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작곡가 존 윌리암스의 팬이란 사실은 몇 개의 포스팅을 통해 언급했던 적이 있습니다. 저는 어릴적 그의 영화음악을 들으면서 언젠가 그의 음악들이 연주회에서 베토벤의 서곡들 정도로 다루어져 연주회를 여는 첫곡이나 앙코르로 사용될 날이 있을 것이라는 꿈을 꾸곤 했습니다. 오디오를 틀어 놓고 지휘봉을 휘두르며 노는 저만의 연주회 프로그램에 그의 곡을 자주 넣기도 했구요.
이런 저의 바람은 차차 현실로 바뀌어 빈 필은 2010년 쉔브룬 여름밤 콘서트에서 그의 곡을 세곡 연달아 연주하기도 했고, 베를린 필은 2015년 발트뷔네 콘서트에서 세곡을 연주했습니다. 그리고 올해초 (당시만 해도 코로나가 지금 같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빈 필은 <황금홀>에서 존 윌리암스 본인을 지휘자로 초빙해 그의 음악으로 전체 콘서트를 채우는 기획을 했고, DG에서 이 음악회 실황을 영상과 음반으로 발매했습니다. 어린시절 DG의 노란딱지 LP들로 음악을 듣기 시작했던 제게 있어서 윌리암스-비인 필-DG로 이어지는 콤보는 그야말로 <꿈은 이루어진다> 수준의 아이템이었습니다. 더구나 얼마전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존 윌리암스 영화음악 편곡버전 음반을 함께 녹음하고 이런저런 공연을 함께했던 소피-무터가 협연으로 참가한 점도 카라얀과의 모차르트 협주곡 음반을 녹음하던 시절의 <소녀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소피-무터가 누님이기는 합니다만^^) 제게 있어서는 좋았던 그 시절을 추억하게 하는 커다란 보너스였습니다.
요즘 <팔릴만한 음반>의 기획처럼 이 실황은 다양한 매체로 발매되었습니다. 그중 가장 추천할 만한 것은 아무래도 <연주회 전체 영상을 담은 BD + 연주회 하이라이트를 담은 CD>의 구성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음반은 13곡을 담았고, 실제 연주회 실황 BD는 전체 19곡을 담고 있으며 BD에는 영상외에 보너스로 CD에 담긴 트랙의 BD 오디오도 담겨 있어 고음질 오디오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장점도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BD 플레이어가 없는 경우라면 그냥 CD를 사시면 되겠지요. (다만, DG로고를 <카라얀 골드>를 연상시키는 금색으로 발매한 <한정반>의 경우 음반은 품절인 반면, BD+CD로는 아직 구할 수 있다는 점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입담가 노먼 레브레히트는 리뷰에서 이 음반을 아래와 같이 평했습니다.
No discredit to Williams, a capable conductor with years of experience as director of the Boston Pops. No credit whatsoever to the Vienna Phil, an orchestra that has guarded its pedigree for almost 180 years, only to squander it on sheets of music that were written for the enhancement of moving pictures and has, with few exceptional tracks, no independent existence. [강조는 인용자]
물론 저는 그가 빈 필의 <미지와의 조우> 연주곡에 대해
Played by a Hollywood pick-up orchestra, the score for Close Encounters of the Third Kind sounds hair-raisingly spooky. Played by the Vienna Phil it’s like Halloween in the Stefansdom... [강조는 인용자]
위와 같이 평한 것에는 <엄지척>하고 동의하며 함께 낄낄거릴 수 있지만, 먼저 인용한 비평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그의 음악이 <영화를 위해 작곡>된 것은 맞지만 <혼자만의 존재감>이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베토벤도 <에그몬트>의 부수음악을 작곡했고, 요즘으로 따지면 영화음악인거죠. 어쩌면 존 윌리암스 자신이 이런 레브레히트 스타일의 <평가>를 늘 염두에 두고 있었던 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합니다. 연주회 중간 <E.T.>를 연주하기에 앞서 마지막 장면의 OST 작곡과 관련된 스필버그와의 유명한 일화를 언급하면서 <영화의 방해없이> 순수하게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라는 농담에는 약간의 <뼈>도 있지 않을까 하는 거죠.
아무튼 윌리암스는 팬 서비스 차원에서 없어서는 안될 곡들을 배치하기는 했지만 (앙코르로 <임페리얼 마치>가 빠질 수는 없었겠죠), 덜 유명한 곡들을 중심에 배치함과 동시에 그의 음악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느낄 수 있는 음악들로 프로그램을 구성해서 (제가 보기에는) 노골적으로 레브레히트류의 평가에 도전하는 듯 합니다. 하다못해 <죠스>의 음악도 그 유명한 테마를 선택하지 않고 <Out to Sea & the Shark Cage Fugue>를 넣었으니까요. 소피-무터가 한두곡 연주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무려 8곡에 참여하는 것도 이런 <효과>를 배가 합니다.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해 <편곡>된 곡들은 <영화>를 위한 곡이 아니라 <연주회>를 위해 편곡된 것이니까요. <레이더스 마치>에 오블리가토 스타일로 참여하는 것은 팬서비스와 이런 효과 모두를 충족하는 좋은 선택이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연주회는 <성공적>이었습니다. 이벤트성을 만족하면서 연주자들과 관객이 모두 만족했으니까요. 음악적으로도 성과를 거두었다고 생각합니만, 어느정도는 레브레히트의 평가에 공감합니다. 레브레히트의 지적대로 <미지와의 조우>는 <영화음악이 아니어도> <슈테판 대성당의 할로윈 파티>로 들려서는 안되니까요. 빈필이 아니고 베를린필이었다면 좀 달라졌을까요? 윌리암스와 빈필은 <영화음악>의 편견을 떨치기 위해 너무 <우아함>을 찾다보니 좀 더 거칠고, 야성적이어도 될 부분까지도 부드러워진 느낌입니다. 언젠가 <미지와의 조우> 음악을 <영화음악>이라는 틀을 넘어서도 <소름끼치게> 연주하고 <임페리얼 마치>를 다스베이더의 얼굴을 떠올리지 않고도 <어둠의 힘이 압박해 오는 느낌>을 받게 연주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다려 봅니다.
MF[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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