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블로그의 유입 키워드를 보면 <노모스 탕겐테> 리뷰 때문에 오시는 분들이 제법 많더군요. 그것에 관해 후배와 이야기 하다가 까르띠에 리뷰라도 하나 더 올리면 <시계 블로그>로 등극하겠다는 푸념을 하면서 이참에 아예 패션 블로그로 변신을 해볼까 생각한다는 농담을 했었습니다. 주제는 <아재가 말해주는 초년 직장인 티내지 않고 멋내기> 정도? 인터넷을 잠깐 뒤져보니 처음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나 소위 <아재>를 위한 이런 저런 내용을 담은 블로그, 특히 각종 패션 관련 업체와 업자들의 블로그는 넘쳐나더군요. 패션 쪽은 협찬이 짭짤한지 협찬을 (받는 것을) 목적으로 한 듯한 블로그들이 많았고 평범한 직장인 한달치 월급 이상을 투자해야 입을 수 있는 옷들을 소개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동호회는 늘 그렇듯 유명 브랜드와 비싼 제품에 대단 <로망>이 넘쳐났습니다.
비슷비슷한 블로그들과 (노골적인 광고를 제외하면) 서로 베껴낸 듯한 글들을 보면서, 오래전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정장을 입고 출근해야 하는 직장 생활을 해왔으니, 실제 경험에 입각한, 그리고 관리자 쯤 되는 위치에서 바라보는 관점에서의 정장 패션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내용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제 전문분야도 아니고 딱히 소위 <옷질>이라는 것을 취미로 하지도 않으니 이론이나 정석이 아닌 그냥 경험에 의존한 이야기 정도로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기회가 될 때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올릴까 합니다.)
*아울러 제가 남자이기에 여성의 복장에 대해서는 다룰 수 없습니다. 제가 경험이 없는 분야에 대해서는 쓰지 못할 뿐 성차별이 아니에요. 이전에 다니던 회사는 여직원은 유니폼을 입다가 폐지하고 여성의 경우에는 근무복장의 드레스코드가 거의 폐지되다시피 했었습니다. 여름에는 초미니 스커트는 안되지만 핫팬츠도 입고다니는 경우를 봤으니까요.
문상 복장을 이야기하면서 멋 내기에 대해 말하는 것은 약간 모순입니다. 따라서 문상 복장과 관련해서 간단히 말하면 <멋 내지 말고, 지킬 것은 지키라> 정도가 될 것입니다. 즉, 예의까지 포함하는 <멋>의 의미라면 몰라도 문상 복장은 <멋>보다 <예의>가 중요한 것이죠.
이렇게 간단하게만 글을 올리면 욕을 먹을 것 같으니 조금 부연해서 설명하겠습니다.
1. 마음이 우선일까, 격식이 우선일까?
국가에서 차례상까지 간섭하는 <국민의례준칙>의 여파인지, 소위 말하는 서양식 합리/실용주의의 영향인지 관/혼/상/제를 비롯한 다양한 행사에서 마음이 중요하지 형식은 중요치 않다는 생각이 많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형식의 파괴가 <쿨>한 것으로 치부되고 있죠. 덕분에 결혼식 하객의 복장은 거의 일상복 수준이 된 지 오래며, 문상 복장도 간소화 경향에서 예외는 아닌 듯합니다.
물론 언제나 마음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마음<만>이 중요하지는 않으며, 만약 마음만이 중요했다면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건 합창하건 문제될 것이 없을 것이고, 유가족 앞에서 먹는 <황제라면>도 문제 될 일은 없을 겁니다. 자비에 교수와 달리 사람의 마음에 직접 접촉할 수 없는 일반인의 입장에서 다른 이의 마음을 알 방법은 표정, 말투, 복장, 행동거지 등 <외면>으로 들어나는 것을 통한 방법 뿐이기에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으로서의 격식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결혼 축가로 <잘못된 만남> 정도는 불러줘도 좋지 않겠습니까?
이 점에서 각종 관/혼/상/제에서 격식이 간소화되고 무너지는 모습은 마치 언어활동에 있어 다양한 표현이 사라지고 단순한 직접화법만이 남는 것과 유사한 상황으로 보입니다. 우리는 <대박>이란 용어가 친구의 시험성적에 놀라는 표현에서부터 분단국가의 원수가 통일정책을 공식적으로 표현하는 데까지 전천후로 쓰이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등산복 입고 자고, 등산복 입고 일하고, 등산복 입고 문상가고, 등산복 입고 예식장 가고, 등산복 입고 관에 들어가는 세상이란!
이런 세상에서 갖춰 입으면 ①고리타분한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당하거나 ②지킬 것은 지키며 사는 사람으로 보이거나 둘 중 하나겠지요. 다행히 문상 복장 정도 갖추는 것은 아직 ②로 평가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2. 문상 복장 권장사항
문상 복장은 멋있게 보이기 위함이 아니라 애도의 뜻을 표하기 위해 입는 것이란 점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면 됩니다. 직장인의 경우 당일 소식을 받고 문상을 하는 경우, 어지간한 복장은 양해가 되는 추세입니다만, 여유가 된다면 적당히 갖춰 입고 문상하는 것이 좋습니다. 장례식이라면 준비의 여유가 있는 상태이니 갖출 수 있는 만큼 갖춰야겠지요. 아래 내용은 갖춰 입는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①정장
가능하면 검은색 정장이 좋겠지만 짙은 회색이나 짙은 네이비도 무난합니다. 다만 검은색이라도 캐릭터 정장 스타일이 강해서 눈에 띄게 스타일리쉬하다거나 라펠의 디자인이 피크드나 숄 라펠인 경우 문상 복장으로 사용하기에는 너무 멋을 낸 느낌이 강하니 지양할 필요가 있습니다. 연예인들 문상장면 보면 광택이 심한 옷을 입은 경우가 가끔 보이는데, 코디가 안티인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검은색이라도 옷감의 재질이 심하게 광택이 나는 경우라면 좋지 않습니다.
셔츠는 흰색이 기본입니다. 여름이라도 긴소매가 좋습니다. (원래 정장에는 반소매를 입지 않는 것이 정석입니다만, 국내에서는 관례상 여름에 반소매가 허용되고 있습니다.) 당연하지만 커프스 링크로 된 셔츠가 아닌 단추로 된 셔츠를 고르세요.
넥타이는 검은색 솔리드 실크 넥타이를 하나 갖춰 두면 좋지만, 없다면 정장과 동일하게 짙은 색에서 무늬가 없거나 차분한 것으로 고릅니다. 넥타이가 애매한 경우면, 장례식장에서 1회용 수준의 타이를 판매하니 구입해 쓰셔도 됩니다. 딤플은 멋내기의 성격이 강하니 잡지 않습니다. 가끔 인터넷 등에 장례식/문상 복장에 대한 모범 사례 사진에도 넥타이 딤플이 잡혀있는 것을 볼 수 있으니 얼마나 실수하기 좋은지 알 수 있습니다. 아울러 포켓칩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면 멋 내지 마세요!
한류 스타라도 조문 복장에 넥타이 딤플은 코디가 안티인 겁니다. 배용준 씨의 경우는 피크드 라펠이기까지 하네요.
②구두
검은색 옥스퍼드가 가장 좋습니다. 브로그는 없는 것이 좋지만 구두를 벗고 문상하는 문화이니 있어도 크게 예의에 벗어날 상황은 안 생길 가능성이 높습니다. 양말도 짙은 색으로 맞춰 신으면 됩니다.
③액세서리
멋 낸 듯 보이는 액세서리는 잠시 빼두는 것이 좋습니다. 번쩍이는 시계, 반지 같은 것은 주머니에 넣어두는 것이 좋습니다. 휴대폰 같은 것도 잠시 맡겨두는 게 좋은데, 절하면서 휴대폰이 주머니에서 빠져나와 상주 앞에 떨어지는 장면을 목격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맡길 데가 없으면 재킷 안주머니에 넣고 단추를 잠그면 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은 조의를 표하러 간 것이지, 주목 받기 위해 간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기억하는 겁니다.
MF[ME]
'책 - 게임 - 취미생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독서]J.R.R 톨킨 관련 몇가지 이야기 (6) | 2020.09.16 |
---|---|
[패션]초년 직장인 티 내지 않고 멋 내기 ③ 정장 입는 직장인의 옷장 갖추기 (5) | 2018.05.17 |
[독서]불평등과 모욕을 넘어 - 낸시 프레이저의 비판적 정의론과 논쟁들 (0) | 2017.06.20 |
[패션]초년 직장인 티 내지 않고 멋 내기 ① - 직장 내 드레스 코드 (4) | 2017.06.08 |
[독서]미야베 미유키의 에도시대물 (0) | 2016.05.3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