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대선에서 (다른 대선들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찍을 후보는 이미 정해져 있었기에 그 후보가 반인륜적인 주장을 하지 않는 이상 지지하는 후보가 달라질 일이 없었기에 TV 대선토론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토론을 보던 아내가 드라마 보다 재미있다며 강력하게 추천했기에 몇몇 토론회는 재미있게 볼 수 있었고, 회자되는 <결정적 순간>들도 실시간으로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TV 토론회의 과정에서 제게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온 장면은 <MB아바타>도 <갑철수>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제게는 홍준표 후보의 속이 뻔히 들여다 보이는 질문에 대한 문재인 후보의 <동성애 반대, 차별에도 반대>라는 대답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좌파나 진보라는 누명을 쓰고 있지만, 실상은 <합리적인 보수>인 문재인 후보로서 할 수 있는 당연한 (그리고 극히 정치적인) 대답이기는 했지만, 그 답변을 보면서 언제쯤 우리도 대선에서 경쟁력있는 진짜 진보적이고 좌파적인 후보를 볼 수 있을지 앞길이 멀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울러 심상정 후보의 <성적 지향성은 찬반의 문제가 아니다>라는 주장도 만족스럽지 않았습니다. 차별의 금지, 이건 당연하지만 동성애는 <인정>의 문제이고 이건 지극히 <찬반의 문제>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즉, 차별은 안할 게와 너희의 삶의 양식을 인정한다는 것은 전혀 다를 수 있다는 것이며, 차별에 대한 반대만으로는 부족한 것이 <인정>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서구에서 벌어졌던 (그리고 지금도 진행중인) 계급(분배)투쟁 대 인정투쟁의 대립에서 인정투쟁론이 조금만 서서히 대두 되었다면, 지금 보다 좀 더 나은 세상이 되지 않았겠냐(즉, 좌파들이 계급투쟁에서의 작은 승리에 도취되어 너무 성급하게 작전을 변경했다는 생각)는 입장이기는 하지만, 현재 시점에 있어서는 두 축이 (아래 언급하는 프레이저는 정치라는 제3의 축까지 확장했습니다) 균형있게 자리매김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입장이라 <인정>의 문제도 무척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글에서 말하는 바와 별도로 저는 당시 문재인 후보의 발언이 세련되지거나 능수능란 하지는 못했지만, 진보의 누명을 쓴 합리적 보수로서 <옳은 발언>을 했다고 생각하며, 이후 벌어진 성소수자들의 시위가 그 옳고 그름을 떠나 전략/전술적으로 성공적이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취지로 요즘 <불평등과 모욕을 넘어 - 낸시 프레이저의 비판적 정의론과 논쟁들>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오래전부터 분배와 인정의 두 축을 나누고, 요즘은 제3의 축까지 도입해서 정의의 문제에 대한 깊이 있는 이야기들을 전개하는 낸시 프레이저의 사상적 발전 과정을 그 반대자들과의 토론 과정을 통해 보여주는 아주 좋은 책입니다. <사월의 책>에서 악셀 호네트 선집 2권으로 나온 <분배냐 인정이냐?>가 낸시 프레이저와 악셀 호네트의 다소 철학적인 논쟁에 많이 기울어져 있었다면, <불평등과 모욕을 넘어>는 낸시 프레이저의 이론을 중심으로 분배론자들과 인정론자들의 협공(?)과 그에 대한 프레이저의 응답을 좀 더 현실적 차원에서 보여줍니다. 아울러 이 과정을 프레이저 사상의 발전과정과 맥을 같이 하여 읽을 수 있도록 편집을 했기에 분배와 인정에 대한 통시적인 학습효과도 있습니다.
550쪽이 넘어가는 분량이 부담되면, 전에도 소개했지만 280쪽에 프레이저의 사상의 정수를 담은 <지구화 시대의 정의 - 정치적 공간에 대한 새로운 상상>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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