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그래모폰(Gramophone) 100년

 

영국의 클래식 음반 리뷰 전문지 <그래모폰(Gramophone)>이 100주년이 되어, 이번 달에 특집호를 발매했습니다. 제가 그래모폰을 처음으로 보기 시작한 때가 대략 80년대 중후반이니 (중간에 구독을 중단한 기간이 있기는 해도) 대략 그래모폰 역사의 1/3을 함께 해왔습니다. 한참 열심히 이런 종류의 정간물을 보던 시절에는 <그래모폰>과 함께 당시는 경쟁자였던 <Classic CD>도 함께 구독했습니다. <클래식 CD>는 매월 본문 기사나 리뷰와 연계된 컴파일레이션 음반을 하나씩 넣어주었고, <그래모폰> 보다는 화려한 편집에 별점 시스템으로 제법 인기가 있었습니다. 당시는 클래식 음반의 황금기(?)여서인지 그래모폰에서는 옛 음반 중심의 계간지(International Classical Record Collector), 피아노 전문 계간지(International Piano Quarterly), 오페라를 다루는 계간지(International Opera Collector) 등의 정간물을 내놓았고, 저도 이걸 모두 구독했을 정도로 열성적이었죠. 

 

<그래모폰>의 편집 스타일은 예전에 비해 조금은 현대의 눈높이를 반영했지만, 여전히 텍스트 위주입니다. 그 흔한 별점을 쓰지 않고, 리뷰의 방향도 매우 점잖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음반에 대해 악평이 없습니다. 그래모폰에서 악평을 받을 정도면 끔찍한 음반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모폰의 리뷰는 전반적으로 예를 들어 "A곡에 있어서 다른 경쟁자들이 더 우월하지만, 이 음반은 문득문득의 이 곡의 밝은 측면을 더 잘 부각해 주며..."  같이 극찬은 아니어도 음반의 장단점을 알려주면서 상당수의 음반을 이런저런 조건하에 들을만한 음반의 부류에 올려놓습니다. 제게는 이런 방식의 리뷰가 많은 도움이 되는데, <별 3/5개> 같은 평가 방식에서는 관심이 없었을 음반을 (특히 타이달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와 연계해서) 한번 들어보고 제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동기를 유발하기 때문입니다.

 

한때 서점의 한켠을 차지하던 음악은 물론 각종 예술, 취미와 관련된 정간물들이 하나둘 폐간을 한 국내의 상황을 생각하면, 클래식 음반 리뷰라는 매우 한정적인 분야를 고집하면서, 편집 방향도 말로 때우는 스타일을 고집하면서 100년을 살아남아 이렇게 자축하는 시간을 갖는 정간물이 있을 수 있는 문화의 힘이 부럽습니다. (물론 그래모폰이 발간되는 영국도 예술분야 예산삭감 및 그로 인한 문제점으로는 예외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