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글에서 필슨의 브리프케이스를 정장에 안 어울리는 디자인이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제가 몇년째 필슨의 오리지널 브리프케이스(필슨 256)를 출퇴근 시 들고 다니고 있습니다. 오늘은 작금의 월북을 월북이 아닌 것으로 뒤집는 추세에 맞춰 출퇴근 가방으로서의 필슨 256에 대해 글을 올릴까 합니다.
1. 왜 가죽이 아닌 천쪼가리로 된 필슨인가?
정장에는 가죽으로 된 서류가방을 드는 것은 어느 정도는 보편화된 상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것도 크게 주목을 받지 않는 무난한 스타일이 추천되죠. 저도 이직을 한 김에 가방도 바꾸자는 생각에 먼저 고려한 건 가죽 브리프케이스였습니다. 나이도 있으니 기왕이면 쓸데없이 고가의 브랜드는 아니더라도 가죽의 질은 풀그레인 정도로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만, 디자인은 너무 무난한 것 말고 그래도 조금은 세련된 느낌이었음 했죠.
그런데 말입니다... 막상 디자인 좋고, 가죽의 질이 좋은 제품을 찾고나면 가격이 너무 비싸더군요. 고가의 브랜드에 싸구려 재질로 된 가방은 제법 많아도 좋은 가죽으로 된 싼 가방은 찾기 힘들더군요. 더구나 노타이 트렌드에서 정장 입는 나이 든 남자가 할 수 있는 멋 부림에 한계가 있으니 평범한 검은색보다는 조금 밝은 색을 고르기로 결심하고 나니까 더 고르기가 까다로웠습니다. 결국 타협한 게 멀버리의 벨그레이브 싱글 도큐먼트 홀더였습니다. 풀그레인 가죽에 색상도 다양했고, 가격도 150만 원 정도로 유명 브랜드보다 저렴(?)한 편이었죠.
이렇게 마음을 정하고 좀 저렴하게 구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던차에 우연히 용인 쪽을 방문했다 필슨 코리아 본점(이자 판매장)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터프한 삶을 살거나 취미로 갖거나, 그리 생기지 않았고 그렇게 입거나 꾸미지도 않지만, 뭔가 마초적인 남자에 대한 로망도 있어서 구경이나 할까 해서 들어간 거죠. 그러다 필슨 256의 실물을 보게 되었고, 입고 있던 정장에 맞춰 들어보니 약간 튀기는 해도, 어색하지는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586세대지만 <꼰대>는 아니라는 것을 표현하기에는 멀버리 보다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예 색상도 탄(tan)으로 과감하게 결정했습니다.
2. 사용기 - 장점과 단점
몇년간 들고 다닌 바 몇 가지 장점과 단점이 있습니다.
우선 단점은 무겁습니다. 러그드 트윌 캔버스는 캔버스지만 가죽만큼 무겁고, 손잡이 등의 재질인 브라이들 가죽은 가죽 중에도 두껍고 무거운 편이죠. 저는 태블릿과 책 한 권 정도만 넣고 다니는데, 저야 차로 출퇴근하고 외근도 차로 이동하니 큰 문제가 없지만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한다면 이 정도가 한계일 듯합니다. 두 번째 단점은 좀 크다는 점입니다. 많이 들어가는 장점은 있지만, 어차피 뭔가 많이 넣으면 무거워질 테니 크게 장점은 아닙니다. 그냥 덩치가 크지 않은 사람이 들면 좀 커 보입니다. (41*31*10 cm)
세탁 - 왁스입힌 캔버스 재질이라 때가 타면 물세탁이 사실상 불가능한 제품이지만, 의외로 때가 안 탑니다. 밝은 색이 조금 어두워진 정도고 그것도 새 제품과 함께 비교해야 티가 날 정도입니다. 제가 험한 일을 하는 스타일도 아니지만, 뭔가 엄청 아끼면서 사용하는 스타일도 아닌데 그렇습니다. 사무직 직장인이나 학생이 사용하는 경우라면 평생 더러워지는 느낌 없이 사용할 수 있을 것 같고, 명색이 서류가방이지만 밖으로 험하게 굴린다면, 인터넷 사진에서 보이는 빈티지한 멋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즉, 때 타는 것은 별로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편리성 - 손잡이 가죽이 두껍고, 뻣뻣하지만 금방 부드러워집니다. 그래서 보기보다는 손에 들고 다닐 때 손에 감기는 맛이 있습니다. 별도의 가죽 덧댐이나 똑딱이 손잡이 달린 가방보다 손에 가해지는 압박이나 감기는 맛이 더 좋더군요. 지퍼는 처음에는 뻣뻣하고 물건 꺼내다 지퍼 이빨에 흠집 날 것 같은 위용을 자랑하지만, 조금만 사용하면 (물론 미끄러지듯 여닫히는 것은 아니지만) 제법 부드러워집니다. 그냥 지퍼의 위용을 보기만 해도 지퍼가 고장나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들지 않습니다. 겉에 앞 뒤로 주머니가 있어서 이것저것 넣어두고 다니기 좋습니다. 뚜껑이나 지퍼가 없어 분실의 위험을 걱정할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가방의 재질이 거친 편이라 물건이 쉽게 빠지지는 않고, 저 같은 경우는 출입증, 얇은 책, 핸드폰, 지갑, 자동차 키 같은 것을 던져 놓고 언제건 꺼내 쓸 수 있어서 이런 방식이 좋더군요.
안전성 - 노트북이나 전자기기를 보호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가방은 아닙니다. 쿠션재질이 전혀 없고, 내피도 없이 캔버스로만 되어 있습니다. 외피 = 내피인 구조죠. 가방 바닥도 마찬가집니다. 흔한 금속 재질의 징도 박혀있지 않아요. 그런데 흔히들 번들로 주는 노트북 전용 가방이 쿠션 재질이 들어 있다고는 해도 필슨 256보다 더 기기를 보호해줄지는 의문입니다. 우선 쿠션이 얇고, 그 외 재질은 더 얇아서 차라리 필슨의 캔버스가 더 보호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패션 - 필슨 오리지널 브리프케이스의 색상은 세 종류입니다. 네이비 / 탄 / 오터 그린인데, 직장인의 정장이 진한 회색 ~ 짙은 네이비임을 생각할 때 셋다 잘 어울립니다. 이중 아무래도 제일 캐주얼하고 튀는 색상이 탄 색상인데 이 경우에는 옅은 회색에도 잘 어울리고, 데님 바지를 입은 캐주얼에도 잘 어울립니다. 제 생각에 깔끔한 정장보다 비즈니스 캐주얼에 오히려 매치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정장은 위-아래 어두운 계열의 같은 색에 가방이 포인트가 되어 산만한 느낌이 없는 반면, 비즈니스 캐주얼은 셔츠-재킷-바지의 색상이 너무 따로 노는 경우 가방까지 색상이 튀면 정신없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탄을 제외한 두 색상이 좀 더 무난한데, 회색 계열을 주로 입으면 오터 그린, 네이비 계열이면 네이비가 더 좋을 듯합니다.
스타일의 매치에 있어서는 타이까지 갖춘 수트와는 가방의 스타일이 조금은 많이 캐주얼한 느낌인데, 노타이 슈트의 경우에는 괜찮습니다. 너무 딱딱하거나 고지식해 보이는 것을 완화해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즉, 이미지 메이킹에서 정중함을 조금 덜어 놓고 액티브함을 첨가할 때 좋습니다. 각자 직장에서 찾고자 하는 자기만의 이미지가 있겠지만, 저는 조직 내나 클라이언트에게 윗자리에 앉아 보고 받고 지시하고 결재하는 권위적인 리더가 아니라 <소통하는 리더, 감독이자 선수>로 비치기를 원하기 때문에 스타일링도 그쪽을 지향합니다. 그 점에서 필슨 오리지널 브리프케이스는 제법 효과적인 아이템이죠. (이 부분은 언젠가 기회가 되면 별도의 글로 올려도 좋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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