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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윤택 - 진이(眞伊)

by 만술[ME] 2006. 8. 25.


진이 (眞伊)
이윤택

예고 없이 비 내려
눅눅한 생각일랑 책갈피에 끼워두고
몸 던지고 싶어
근사한 외도를 꿈꾸며
영화관에 가보고
썰렁한 커피잔이 되어 기다려도
남자들은 날 발견 못해
그럴듯한 녀석들은 대학원에 들어가
사랑보다 책 사 읽기 바쁘고
하나 둘 기성복에 몸맞추며
여편네와 허가받은 작부밖에 모르는 사내들
속절없이 외로워
당신은?
안녕히 비워두셨나요
예고 없이 비 내릴 때
오세요
아늑한 살 마디마디 숯불 달구며
나의 가슴을 먹어

제가 시를 많이 읽거나 하지는 않습니다만 제 기억속에 충격을 주었던 시들이 몇편이 있는데 이윤택의 "진이"도 그중 하나입니다. (이상희 시인의 "데이지 화분에 얼굴을 뭍고"나 정지상의 "송인"은 이미 올렸죠?)

모든 구절이 현대인의 폐부를날카롭게 찌르는 내용이지만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구절이 "여편네와 허가받은 작부밖에 모르는 사내들"이란 구절이었습니다. 진정한 로맨스가 사라져 버린 삶, 모험을 잃고 안전한 길만을 추구하는 삶에 대한 촌철살인적인 경구.

MF[ME]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시인데아는 사람들이 거의 없는 시죠.
*진이라는 이름은 짐작하셨겠지만 황진이에서 따왔습니다.
*이미지는 "라 트라비아타"중 한장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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