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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 예술 - 공연

[음악]슈만 피아노 소나타 1번 비교감상

by 만술[ME] 2004. 3. 6.
예전회사동료와 제가 취미생활로 하던 일 중에 슈만 프로젝트라 불리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슈만의 피아노 소나타 1번을 집중적으로 1개월간 듣고, 그중 가장 훌륭한 음반을 골라 (불법) CD를 제작하는 일입니다. 물론, 취미삼아 하는 일이고, 외부에 판매할 계획은 없이 스페셜 에디션으로 제작, 둘이서만 한장씩 나누어 갖는 것이죠. 아랫글은 이 프로젝트를 위해 제가 작성한 음반들에 대한 비교 평론(?)으로 혹시 관심이 있으시면 읽어보시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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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berto Schumann Piano Sonata No.1 in F# minor op. 11

리뷰의 기준

기존의 (특히 국내의) 음반 리뷰들을 읽으면서 가장 안타까운 점은 명백한 기준 없이 또는 명백한 기준이 명시되지 않은 채 주관적인 리뷰에 치중하는 것이었다. 물론, 예술에 대한 비평은 몇몇 기술적이고 근본적인 사항들을 제외한다면 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의 성향에 따라 차이를 보일 수 있기 때문에 리뷰 자체가 모든 사람들에게 납득 될 수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리뷰가 나오게 된 근거만은 명확해야 함에도 그 근거 자체가 없거나, 그것을 토대로 판단할 기준을 제시 못한 리뷰가 많았다.

이번 Schumann 프로젝트도 투란도트님(회사동료 별명)과 필자(MF로 약하여 칭함)의 개인적 기준에 의한 결과인 만큼(몇몇의 리뷰를 제외하고 보이는 현저한 취향의 차이를 보라!) 다른 사람들의 의견과 다를 수는 있지만,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를 분명히 하기 위해 먼저 MF 개인의 판단기준을 정해 놓고자 한다.

(1) 개인적으로 Schumann 피아노 소나타 1번은 정신적으로는 물론, 기교상으로도 쉬운 곡은 아니라 생각된다. 때문에 일단 (스튜디오 녹음의 경우 문제가 상대적으로 적지만) 기교면에서 실황녹음의 경우 기교적 결함으로 부자연스럽게 들리지는 않아야 한다.

(2) Schumann곡의 매력은 양면성이라 생각한다. 한편에서는 몰아치는 듯하고 외향적이지만, 다른 쪽에서는 여유로우면 내성적인 부분이 함께한다. 또한 이런 양면성은 이분화 되어 존재한다기 보다는 미묘하게 섞여 있기 때문에 다채로운 감정과 그 감정의 양극단 사이의 스펙트럼을 어떻게 표현하는가가 중요하다.

(3) 표현의 다채로움은 흔히 이야기 되는 Schumann곡들의 구조적인 약점 때문에 때때로 산만하고 두서 없는 결과로 귀결되기도 한다. 전악장을 꿰둟는 구조적 통찰력과 한음 한음을 쌓아가는 구축력과 목표의식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구조적 해석력이 세번째 평가항목으로 특히 4악장의 구조를 어떤 식으로 접근하는가는 성패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

(4) 아름다운 음색 Schumann의 곡은 때때로 가슴이 미어질 정도로 아름다운 순간을 만들어 낸다. 이를 위해서는 속도와 집중력이 이완되는 순간에 멜로디가 얼마나 노래하는 듯한지, 그리고 한음 한음이 얼마나 정성을 들려 만들어지고 아름답게 울리는지가 평가 항목이 될 수 있다.

이상 (1)-(4)의 내용은 다른 작곡가의 다른 곡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는 적용 될 수 있는 기준이기 때문에 이제 (5)번 항목에서는 각 악장별 중요 포인트를 지적함으로써 독자가 쉽게 리뷰에 대한 공감여부를 점검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한다.

(5) 악장별 포인트

(a) 1악장 : 이 악장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시작 부분이다. 일단 시작을 얼마나 설득력있게 시작하는가, 그리고 주제의 제시까지 서주에서 미묘한 감정 변화를 통해 이후의 격정을 예고하는가가 중요하다. 이어서 각각의 주제의 제시와 그 방법이 향후 전개되는 내용과 연계되는 타당성이 중요한데, 이때 allegro vivace의 주제가 얼마나 단호하고 자신감 있게 연주되었는가는 이후의 연주를 판가름 할 수 있는 중요한 잣대가 된다. 개인적으로 연주의 스타일로는 치열한 구축력의 추구보다는 중간 중간의 이완부에서 여백의 미를 얼마나 발휘하는가에 따라 전반적인 설득력이 좌우된다 생각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여유로움 속에 완급을 조절하는 템포설정을 선호한다.

(b) 2악장 : 반주가 얼마나 탄탄한 느낌을 주는지, 반주와 교차되는 멜로디가 얼마나 노래하는 듯한지, 그리고 그 멜로디를 연주하는 피아노의 음색이 떨리는 듯한 느낌을 (바이올린도 아니지만 떨려야 한다!) 갖고 가슴시리게 울리는지가 중요 포인트다.

(c) 3악장 : A-B-A 구조로된 스케르쪼에서는 리듬감이 모든 것을 좌우한다고 생각한다. A섹션의 스케르쪼 주제를 얼마나 가볍고 쾌활하게 연주했는가, 그리고 트리오 부분에서 거의 폴로네이즈를 연상시키는 주제를 리듬감 있고 맛깔스러운 연주로 표현했는가가 중요하다. 여기에 Ad Libitum 부분을 약간은 고풍스럽게 연주할수록 개인적으로는 더 마음에 와 닿는다.

(d) 4악장 : 솔직히 연주 스타일에 따라서는 4악장의 멜로디 라인을 따라가는 것 조차도 힘든 경우가 있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확실하게 주선율을 부각시켜 전체적인 통일성을 기하는 연주에 호감이 간다. 이런 점에서 감정의 진폭이 극단으로 치닫는 것 보다는 적절한 한계 내에서 중간 중간의 다양한 팔레트를 보여주는 연주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4악장의 전반적 분위기가 어두운 측면이 강하기 때문에 중간에 부드러운 멜로디가 잘 살아날수록 극명한 대비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 얼마나 아름다운 처리를 했는가가 하나의 중요한 척도가 될 것이다.

이런 평가 척도 위에서 Schumann의 피아노 소나타 1번의 음반 80여 가지 모두를 듣고 그 중 베스트를 뽑는 다는 것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일이겠지만, 시간적, 경제적 여건이 그리 충분하지 않은 관계로 쉽게 구할 수 있고 뭔가 가능성이 있는 연주들 중에 8개의 음반을 선정하여 집중 분석 작업에 들어 갔다. 다음은 그 집중분석 중 MF의 결과다. (편의상 녹음 연도순으로 작성되었다)

(1) Emil Gilels 1959.2.27 BBC Broadcasting House 실황 (BBC Legend, BBCL 4015-2)
1악장 9:45 2악장 3:05 3악장 4:08 4악장 10:44 총 27:42



BBC Legend 시리즈로 초창기에 발매된 이 연주는 구하기 힘든 멜로디아의 연주들에 비해서도 뛰어난 연주이다. 이 곡을 장기로 했던 Gilels인 만큼 기대도 컷 던 연주다.

여유로운 서주와 이어지는 주제의 제시까지 미묘한 감정의 변화가 색채와 강약, 저음과 고음으로 잘 표현되면서 스피드와 템포의 긴장과 이완이 적절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주제의 제시는 빠른 템포지만 과격하기 보다는 반주와 선율의 조화가 돋보이게 구성되어 있으며, 뛰어난 프레이징 능력으로 단조롭지 않고 다양한 이야기의 전개를 보여주면서도 결코 산만하지도 않아 다른 연주들과 비교할 때 이 부분에 있어서는 압권이라 할 수 있다. 이어지는 전개부도 이 제시부와 같이 약음과 강음, 리가토가 너무나 절묘하고 현란하게 구사되어 Gilels 최고의 날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결코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는 않지만 탄탄하게 뒷받침된 왼손의 반주 위에 아름답게 이어지는 선율이 매력적인 2악장은 반주에서 느껴지는 대가스러운 여유로움위에 노래하는 멜로디가 적절히 조화를 이루어 아름다우면서도 흐트러지지 않은 집중력이 있는 연주다. 스케르쪼에서도 Gilels는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도입부와 트리오 부분에서 즐거운 무드를 잘 표현하고 있다. 특히 폴로네이즈를 듣는 듯한 트리오 섹션에서는 약간의 지체하는 듯한 리듬감으로 이국적인 느낌을 배가하고 있으며, 라이브에서 느낄 수 있는 생동감과 기쁨이 악장 내내 충만 되어 있다.

1~3악장까지의 느낌을 4악장까지 제대로 이어갔다면 나는 Gilels의 연주를 베스트로 꼽는데 조금도 망설임이 없었을 것이지만, 흔히 기교상으로나 해석상으로 가장 어렵다고 알려진 마의 종 악장에서 Gilels는 약간은 실망스런 연주를 보여준다. 시작부터 어딘지 엉성하면서도 집중도가 떨어지는 4악장은 지난 악장들에서 보여주었던 아이디어가 고갈 된 듯 번뜩이는 광채가 보이지 않고, 조금씩 두서 없는 접근이 되어버리고 있다. 탁월한 시작, 그리고 훌륭한 악장들에 이은, 다소 평이하면서도 어수룩해져 버린 4악장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2) Vladimir Sofronitsky 1960.5.13 Moscow 실황 (Melodya/BMG 74321 25177 2)
1악장 10:03 2악장 2:55 3악장 4:19 4악장 10:37 총 27:54

[폐반으로 인해 웹상에 표지가 없어 다른 표지를 올립니다]

Russian Piano School 시리즈 중의 하나로 발매되어 국내의 많은 사람들에게 Sofronitsky의 이름을 각인시키는데 공헌한 레코딩중 하나인 이 연주는 베일에 감추어졌던 Sofronitsky 자신 만큼이나 미스테리한 연주이다.

Gilels 풍의 서주는 이런 접근법이 러시안 스타일이 아닌가란 느낌이 들게 유사하지만 이어지는 부분은 Gilels와는 달리 집중력쪽에 강조를 둔 연주로 또 다른 뛰어난 연주의 탄생을 예고하는 듯한 느낌으로 기대를 갖게 한다. 아름다운 음색, 뛰어난 선율감각, 단호한 주제의 제시는 화려한 기교와 표현력에 있어서는 Gilels의 비교가 되지는 못하지만 밀어붙이는 듯한 집중력과 추진력에 있어서 또 다른 맛을 느끼게 한다. 헌데 이런 집중력은 allegro섹션이 점차 진행되면서 Sofronitsky의 아이디어가 밖으로 도출됨에 따라 점차 엉키고 산만해지면서 감정이 너무 개입되어 스스로 다스리지를 못하는 부분이 눈에 띄게 되고 이런 심한 기복속에서 때로는 선율을 따라가기조차 힘든 부분이 자주 발생하면서 아름다운 순간과 아이디어가 과격한 감정의 분출과 빛과 어둠으로 교차되어 결국은 1악장 전체의 구축력과 구조에는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한다.

유명한 Horowitz의 전람회의 그림을 연상케하는 탄탄한 반주속에서 상대적으로 멜로디가 죽어버린 2악장은 가끔이지만 멜로디가 노래할 때도 음색이 영롱하거나 아름답지 못하게 표현됨으로써 1악장의 감정의 고양이 2악장에서도 평정을 못찾은 듯 약간은 실망스러운 연주가 되고 말았다. 힘있는 출발로 시작하는 3악장의 스케르쪼는 이어지는 트리오부분의 즐거움이 베어나지 않는 아쉬움이 있고, 유머감각도 떨어지는 느낌이다. 반면 4악장의 출발은 1악장의 출발이 그러했듯 또다른 기대를 하게 하는 강력한 시작인데, 강-약의 조화가 이어짐에 따라 기대감은 더욱 고양되어지지만, 점차 감정이 다시 격해진 듯 음이엉키고, 구축력이 점차 떨어져 조금씩 산만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4분대의 선율이나 이후의 긴장감 같이 빛나는 부분도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격양된 감정에 구조적인 매력이 침해를 당한 아쉬움이 많은 악장으로 특히 코다 부분에서는 머뭇거리기 까지 하는 아쉬움이 많은 연주로 전체적으로 볼 때 스케일감 있고, 파워풀하며, 가끔 빛나는 아이디어도 보이지만 처음듣는 사람이 이연주를 듣는다면 말리고 싶을 정도로 기복이 심한 연주다.

(3) Elisso Wirssaladze 1980.12.27 Moscow 실황 (Live Classics LCL301)
1악장 12:27 2악장 3:31 3악장 4:15 4악장 11:06

또 한명의 Russian School의 비밀명기. 독일계열보다 러시아 계열의 연주자들이 이 곡에 대해 선구적인 연주들을 남긴 것은 매우 독득한 사실로 인식되어야 할 듯. 아쉽게도 남아있는 녹음이 아직 발견되지 않았지만 Annie Fischer 또한 이 곡의 대가로 불렸으니

역시 라이브 녹음으로 녹음연도에 비해 녹음의 질이 안좋은 것은 아쉽다. 여유로운 템포에 리듬감과 다이내믹의 강약을 살리면서 시작되는 1악장은 거칠은 녹음 때문인지 약음이 아름답게 울리지 않고 조금 거칠게 끊어지는 느낌으로 해석의 커다란 축도 세련된 전개보다는 커다란 구조를 잡고 밀어부치는 스타일이다. 비록 여유로운 템포를 잡고 연주를 진행하지만 밀어부치는 힘과 강력함속에서도 잠시의 여유를 주면서 아름답게 빛나야 할 부분에서 다이내믹과 긴장의 이완보다는 스피드의 이완으로 머물러 진정한 여유로움을 느끼게 하기 보다는 강한 부분의 부속물처럼 느껴져 뭔가 틀속에서 강제된 연주로 느껴진다. 톤의 처리역시 전체적으로 다양하거나 조심스러운 생각과 고민 끝에 완성되었다기 보다는 즉물적으로 처리된 아쉬움이 있다. (다채로운 음색의 처리는 아무래도 뒤에 이어질 스튜디오 녹음들에서 만날 수 있다.)

담담한 듯하면서도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시작의 2악장은 고음부의 텃치가 빛을 발하거나 노래하는 듯한 느낌이 없어 점차 평범해 보이는 연주로 막을 내리는 아쉬움이 있다. 특히 가끔이지만 찰라처럼 빛나는 부르러움과 아름다움이 있기에 그 여성스러움이 좀더 자주 나타났으면 하는 아쉬움이 더욱 남는 악장이다. 다소 리듬감이 부족한듯하게 시작한 3악장은 곧 리듬감이 살아나고 빠른 손놀림과 테크닉이 트리오섹션까지 이어지지만 트리오 부분에서는 아쉽게도 따사로움과 유머가 부족하고 전반적으로 믿믿하게 진행되는 단점이 있고, 애드 리비툼 부분은 다른 실망스러움을 잠재울 정도로 인상적이지만, 그래서 더 다른 부분의 단점을 아쉽게하는 연주다.

4악장, Gilels와 Sofronitsky의 경우처럼 라이브에서는 4악장의 구조와 아름다움을 제대로 표현하기는 불가능한 것일까? Schumann의 주술에 휘말린 듯 다른 악장에서 아름다움을 희생하면서도 그렇게 강하게 밀어나가던 Wirssaladze의 경우도 말하려는 바가 뚜렷하지 않고, 표면을 겉도는 느낌으로 일관하고 있으며, 특히나 다른 악장에서 몇몇부분을 제외하고는 일관되었던 다양하지 않은 표현과 단조로운 음색이 이번 악장에서도 여전히 이어져 더욱 피상적인 연주가 되고 말았다. 가끔 보이는 아름다운 부분이 강한 부분과 적절한 균형과 조화를 이루었다면 더 좋은 연주가 되었을 것이다.

(4) Volker Banfield 1992. 9월 (CPO LC8492)
1악장 8:29 2악장 3:27 3악장 4:06 4악장 9:46 총 25:48

일관성과 추진력, 그리고 단조로움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이번 연주는 솔직히 3곡의 소나타를 한장의 CD에 담았다는 장점이외에는 별로 권할만한 내용이 없을 듯하다.

1악장의 도입부터 전체적인 연주가 어찌 진행될지를 알려주는 듯하다. 서주부터 주제제시까지 단단한 왼손의 반주가 긴장감 있게 처리되며, 이어지는 주제의 처리와 전개도 긴장감이 잘 이어져 좋은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곡이 진행됨에 따라 지속적으로 공격적이고 열정적이면서 쾌속으로만 일관되어 오히려 긴장감이 풀어져 버리게 되는 역효과가 발생하게 되고, 여유로움과 여성스러움이 없어 밝고, 아름다운 Schumann의 다른면이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다. 곳곳에서 긴장이 잠깐 풀어지지만 이 또한 아름답게 처리되지 못하고 추진력속의 쉼표로 작용하기 보다는 불분명한 느낌이 들게 처리되어 흐리멍텅한 효과만 있을 뿐이다. 전반적으로 1악장 전체가 스케르쪼로 되어 있는 느낌.

해석상으로 끊기고 멜로디가 살지 못한 2악장과, 유머감이나 따사로움 없이 밀어부치는 스케르쪼 악장은 1악장의 단순한 부속물로 전락된 듯하며, 트리오 섹션에서 조금만 부드러움이 있었어도 좋았을 것이란 느낌이며, 전반적으로 다양함이 부족하다. 강하고 절박한 듯 시작하는 4악장도 오직 결말을 향한 돌진이 전부로 Gilels와 Sofronitsky의 4악장이 이런 저런 감정과 아이디어가 섞여 있지만 조화롭게 균형과 틀을 이루지 못했다면, Banfield의 4악장은 7분40초 대에 잠깐 보이는 여유(솔직히 연주내내 밀어부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태풍의 눈처럼 유난히 들어나 보이는 듯하다)를 제외하고 일관되게 코다를 향해 밀어부치기 때문에 결국 단순하고 지루한 연주가 되어 버렸다.

(5) Leif Ove Andsnes 1996. 7월 EMI 스튜디오 레코딩 (EMI 5 56413 2)
1악장 13:36 2악장 3:23 3악장 5:18 4악장 11:18



Andsnes의 연주는 스튜디오 녹음다운 명료한 녹음과 절제된 표현들이 돋보이는 연주로 국내 내한공연 때 들어본 경험에 의하면, 실황이라도 스튜디오 녹음 같은 명징한 음색과 빼어난 테크닉, 절제된 감정을 나타냈으리라 의심치 않는다.

여유로운 템포설정속에서 부드럽게 시작하는 도입부는 많은 기대를 자아내면서 깔끔하게 다양한 무드를 표현하면서 서서히 감정을 달아오르게 하고, 긴장과 부드러운 이완을 반복하면서 서서히 allegro vivace의 폭발을 예고하고 있다. 다양한 톤과 리듬감으로 전개되는 주제는 가벼운 손놀림속에서 다른 몇몇 연주 같은 강제된 부분이 보이지 않고 극히 자연스럽게 진행되며 다양한 톤, 절제된 콘트롤은 Andsnes 특유의 깔끔함과 선명함이 잘 나타나 있다. 스튜디오 녹음의 장점을 최대한 이용한 듯 전개되는 여러가지 부담없는 시도와 잘짜여진 계산은 여유로운 템포속에서 인위적이거나 강제된 느낌 없이 Schumann의 극단에서 극단으로 내닫는 다채로운 내면세계를 중간단계까지 빼놓지 않고 적절한 틀속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Gilels 이후 들었던 모든 거칠고, 강제되고, 진폭이 극과 극을 치닫거나 일방적이거나 했던 연주들 이후에 듣는 세련미의 극치는 극히 현대적이란 표현을 할 수 있을 듯하다. 재현부에서 저음으로 울리는 인트로의 멜로디는 혀를 내두를 정도로 정교하게 짜여져 있으며, 이어지는 번뜩이는 테크닉은 수많은 음을 한꺼번에 쏟아냄에도 한음 한음이 뭉개지거나 흐트러짐 없이 또렸하게 표현되고 있다.

아름답고 왼손의 멋진 legarto 를 보여주는 2악장은 깔끔하지만 Gilels를 제외하고 이미 언급된 다른 연주들에 비해서는 탁월함에도,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표현이나 정서의 깊이는 느껴지지 않고 조금은 피상적이어서 아쉬움이 남는다. 스케르쪼는 Andsnes같이 젊고 생기에 찬 연주자에게 가장 기대를 걸 만한 악장인데, 의외로 느린 템포설정에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터치로 시작하고 있다. 대체적으로 느리고 무겁게 전달되는 스케르쪼는 Grieg 리릭피스에서 보여주었던 날렵함이 곁들여 지고 - 물론 4악장의 템포설정과 구성을 볼 때 Andsnes가 조화를 위해 이런 표현을 선택했을 수도 있지만 - 좀더 유머감각과 리듬감이 살아났음 하는 생각이다.

시작부터 지금까지의 연주자들과 확연히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주는 4악장은 순식간에 여러가지 감정과 표정과 색채를 풀어 놓으면서 중심적인 추진력은 결코 흐트러지지 않고 듣는이를 집중시키고 있다. 이는 프레이즈 마다의 변화와 프레이즈 속의 변화를 적절히 적용하여 감정의 진폭의 양극단을 배제함으로써 다소 중구난방으로 머물 수 있는 약점을 보완, 변화와 통일을 느낄 수 있게 한 멋진 계산의 결과라 생각된다. 4분대의 교묘한 피아니시모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저음부의 분위기 조성, 이어지는 빠른 패시지, 그리고 간간히 보이는 약음의 리듬감으로 다시 주제를 불러내는 기가막힌 연결력과 연출력을 통해 구조가 약하다는 Schumann의 문제를 해결하고 뼈대를 제공하는 효과를 보여준다. 너무나 자연스러우면서도 변화 무쌍한 연결과 단절의 이어짐, 그 속에서 보여지는 다채로운 음색의 팔레트, 감정, 빛과 어둠 가장 잘 연결되고 적절한 진폭을 지닌 4악장으로 2,3악장에서 언급했던 불만을 모두 만회하는 뛰어난 연주다.

개인적으로는 실황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감정의 진폭이 큰 연주들을 선호하지만, 그런 시도를 한 연주들이 하나같이 성공보다는 실패를 했기 때문에 어쩌면 이 곡에 대해서는 오히려 적절한 감정의 진폭의 틀속에서 다양함을 추구하는 Andsnes 풍의 연주가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6) Murray Perahia 1997.6.23~28 Sofiensale, Vienna 스튜디오 레코딩 (Sony)
1악장 12:40 2악장 2:46 3악장 4:10 4악장 9:58



내가 칭송해 마지 않고, 투란도트님이 혐오해 마지않는(주로 그의 생김새에서 기인하지만) Perahia의 음반은 복귀후의 그의 행보와 성과물들을 보았을 때 기대를 모으기에 충분한 음반이다. 특히 크라이슬레리아나의 뛰어난 연주와 커플링되어 더욱 가치를 더한다고 할 수 있다.

결코 서두르지않고 넉넉한 템포로 진행되면서 명료한 음색으로 깊은 사고를 품은 듯 전개되는 1악장의 도입부는 매우 인상적으로 역시…”하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이어지는 멜로디도 단단한 왼손의 반주와 연결되어 엇갈리면서 아름답게 빛나고 있으나 allegro vivace의 주제가 시작되면서 Perahia의 터치가 거칠어지기 시작하고 조금씩 여유를 잃은 모습으로 연주가 진행된다. 가끔 들리는 그답지 않게 격양되어진 음색은 곡 자체의 흐름을 방하할 정도로 들쑥날쑥한 느낌이 들고, 중간부의 진행은 서두르는 듯한 인상이 강하다. 9:20에서 보이는 것과 같은 순간적인 기지와 아이디어가 나타나기도 하지만 한편에서는 다시 거칠은 모습을 보여 그 아이디어를 잠식하고 만다. 때로 Perahia 보다는 Pollini가 아닌가 할 정도의 타악기적 표현이 Perahia특유의 영롱한 음색과 섞여 기대에 부응치 못하는 악장이 되어 버렸다.

스튜디오임에도 평정을 못찾은 듯, 영롱함은 부족하지만 아름답게 연주된 2악장은 노래의 부족함과 터치의 아름다움이 미흡한 것을 제외하면 훌륭하게 표현되어 있다. 무거운 스케르쪼는 기대보다 날렵하지 못하며 아랫쪽에 중심이 잡혀 있는 느낌으로 플로네이즈 풍의 주제에서도 즐겁기 보다는 단순하다는 느낌이 들어 Chopin의 대가인 Perahia의 연주인가란 의문이 들게하지만 애드 리비툼 주제와 함께 스케르쪼로 복귀하면서 그의 Chopin연주를 연상시키는 리듬감과 재치, 그리고 아름다움이 살아나고 있어 초반의 실망을 만회한다.

3악장에 이어 쉼없이 시작되는 종악장은 여유로운 Andsnes에 비해 약간 빠르게 템포를 잡아서 조금은 강제되고 서두르는 느낌으로 시작한다. 일부 분절적으로 표현되어 종잡을 수 없게 되어버린 다른 연주들에 대비해 Perahia의 연주는 분리되지 않고 뭉친듯한 음들의 진행 때문에 느낌과 감정의 미묘한 변화 보다는 화려하고 기교적이며 구조에 집착하는 표면적인 접근법에 치우쳐 보인다. 이로인해 구조속에서 다른 디테일들이 죽어버리게 되고, 3:40대의 노래하는 주제는 아예 째즈풍으로 들릴 정도까지 주관적이 되어 버린다. Perahia는 구조적으로 어렵다는 4악장에 대해 명징한 틀을 보여준 것임에는 틀림없지만, 미묘한 부분들이 (집중해 들은 때는 살아나기도 하지만) 거대한 구조속에 희생된 느낌이다.

(7) Vanessa Wagner 2001.10.1~4 Lyrinx 스튜디오 레코딩 (Lyrinx)
1악장 10:23 2악장 3:25 3악장 5:20 4악장 12:15 총 31:23


솔직히 Wagner의 연주는 젊고 아름다운 (이쁘기 보다는 매력적인) 얼굴과 그를 약간은 강조한 커버디자인을 보고 선택한 연주였다. 전에도 이런 표지에 의한 선택이 의외로 좋은 결과를 보인 것처럼 이번 선택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Wagner는 도입부를 진폭이 크진 않지만 침착하고 꾸준한 느낌으로 서서히 달아오르게 진행하고 있으며 특히 적절한 페달링은 인상적이다. Allegro 주제의 진행은 순간 순간의 아름다움과 수줍음을 어둡고 강한 부분과 절묘하게 대조시키고 있고 악장 곳곳에서 아이디어와 재치를 발하는 부분들이 보이지만, 탁월한 Andsnes의 여유로운 공간감각과 비교할 때 스케일면서는 진폭이 조금은 적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반면 여성 연주자라선지 날렵함, 테크닉, 그리고 감정변화의 미묘한 디테일은 매우 잘 살아 있으며 이는 8:10에서 8:20로 넘어가는 부분에서 미세한 감정의 변화와 머뭇거리는 듯한 수줍음을 표현한 것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환상곡풍으로 처리된 2악장은 1악장에서 표현했던 감정이 녹아있는 단단한 왼손 반주위에 멜로디가 애처롭게 울려퍼지면서 전반적으로 악장의 분위기를 어둡고 슬픈쪽으로 이끌어가고 있다. 이는 중심이 무겁게 처리된 Perahia의 2악장으로 어울릴 듯한 연주다. 2악장의 분위기를 적절히 이어받아 시작하는 3악장은 돗보이는 리듬감으로 멋진 시작을 보여주면서 트리오에서도 리듬감에 치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추진력과 집중력에 있었는 실황의 느낌이 들면서도 리듬감과 적절한 템포의 조절이 뛰어난 연주로 다만 전반적인 접근법이 스케르쪼 특유의 유머감과 여유로움 보다는 4악장을 알리는 조금은 어두운 부분에 치중되어 있어 전형적인 해석이라 할 수는 없다. 특히 스케르쪼로 막을 내리기 직전의 레치타티브 풍의 처리는 오페라 부파의 그것이라기 보다는 장대한 베리스모 아리아의 서막인 듯한 느낌을 갖게한다.

3악장의 분위기를 그대로 이어받아 단호하게 접근하는 4악장은 Wagner의 연주중 특히 탁월한 부분이다. 처음부터 Wagner는 사랑의 아픔이 지니고 있는 최종결론에 대한 여러가지 변용을 다채로운 음색과 리듬감으로 보여주고 있다. Ansdnes의 접근법에 비해서는 조금은 틀이 좁지만, 그만큼 깊은 감정속에서 자연스럽게 세밀한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Perahia가 골격을 잘 짠 4악장이지만 디테일이 부족했다면, Wagner는 이 골격과 주제의식 속에 디테일이 잘 살아 있는 연주를 완성하고 있다.
전반적으로는 뛰어난 4악장에 그 4악장을 위해 혼신을 다해 봉사하는 다른 악장들이 곁들어져 자켓의 느낌과 같은 외골수 사랑의 모습을 보여주는 연주라 하겠다.

(8) Evgeny Kissin 2001.7.31/8.1 SWR 스튜디오 레코딩 (RCA/BMG)
1악장 11:14 2악장 3:36 3악장 4:25 4악장 11:59



젊은 나이에 비해 늘 대가풍의 연주를 보여주었던 Kissin 역시 이곡에 대해서 기대를 갖게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특히 Wagner의 약간은 어두운 측면의 해석 이후에 여유있으면서 우아한 느낌의 멜로디로 시작하는 도입부는 Schumann의 또다른 측면인 밝은 부분을 비추일 것이란 기대를 갖게한다. 이런 도입부의 기대는 음악이 진행되면서 다양한 무드로 잘 표현되고 강제되거나 밀어부치는 접근이 아닌 순리로 풀어가는 접근을 취하고 있음이 분명히 들어나면서 더욱 기대감을 부추킨다. 이런 긍정적이며 어두워질 때도 잠시뿐인 접근은 곡의 깊이가 더해지면서는 그간 일부의 광포한 연주와의 차별점이 있으나, 가끔은 지나친 기교를 부리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가 없게 한다. 깨끗하고 좋지만 조금은 상대적으로 깊이나 심사숙고한 맛이 없는 연주다.

분위기를 일신한 듯한 반주위의 고운 멜로디는 최상의 노래는 아니지만 자연스러우면서도 깔끔한 2악장을 만들고 있다. 약간 집중도가 떨어지는 느낌도 있으나, 전반적으로 좋은 해석이다. 스케르쪼 역시 Kissin은 밝은 쪽에 치중을 하고 있다. 휘어잡는 마력을 지니진 않았지만 무난한 시작이후 과거 카네기홀에서의 Chopin연주를 연상시키는 유쾌한 트리오의 진행은 기분을 한층 고조시키면서 리듬감과 감정의 미세한 변화까지 잘 포착해내고 있다. 특히 애드 리비툼 부분의 하프시코드와 같은 효과는 너무나 독특한 매력을 발하고 있다. 반면 4악장은 평이한 감정의 진행속에서 다소 임팩트가 부족한 악장이 되고 말았다.

[최종결론]

Gilels의 BBC연주에서 1악장에서의 빼어난 주제의 처리, 2악장의 아름다운 멜로디와 음색, 3악장의 유머감 넘치는 스케르쪼는 도저히 버릴 수 없는 연주로, 1악장의 아이디어 넘치는 주제처리만으로도 강력한 1위 후보지만, 4악장의 치명적 결함으로 인해 가장 추천할 만한 연주로 지목될 수는 없는 듯하다. 반면 4악장이 압권인 Wagner의 연주는 다른 악장도 뛰어나기 때문에 무리없는 선택일 수 있지만, 조금 더 다채로울 수 있었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모든 악장이 상대적으로 고른 연주를 보여주면서 1, 4악장에서 압권인 연주를 보여준 Andsnes가 가장 무난하면서도 권장할 만한 연주라 하겠다.

[MF의 개인적 순위]

(1) Leif Ove Andsnes – 가장 안정적으로 권할 수 있는 연주로 디테일과 구성력에서 압권
(2) Emil Gilels – 뛰어난 1~3악장만으로도 꼭 들어봐야 할 연주
(3) Vanessa Wagner – 다소 어두운 분위기지만 뛰어난 4악장은 필청의 연주
(4) Evgeny Kissin – 밝은 접근법을 선호하는 사람에게는 어울리는 연주
(5) Murray Perahia – 기대와 실망이 섞여 있는 연주
(6) Vladimir Sofronitsky – “위험한” 연주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라이브의 열기와 함께 들어볼 연주
(7) Elisso Wirssaladze – 실황에서는 멋졌을지 모르지만 CD상으로는 약간은 지나친 측면이 있어 여백과 여유가 아쉬운 연주
(8) Volker Banfield – 쾌속질주의 명쾌한 연주를 원하는 사람을 위한 연주
(2/3위, 6/7위는 상호 교체가 가능할 정도로 관점에 따라 순위를 정할 수 있는 연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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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저는 이런 순위 매김은 싫어합니다만, 재미로 한 것이니 이해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MF[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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