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My Wonderful Life

먹고 살고, 거짓말하며, 추억하고 혁명을 꿈꾸기

by 만술[ME] 2013. 11. 13.

요즘 그냥 이러고 살고 있습니다.



1. 먹고살기 


행여 제 블로그를 정기적으로 들어오시는 분이라면 제가 한동안 3일 일하고 4일 쉬는 환상적인 삶을 살아왔다는 것을 알고 계실 겁니다만 그 아름다운 삶은 끝났고, 지난달부터 다시 새롭게 자리를 잡아 빡세게 남들처럼 5일 내내 근무하고 있습니다. 


지금 다니는 회사는 그룹은 아니지만 몇 개의 회사들이 (한명의 회장과 복잡한 상호지분관계로) 얽혀져 있는 회사인데 (그렇다고 지주회사 구조도 아닌 좀 묘한 시스템입니다) 어영부영 임원이 되었습니다. 예전 다니던 회사는 임원정도는 국방부 장성 보는 느낌이었고 하는 일도 별로 없는 결재판 셔틀정도로 생각했었는데 지금 회사(집합)은 제조업 중심이라 그런지 위상(대우나 혜택과는 별개입니다...ㅠ.ㅠ)과 책임이 좀 더 크네요. (주로 공장장, 해외 법인장, 부문장급) 예전회사가 임원이면 일도 없고, 책임도 없고, 혜택은 많다면 지금 회사는 일과 책임은 많고, 혜택은 적다고나 할까요.


예전에 하던 분야에 더해 제가 몸담았던 업종과 전혀 관련 없는 일들도 주어져서 정신이 더 없습니다. 지금 새로운 사업분야로 진입하기 위한 신규법인 설립도 추진하고 있고 관계사들이 늘 제가 밥먹던 분야가 아닌 다른 업종들을 영위하고 있으니 잘하면 이쪽 바닥을 떠나는 발판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만 어찌될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니는 곳이 여의도라 강남에 비해 출퇴근은 좀 더 힘들어졌지만, 칼퇴근을 하기 때문에 아이들 얼굴은 더 자주 볼 수 있더군요. 그래도 아이들은 아빠가 집에서 아이패드로 일하던 시절(다른말로는 비정규직 알바, 고급용어로는 프리렌서)이 더 좋았다며 다시 아이패드로 집에서 일하라 하네요. 얘들아 아이패드 에어가 나왔는데 아빠는 아직 아이패드2 쓴단다. 바꿔주면 생각해 보마...ㅋㅋㅋ



2. text, lies, and stereotype


정말 오랜만에 블로그 카테고리를 하나 추가했습니다. 소더버그의 <sex, lies, and videotape>을 패러디(?)한 <text, lies, and stereotype>이란 카테고리인데 그냥 좀 자유로운 헛소리들을 하는 장소가 될 예정입니다. 특이한 사항은 이 카테고리의 글은 이 블로그 내의 다른 글들과 달리 성격상 매우 무책임하고, 완결적이지 않으며, 대안 부재적이면서, 경어체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란 점입니다.



3. 노베르트 엘리아스, 최재현 교수, 니클라스 루만


얼마전 <인문예술잡지F> 11호(2013가을)를 읽다가 오랜만에 반가운 이름을 보았습니다. 이미 작고한지 제법 된 노베르트 엘리아스(Norbert Elias)입니다. 제가 엘리아스를 처음 접한 건 지금은 절판된 <사회학이란 무엇인가>를 통해서였는데 <개론>수업을 마침 엘리아스의 수제자인 최재현 교수님께 들었기 때문이죠. 흔한 개론서가 아니었기 때문에 다른 개론서도 함께 봐야 했지만 일반적 개론서보다 사회학이란게 이렇게 사고하고 연구하는구나 하는 감을 얻기에는 훨씬 더 좋은 책이었습니다. 독일에서 공부하셨기 때문인지 최재현 교수는 교과서로 좀 특이한 책을 많이 선정하셨는데 <사회학사> 강의를 위해서는 레이몽 아롱의 <사회사상의 흐름>을 선택하셨고, 덕분에 저는 아롱에 대해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아무튼 반가운 마음에 뒤져보니 엘리아스의 노작인 <궁정사회>와 <문명화 과정>이 이미 번역된지 오래더군요. 더구나 아직 절판 안되고 구입 가능합니다만 두껍고 비싸고 어려울 것이 뻔하니 <모차르트- 한 천재에 대한 사회학적 고찰> 정도로 우선 만족해야 할 듯 싶습니다.


최재현 교수님과는 몇몇 추억이 있는데, <로버트 머튼(Robert Merton)이 실제로 한일은 무엇인가?>라는 도전적인 제목으로 플라톤에서 페이어아벤트(Feyerabend),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의 통계론적 해석까지 끌어들이는 궤변이 궤변을 낳는 한시간 반에 걸친 발표로 수업에 참가한 학생들을 패닉에 빠뜨렸던 전과도 있었으니 저를 별로 좋아하지 않으시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이야기 들어보니 제가 대학원을 안간다는 것에 실망하셨다고 하더군요. 순간 물리학 복수전공을 포기하고 그냥 대학원이나 갈걸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너무 늦었죠. 


니클라스 루만(Niklas Luhmann)을 학교에 초청하시기도 했습니다. 국내에 거의 알려져 있지 않던 80년대의 일이니 지금 생각하면 루만을 직접 볼 수 있었던 혜택 받은 사람중에 하나란 생각이 드네요. 덕분에 독일어도 못하면서 Soziologische Aufklärung을 당시 출간된 세권 모두 구입했습니다. 물론 지금은 본가 책장에서 썪고 있죠.    



4. 시차(視差)적 간극


한국사회의 정치적 현실, 그리고 그에 대한 담론들과 행위들을 보면서 개인적 영역에서도 슬라보 지젝(Slavoj Žižek)이 말한 “시차적 간극”을 마주하지 못하는 “아름다운 혁명적 영혼들”을 자주 봅니다. 그리고 가끔은 저도 결국 그 아름다움에 머물러 있는 영혼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슬픕니다.      


MF[ME]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