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일찍부터 예매해 두었던 Stephan Kovacevich의 피아노 독주회가 있었습니다. (10월24일 제 블로그에서 소개드렸던 연주회입니다)10월13일 블로그 "코바세비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집을 완성하다"에서도 읽으실 수 있지만, 전 꽤 오래전 부터 코바세비치의 연주를 즐겨 왔다는 점을 우선 알려드리는게 이번 후기를 이해하시는데 도움이 될 듯합니다.
어제 연주회는 코바세비치를 좋아하는 제가 듣기에도 최고의 연주회는 아니었습니다. 우선 시작부터 당초 연주회 순서였던 6개의 바가텔 -소나타 14번 "월광" -인터미션 - 소나타 31번 - 소나타 32번의 순서가월광 - 31번 - 인터미션- 바가텔 - 32번으로 변경되었다는 공지와 함께 연주자의 허밍이 들리더라도 이해하라는 방송이 나오더군요.
의자는 여전히 매우 낮은 의자를 쓰더군요. 매번 방한 했을 때마다 새로 의자를 사서 다리를 잘라 쓴다고 하네요. 지난번의 의자에 비해서는 쫌 불편해 보였습니다.
잠시후 코바세비치가 나왔습니다. 지난번 보았을 때 보다 나이는 더 들어 보이더군요. 환갑이 지났으니 그럴만도 하죠. 인사가 끝나고 바로 월광 소나타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론... 처음부터 난조를 보이더군요. 솔직히 싸운드면에서는 질나쁜 오디오에서 저음만 강조해 틀었을 때 투명하지 않고 혼란스러운 저음이 붕붕거리면서 나오는 느낌이었습니다.
해석적 측면에서는 예전 슈베르트 D.960 소나타가 슈베르트의 "어두운면"을 극대화 하여 보여준 것 처럼, 월광의 어두운 측면에 집착하는 듯했습니다. "날도 꿀꿀한데 오늘은 함 우울한 분위기로 밀어부쳐봐?"하는 느낌의 연주였죠. 이어지는 31번도 쫌 나아진 모습은 보였지만 제대로된 컨디션이 아닌 듯 합니다. 테크닉 상으로도 난조를 보이는 부분이 있고요. 나름대로 정교한 페달링을 하려고는 했지만 저역의 부밍효과가 예술의 전당 특유의 저음부 잔향과 겹쳐져 듣기에 썩 좋은 소리는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허밍은 거의 푸가의 한성부를 담당해 버릴 정도더군요.
인터미션 이후 "마술적 스프레이"작업이 있었고 이후의 음색은 훨씬 나아졌습니다. 헌데 놀라왔던 것은원래 6곡의 바가텔을 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순서도 건너뛰더니 객석에서 박수가 나오자 어정쩡하게 인사를 한 뒤 바로 32번으로 넘어가더군요.우릴 얏본 것도 아니고, 32번을 위한 배려려니 했습니다.
첫 내한공연 때도 연주해서 좋은 결과를 보여 주었던 32번은 어제의 가장 좋았던 곡이었습니다. 코바세비치의 상태도 많이 회복되었더군요. 바가텔까지는 대충 스타인웨이의 "소리"에 맞기는 플레이었다면 32번에 있어서는 좀 더장악력이 있는 연주였습니다. 2악장 아리에타 부분은 쫌 그랬지만, 그래도 빛나는 부분이 눈에 많이 띄던 2악장이었구요.
솔직히 코바세비치가 정교한 음색을 펼치는 연주가는 아닌 것은 사실이지만, 어제 연주회는 음색이란 개념이 없는 연주회였습니다. 마치 당구에서 "대충 치고 쫑보자"하는 것처럼 내뜻대로 연주하고 소리는 스타인웨이에 맞겨두고 나머지는 연주회에서의 필(feel)로 커버해 보자란 스타일로 접근한게 아닌가란 생각도 들더군요.
각종 음악 싸이트 등에서도 어제의 연주회를 혹평할께 분명합니다. 그리고 기대했던 분들이라면 더 그렇겠구요. 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점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코바세비치가 가졌던 마술의 힘입니다. 어제의 연주회는 제가 다녀본 어떤 연주회 보다도 관객의 매너가 좋았습니다. 물론, 일반적인 사람들에 지명도가 있는 연주자는 아니니까 매니아층 위주로 R석이 채워져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만, 연주회 처음부터 (울트라 베이스풍의월광까지 포함해서) 32번의 마지막 여음까지 관객들이 숨소리를 죽이며 그의 음악에 집중했던 것은음악의 성공 여부를 떠난코바세비치의 카리스마가 있었기 때문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솔직히 그런 월광은 "실황"아니면 언제 들어 볼까요?
코바세비치는 (놀랍게도 카리스마의 힘이 끝나지 않았는지) 열광적이 반응을 보이는 관객들(저도 포함되었습니다)에 보답해서 슈베르트의 소품을 연주하고는 싸인회장으로 향했습니다. 저도 CD에 싸인을 두개나 받았구요.
어제의 연주회는궤변을 나름대로 체계있게 설득해대는 말빨에 휘둘려 끝까지 끄덕이며 들었지만 (또는 어라 이런 소리도 다하네하면서 흥미진진하게 들었지만)다 듣고 생각해 보니 말도 안되는 이야기 였던, 그런 연주회가 아닐지?결국은 리스크를 감내해 내는데는 성공하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만이렇게 연준자가 리스크를 감내하며 한음 한음을 쌓아가는 것을 숨죽이며 지켜 볼 수 있는 것 또한 실황만의 장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MF[ME]
*공연기획사에 한마디*
공연기획사에서는 다음과 같은 아이템으로 부족한 공연준비 비용을 마련해 보시는 것은 어떨지?
①어제 코바세비치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집을 할인가에 판매하던데, 차라리 CD마다 싸인을 받아 50개 한정으로 판매한다면 더 잘팔렸을 듯 (저도 샀을지 모릅니다)
②포스터와 프로그램도 싸인 한정판으로 해서 액자까지 넣어 판매한다면 어떨까요?물론, 이 액자를 사는 분들은 연주자와 사진 촬영의 기회도 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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