테일이 많이 가미되었지만 전반적으로는 그리 베토벤하고는 어울리지 않는 연주가 아닌가 싶고요.^^
자, 그럼... 언급 안된 연주들을 돌아볼까요?^^
우선 파워를 언급하셨으니 파워에 대해 말하자면,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연주가 있으니...바로 호로비츠-라이너의 연주입니다. 기교와 파워에 있어 역사상 가장 뛰어난 피아니스트 였다고 할 수 있는 호로비츠가 강철과 같은협연의 라이너를 만났으니... 정말 이 두명에게서 기대되는 바로 그런 연주죠. 물론, 매우 화려하고 기교적이지만 흔히 말하는 베토벤의 느낌은 그만큼 약합니다. 음질도 모노이고요. 하지만 파워를 이야기 하려면 이연주를 빼고는 불가...
젊은 시절 페라이어의 힘과 열정을 들을 수 있는 쏘니 음반도 괜장히 좋습니다. 반뜩이는 부분과 파워가 잘 좋화된 화려한 연주죠. 여기에 하이팅크의 협연도 좋고요. 녹음도 녹음연도 대비 좋습니다.
미켈란젤리-줄리니의 DG녹음은 미켈란젤리의 다른 연주가 그렇 듯 선호가 많이 엇갈립니다. 물론, 미켈란젤리는 많은 실황녹음들도 있지만 이 스튜디오녹음쪽이 더 안정적인 연주로 권할만 합니다. 허나 선호가 엇갈리는 연주를 추천하긴 좀 그렇고...
그리고 요즘 신예의 연주로는 키신의 연주가 있지만, 솔직히 키신에겐 아직 무리구나 하는 실망만 안겨주는 연주고... 우리가 잘 모르는 신예들의 연주는 언뜻 생각나는게 없군요.
결론... 연주-협연-음질-가격 모두를 고려할 때 가장 좋은 선택은 코바세비치-콜린 데이비스의 필립스 염가판(또는 듀오)일 듯합니다. 아울러 대안으로 퍼라이어를 구하심 되고요. 단, 음질이 열악해도 파워와 초절적인 기교를 원하신다면 호로비츠를 강력히 추천합니다. 아울러 피셔-푸르트뱅글러도 놓치면 후회할 최고의 연주고요.
**PS**
말씀하신 클라이버 부자의 연주들은 최고의 연주들이죠. 특히 에리히 클라이버의 3-4악장 연결부의 긴장감에 이은 작열하는 힘은 아들의 유명한 DG녹음의 기원이 어디있는지 확연히 알려주는 연주죠. 헌데 이런 정도의 녹음도 감내하신다면 위의 "황제"도 녹음에 개의치 않으셔도 될 듯..."트라비아타" 역시 카를로스 클라이버는 정말 훌륭한 연주를 해줍니다. 도밍고도 매너리즘에 빠지기 전의 신선한 목소리를 보여주고 코투루바의 절창도 좋고요. 모든 점을 고려할 때 가장 추천되어야할 "트라비아타" 아닐지...
[감사]감사합니다^^
어줍잖은 조언이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역시 명쾌하신 해설에 가슴이 뻥 뚫렸습니다.
핫트랙에는 물건이 워낙 없어서 저녁에 신나라에 갈 생각입니다.호홋
만술님의 조언대로 코바세비치를 사게 될 것 같습니다..호홋.근데 만약 물건이 없다면 호로비츠를 노릴지도(-.-)
근데 에리히 클라이버 운명 교향곡이 음질이 별로인가 보군요..으음..저희 집은 클래식 음악에 최적화된 오디오 시스템이 아니라 DVD에 최적화되 있어서 음질이 나쁜 시디를 넣으면 잡음이 참 많이 나요^^ 그리고 기침 소리나 책넘기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나지요...
DVD살때 클래식을 좋아햇더라면 지금처럼 저음을 강조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죠..그래서 제 동생을 꼬셔서 지금 스피커 하나 사라고 부추기고 있습니다..
전 예전에는 머 누가 지휘했던 별 차이 있겠냐는 생각을 했는데 이번에 카를로스 클라이버의 운명을 들어보니 가히 멋지더구만요..사실 카라얀 말고는 잘 몰랐는데 점차 들어보려구요..그러면 제 맘에 드는 곡도 많이 생기겟죠..
조언 감사 드리고 앞으로도 자주 많이 여쭈어 보겠습니다.^^
[첨언]몇마디 첨언....
우선 도움이 되셨다니 다행이구요.......
오디오 하는 사람들 하는 말 중에 "쓰래기를 넣으면 쓰래기가 나온다"는 말이 있습니다. 특히 옛날 어른들이 좋아하시는 <마란쯔>, <쿼드+탄노이> 뭐 이런 빈티지 계통의 오디오가 아닌 현대적 취향의 오디오라면 더욱 그렇죠. 때문에이런 특성이 강한 미국계열의 오디오를 쓰는 것은 그만큼 녹음 좋은 쪽으로 치우치게 만들 위험도 있답니다.^^ AV쪽을 중요시 하다보니 직하님 오디오도 그런쪽 경향이 강해서 그런가 봅니다. 암튼 요즘 국내 오디오 쫌 하는 사람들의 추세가 이렇게 직선적(?)인 소리쪽을 선호하는 경향이라서....
몇가지 첨언을 하면, <신나라> 라면 코바세비치의 필립스 녹음을 두가지 버전으로 다 가지고 있을 듯합니다. 혹시 듀오로 구입하시더라도뭐 같이 커플링된 연주들이 평범할 뿐이지 하급은 아니니 걱정 마시고,코바세비치를 못구해서 호로비츠를 사실 경우도 넘 실망하진 마시길... 왜냐? 호로비츠의 레코딩은 그의 장인인 토스카니니와 협연한 차이콥스키 1번과 커플링 되어 있거든요. 이 차이콥스키 협주곡 연주 또한 토스카니니와 호로비츠가 치고받는 절대절명의 명연중 하나입니다. 그 열기는 정말 들어보셔야 압니다. ^^
클라이버의 베토벤 5번...옛날 라이센스 LP로 발매될 때 뒷면 해설에 이런 구절이 있던게 생각이나네요. "카라얀 팬들에겐 안된 일이지만 이제 클라이버의 5번이 나온 이상 카라얀은 그 영광의 자리를 클라이버에게 넘겨주어야 한다" 하하하... 실제로도 그렇게 되었구요.^^
그럼 좋은 음악 생활 되세요~~~~
[감사]대만족중입니다^^
원하던 물건을 구입했습니다.
호홋
너무 좋군요
같은 곡을 연주하는데 참 많이 다르군요..신기하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호홋
운명 교향곡도 음질이 괜찮더군요..호홋
아무튼 다시 감사드립니다 호홋
[한줄답변]만족이시라니...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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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문답이 흐른 뒤 제가 별도의 첨언을 올렸습니다.이 포스팅의 제목인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의 결정적 순간"인데 말하자면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의 음반을 고를 때 (물론 처음 부터 끝까지 듣는게 정석이고 또 한번 듣는것과 여러번 듣는게 다른지만) 한방에 80%쯤 그 음반을 평가하게 해주는 결정적 기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아마 애호가에 따라 즐겨듣는 곡들에 이런 결정적 순간들이 있겠고, 나중에 이런 순간들에 대한 시리즈를 만들어도 재미 있겠다는 생각이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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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베토벤 피아노협주곡 5번의 결정적 순간
문득 윗글에서 빠진 내용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 몇자 적을까 합니다.
베토벤 5번 협주곡 "황제"를 이 음반 저음반 평해 놨는데, 그렇다면 이 연주가 좋은 연주인지 아님 내게 맞지 않는 연주인지를 금방 알 수 있는 키-포인트는 없는가 하는 점을 이야기 하지 않았다는거죠. 사실 어떤 연주를 평가하려면 전체를들어야 하고 또 어떤 연주회를 평가하려면 프로그램 전체의 균형과 그 프로그램속에서의 연주를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음악에도 그만큼 맥락이 중요하거든요.
하지만, 바쁜 시간 속에서, 그리고 한곡에 대해 어느정도 익숙해지기 전에 그곡에 대한 연주를 쉽게 판가름 할 수 있는 방법도 있을 듯합니다. "황제" 협주곡에도 5분만 연주를 들어보면 대략적으로 연주전체에 대해 짐작케 해주는 "결정적 순간"이 존재합니다. (이런 결정적 순간은 사람에 따라 다를 수도 있습니다)
아마 이런 키-포인트로 가장 유명한 것은 베토벤 교향곡 5번(흔히 "운명"이라 하죠)의 3-4악장의 연결부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3악장의 마지막의 긴장감이 4악장의 화려한 폭발에 어떻게 연결되는가, 그리고 그 뒤의 4악장의 리듬이 얼마나 박진감 넘치게 표현되는가가 5분정도에 판가름 나고, 이 부분을 신통치 않게 했다면 다른 부분도 기대하기 힘들죠.
5번 협주곡도 비슷한 부분이 있습니다. 2악장과 마지막 악장인 3악장의 연결부입니다. 아름다운 멜로디 위주의 2악장 끝에서 피아노로 터져나오는 더블포르테의 3악장 론도주제의 연결, 그리고 그 론도주제의 리듬감과 그 리듬을 받쳐주는 오케스트라 협연이 신통치 않으면 다른 부분도 아닐거란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우선2악장 끝에서 은근 슬쩍 3악장 론도주제를 피아노가 들려줍니다. 이부분에서 넘 많이 보여주면 3악장의 충격(?)이 감소하고, 넘 안보여주면 3악장이 뜬금 없어집니다. 따라서 (이런 표현이 좀 어색합니다만) 보일듯 말 듯한 무희의 베일속 춤처럼 수줍게 주제선율을 울려주면서 기대감을 줄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면서 오케스트라는 슬쩍 저음으로 긴장감을 주어서 3악장의 폭발을 예고하는 거죠. 이 긴장감이 설득력있게 들리는가도 한 포인트가 되는 겁니다.
이어서 3악장으로 넘어가면서 피아노로 론도주제를 폭발시킵니다. 더블포르테죠. 이부분에 있어 중요한 것은 충분히 강력한 음을 뽑아내야 하지만 단지 소리만 키우려고 너무 패달을 써서 소리가 울림속에 뭉그러져서도 안됩니다. 강하면서도 명징한 피아노의 음색이 중요하죠.(이거 의외로 유명한 피아니스트들도 잘해내지 못합니다) 또한 이 론도주제의 리듬감이 정말 중요합니다. 거의 그 리듬에 몸을 맡기고 춤을 추고픈 느낌이 들어야 제대로 된 연주죠. 이점에선 위에 추천한 코바세비치의 연주가 압권입니다. 이에 덧붙여 피아니스트의 론도연주를 뒷받침해서 응답하는 오케스트라의 일체감과 리듬감, 그리고 박력이 중요합니다. 피아노와 대비되면서 어울리는 느낌이 있다면 잘된 연주라 생각하시면 되죠.
이 부분이 "황제" 협주곡의 "결정적 순간"이라 할 수 있겠네요.
MF[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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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 순간"에 대한 의견은 지금도 같지만 선호하는 연주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사실 요즘 제 취향은 거의 잡식성에 무개성적이어서 선호하는 스타일의 연주나 최고로 여기는 연주 같은 수식어 보다는 요즘 자주 듣는 연주 정도가 어울립니다.여기서 "자주 듣는다"는 의미는 정말 여러가지가 내포될 수 있습니다. 어떤 연주 스타일은 분명히 해석적으로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것에 가깝지만 자주 듣기에는 불편할 수도 있고, 혼자사는게 아니라 가족과 함께 살기 때문에 그들의 상황을 고려한 타협책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와이프가 쳄발로 소리는 싫어하기 때문에 바흐의 곡을 쳄발로로 연주한 음반들은 그것이 음악적으로 올바른지의 여부와 상관 없이 가능한 피하게 되죠.
그럼 요즘 자주 듣게 되는 베토벤 "황제" 협주곡은 무엇일까요? 다른 포스팅에서 덤으로 소개해 드렸던 스혼데부르트(Arthur Schoonderwoerd)와 크리스토포리(Cristofori) 앙상블의 음반입니다. 2002년 포스팅의고려대상에 시대악기 연주가 없었던 것에 비하면 정말 많이 변했죠?^^
MF[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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