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제가 정말 오래전 하이텔의 "고음동"에 올렸던 글입니다. 저작권 문제와 관련 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있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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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의 시대에 들어오면서부터 과거 어느때 보다도 옛연주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가고 있고, 옛연주를 전문으로 복각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레이블들도 이제는 많아져서, 때로는 한가지 녹음에 대하여 여러종류의 복각 CD를 접하게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런 복각 음반들의 양성화는 예전에는 감히 상상도 못하던 연주를 쉽고 때로는 저렴하게 접할 수 있게 해주는 장점이 있는 반면, 여러 레이블에서 같은 녹음을 복각해 낸 경우 어떤 레이블을 선택해야 하는가라는 심각한 고민을 애호가들에게 남겨줍니다.
예를들어 누구나 명연으로 손꼽는 Schnabel의 Beethoven 피아노 소나타집의 경우, 국내에서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는 복각 CD는 무려 5종류나 됩니다. (EMI, Pearl, Gramophono2000, Piano Library, 그리고 굿인터내셔널의 국내제작) 과연 어떤 Schnabel을 살 것이냐 -- 여기에서 복각예술의 가치가 대두됩니다. [현재는 두세종류로 줄었습니다]
옛 연주를 CD로 복각하는 첫번째 과정은 적절한 쏘스를 선택하는 일입니다. 만약 CD자체의 녹음이 엉망이라면 최고급 오디오로 들어도 소리가 별로인 것처럼 복각의 과정에서 좋은 쏘스를 선택하는 일은 그 성패를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앞의 예로든 Schnabel의 HMV녹음의 경우 당연히 마스터를 지닌 EMI가 다른 레이블에 비해 월등한 위치를 지니게 되는가? 많은 경우 마스터를 지닌 원조 레이블이 유리한 것이 사실이지만 HMV의 경우만 봐도 수많은 마스터가 아예 없어졌거나 손상 또는 부식되어서(특히 SP 마스터의 경우)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지 못한 경우가 많고, 때문에 좋은 상태의 SP 원반 또는 라이센스 SP가 본사의 마스터 보다도 좋은 음질을 지니는 경우도 있습니다. 따라서 좋은 쏘스를 찾는 일은 단지 본사의 창고에서 마스터를 뒤지는 일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쏘스의 선택 뒤에 해야하는 일는 그 쏘스로부터 1차 복사본 (보통은 릴테입을 이용하죠)을 받아내는 것입니다. 헌데... 이일도 장난이 아니죠. SP의 경우 우선 바늘부터 신중하게 골라야 합니다. 바늘에 따라 잡음이 심해지기도 하고 선명도가 떨어지기도 하니까요. 특히 바늘의 두께가 중요하죠. 바늘이 선택된 뒤에는 정확한 rpm을 얻을 차례입니다. SP야 78rpm이니까 까짓 회전수 맞추는게 뭐 대단하냐고 생각하실지도 모르지만 SP라는게 꼭 78rpm에 꼭맞게 제작된 것은 아니죠. 따라서 정확한 회전수를 얻어내야 바른 핏치가 나오게 되고 바른 재생이 되는거죠. 더군다나 SP의 경우 한연주에서 1면의 핏치와 2면의 핏치가 틀리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예민한 귀와 확실한 자기신념(예를들어 Schnabel의 톤은 이렇다던가 등의 신념과 경험)이 있어야 하죠.
핏치를 맞춘 후에는 복각 예술가들에 있어서 가장 이견이 많을 수 있는 단계인 필터링의 단계입니다. 이는 히스 등의 잡음제거 과정인데, 이 잡음제거는 양날의 칼과 같은 역할을 하게 마련이죠. 고음역의 히스를 제거한 경우 일반적으로 음이 답답해지는 경향이 있죠. 때문에 CEDAR 시스템으로 잡음제거를 과다하게 한경우 잡음은 없어졌지만 그 만큼 음악의 생명력도 없어지게 되는 경우가 흔한데, (국내에서 파도처럼 밀려왔다가 사라지곤 하는 몇몇 염가 씨리즈에서 이런 현상이 많이 목격됩니다. ) 결국 잡음과 음악의 갈림길에서 어느쪽에 비중을 두느냐... 이게 가장 어려우면서도 복각 예술가의 철학과 기호를 쉽게 알 수 있는 시금석임니다. (몰론 같은 엔지니어라고 해도 곡의 종류와 성격에 따라 다른 기술을 적용하기도 합니다.) 히스제거 후 저음역의 험을 제거하는데, 이렇게 히스와 험의 제거과정에 파괴된 밸란스를 제대로 잡아주는 것 또한 까다로운 일이죠.
이런 과정을 통해 한장 한장을 복사한후에는 퍼즐 맞추기를 해야죠. 즉 1면과 2면의 연주를 듣는 사람이 눈치채지 못하게 이어주는 일인데, 이일도 생각외로 힘든일이죠. 옛 녹음에는 면이 바뀌면 음질이나 핏치가 바뀌는 일이 종종있기 때문에 이어붙인 느낌이 없도록 짜깁기하는 일은 의외로 고난도의 기술을 필요로 합니다.
더군다나 일부 음반은 면의 시작과 끝을 FADE-IN, FADE-OUT 처리를 한경우도 있기 때문에 이 조각 맞추기는 많은 시행착오를 필요로 하는 일이죠.
면을 짜깁기 한뒤에는 또하나의 잡음제거 과정인 튀는소리 및 지글거리는 잡음잡기이죠. 이경우 CEDAR같은 장비를 이용하면 손쉽게(거의 완벽하다고 합니다) 처리할 수 있지만, 이무래도 숙련된 엔지니어의 수작업만은 못하기 때문에 많은 엔지니어들이 이방법과 수작업을 동시에 병행하고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DAT에 녹음을 하게되고 이 DAT가 마스터로 쓰여 CD로 복각되는 것이죠. 물론, 이런 마스터링의 과정에서는 mono녹음을 stereo화 한다든지, 임장감을 덧붙이거나 하는 등의 조작이 가능하죠. 예를들어 국내에도 한때 인기를 끌었던 도시바 EMI의 복각의 경우 임장감의 부풀림, 어색한 stereo화 등으로 악명을 떨치기도 했죠.
이상이 간단히 살펴본 복각의 과정인데, 어떤 복각CD를 선택하는가는 어느정도의 잡음을 인내할 수 있는가하는 기호의 문제 입니다. 아무래도 잡음이 없어지면 그 만큼 음악의 생명력도 감소 되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옛 SP를 그냥 옮겨담은 듯한 나이브한 복각이 음악을 살리는 것도 아니고요. 때문에 몇몇 회사나 복각 전문가의 CD를 들어본 뒤 자신의 취향에 맞는 쪽을 택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일일 것입니다. 만약 어느쪽이 자신의 취향인지 불분명하거나 처음으로 옛연주를 들으시려는 분들이라면 중도파 대가들인 Marston, Crimp, Winner 등(이외에도 많습니다)이 복각한 CD에서 시작하는 것도 권해드릴 방법입니다. Marston은 VAI, APR, Bidulph 등에서 많이 찾을 수 있고, Crimp는 APR에서 Winner는 Pearl에서 쉽게 만날 수 있죠. [요즘은 Naxos의 염가판에서도 대가들을 쉽게 만날수 있죠]
마지막으로... 앞서 누차 강조한 일이지만, 옛연주를 복각하는 일은 우리가 흔히 하듯 더블데크 카세트로 복사를하는 일과는 달리 꽤나 예술적(?)인 일입니다. 헌데, 대충 잡음만 없애 거나, 아예 음반에서 나오는 대로 나이브하게 복각해서 값싸게 파는 CD나 남이 힘들게 복각한 연주를 아무 양심의 가책없이 원본의 저작권이 만료된 상태라는 이유로 그대로 복사해서 싸게 파는 CD만 좋아한다면, 국내시장에 제대로된 복각 CD는 구하기 힘들지 않을까요? 만약 VAI와 Marston이 없었다면 우린 Hoffman의 전설은 기계가 쳐대는 소리(Nimbus)로만 확인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고, APR아니면 Fiorentino의 베를린 실황은 꿈도 못꾸었을 것이며 (헌데, 왜 Fiorentino의 스튜디오 녹음은 수입이 안되는 것인가요?) Tahra가 아니었다면 Furtwa"ngler의 루쩨른 9번이 지금과 같은 인지도를 누리진 못했을 겁니다. 이런 레이블들이 계속 지금과 같은 훌륭한 작업을 할 수 있게 지켜봐 주고 좋은연주는 사주고 해야 귀한 옛연주를 계속 들을 수 있겠죠....
MF[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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