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 레비의 신간 이후 새롭게 읽기 시작한 책인데 책이 워낙 방대해서 읽고 나면 글을 올리고픈 마음이 없어 질까봐 먼저 올립니다. 따라서 매우 불성실한 책소개 정도로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다 읽고 쓴 것도 그리 성실하지는 않지만^^)
아무튼 오늘 소개해 드릴 책은 팀 와이너의 "잿더미의 유산"입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창설부터 지금까지의 CIA의 역사죠. 이 책은 "역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음모와 성과, 정치적 의미들이 나오지만 결코 어떤 정치적 관점이나 음모론을 위한 책이 아닙니다. 그냥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방대한 역사서인데 특별히 CIA의 역사를 다루었다 생각하시면 됩니다.
국내 "실증사학"의 메카에서 잠깐이지만 공부한 경험 때문인지 이런 스타일의 서술이 읽기 편한데, 이것저것 고리타분한 사실도 캐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에다가어떤 책이건 자료를 기반으로 읽고 판단할 만큼은 머리가 컷다는 자만감 때문이기도 합니다.
일단 책의 두께가 엄청납니다. 무려 1000쪽에 달하는 부피에 그야말로 루머나 비실명 제보를 제외한 공개되거나 공개할 수 있는 CIA의 모든 것이 담겨져 있습니다. 1판1쇄를 구입했기에 조금 매끄러웠음 하는 부분들이 보이지만 두꺼운 분량에도 술술 읽히는 것은내용이 재미 있을 뿐 아니라 저자의 글을 잘 옮긴 역자도 한몫했으리라 생각됩니다.
읽어 내려가면서 그간 가지고 있었던 CIA에 대한 환상이 (이런 환상은드라마"앨리어스"를 보면 한방에 깨지지만) 무참하게 무너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아울러(이번 금융 위기를 보고, 분석하면서 다시금 경험한 대로) 보고, 배우고, 느낀 대로 미국이란 나라가 참 어이없을 만큼 취약한 기반을 가졌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간단히 저자의 한국어판 서문을 인용하죠.
[당시 미국대사였던 토머스 허버드가] 평양에 가기 전에 워싱턴 외곽에 있는 CIA 본부에서 수많은 CIA 사건담당 요원과 분석가를 만났다. (중략) "방에는 약 200명이 있었습니다. 이들 가운데 다수가 성인이 된 이후로 줄곧 북한 연구에만 매달려 왔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곧, 이들 가운데서 북한에 가 본적이 있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죠."
가끔 부서원들과 전략토의를 하면서 부서원들이 회사의 취약점들을 지적하고, 그것이 이미 오래전부터 지적되어 왔음에도 개선되지 않는 것에 불평을 할 때면 제가 하는 말이 있습니다. "적들(경쟁사)도 우리와 다르지 않더라. 때로는 우리보다 더 시스템이 엉망이더라." 미국 CIA도 예외는 아니더군요.^^
아무튼 이 책은 한국전, 이란사태, 베트남전, 쿠바 미사일 사건, 아라크 침공 등 미국이 개입한 역사의 큰 사건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때문에 큰 것을 바라지 않고 재미로만 읽어도 웬만한 소설 읽는 것보다 더 즐거울 것을 장담합니다.
MF[ME]
*랜덤하우스 코리아, 1000쪽, 3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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