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소개드릴 책은 김경만 선생께서 쓴 "담론과 해방: 비판이론의 해부"입니다. 특이하게도 이책은 우리나라와 미국에서 동시에 발간되었습니다. 기존에 학술지에 기고된 논문들중 일부가 이용된 관계로 해외의 저명 학자들로부터의 코멘트와 그에 대한 답글까지 부록으로 들어 있는 특이한 구조로 책이 구성되어 있구요.
우선 말씀 드릴 것은 이번 포스트를 통해서는 책의 내용에 대해 논의 하기 보다는 개인적 추억담 중심으로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책의 저자이신 김경만 선생과 제가 개인적인 인연이 있기 때문이죠.
첫 만남은 제가 Feyerabend, Kuhn, Popper 등을 전전하면서사회학 방법론과 과학철학, 그리고 과학사공부에 몰입해 있으면서, 한쪽으로는 물리학을 공부하기 위해 실험실을 들락거리던 대학 4학년(그러니까 사회학과로서 4학년) 1학기의일입니다. (아니면 3학년 2학기 던가?) 어느날 후배인 K양이 "선배처럼 이상한 학자들 이름만줄줄 이야기하면서독특한 캐릭터를 갖고 있는 강사님의 강의를 듣는데 선배랑 잘 어울릴 것 같다"며 그 강사님께도제 이야기를 했으니 한번 만나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오지랍도 넓은 녀석이다란 생각을 하면서 그냥 무시했는데, 어느날 복도에서K양과 김경만 선생님이 강의 끝나고 나오는 것을 마주치게 되고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김경만 선생님의입장에서도당시 "실천"에 경도된 학생들 틈에서 이론에 그것도 한국에서는 아직 낯선분야에 (특히 사회학에서는 더욱 낯선) 관심을 갖고 독학으로 어느정도 수준(?)에 오른 학생을 만난다는게 흥미롭고 즐거운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거침없는 이름들의 향연(당시 사회학 강의실에서는 들어 볼 수 없는 이름들), 그에 대한 맞장구... 서로 "이 녀석 고수인걸?"하는 정서적 교감이 일어났죠. 덕분에 김선생님의 시카고 대학 박사학위 논문을 얻어 읽을 수 있었고, 중간 레벨 과학자의 독특한 역할에 대한 선생님의 연구결과에흥미를 느끼면서 선생님에 대해 호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최근 사진을 보아도 여전한 듯합니다만 훤칠한 외모에 당시 대학 강사로서는 좀 어울리지 않는 약간 럭셔리 하면서도 흔히 이야기 하는 날티나는 모습이셨는데 아마 이런 외모도 이론에 치우친 강의 내용과 함께 당시 국내 대학의 분위기와는 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기에 학생들이 그리 좋아하지 않는 강사중 한명이셨죠.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나중에 교수가 되신후 그 밑에서 논문을 쓴 K누나의 경우도 당시에는"그런 내용의 강의가 한국사회에서 무슨 의미가 있냐"고 외면하곤 했죠.
나중에 다시 언급할 기회가 있겠지만 이때 부터 늘 접하셨을 바로 이런 "실천"에 대한 경도, "참여"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신 내용이 이번 저서인 "담론과 해방"의 주제입니다.따라서 "이론"과 "실천"의 괴리 등등을 언급하며 고민하는 사람들이라면 한번쯤 읽어보면 좋을 듯합니다.
다시 사적인 이야기로 돌아가서... 결국 다음학기에 선생께서 강의하시는 "사회학 방법론"을 수강하게 됩니다. 첫 텍스트는 피터 윈치의 "The Idea of Social Science"였는데 그 발표는 당연하다는 듯 제게 떨어졌습니다. 그 얇은 책의 앞부분만을 대상으로 하는 첫 수업부터 학생과 선생의 엄청난 토의가 시작됩니다. 제가 책의 내용에 대해 해석을 하면, 듣고 있던 선생님은 갑자기 끼어들면서 질문을 하거나 반론을 제기하는 방식이었죠. 결국 발표내내 각종 철학, 미학, 사회학의 이론들과 성과가 도입되고 강의 분위기는 매우 뜨거워졌죠. 물론, 이름들의 화려한 향연을 듣고 있는 대다수 학생들은 지루했겠지만요...^^
더구나 국내에는 아직 생소한 분야였기에 용어들이 국어로 정리되어 있지 않았고 때문에 거의 모든 단어들은 원어가 사용되었기에 듣는 입장에서는 (특히 당시 같이 Marxist Ideology가 학생들의 레퍼런스이던 시절에는) 어찌보면 짜증나는 강의일 수 있었죠.그러나 선생님의 이런 소크라테스적 토론식 강의 스타일은 저로서는 처음 겪어보는 것이었고 (당시 대부분의 사회학과 강의는 그야말로 "강의" 중심이었죠) 함께 공부한다는 것에 흥분되게 하는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시험은 페이퍼로 처리되었는데 돌려받은 페이퍼는 그야말로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학점이 A0로 좋았던 것도 감동이었지만 (당시만해도 절대평가로 학점을 주었고, 그것도 선생께서는 미국의 학생들 수준에 맞추어 평가를 했기에 40여명의 학생들중 A학점은 두명뿐이었고, 그나마 A-를 받은 다른 한명은 나중에 안 일이지만 선생이 국내 사정에 어두운 점을 이용모 논문을표절했다는 후문이 있습니다) 진짜 감동은 한줄한줄 페이퍼 여백에 꼼꼼히 적어 놓은 코맨트였습니다. 솔직히 그때까지 교수님들이 코맨트 달아 페이퍼를 돌려주신 일이 거의 없었고, 있었다고 해도 그 정도는 아니었죠.
덕분에 좋은 학생과 선생으로 관계가 지속되었고, 향후에도 수년간 이런 저런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제가 공부를 계속하지 않고 직장을 택함에 따라 학교와 멀어지고 만나뵐 일도 없게 되었지만 이렇게 저서를 통해 교감할 수 있다는 사실은 제가 그당시 선생의 능력과 열정을 제대로 보고, 또 여러 학생들의 (참여와 비참여, 학문의 성격 등에 대한) 비난에도 불구하고 선생을 지지했던게 맞았구나 하는 생각입니다.
이번 저서인 "담론과 해방"은 아마도 이런 시대적 배경속에서 김경만 선생님께서 고민했던 점에 대해 소위 "실천"을 중시하는 풍토에 대한 응답이라 생각합니다. 아직도 상아탑의 우산에 숨어 말로만 치열한 실천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학자에게 있어 진정한 "실천"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하나의 예라 할까요.
MF[ME]
*김경만, "담론과 해방" (궁리) 25,000원
*오랫만에 써 놓은 글을 읽어보니 <담론과 해방>이 '이론과 실천'에 대한 내용으로 점철되어 있는 듯 읽힐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혹시 오해하실까봐 말씀드리면 이 책은 책 제목 그대로 비판이론에 대한 비판을 행하는 극히 고차원적인 이론서입니다.
'책 - 게임 - 취미생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컴퓨터]드디어 Mac에서 윈도우를 사용할 수 있는 날이 오는가? (0) | 2006.03.14 |
---|---|
[문학]데이지 화분에 얼굴을 묻고 - 이상희 (0) | 2006.02.27 |
[독서]과학혁명의 사상가 토머스 쿤 (0) | 2005.11.22 |
[독서]중국 고대 사상사론 (리쩌허우 著) (0) | 2005.10.21 |
[독서]성공하는 사람들의 8번째 습관 (0) | 2005.10.1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