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지 화분에 얼굴을 묻고 - 이상희
세상을 빠져나가려는 중이야
쉬잇 내 말을 들어봐
난 다시 돌아오지 않을꺼야
다.시.는.돌.아.오.지.않.는.다
다시 돌아와도 찾을 수 없도록
도와줘 데이지, 내 얼굴을 먹어줘
내 의자와 찻잔을, 이름과
구두를 삼키고 동그란 꽃봉우리를
단단히 오므려버려 숱한 풀꽃더미
사이로 숨어버려 새 주소에도
검은 새떼가 그림자를 떨어뜨렸어
포크레인이 앞산을 퍼먹으며
뿌리없는 나를 향해 다가오고 창문을
열면 녹슨 모래언덕이 무너질 듯
데이지, 그런데 난 돌아오고
싶을 거야 야수와 포옹할 미녀를 기다리며
끝없이 긴 불안의 끄나풀이 되고 말거야
도와줘 데이지, 돌아올 수 없도록
내 생의 사진들을 먹어줘
쉬잇 내 말을 들어봐
난 다시 돌아오지 않을꺼야
다.시.는.돌.아.오.지.않.는.다
다시 돌아와도 찾을 수 없도록
도와줘 데이지, 내 얼굴을 먹어줘
내 의자와 찻잔을, 이름과
구두를 삼키고 동그란 꽃봉우리를
단단히 오므려버려 숱한 풀꽃더미
사이로 숨어버려 새 주소에도
검은 새떼가 그림자를 떨어뜨렸어
포크레인이 앞산을 퍼먹으며
뿌리없는 나를 향해 다가오고 창문을
열면 녹슨 모래언덕이 무너질 듯
데이지, 그런데 난 돌아오고
싶을 거야 야수와 포옹할 미녀를 기다리며
끝없이 긴 불안의 끄나풀이 되고 말거야
도와줘 데이지, 돌아올 수 없도록
내 생의 사진들을 먹어줘
조숙했기 때문인지 겉멋이 들었기 때문인지 청소년기 때부터 나이에 걸맞지 않는 책들을 읽었던 저였지만 유독 "시"는 창작의 대상은 될지언정 읽는 대상은 되지 못했었습니다. 대학때 까지 이런 성향은 지속되었는데,당시 제가 생각하는 시는 단 두종류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인듯 합니다. 지금 이런 고백을 하기는 부끄럽지만 제가 생각하는 시는 김지하류이거나 이해인류 단 두종류만 있었던 것이죠.
헌데 레이몽 아롱이 이야기한 대로 "참여하는 방관자"였던 제 정신구조로서는 이 두가지 모두 포용할 수 없었고, 그게 시를 "쓸모없는 것"으로 치부하게 했던 이유였던 것 같습니다.이런 생각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변함이 없었죠.
두번째 전공인 물리학을 마치기전, 군에 입대해야 했던 저는 군생활의 막바지에 우연히 이상희 시인의 "데이지 화분에 얼굴을 묻고"를 접하게 됩니다. 군에 있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소련의 붕괴를 목격했기 때문인지 몰라도 당시의 제 감수성에 "데이지 화분에 얼굴을 묻고"는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제가 외면하고 지냈던 시의 세계가 갑자기 밀려든 것이죠.
그렇게 나이 먹고야 시대의 아픔을 개인적 아픔과 공유하면서 허황된 목소리가 아닌 자기의 목소리로 시대적 공감을 이끌어 내는 시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요. 그러면서도 멋스러움은결코 포기하지않는 그런 시가 가능하다는 것... 결국 이상희 시인의시집 "잘가라 내청춘"은 결국제가 제 돈주고 산 (물론 이런저런 경로로 시집을 선물로 받거나 얻은적은 많지만)최초의 시집이 되었죠.
이후 이상희 시인의 스타일을 벤치마킹한 시들을 직접 쓰기도 했고, 비록 이 충격이사회과학이나 철학 서적에서 문학으로의 전환을 가져오지는 못했지만 문학의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존중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마 나중에 이런 스타일을 표방한 제 시를포스팅할 날도 오겠죠^^)
MF[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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