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음악 - 예술 - 공연

[음악]윤디리 피아노 독주회

by 만술[ME] 2003. 3. 10.

오늘은 지난 일요일 있었던 피아니스트 윤디 리 독주회 후기를 올릴까 합니다.


윤디 리는 중국 출신으로 지난번 쇼팽 콩쿨에서 17세인가의 나이로 15년간 우승이 없었던 기록을 깨고 우승함으로써 일약 스타덤에 오른 피아니스트입니다. 더군나 작년에는 세계굴지의 유니버셜 뮤직 산하 도이체 그라모폰 레이블(DG)과 전속계약을 하고 쇼팽 CD를 발매, 순식간에 밀리언셀러를 기록하기도 했죠.


이번 연주회는 쇼팽의 스케르쪼 4곡과 함께 그의 두번째 독주집의 중심 레퍼토리인 리스트의 피아노 소나타를 연주곡으로 선택했습니다. 어느 정도는 신보판매를 위한 마케팅적인 요소가 발휘된 듯합니다만, 리스트 피아노 소나타 같이 어려운 곡을 실황으로 듣는다는 점에서는 손해날 일은 없었죠.


△내한 연주회에 맞춰 국내에 먼저 발매된 리스트 연주집 (요즘 유행하고 있는 스트라이프 슈트의 시초인 듯한 사진이 인상적입니다^^.)


예술의 전당 음악당 - 연주시작 30여분 전부터 많은 사람들로 북적북적. 근래 보기드믄 성황인듯 합니다. 저는 기획사에 직접 예매를 했기 땜에 (경우에 따라 이러는게 좋은 좌석 확보에 도움이 됩니다) 기획사 측에서 표를 받았습니다. 부실하긴 해도 프로그램도 사고요.(제발 돈주고 파는 프로그램은 조금만 신경써서 만들었음 하는 생각입니다) 윤디 리가 젊기 때문인지, 여학생들이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상당수는 비전공자들인 듯하고요.


연주회장에 들어가 보니 앞쪽에 몇몇 유명인사(이 바닥에 있는 사람들만 아는^^)들이 있네요. 다들 인사 나누고, 약간은 사교모임 같습니다. 암튼, 잠시후 윤디 리가 등장했습니다. 리스트 피아노 소나타 CD의 자켓에서 한층 갑바를 세운 모습과는 달리 (데뷔는 여성스러운 모습으로 자켓 사진을 찍었죠) 다소 앳되고 귀여운 모습입니다. 우렁찬 박수에 인사하는 것도 아직은 어리다는게 느껴지네요.


의자에 앉아 잠시 긴장되는지 조금 쉬었다가 첫곡인 스케르쪼 1번이 시작 되었습니다. 초반에 약간 불안했으나 대체적으로 안정적인 연주였고, 스케르쪼 네곡중에는 강하게 밀어부치는 맛이 있는 2번이 제일 좋았습니다. 한편 4번 같이 미묘한 디테일과 아름다움과 강함이 교차되어 잘 살아나야 하는 연주에서는 조금은 평이한 수준의 연주였죠. 전반부 연주는 대체적으로 쇼팽 스페셜 리스트로서의 특징보다는 오히려 후반부의 리스트 소나타를 기대케하는 "리스트 풍"의 연주였습니다. 음색 자체도 쇼팽 보다는 리스트에 어울렸구요. (사실, 위에 언급한 리스트 음반도 기대보다 훌륭했습니다)


솔직히 저는 쇼팽에서는 아름다운 음색, 특히 낭랑한 음색과 자연스런 루바토를 섞은 흐트러지는 듯한 선율의 맛에 단단한 구축력이 자연스럽게 가미된 연주를 좋아하는데 윤디 리의 연주는 조금은 격한 스타일의 연주라 구축력만 살아 있어 저로서는 약간은 기대이하의 연주였습니다. 물론, 연주회장에서는 첫곡의 마지막 음이 끝나기 전부터 함성이 터져나오고 박수가 터져나오고 했죠. 스케르쪼 네곡을 묶어서 연주했기 때문에중간에 박수없이 진행되었더라면더 좋았을 것이란 생각입니다. 윤디 리도 걍 의자에 앉아서 인사하고 계속 진행하는 것으로 봐선 그런 의도가 있었던 듯했습니다만, 청중들의 환호가 길었기 땜에 연주의 맥이 좀 끊긴듯 합니다.


인터미션 이후의 리스트 피아노 소나타 - 첫음 부터 극히 리스트스러웠습니다. 윤디 리가 괴물이라 표현한 모티브의 으르렁 거림도 잘 표현 되었고, 변화무쌍한 곡의 흐름도 균형과 구조감이 튼튼하게 받쳐주어 좋았습니다. 특히 곡 전체를 파악하는 능력은 도져히 스무살의 젊은 피아니스트라고는 할 수 없을 정도의 직관력으로 곡을 꿰뚫어 불분명한 부분이 없이 전체적인 맥을 잘 집어 나갔습니다. 리스트 소나타 같은 경우 대가들의 경우도 스튜디오에서 조차 종잡을 수 없는 연주가 되어 버리는 것에 비하면 라이브에서 이럴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었죠.


약간 불안정한 부분도 있었지만, 기교상으로도 이 어려운 곡을 소화하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구조가 좋다고 단순하거나 믿믿한 것도 아니고 세부적인 디테일과 다양한 음의 팔레트로 종횡무진 누비는 호방함은 젊은 연주자의 패기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죠. 특히 길고 자칫 집중력을 잃기 쉬운 4악장도 정갈하면서도 긴장과 이완을 반복하면서 완벽하게 처리했습니다. 이점에서는 앞으로 라이브로 듣는 리스트 피아노 소나타를 더 좋은 연주로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을까를 의심할 정도였답니다. (물론, 이 연주를 음반으로 듣는다면 라이브와 음반의 차이점 때문에 전 또다른 형태의 평을 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기대 이하여도 그랬겠지만^^) 연주가 끝나자(정말 마지막 약음의 여운이 사라지기 전에 터져나오는 함성과 박수는 짜증이 나더군요...ㅠ.ㅠ) 터져나오는 함성, 박수... 당연한 결과였죠. 뒤의 합창석 청중에게도 공손한 윤디 리의 매너는 인상적이었습니다. (요즘은 이러는 경우 많죠^^) 이어서 앵콜로 리스트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연습곡"중 "라 캄파넬라"를 시작했습니다. 윤디 리가 "라 캄파넬라"라고 크게 외칠 때는 무슨 곡인지 모르던 사람들이 첫 소절이 시작되고 아는 멜로디가 나오자, 마치 팝콘써트 처럼 첫소절과 함께 박수와 함성을 질렀습니다. 허걱~~~!!! "라 캄파넬라"는 완전히 앵콜곡으로 편곡된듯 무진장 빠르고 조금은 들떠서 악보상의 강약을 무시했지만, 그래서 청중을 더 환호하게 했습니다. 이제 청중은 거의 "오빠부대"가 장악하고 카메라 플레쉬까지 터뜨리기 시작했으니까요.^^


또 하나의 앵콜... 중국곡인데 무슨 무슨 꽃이란 제목인데 잘 기억이 안납니다. 조금은 뽕짝스러운 멜로디가 들어가 있어서 애교스러습니다. 이어지는 마지막 앵콜은 리스트의 "리골레토 패러프레이즈" "라 캄파넬라"와 함께 이번 리스트 음반의 필업으로 들어가 있는 곡입니다. 정말로 계산된 듯한 앵콜곡이죠. 윤디 리는 마케팅에도 일가견이 있나봅니다.^^ 솔직히 이곡도 "라 캄파넬라" 처럼 CD의 연주가 좋았습니다. 물론, 앵콜곡이기 때문에 전혀다른 곡처럼 들릴 정도로 흥을 돋구기 위한 곡이 되었기 때문이지만...


윤디 리 얼굴 다시 보겠다고 몰려들어 아우성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이제 클래식계에도 오빠부대들이 좌지우지 하는게 아닌가란 걱정이 들기도 했습니다만, 메이져 레이블의 관현악 신보의 예상 판매량이 전세계적으로 2~3천장이라는 암울한 음악계의 현실을 생각할 때, 윤디 리의 연주회는 또 하나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팝에서 먼저 시작된"스타 시스템"이 클래식의 미래에 도움이 되는지 아닌지의 문제는 다음에 자세히 다룰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이런 "오빠부대"에게 클래식 시장의 미래가 달려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약간은 서글픈 생각...


다행히 클래식은 "립 싱크"(아니, "핸드 씽크"가 되나?^^)가 없고, 비록 제대로된 평가를 내리지는 못하는 사람이라도 눈에 보이는 테크닉에는 감동할 수 있으므로, 기본이 안된 가짜 연주자가 판치지는 않을테니까, 이런 스타일의 연주를 통해 기반을 다지고, 그 기반덕에 더 차원높은 수준의 연주가도 먹고살고...


암튼... 팬사인회를 하다가 늘어선 줄의 절반도 안하고 도망가 버린 것때문에 조금은 예의 없는 듯해서 불쾌했지만, 윤디 리의 연주회는 이것저것 생각하게 하면서도 좋은 리스트 소나타를 들었다는 생각에 전혀 돈 아깝지 않은 연주회였습니다.


MF[ME]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