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좋아하는 피아니스트 중에 코바세비치(Stephen Kovacevich)라고 있습니다. 아마 현존하는 피아니스트 중에서는 베토벤, 브람스 같은 오스트로-저먼 계열의 음악에 대해서 가장 잘 연주하는 연주자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의 이름에 얽힌 재미있는 사연은 나중에 또 다루기로 하죠)
이 코바세비치가 드뎌 EMI에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녹음을 완료했고, 이번달 말쯤에는 발매가 될꺼라 합니다. 90년대 초반부터 녹음이 시작되었으니 10년여 세월이 걸린겁니다. 저로서도 첫 음반부터 최근의 아홉번째 음반까지 매번 나올때마다 구입하여 들으면서 그의 연주에 경탄을 하곤 했는데 이제 마지막 레코딩의 씨디화도 완료되어 전집으로도 만날 수 있다니 감회가 새롭네요.
[그간 나올때마다 구입한 코바세비치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씨디들 - 모두 9장이 되었네요]
코바세비치는 원래 필립스 소속이었지만 필립스에는 당시 브렌델이 있었고, 브렌델이 인지도나 레파토리 면에서 더 광범위 했기 때문에 비록 적쟎은 힛트 앨범이 있지만 필립스는 코바세비치를 차버렸다 합니다. 이후 오스트로-저먼 계열의 곡들의 연주를 잘하는 피아니스트가 궁했던 EMI는 코바세비치와 계약을 했고, 드뎌 디지탈 녹음으로된 가장 훌륭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집중 하나가 될 프로젝트가 탄생하게 된거죠.
이 훌륭한 프로젝트 완성에 즈음하여 지난 98년 내한 했던 그의 연주회에 참석했던 감상 후기를 올릴까 합니다. 물론, 당시에는 "비평"의 목적 보다는 코바세비치의 연주회에 참석했다는 "감상"을 중심으로 적었기 때문에 조금은 과장되기도 하고 논리적 비약도 있을 것입니다만, 글의 내용을 수정하지는 않았습니다. 원래는 하이텔의 고음동에 98년 3월 11일 올렸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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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연주회평이나 심도 있는 내용은 아니고 그냥 짧은 미셀러니 정도니 그점을 양해 바랍니다.
나와 Kovacevich의 인연은 우연에서 비롯되었다. 사실 지난 10여년 동안 음악을 들어오면서, 그리고 소위 레코드라는 것을 모아 오면서 Kovacevich는 그 중반을 지나서야 내게 다가왔던 것이다.
그 인연은 우연히 그가 Philips에서 녹음한 Beethoven협주곡 5번을 듣게 되면서 였다. 그때까지 꽤 많은 연주자들의 녹음을 들어 보았지만 내게 있어 언제나 돌아갈 고향과 같은 연주는 Fischer / Furtwa"ngler의 HMV녹음이었고 그것을 대체할 stereo녹음은 불가능한 듯 보였다. 그런데 Kovacevich의 연주는 나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1악장의 다채로운 소리의 향연과 비록 시간상으로는 느리지만(표준에 비해서 매우 느린편이다) 그 느낌상으로는 전혀 늘어지는 느낌이 없는 2악장, 그리고 5번 교향곡의 3-4악장 연결부와 같은 긴장이 감돌다 몰아치는 3악장의 론도... 아직까지도 난 론도악장에 있어서 Kovacevich보다 더 다채롭고, 신명나게 연주하는 연주자는 보지 못했다.
(아참, 더 멋진 론도는 EMI 녹음의 - 국내에서 구할 수 없는 것 같음 - Kovacevich본인의 연주/지휘 CD가 있음. 또한 EMI는 예전의 명콤비 C. Davis와 LSO를 써서 Beethoven 협주곡 전곡을 녹음한다고 하는 기쁜 소식도 있죠.) [주-불행히 이 베토벤 협주곡 프로젝트는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결국 난 당시로는 구하기 힘들던 그의 Beethoven협주곡 CD를 구하러 동네를 비롯 이곳저곳을 뒤지며 다녔고, 가까스로 구할 수 있었다. 헌데 안타까운 일은 주위의 음악듣는 친구와 아는 분들이 Kovacevich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물론 나의 권유로 친구 K군은 Kovacevich의 Beethoven 5번 협주곡, Bartok협주곡집 등을 구해 듣기도 있지만 그건 Philips에서 Duo를 발매하던 한참 뒤의 일이었다. 아무튼 친구조차 그냥 "힘있는 연주자" 정도로 평가할 뿐 더이상은 Kovacevich에 빠져들지 않았다. (그는 Bartok을 전혀 이해 못했다)
이후 EMI에서 연주한 음반들이 좋은평가를 얻기 시작하자 국내에서도 그의 음반의 선전이 나오기 시작하더니, 예전에는 찾을래야 찾을 수 없던 그의 Philips시절 음반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날 Hitel의 연주회 안내에 그의 방한 연주관련 게시가 뜬게 아닌가! 게다가 동아일보에는 그의 방한 소식이 올라와 있었다. (재미 있게도 그 기사를 쓴 기자분은 "힘좋은 피아니스트는 많다. 그러나 그 힘을 절제하면서 효과적으로 이용할 줄아는 피아니스트는 적다"며 마치 K군을 의식한 듯한 말로 시작하고 있다.)
난 Kovacevich의 인지도가 국내에서는 그리 높지 않다는 점을 감안, 표를 구하는데 서두르지 않았다. 그러나... 영풍문고에 책을 사러 간 김에 예매를 하려고하자, 아뿔사 - S석은 2층 밖에 없지 않은가! 1층 A석도 후미진 곳 밖에는 남아있지 않았다. 나는 그냥 1층 A석을 우선 구입한 뒤 (별로 사람들이 없을 테니까) 좋은 자리로 바꿔 앉을 생각을 했다.
연주회 당일 - 회사 동료인 B대리가 나와 동석을 하자고 했고, 예술의 전당에서 바로 자리를 바꾸어 C열 50번이라는 좋은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S석) 물론 가운데서(C열이 제일 가운데 열이다) 약간 우측으로 치우쳐 있었기 때문에 손은 않보이고 연주가 얼굴은 잘보이는 자리였지만 피아노에 비추이는 해머의 움직임 만으로도 대충 손의 움직임은 알 수 있었다. 솔직히 약간 썰렁할 줄 알았던 연주회장은 IMF의 한파에도 꽉찼고, 떨리는 기다림속에 Kovacevich가 입장했다.
은색의 머리카락, 그에 어울리는 회색 연주복 - 그는 자리에 앉아 잠시 의자를 조정하더니 첫곡 - Bach의 Partita 4번 - 을 시작했다. 개인적 생각으로는 Kovacevich에 있어 Bach는 몸푸는(?) 곡이었다. 그가 Bach를 녹음하지 않은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그는 Gramophone과의 인터뷰에서 Goldberg변주곡을 제외하면 Bach의 곡을 녹음할 생각은 없다고 했다.) 그에게 Bach는 자신을 표현하기 위한 음악이 아니라 즐기기 위한 음악이었다. 그는 그 즐거움을 연주회장의 꽉찬 청중들과 함께 했다. 때문에 연주회를 위해서는 더할 나위 없이(특히 시작으로) 좋은 연주였지만, (그의 말대로) Schiff같은 좋은 연주자를이 많은 레코딩 시장에 내놓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연주라고나 할까? (그렇다고 들을 가치가 없는 연주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지)
그러나 - 이어진 Handel의 주제에 의한 변주곡과 푸가는 전혀 달랐다. 그건 그야말로 '연주'였다. 이미 Kovacevich는 Philips에서 그곡을 녹음 했지만 이번 연주는 그 녹음을 젊은시절(또는 학창시절?)의 작품으로 전락시켰다. 이번 연주회에서 보여준 집중력과 다양한 음색의 성찬에 비하면 그 좋던 Philips의 녹음은 너무나 직설적인 것으로만 들렸다.
Kovacevich의 Brahms협주곡의 경우도 Philips와 EMI의 녹음을 비교 해보면 큰 차이를 느낄 수 있듯, 역시 Brahms는 약간은 나이를 먹어야 '제맛'을 낼 수 있는가 보다. [주-EMI는 이곡을 꼭 재녹음 했음] 아무튼 Kovacevich는 적절한 힘의 조절로 꼭 필요한 소리를 창출해 냈다. 연주가 끝난 뒤의 청중들의 열광은 늘 그렇듯 의례적인 것은 아니었다.
휴식시간이 있은 후 Kovacevich는 다시 입장을 했고 이번에는 청중을 마주보고 의자에 앉았다. 이어 아리따운 한 여성이 입장을 했고, Kovacevich는 청중에게 연주될 곡들에 대해 간략한 해설을 하기 시작했다. 안타까운 점은 통역을 하는 이쁜 아가씨의 통역이 그의 뉘앙스를 충분히 살리지 못했고, 또 내용의 경우도 약간은 전달이 제대로 되지 못한 점도 있었다. 더구나 그 통역하는 분은 Kovacevich를 그냥 '이 사람'이란 호칭으로 불렀다. 맙소사! 그냥 '이 사람'이라니! '이분' 또는 '선생님' 등 더 나은 호칭도 많았을 텐데... 그녀는 Kovacevich의 최초 내한공연(혹시 마지막은 아니겠지?)에서 그의 말을 동시통역 한다는 것이 얼마나 감격적인 일인지 모르는 듯 했다.
더군다나 Kovacevich가 Brahms에 대해 이야기 하는데! (자격증은 없지만) 나라면 일생 일대의 큰 영광 이었을 텐데...
아무튼... 2부는 마치 한곡인 듯한 세곡의 Brahms로 시작되었다. (Kovacevich는 확실히 이런 효과를 노렸다.) 그는 곡과 곡사이의 휴지 시간을 적절히 이용했으며 이는 동양의 여백의 미가 뜻하는 바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었다. (예를 들어 Furtwa"ngler에 있어 쉼표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지, 그래서 그것이 프레이징과 리듬과 비트에 얼마나 중요한지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의 쉼은 긴장의 이완과 흐트러짐의 방지 라는 역설적인 효과를 창조할 바로 그 만큼 적절하게 이루어 졌고 한음 한음은 주술을 담은 듯 (그의 말대로) 마술처럼 마음을 움직였다.
"하이랜더"에서 맥클라우드가 한 말 처럼 "일종의 마술 같은" 시간이 지나고 연주회의 마지막곡인 Beethoven 32번 소나타의 시간이 되었다. 아마도 연주회장의 많은 분들이 바로 이곡을 들으러 왔고, 기다려 왔을 것이다. 나 또한 그의 최근 EMI녹음들이 Sensaura녹음 방식 때문에 왜곡된 것인지 아니면 그의 '울림'이 그런 것인지를 확인하고 싶었다.(물론 EMI의 32번은 Sensaura방식이 적용되지 않았다고 한다)
Kovacevich연주는 전반적으로 EMI의 녹음보다 Tempo의 완급이 강했는 데, 어쩌면 이것은 첼리비다케의 말대로 그의 tempo때문이 아니고 연주회라는 이벤트와 연주회장이란 공간이 창조해내는 '현상'일 수 있었다. 해석에 있어서 크게 달라진 것은 없는 듯 했는데, 실제로 들어보니 그의 음색은 더 풍부했고, 뛰어나 힘조절로 다이내믹렌지도 매우 넓었으며 세밀한 부분도 더 세밀하게 표현되는 느낌이었다. 솔직히 1악장에서 Allegro con brio로 넘어가는 순간(난 1악장에서는 이부분을 제일 좋아한다)이 너무(?) 빨리 온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이것도 연주회장의 긴장된 집중력과 나의 기대감이 만들어낸 '현상'일 수 있으며 그의 연주는 녹음에서 듣던 것보다 훨씬 좋았다.
당연히 청중은 열광했고, Kovacevich는 Bach의 평균율을 앙코르로 연주했다. 이어진 박수에 그는 몇번을 커튼콜에 응하다, 드디어 의자에 앉아 어찌해야 될지 모르겠다며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는 무엇을 연주해야 할지 잊었다면서 잠시 시간을 줄것을 요청했다. 그리고는 Schumann이 흘러 나왔다... 이 모든 앙코르와 그의 웃음은 열기에 들떠 있던 연주회를 부드럽게 가라앉히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이어진 싸인회 - 나는 누군가의 싸인을 받는 것은 지극히 싫어 했고 (특히나 열성적인 학생들과 같은 부류로 취급되는 게 싫었다.) 그냥 Kovacevich의 조용하고 진정한 애호가로 남고 싶었다. 그런데...B대리의 권유도 있고, 가만 생각해보니 그의 연주회에 참석했던 추억의 기념물을 남기고 또 그와 한순간 이라도 같이할 수 있는 시간을 창출한다는 것은 내게 있어 매우 중요한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한때는 스스로 한국 Kovacevich 팬클럽(물론 이런 것은 없다) 회장이라고 자처하곤 했던 나 아닌던가! 해서 기나긴 줄에 몸을 맏겼다. 한번은 더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기대와 함께...
그는 연주회에서와는 달리 안경을 끼고 싸인을 하고 있었다. 몇몇 사진에 안경을 낀 모습이 있는 것을 볼 때, 그는 평시에는 안경을 착용하는 듯 했는 데, 솔직히 안경을 끼지 않은 모습이 더 매력적으로 보였다. 원하는 사람마다 원하는 자리에... 난 앞좌석에 앉아 있었다는 죄로 맨 뒤에 서서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난 그의 최근 EMI녹음 표지중 가장 사진이 가장 잘 나왔다고 생각되는 소나타 30번 등이 들어 있는 CD의 표지에 싸인을 받았다. 그에게 난 그냥 초대권 받아 연주회에 왔다가 즉석에서 CD한장 구입해서 싸인이나 받으려고 줄서 있는 사람은 아니라고, 내가 그의 음악에 얼마나 탐미하고 있는 지, 국내에 구하기도 힘든 그의 CD들은 죄다 지니고 있을 정도의 열성 팬이라고 그리고 그의 연주에 대해서도 너무나 멋있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불행히 내 뒤에도 줄이 서 있었고, 또 그러기엔 난 너무 수줍음을 타는 성격이었다.
드디어 내차례... 그는 내가 원하는 위치에 멋들어진 싸인을 해주었다. 그는 싸인을 하며 (오히려 내가 고맙다고 인사해야 할 판인데) 내게 고맙다고 했다. 그의 연주회에 참석, 즐거운 시간을 함께 해주어서 고맙다는 뜻인 듯 했다. 그랬다 - 내가 꿈에도 그리던, 그래서 영국 Wigmore Hall에라도 돈을 모아 가서 연주를 듣고 싶었던 Kovacevich는 내 앞에 나와 함께 있었다.
[연주회 당일 받은 코바세비치의 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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