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달의 플레이 리스트 중에 <My Most Listened>라는 리스트가 있습니다. 이름대로 계정별로 가장 많이 들은 곡(트랙)을 정리한 리스트죠. 아직도 <감상>은 주로 CD를 이용하고 타이달은 신보를 들어보거나 약간 가벼운 감상에 활용하기 때문인지 생각보다 <심각한> 곡이 없는 리스트가 되었습니다. 사실 말러나 브루크너를 많이 듣지도 않지만, 이 리스트에 그런 곡들로 꽉 차 있는 것도 좀 이상할 것 같기도 합니다.
라파엘 그롬스와 줄리안 림의 <샤이어>와 <레아 공주의 주제> 편곡이 1, 2위를 차지했습니다. 이 두곡이 담긴 음반은 이미 다른 글에서 다룬 적이 있습니다. 줄리안 림의 편곡은 몇 번 칭찬해도 좋을 정도인데, 단순히 멜로디를 첼로에 맡기고 피아노는 반주를 하는 식상한 편곡이 아니라 둘의 대화와 조화가 아주 좋습니다.
3위는 디즈니 플러스의 스타워즈 세계관 드라마 <만달로어인>의 주제곡입니다. <오비완 케노비>의 경우 기존의 스타워즈 음악을 활용하지는 않았지만, 드라마를 위해 작곡한 존 윌리암스의 주제를 바탕으로 나탈리 홀트와 윌리엄 로스가 음악을 맡았다면, <만달로어인>은 온전히 고란슨의 작품입니다. 스페이스 오페라 시대의 서부 활극이라는 드라마의 스타일과 음악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고, 음악만 감상해도 좋습니다. 특히 매회가 끝나고 그 회차와 관련한 컨셉 아트와 함께 크레딧이 나오면서 음악이 흐르는데, 컨셉 아트와 음악이 모두 좋아서 매회 크레딧을 끝까지 보게 만들더군요.
테너 카림 술라이만의 <오르페우스의 노래> 음반 중 첫곡인 <달콤한 고통>이 4위입니다. 몬테베르디, 카치니 등의 오페라에서 오르페우스의 노래들을 묶은 음반으로 술라이만의 데뷔 앨범입니다. 일단 술라이만의 목소리 자체가 매우 매력적입니다. 가벼우면서도 부드러운 고음부와 따스한 저음부가 조화를 이룬 목소리로 그냥 듣고 있으면 그 음색만으로도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분명한 술라이만의 개성을 가진 목소리죠.
5위는 다시 라파엘 그롬스와 줄리안 림의 음반입니다. 존 윌리암스의 <쉰들러 리스트> 주제를 편곡한 디지털 싱글 앨범인데, 최근에 요요마가 존 윌리암스와 함께한 앨범(존 윌리암스 편곡)의 첼로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버전보다 저는 줄리안 림의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버전이 더 좋습니다. 제가 어린 시절부터 첼로 소리를 좋아해서 첼로를 배우기도 했기에 그롬스의 음반이 순위에 많이 오른 것 같습니다.
오를로프스키와 베르크뮬러의 음반은 클라리넷과 류트라는 생소한 조합의 음반입니다. 둘의 자작곡에서 <흘러라 나의 눈물> 같은 유명한 곡까지 한곡 한곡이 훌륭합니다. 둘의 조합이 이지리스닝 계열의 편한 소리를 만들어 내지는 않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클라리넷과 류트라는 개성 있는 두 조합이 절묘하게 어울린다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7위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비올라로 연주한 릴리안 푸치스의 음반입니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첼로 연주라도 현대 첼로에서부터 어깨 첼로(violoncello da spalla)까지 다양한 시도가 있어왔고, 류트나 기타 같은 발현악기를 사용한 편곡도 많았습니다. 당연히 같은 찰현악기인 바이올린이나 비올라 편곡도 있고요. 이중 음역대와 어깨 첼로의 학술적인 설득력을 생각할 때 비올라 편곡은 좋은 선택입니다. 물론 녹음 시점을 생각할 때 뭔가 시대 연주적 탐구정신으로 비롯한 것은 아니고, 연주 스타일도 고색창연하지만 의외로 이 고색창연함이 매력인 음반입니다.
8위는 박기영의 어쿠스틱 앨범의 버전의 <산책>입니다. 저희 가족이 함께 TV를 보는 시간은 주말 6~8시 사이로 한정되어 있는데 (물론 OTT를 통한 영화 감상은 별도입니다) 토요일은 <불후의 명곡>을 봅니다. 이 방송의 주기적 출연진 중 음악적으로 제가 높이 평가하는 가수 중 하나가 박기영인데, 이 앨범 시절의 목소리나 발성은 지금 하고는 좀 다르고, 저는 지금의 스타일을 더 선호하지만, 앨범 발매까지의 히트곡을 어쿠스틱 한 반주에 맞춰 부른 이 앨범은 기존 버전에 비해 더 듣기 좋고 자주 듣게 됩니다.
다음은 바브라 스트라이잰드의 <사랑에 빠진 여인>인데 요즘 시대에 전혀 안 맞는 가사지만 멜로디와 스트라이잰드의 가창은 참 좋습니다. 80년대 초반 팝 음악에 빠져 지내던 시절에 많이 들었던 곡들을 가끔 타이달 덕에 듣는데, 이 노래도 그중 하나입니다.
10위는 <오페라의 유령> 오리지널 캐스트에 의한 <내가 당신께 바라는 전부>입니다. 이런저런 <오페라의 유령> 음반을 들어보고 공연 실황도 봤지만, 지속적으로 틈날 때 꺼내 듣는 <음반>으로는 오리지널 캐스트에 의한 음반이 최고인 것 같습니다. 브라이트먼이야 그녀를 위해 작곡한 뮤지컬이니 당연하지만, 라울 역의 스티브 바튼도 제가 생각하는 라울에 딱입니다.
다음은 마돈나의 컴파일레이션 음반인 <기억할 무언가> 앨범의 <여긴 나의 운동장이었지>입니다. 가사만으로는 <playground>를 <놀이터>로 번역하는 게 더 좋을 듯하기도 하지만, 이 곡이 영화 <그들만의 리그>의 주제곡임을 생각하면 <경기장>, <운동장>이 더 어울립니다. 아무튼 <기억할 무언가>는 모든 곡이 주옥같은, 제 생각에 마돈나 최고의 앨범이라 생각하고, 지금도 즐겨 듣고 있습니다.
12위는 카운터테너 바나비 스미스의 아리아집 중 <더 멋진 그늘은 없었네>입니다. 핸델의 오페라 아리아 중 <울게 하소서>와 함께 쌍두마차라 할 수 있는 곡이죠. 현재 국제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는 많은 훌륭한 카운터 테너 중 아름답고 풍성한 음색으로는 스미스가 최고라 생각합니다. 제 취향에는 자루스키나 데이비스 보다 핸델의 아리아에는 더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은 나윤선의 <입 맞춰 주세요, 많이>입니다. 단순한 멜로디와 가사를 무려 6분 가까이 반복해서 노래하면서 끊임없이 변화무쌍하고 전혀 지루하지 않게 부르는 나윤선의 능력은 정말 경이롭습니다.
뒤로도 더 많은 음악이 있지만, 한 화면에 캡처되는 이 정도로 마치겠습니다.
글을 읽으시면서 앨범과 노래 제목을 다들 아는 원어가 아니고 왜 어색한 우리말로 번역하여 표기했는지 궁금하시다면, 각종 방송과 언론, 일상에서 국민들이 외국어와 콩글리시, <탠션> 같은 일본발 이상한 용법까지 늘상 듣고 사용하다 보니 이제 일부 국민들은 대통령께서 하신 우리말 발음도 제대로 못알아 듣는 초유의 사태에 이르게 된 것 같아 저라도 반성하는 차원에서 우리말로 번역하여 표기하고자 한 것이니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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