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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게임 - 취미생활

[독서]아메리칸 버티고 - 베르나르-앙리 레비

by 만술[ME] 2007. 1. 17.
젊은 시절 스타 철학자(?) 였던 베르나르 앙리 레비의 새책인 "아메리칸 버티고"가 얼마전 번역되어 나왔습니다. 내는 책마다 그만의 독특한 문체, 그리고 좌충우돌적인 언변으로 화재를 뿌리는 베르나르 앙리 레비는 기대 했던 대로 여행기에서도 멋진 문체와 시각으로 저를 즐겁게 해주고 있습니다. (지금 읽고 있는 중입니다) 생각해보면 앙리 레비 스타일의 글을 쓰는 사람에게 있어 이런 종류의 여행기가 딱이지 않을까 여겨지네요.
아메리칸 버티고는 알렉시스 드 토크빌(헉! 그 얼마나 오랬만에 들어보는 이름인지!)의 여정을 따라 그가 미국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뒤를 깬 이야기들을 적고 있습니다. 여행 자체가 이리저리 왔다 갔다였던 것처럼, 글의 내용도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지만, 그만의 스타일, 언변에 빠져들다보면 그냥 한구절 한구절이 재미 있습니다. 특히, 미국에 대해 좀 아시는 분들이라면 더욱 그렇겠죠.
그러고 보면 제가 그의 출세작인 "인간의 얼굴을 한 야만"을 읽은지가 20년도 더됬고(제 나이 나오네요^^) 가장 즐겁게 읽고 한 때 앙리 레비 스타일의 글을 쓰게 만들었던, 다다이즘(다다이즘은 파이어아벤트덕에 공부를 했죠)을 넘어 초현실주의 그리고 알뛰세를 탐독하게 만들었던 "자유의 모험"을 읽은지도 10여년이 훌쩍 지났습니다.최소 10년간은잊고 지냈던 그인데 다시 그만의 스타일로 제 지적 흥분을 꿈틀거리게 하는 것을 보면 악동은 늙어도 악동인 것 같습니다. (자유의 모험은 절판된지 오래됬더군요)
차례를 보시죠.
프롤로그
첫인상 (뉴포트에서 디모인까지)
국민과 깃발 / 너의 감옥들에 대해 얘기해다오…… / 종교에 대하여, 특히 야구에 대하여 /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가짜 / 대도시들도 죽는다 / 어린아이의 복수 / 미국 아랍인을 위한 유대 모델 / 왼쪽 노선 / 시카고 트랜스퍼 / 윌로 크릭의 신 / 비극의 의미, 녹스빌 스타일
서부로 가는 길 (칼로나에서 리빙스턴까지)
흑인 클린턴? / 힐러리와 그 자국 / 광신자들의 자리 / 미니애폴리스의 토크빌 / 누가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죽였는가 / 늑대와 함께 춤을 / 신화로서의 러슈모어 / 반유대인주의에 물든 인디언 영웅 / 짐 해리슨과의 만남 / 가엾은 이스라엘 / 이데올로기의 귀환
태평양의 벽 (시애틀에서 샌디에이고까지)
나의 사랑 시애틀 / 게이랜드에서의 하룻밤 / 좌파들이 말하는 도덕성 / 절대 감옥 / LA로 가는 길 / ‘안티’ 시티, 로스앤젤레스 / 누가 비만을 두려워하는가 / 샤론 스톤이 말하는 부시 / 이민자들의 둥지 위로 날다 / 사람들은 어떻게 미국인이 되는가
사막의 현기증 (라스베이거스에서 템피까지)
섹스 코미디 / 사창가의 법칙 / 감옥 비즈니스 / 그들은 창조론을 말한다 / 모르몬교도들의 기발한 생각 / 미국에 사회보장제도가 있는가 / 금광 광부들의 유령 / 제국의 신화 / 노후를 위한 황금빛 인종차별 정책인가 / 미국 선거 양식의 특이성에 관하여 / 케리 선거 캠프를 방문한 프랑스인
외부의 시선에서 최근 미국 사회의 모습은 정말 현기증을 느끼게 한다. 나는 그 현기증의 실체가 ‘두 개의 미국’이 보여주는 긴장이라고 보고 싶다. _ 김호기(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UCLA 방문교수)
남부와 함께 사라지다 (오스틴에서 리틀록까지)
텍사스의 토크빌 / 길 잃은 크리스천과 돌아온 크리스천 / 미국의 신화 / 나치스처럼 무장한 사람들 / 뉴올리언스의 빛 / 지옥이 이러할 것이다 / 남부의 영광 / 남부를 믿었던 사람들과 더 이상 남부를 믿지 않는 사람들 / 미국의 노예와 그 억압에 대하여 / 가스펠과 컴퍼니 / 리틀록의 비극적 무도회
허리케인의 눈 (마이애미에서 피츠버그까지)
마이애미의 제임스 엘로이 / 마이애미는 끝장났는가 / 미국의 자연에 대한 느낌에 관한 짧은 노트 / 서배너에 있는 나의 유령 / 스콧 피츠제럴드를 위한 무덤 / 바람과 함께 귀향하다 / 마르스 대 비너스, 혹은 그 반대 / 리처드 펄과의 대화 / 빌 크리스톨과 내가 근본적으로 다른 점 / 역사의 종말은 연회가 아니다 / 두 개(최소한)의 우파가 있다
행복한 자들과 저주받은 자들 (워싱턴에서 케이프코드로 돌아가기까지)
블랙홀 같은 민주당 / 워런 비티가 말하는 좌파 / ‘정크 정치’를 끝장내기 위하여 / 안보 시스템이 사람을 미치게 할 때 / 미국 여행 / 토크빌의 맹목? / 우디 앨런, 음악가?영화감독의 초상 / 세 명의 재계 거물 / 관타나모에서의 사흘/ 처음으로 되돌아가서 / 영원의 눈동자 아래에서
에필로그
차례만 봐도 느낌이 오죠? 만약 차례를 통해 이책을 읽어야 할지 그냥 기억에서 지워야 할지 판단이 안서시면 인터넷에서 퍼온 아래의 본문 인용문을 보시면 됩니다.
민주주의 모델이 고장 난 것인가? 민주주의가 병이 들었는가? 남북전쟁, 대공황, 뉴딜정책 때처럼 미국은 역사의 새로운 전환점에 서 있는가? 위협적인 것은 다수의 독재인가? 아니면 소수의 독재인가? 다수의 독재나 소수의 독재는 결국 같은 것이 아닐까? 소수가 다수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라면, 즉 자신의 규범을 부과하여 저항하는 것들을 규칙에 맞게 길들이는 그 방식이 다수가 사용하는 언어체계를 모방하는 것이라면, 다수의 독재든 소수의 독재든 근본적으로 위험하기는 마찬가지가 아닌가? 그렇다면 미국의 선민의식은 어떻게 되었는가? 걸출한 민족의 운명에 걸맞은 모범적인 공화국을 창설한다는 그 미친 꿈, 우리를 꿈꾸게 한 그 꿈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인가? 휴스턴이라든가 더스 패서스의 친구였고, 맨해튼과 맨해튼의 마천루를 사랑했으며, 미국적인 생활방식을 찬양했던 사르트르가 매카시즘 열풍을 지켜보며 “미국이 광견병을 앓고 있다”고 외쳤던 그 어두운 시절로 우리는 회귀하고 있는 것인가? 또한 그보다 몇 해 전, 또 다른 위대한 작가 토마스 만이 그것과는 전혀 다른 역사적 맥락에서 “유럽이여, 조심하시오”라고 경고했듯이, 오늘날의 우리는 우리의 미국인 친구들에게 미국을 조심하라고, 말하자면 전 세계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고 파시즘과 공산주의를 물리쳤고 유럽이 스스로 그것들을 이겨낼 수 있게 해주었으나 스스로 고백하듯 이제 피로의 징후를 드러내기 시작하는 미국을 조심하라고 충고해야 하는 것일까? 월트 휘트먼이 “영혼의 사하라”라고 부른 것 속으로 들어갔다가 살아남은 문명은 아직까지 없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필요하면 그들에게도 환기시켜주어야 하는 것일까?
이 인용문을 보시고, 이런 스타일이 맘에 드시면 정말 즐겁고 유쾌하게 아메리칸 버티고를 읽으실 수 있지만 이 인용문이 난삽하고, 장황하고, 쓸데 없는 내용들로 가득하다고 느끼시면 "아메리칸 버티고", 아니 베르나르 앙리 레비의 글들 자체를 포기하시는게 좋을 것입니다.
어느 토크쇼 보다도 즐겁게 미국을 이야기하면서 무릅을 탁치게 만드는 시각과 즐거움이 있는 책, "아메리칸 버티고"입니다.
MF[ME]
*황금부엉이 / 476쪽 / 16,500원
(Y인터넷 서점에서는 트레이시 키더의 "작은 변화를 위한 아름다운 선택"을 사은품으로 주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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