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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

[영화]워크래프트 : 전쟁의 서막 - 워크래프트 배경지식이 없는 입장에서 본 리뷰

by 만술[ME] 2016. 6. 17.

저는 워크래프트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플레이해온 유저이며 그 세계관에 관심이 많고, 그 입장에서는 이미 후기를 올린 바 있습니다. 하지만, 제 리뷰가 WoW를 좋아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오히려 편견을 가지고 영화를 본 것일 수 있다는 의견도 있어서 아예 워크래프트 세계관을 처음 접한다는 느낌으로 리뷰를 해보기로 했습니다.


워크래프트를 플레이 해온 입장에서의 리뷰 보기



[당연히 스포일러가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1. 배우의 연기와 캐릭터


CG로 뽑은 오크들의 연기는 좋습니다. 듀로탄의 표정연기 눈망울 모두 정감을 불러 일으킵니다. 때문에 듀로탄이 굴단에게 생명력을 빨려 죽을 때 뭔가 찡한 감정이 들기도 합니다. 아울러 굴단은 행동하나 하나, 모습 하나하나가 악당이라는 느낌이나고, 영화가 진행되면서 저놈 진짜 죽었음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저는 둠해머와 이야기하면서 간간이 간식 먹듯이 잡아온 인간의 생명력을 들이키는 연출이 정말 좋았습니다.


부족장, 남편, 아버지, 친구의 역할을 모두 잘 연기해낸 듀로탄



오크에 비해 인간들의 연기는 감동적이지 않습니다. 오크의 이야기와 메디브의 배신에 대한 이야기를 메인스토리로 진행하면서 거의 병풍수준으로, 더구나 로서와 갈등하면서 좀 멍청한 선택을 하는 왕의 모습을 보여주었던 레인 린 국왕이 (연출이 메디브가 교묘한 나쁜놈이어서 훌륭한 국왕이 사기당하는 느낌이 아니라 그냥 왕이 현명하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뜬금없이 얼라이언스와 호드의 화해를 위한 희망의 희생양이 되기를 선택하는 장엄한(?) 죽음을 택하지만, 관객의 입장에서 별로 장엄한 느낌이 안납니다. 



영화에서 반짝이 갑옷을 입는 것 말고 당신이 뭔가 한 게 있어야 죽음이 장엄해 보이지 않겠어?



이런류의 영화에 장엄한 죽음은 흔한 클리세인데, 유사한 장르인 <반지의 제왕> 1편의 보로미르의 죽음과 비교하면 레인 왕의 죽음은 <희생>의 측면을 강조해서 뭔가 더 정서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고자 했지만, 뜬금없다는 생각만 들게 합니다. 우선 스토리상 우리는 레인 린 국왕과 친해질 시간이 없었고, 레인 린 국왕의 장점이 부각되지도 않았으며 (하다못해 아들 바리안과의 애뜻함이라도 보여주었거나 국민을 생각하는 훌륭한 국왕이라는 모습을 보여주었어야 했습니다) 이런 문제를 불식시킬 정도로 배우의 카리스마가 있지도 않습니다. 죽는 캐릭터로 이골이난 숀 빈과 비교하는 건 그렇지만, 시나리오가 안되면 배우의 카리스마로라도 커버했어야 했습니다.



우린 보로미르처럼 감정의 고양을 느끼게 하는 죽음을 원한다구요!



또 다른 문제는 레인 린의 죽음이 또다른 중요한 죽음인 메디브의 죽음과 동시에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두명의 죽음을 관객이 소화해 내야 하는 것이죠. 메디브의 경우는 관객들이 메디브의 과거-현재-미래를 알건 모르건 영화의 진행상 결코 궁극적인 악으로 묘사되지 않으며, 관객의 입장에서 죽이지 못해 안달이 나는 캐릭터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메디브가 마지막에 스톰윈드로 향하는 포탈을 여는 것이 결코 뜬금없게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속죄로 느껴지는 것이죠. 더구나 메디브를 연기한 벤 포스터는 인간 연기자 중 가장 설득력 있는 연기를 보여준 배우이니 두 죽음이 비교가 될 수밖에 없죠.


또 하나의 죽음, 로서의 아들의 죽음 역시 정서적으로 큰 아픔을 주지 못합니다. 이유는 둘이 아버지-아들이라고 시나리오 상에 써있다고 관객이 아버지-아들로 봐주는 것은 아니거든요. 영화에서 관객이 부자지간의 애뜻함을 느낄 장면이 없고, 특히나 둘이 처음 같은 화면에 등장할 때 보면, 둘의 연기는 거의 초면에 만나는 사람들 수준으로 보여요. 감독은 나랏일에 바빠 아들을 신경 못썼지만, 마음만은 애틋한 아빠와 그 영웅 아빠와 초라한 자신을 비교하며 어떻게든 아빠처럼 위대한 용사가 되려 노력하는 아들간의 찐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지 몰라도, 저는 그냥 발연기로 보여요. 그래도 감독이 로서로 하여금 아들의 죽음의 순간에 최대한 감정을 자제하게 한 건 다행입니다. 여기에 뜬금없이 로서가 오열하고 통곡하는 시나리오로까지 갔다면 정말 답이 없었을 겁니다.


가로나 - 다들 욕하지만, 저는 배우가 고생했다고 생각합니다. 애초에 시나리오상으로 설득력 없는 캐릭터를 그나마 아주 못볼 정도는 아니게 연기했으니까요. 혼혈로 뛰어난 언어능력 덕분에 통역노예 수준으로 살면서 온갖 무시를 당하다가 로서가 물어보니 이것저것 다 답해주고 담요 한 장 던져줬다고 인간편에 붙는 기회주의자 캐릭터인 줄 알았더니 의외로 걸핏하면 “오크는 거짓말 하지 않아”라며 오크부심이 쩌는 캐릭터지만, 성적 취향은 잘생긴 인간 남캐이고, 막상 전쟁에 나서서는 인간편에 서서 가차없이 오크들을 베다가 막판에 몰리니 (청탁을 받았다고는 해도) 인간의 국왕을 죽이고는 단숨에 오크의 영웅으로 등극하는 캐릭터를 설득력있게 연기했다면, 올해 오스카를 받을 수 있는 연기겠죠.



2. 설정상 설명이 부족한게 아니고 이야기의 개연성이 부족한거라구요


워크래프트의 방대한 세계관을 알지못해서 영화가 이해가 안가는 것이 아니라, 줄거리가 개연성이 없어서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 대부분입니다.


인간 입장에서 생전 처음보는 괴물들(오크)에 속해 있는 혼혈 괴물(가로나)이 포로들에게 말을 배웠다고 하자 금방 국왕과 만나게 되고, 그 괴물들에도 반란세력이 있다며 국왕과 그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적진내 반란자와 협상을 주도한다? 더구나 그것이 함정이 아닐까 당연히 의심하는 사람들에게 “오크는 (매복은 하지만) 거짓말 하지 않아!”라고 일갈하니 모두 그렇구나 하고 그녀의 말을 믿고 국왕이 몸소 소수병력만을 이끌고 적진에 가까운 협상장소로 간다? 더구나 기왕이면 쉽게 나라를 말아드시라고 그 소수병력에는 국왕 유고시에 나라를 책임질 안두인 로서까지 끼워넣고? (경험삼아 아들 바리안도 데려가지 그랬냐?) 더 큰 문제는 이렇게 레인 린은 협상장소에도 몸소 나가고, 마지막 전투도 몸소 지휘하지만, 제대로 된 활약도 캐릭터 구축도 못해서 막상 죽을 때는 그다지 감동이 없었다는 겁니다.


나라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져있지만, 아들이 죽었다면 나라의 운명을 책임진 장군도 슬퍼하고 힘들어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힘들어함의 방법이 고작 어느 구석의 술집에서 술 먹고 카운터에 누워있는 것이어서야 되겠습니까? 그러다 오크녀를 보니 19금 하고픈 마음은 생기구요? 그러니까 감독은 뭔가 애잔한 러브 스토리 하나쯤 넣어야겠는데 우리의 로서가 이런 국가적 위기에서 오크녀에 마음을 줄 리가 없어, 최소한 아들 정도는 죽는 아픔을 겪어야 사나이 마음이 흔들리지. 뭐 이런 이야기를 하고팠던 걸까요? 아버지 새장가 보내려고 희생당한 아들만 불쌍하죠.


절세 미녀 가로나는 아들을 잃고 실의에 빠져있는 안두인 로서를 일어서게 합니다.^^



더 웃긴건 이렇게 아들 죽어서 무진장(?) 슬퍼하던 로서가 감옥에서 보여준 행동입니다. 경비병을 설득하는데 전혀 위엄이 없어요. 그냥 “나 좀 풀어줘잉~!” 이런 수준이에요. WoW 게임내에서 넘치던 유머코드로 볼 수도 있지만, 로서는 국가의 운명을 책임질 장군이고, 불과 얼마전 아들을 적에게 잃었습니다. 그런 그가 감옥을 나가는 방법으로 생각해낸 게 고작 징징대면서 경비병에게 풀어달라 하는 거라니요! 차라리 내가 장군인데 나 나가면 넌 끝이라며 협박을 하는 게 더 설득력이 있겠습니다. 


키린토에서 쫒겨난 카드가를 처음 본 메디브가 보자마자 자기 후계자로 인정하는 듯한 분위기는 워낙 뛰어난 마법사니 잠재력을 알아본다고 양보해줄 수 있지만, 다짜고짜 키린토로 찾아가서 “나 니네 비밀인 알로디 (정확히는 이름만 알고 그게 뭔지는 모르지만) 알지롱”하자, 아무런 저항없이 알로디를 볼 수 있게 해준다는 것, 그리고 카드가가 마음대로 들어가게 한다는 것은 키린토를 그냥 병풍 수준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이 지경이니 훗날 송위버가 키린토 수장 로닌과 테라모어를 마나폭탄으로 날려버리는 1등공신이 되는 일도 벌어지죠.)   



3. CG와 특수효과에 대해서


솔직히 CG는 불만이 없습니다. 오크는 자연스럽게 잘 나왔습니다. 인간들의 갑옷이 너무 새것 같다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스톰윈드는 오크의 침공을 당하기 전에는 평화로웠으니 군인들이 열심히 광내지 않았겠어요? 우리나라 군대도 (요즘은 모르지만) 전투복을 <다리고> 전투화를 <광내는> 문화였잖아요.


나중에 갑질 임금착취로 데피아즈단을 결성되게 만들지만, 이때만 해도 잘 나가는 나라라 군인들은 전투복 각잡는 문화를 지니고 있었다구요!



마법도 기대이상이었습니다. 비전마법이 특유의 보라색이 아닌 것도 마음에 들고, 얼빵이라던지 포탈을 여는 것 모두 그럴듯했습니다. 안광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 정도 마법을 쓴다면 눈빛부터 다르지 않겠어요? 


다만 스톰윈드의 장면들은 공간감이 느껴지지 않는 답답한 컷들이 대부분인 것은 아쉽습니다. 왕궁은 황금골의 여관에서 회의하는 것 같이 느껴질 정도로 초라하고 세트장 느낌이 납니다. 더구나 동맹국 국왕들(드워프와 엘프까지 왔으니 G8 이상급의 회의죠)이 모여 회의하는 모습은 거의 반상회수준이더군요. 


음악과 청각적 효과도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웠는데, 음악은 너무 스펙타클에 치중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금 정서적인 감동을 주는 음악들이 편성되었다면 (영화 자체가 정서적 감응을 일으키는 장면이 너무 없기는 합니다) 좋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음향의 타격감도 좋아서 WoW 게임에서 이런 타격감을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4. 결론


워크래프트의 세계관을 몰라도 즐길만 합니다. 그러나 어떤 감동을 받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감동을 받기에는 캐릭터가 단선적이고, 이야기의 진행도 그리 치밀하지 않습니다. 애초에 조마조마한 긴장감이 없어요. 줄거리를 미리 알지 않아도 어떻게 이야기가 진행될지 뻔하게 보이니까요.


물론 저는 2탄을 기대합니다. 그리고 2탄이 지금 수준이어도 또 볼 것입니다만, 좀 더 격한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작품>으로 돌아오기를 기대합니다.


MF[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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