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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

[영화]워크래프트 : 전쟁의 서막 - 게임 원작 영화의 미덕에 대한 생각

by 만술[ME] 2016. 6. 10.

워크래프트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플레이해온 유저이며 그 세계관에 관심이 많은지라 많은 비평과 좋지 않은 평점에도 영화를 보고 왔습니다. 이런 저런 이유 때문에 극장에서 보다 집에서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이례적인 일이었다고 하겠습니다. (제 WoW 편력은 블로그 검색창에 WoW를 치면 글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제가 배경지식이 많은 입장에서 올린 글이라 너무 비판적으로 봤다는 의견도 있어서 배경지식 없는 입장에서의 리뷰도 작성해봤습니다. 아울러 저는 영화 재미있다고 생각합니다. 명작이 아니라 생각하는 것이지.


[어쩔 수 없이 스포일러가 있습니다만, 영화가 이미 벌어진 <과거>에 대해 다루는 지라 이 시리즈에 대해 아는 분들이라면 문제없이 읽어나갈 수 있을 겁니다.]





1. 게임을 원작으로하는 영화가 지녀야할 미덕이란?


(오크와 엘프, 드워프가 나온다는 점에서) 비슷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반지의 제왕>은 흥행과 비평에서 엄청난 성과를 거두었지만, 워크래프트 영화는 그렇지 못할 것 같습니다. 여기에는 근본적으로 문학을 영화로 만드는 것과 게임을 영화로 만드는 것의 차이가 있는데, 제작자들이 이 차이를 간과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①캐릭터의 문제


문학은 특성상 캐릭터의 성장과 심리 묘사, 다른 캐릭터와의 관계설정에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문학이 지닌 매력의 상당부분이 여기에 있고, 영화는 이 문학적으로 구축된 캐릭터를 어떻게 영화적 기법으로 바꾸어 관객이 캐릭터를 이해하게 할지를 고민하면 됩니다. 문학에 표현된 캐릭터를 영화 제작진이 소화하고 소화된 결과를 영화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검증된) 문학은 이미 잘 구축된 캐릭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미 만들어진 캐릭터를 영화적으로 <번역>하는 기술만 있으면 되는 편리함이 있습니다. 


문학을 기원으로 할 때는 줄거리상 보다 설득력 있는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이런 저런 요소를 수정하거나 가미할 수 있지만, 이미 구축된 세계관에 새롭게 만드는 것보다는 수정과 가미작업이 훨씬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습니다. 영화 <호빗> 시리즈가 <반지의 제왕> 시리즈에 비해 흥행과 비평에 저조했던 이유 중에 하나는 <호빗>원작 자체가 (그 대상 독자 때문에) 등장하는 드워프들의 캐릭터성이 약했고, 따라서 이미 세계관과 사실들은 결정되어 있는데 드워프들 각자에 개성을 부여하는 작업은 사실상 새로운 캐릭터를 창조하는 작업에 가까웠기 때문인 점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완전히 새롭게 만들어진 타우리엘 같은 경우 얼마나 동떨어져 보였는지를 생각해 보면 이미 만들어진 세상과 결정된 줄거리에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고 융화시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 수 있습니다. 게임은 캐릭터 보다는 사건 중심의 진행인데, 게임 기반의 영화는 이 결정된 사건 속에 설득력 있는 캐릭터를 만들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게임에 구현된 캐릭터는 아무리 수많은 설정들을 집어넣은 캐릭터라 할지라도 문학적 캐릭터와 달리 심리와 타 캐릭터와의 상호작용을 통한 내면적 요소에 의해 구축 것이 아니라 주로 <업적>, <태생>, <사건> 등의 외면적인 요소에 의해 구축된 캐릭터입니다. 플레이어의 입장에서도 자기가 조종하는 자신의 캐릭터에 더 몰입하기 때문에 (문학은 책을 읽는 과정에서 몰입하는 캐릭터가 수시로 변화되면서 작가의 의도에 따라서는 사실상 모든 캐릭터에 공감하거나 이해하게 됩니다) 주로 NPC로 등장하는 (영화속) 주요 등장인물들에 대해서는 면접적이고 친밀한 느낌보다는 위인전이나 뉴스에서 보는 유명인사 정도로 느끼게 되죠. 따라서 게임에 나오는 캐릭터를 영화화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영화적 기법으로의 <번역>의 과정이 아니라, 오리지널 시나리오 수준의 캐릭터 작업이 필요합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미 구축된 세계, 결정된 사건들, 결정된 캐릭터의 관계와 행적을 놓고 영화를 위해 캐릭터들을 관객이 공감할 정도의 수준으로 발전시키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문학에서는 캐릭터가 이러이러하기 때문에 사건이 저러저러하게 진행된다는 식으로 캐릭터가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방식으로 구축이 된다면(많은 작가들이 어떤 캐릭터를 만들어 놓고 조건을 던저 놓은 뒤, 그 캐릭터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를 고민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게임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의 경우 (더구나 워크래프트 같이 세계관과 연대기가 잘 구축되어 있는 경우라면) 오히려 이미 게임속에서 결정된 사건에 맞춰 캐릭터를 만들어 가야하는 문제가 있다는 겁니다. 어렇게 주어진 사건과 캐릭터의 행동에 맞춰 캐릭터를 발전시키다 보면 태생적으로 단순한 캐릭터가 되기 쉽고, 캐릭터가 단순해 보이는 순간, 게임에서는 절대절명의 역사적 사건으로 보였던 일들이 영화에서는 극히 평면적으로 보이고 개연성 없어 보이게 되는 악순환을 하게 됩니다.


[결정된 역사적 사건에 끼워 맞추기 위한 제작진의 가상 대화 - 이런식으로 개연성을 상실하게 될겁니다.]


카드가랑 로서랑 카라잔에 가서 메디브를 죽이는 장면과 레인 린을 가로나가 죽이는 장면을 교차 편집하면 멋질 것 같아. 

그럼 국왕은 출정했는데 제일 중요한 로서는 빠져있어야 하네? 왜 로서가 그 중요한 전투에 같이 안갔지? 

그럼 감옥에 보내자! 

로서가 뭔 짓을 했기에 감옥에 갔다고 해? 

대충 왕에게 대들다가 감옥에 보내지는 것으로 하지. 

그런데 가로나는 로서랑 19금 하는 분위기로 이끌어 갈껀데 레인 왕을 죽이면 생뚱 맞은데? 2탄에도 이 분위기 이어가야 될 것 같은데 말이야. 

원작에서 굴단이 정신지배를 했잖아! 

굴단이 듀로탄도 막고라로 끝내야하고, 어둠의 문도 열어야하고 바쁜데, 언제 가로나를 만나서 정신지배를 하지? 

그럼 그냥 레인 국왕이 막판에 몰려 대의를 위해 부탁해서 죽이는 걸로 하자. 그래야 2편에서 로서랑 오해에서 비롯된 갈등과 오해의 해소를 통한 화해도 하고 그러지. 

그러면 메디브도 카드가가 죽이고, 로서는 2편에서 죽을텐데 너무 뭔가 한 일도 없어 보이는 것 아냐? 얼라이언스 유저들이 반발할 것 같아. 

그럼 블랙핸드랑 막고라 해서 블랙핸드를 죽이는 것으로 하지. 오그림 업적을 찬탈하는 거니 얼라들이 좋아할꺼야. 

근데 그 시점에 로서는 카라잔에 있는데? 

그리핀 뒀다 뭐하냐? 



②시각화의 문제


<반지의 제왕>, <해리포터>를 보면서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상상했던 세계가 눈앞에 펼쳐지고, 등장인물들이 진짜로 말하고 움직이며, 사건들이 실제로 눈앞에서 펼쳐진다는 것에 경이로움을 느꼈습니다. 문학은 아무리 상세하게 묘사된 배경이라도 어쩔 수 없이 읽는 이의 상상력에 기댈 수밖에 없고, 독자는 그 세계를 구체적이지 않은 이미지로 간직할 수밖에 없는데, 영화는 그 상상속의 이미지를 현실로 만들어 주니 독자의 입장에서는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스톰윈드 - CG하느라 고생은 하셨는데, 제가 얼라라서 그 동네 살았고, 단골 미용실과 단골 술집도 있다구요!



게임은, 특히나 요즘의 고사양의 게임은 근본적으로 뛰어난 시각적 정보와 청각적 정보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스톰윈드 구석구석을 다 돌아다녀 봤고, 어둠의 문을 몇 번이고 들락거려 왔습니다. 스톰윈드를 영화에서 보는 것은 감동적인 일이기는 합니다만 상상속에만 존재하던 호비튼을 보던 감동에는 비할 바가 아니죠. 더구나 호비튼은 톨킨 세계에 대한 정보가 없는 사람도 흥미로워할 요소들이 많았고, 영화에서 그 속의 실상을 어느 정도 체감할 수 있었다면 <전쟁의 서막>의 스톰윈드는 워크래프트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흔한 중세풍의 도시일 뿐이고 영화에서 보여주는 방식도 겉모습 위주였습니다. <반지의 제왕>이 호비튼을 보여주는 방식이 잘 만들어진 체험형 여행 다큐를 보는 느낌이라면, <전쟁의 서막>의 스톰윈드는 어떤 항공사의 스톰윈드 취항 광고 정도의 수준이랄까요?


영화속의 스톰윈드는 딱 이 정도 수준의 전형적인 느낌?




③지지기반과 팬서비스의 문제


<스타워즈 : 깨어난 포스>는 그렇게 만들어도 됐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전작들의 오마주였지만 상당수 관객들은 바로 그걸 보러간 것이었습니다. 그 관객들만 해도 전세계적으로 엄청난 숫자죠. 한 솔로, 츄바카, 레아, 루크 등을 다시 볼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반지의 제왕>도 마찬가지죠. 문학과 영화는 게임에 비해 그 지지기반 자체가 다릅니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가 전성기에 확보했던 유료 게이머는 1000만명 정도입니다. 그 사람들이 다 본다면 소위말하는 천만관객 영화겠죠. 기존의 워크래프트 1~3까지를 해본 사람, WoW를 하다 접은 사람까지 다 해도 그 기반은 <반지의 제왕>이나 <스타워즈>에 비할 수 없을 겁니다. 즉, <깨어난 포스> 같이 팬서비스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는 애초에 대박을 기대할 수 없는 거죠. 


이건 단순히 숫자의 문제만이 아니라 문학, 영화와 게임이 가진 근본적인 차이에도 원인이 있습니다. 게임은 원칙적으로 사용자가 주로 한 캐릭터만에 감정이입을 하게 됩니다. 특히나 WoW 같은 RPG는 그렇죠. 그런데 바로 그 캐릭터는 영화에 안나오죠. 만약 게임에서 제가 어린 고엘을 강에 떠나 보내야 했던 당사자라면, 영화에서 그 장면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을지 모르지만 그건 전해들은 <사건>일 뿐이거든요. 이런 <역사적 순간>을 목격하는 데 느낀 감정의 깊이보다 <깨어난 포스>에서 타다남은 베이더 경의 투구를 볼 때 느낀 감정의 깊이와 폭이 더 큰 이유가 바로 게임 원작과 영화 원작의 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투구 하나만으로도 영화표값은 아깝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게임 기반의 영화는 원작 팬을 위해 영화를 만들기 보다는 팬을 위해서는 멀록이나 보여는 잔재미를 위주로 편성하고, 원작을 전혀 모르는 사람도 어린 고엘을 떠나 보내는 장면에서 눈물 질질짜게 만들겠다는 각오로 시나리오 작업과 연출을 해야하는거죠. 


얼라만 플레이한 후배는 제가 말해줘야 이게 스랄인 걸 알더라니까요! - 이건 그 친구 잘못이아니라 영화를 잘 못 만든거라구요! 그게 스랄인 것을 몰라도 가슴 아려야 제대로된 영화죠!




2. 게임 기반을 떠나 영화 자체로서의 문제   



①삶이 없어진 영화


초반에 등장하는 드레노어와 이후에 주요무대인 아제로스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아닙니다. 그런데 아무런 설명이 없어요. 드레노어는 어떤 세상이고, 아제로스는 어떤 세상이다 시시콜콜 나레이션을 하라는 것이 아니고,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상이 전혀 보여지 않는 다는 것이죠. 기껏해야 듀로탄과 드라카의 베드씬(?)에서 보여주는 오크의 삶 정도가 전부입니다. 오크들이 왜 드레노어를 떠나려는지 전혀 보여주지 않죠. 대사로 이야기합니다만 그정도로 절박함을 느낄 관객이 있을까요? 그러다보니 듀로탄이 어쩔 수 없이 아제로스를 침략은 하지만, 같은 결과를 가져 올까봐 굴단에 동조하지 않는 이유가 납득이 되지도 않으며, 스톰윈드의 민초들의 삶과 비극을 모르는데 스톰윈드를 지켜야한다는 절박함이 관객들의 마음에는 일어날 수 없죠. 영화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영웅들의 대사와 행동만 있을 뿐이죠. 민중은 그냥 에너지 공급원이거나 구출해야할 <대상>일 뿐입니다. 관객에는 영화 자체가 나의 이야기가 아닌 <그들>의 이야기일 뿐이구요. 


3류 영화에서도 써먹는 흔하디 흔한 수법, 어떤 인간 마을의 한 가족의 일상적인 삶을 잠깐 보여준다 - 뭔가 불안한 듯 개가 짓는다 - 가족들의 행복한 얼굴속에서 긴장감이 흐른다 - 지축을 울리는 소리와 흔들림 - 가족들의 행복이 파괴된다 - 관객도 분노한다. 하다못해 이런 싸구려 수법조차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파괴된 마을을 보여주는 컷들은 너무 객관적으로 보여 감정이입이 안됩니다. 아마 호드도 나쁜 놈이 아니어야 하기 때문이겠죠.


이 영화에서 민중은 게임속의 <공포에 질린 마을사람 1> 보다도 못합니다. 이정도 화면을 보고 감정이입을 어떻게 하라는 건지?



배우들의 연기도 절박함이 전혀 없어요. 로서는 아들이 죽는 순간을 제외하면 늘 위기에도 여유부리는 제임스 본드 같은 느낌이고, 한 나라의 군대를 책임진 총책임자가 국가의 절대절명의 위기에 외계종족과의 혼혈 여자에 끌린 다는 설정 자체가 어떤 위기상황에서든 여성을 탐하는 게 임무보다 우선인 듯한 제임스 본드스러운 행동이라 황당합니다. 결국 블랙핸드와의 막고라도 개인적인 복수로 밖에 안보입니다. (원작에서 오그림에게 죽은 복수를 - 더구나 비겁자에게 당한 역사가 왜곡의 과정(?)을 통해 전쟁통에 실력으로 패한 것으로 뒤바뀐 억울함을 - 오그림의 업적인 블랙핸드의 처단이라는 업적 찬탈을 통해 이룬듯합니다^^) 오그림도 우정을 배신하는 동기, 다시 굴단에게서 돌아서는 동기가 미약합니다. 그냥 주체성 없는 놈일 뿐이죠. 후편이 제작된다면 바로 <그> 오그림 둠해머가 되어야 하는데 말이죠. 오크와의 결속과 타협에 크게 매달리지도 않았던 린 국왕이 가로나에게 희망을 걸고 희생하는 건 좀 넌센스죠. 차라리 원작의 취지를 살려 굴단이 생포된 가로나에게 역시 생포된 국왕을 죽이고 호드의 명예를 회복하라는 명을 내리고, 가로나가 자신의 굴단 따위의 노예가 되지 않겠다고 선언하자 너 따위의 의지는 내가 처참히 짓밟아 주겠다며 정신지배를 통해 가로나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국왕을 살해하게 하는 게 더 감정의 고양을 가져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전쟁의 비극은 삶의 아름다움과 대조될 때 두드러집니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해 싸울 때 영웅적으로 보이죠. 그런데 <전쟁의 서막>에는 이 전쟁을 통해 지켜야 할 것이 관객에게는 보여지지 않습니다.



②누굴 응원하며 영화를 보란 말인가?



게임은 호드로 플레이하다 얼라이언스로 플레이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주인공이기 때문에 설정상 악당의 역할이라도 감정이입을 할 수 있죠. 하지만 영화는 관객이 어떤 편을 선택해야 할지 헛갈리게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영화의 주제가 너라면 어떻겠느냐 하는 어떤 도덕적 선택을 관객에게 던지는 류가 아니라면요. 워크래프트는 말하자면 단순한 전쟁영화입니다. 아군과 적군이 있어야 더 재미있게 볼 수 있죠. 정치적 올바름은 적군에게도 나름의 사정이 있다거나, 그들도 괴물이 아닌 마음을 지니고 피가 흐르는 생명체라는 것을 틈틈이 보여주면 됩니다. 그 정도면 관객은 예술적이라고 칭찬할 수 있고, 적을 단순한 괴물이 아니게 묘사했다고 좋아해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전쟁의 서막>은 분명히 오크가 아제로스를 침략했음에도 침략자인 오크가 주인공인 영화입니다. 그런 구도라면 차라리 오크 내부의 갈등과 듀로탄의 영웅적 행동, 그리고 스랄의 생존을 통한 희망을 보여주면 줄거리가 매끈하게 될텐데, 영화에서는 얼라이언스의 입장도 중요해서 스톰윈드쪽의 이야기를 해야하고 메디브의 음모도 파해쳐야 하고, 거기다가 로서와 가로나도 엮어주어야 하니 산만하게만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관객은 누구편을 들어야 할지 모르게 됩니다.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경기를 보는 것과 한일전을 보는 것 중에 뭐가 더 몰입감이 있겠습니까? 


어차피 시리즈로 엮을 것이었다면, 이번 <전쟁의 서막>은 오크에도 뭔가 인간적(?)인 면과 명예가 있다는 점 정도만 이런 저런 에피소드로 부각하고, 스톰윈드가 메디브의 음모와 오크의 침략을 막아내는, 또는 그로인해 무너지지만 폐허속에서도 얼라이언스의 구축으로 반격의 희망을 찾는 정도의 내용으로 하고, 2편에서 시점을 바꾸어 오크가 왜 드레노어를 포기할 수 밖에 없었는지 프롤로그로 보여주면서, 듀로탄의 희생을 통해 오그림 둠해머가 블랙핸드를 처단하고 진정한 호드의 가치를 세우는 정도, 그리고 호드에 숨겨진 위협인 굴단을 부각하는 정도로 마무리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3탄은 다시 얼라이언스의 입장에서 로서의 죽음과 2차 전쟁의 승리까지 다루면 될 것 같구요. 그 다음은 블리자드가 좋아하는 스랄 3부작을 하거나 말거나....^^      



3. 다시 게임이야기 - 니네 동북공정도 아니고 왜이러니?



디즈니는 루카스 아츠를 인수하고 새로운 영화들을 제작하기로 결정하면서 너무 방대해저서 오히려 영화에 걸림돌이 될 듯한 <스타워즈>의 확장된 세계관을 모두 날려버렸습니다. 영화를 위해 다른 모든 것을 희생하는 과감한 결정을 했고, 그럴 수 밖에 없었고, 그래야했다고 생각합니다. 필요한 요소와 캐릭터가 있으면 언제든지 불러 쓰면 되구요.


블리자드의 워크래프트 세계관은 그 동안 수차례의 설정변경이 있어왔습니다. 만노로스의 피의 영향을 받지 않은 듀로탄과 드라카의 아들인 스랄의 피부가 초록색인 문제를 친자확인의 방법으로 해결하기 보다는 설정을 바꿔 해결하거나, 악당이었던 드레나이가 고귀한 존재가 되는 등 수없이 많았죠. 처음 워크래프트라는 게임을 만들면서 제시했던 설정이란게 사실 게임을 그럴듯하게 보이게 하기 위한 도구였을 뿐인데 게임이 계속적으로 성공하고 WoW로 발전하고, 소설과 코믹스까지 발매되니 어쩔 수 없는 결과였겠죠.


최근 블리자드에서 책으로 <워크래프트 연대기>를 내면서 이런 설정상의 문제를 이제는 해결하고 가는구나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더구나 부제로 짐작컨대 시리즈물로 제작할 의도가 명확함에도 1편에서부터 이미 지나간 과거의 사건들을 다른 설정으로 변경해 버리는 것에 기가차더군요. 


영화 <반지의 제왕>은 몇몇 설정을 바꿀 수 있고, 그것이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 세계관은 이미 완성되었고 (원작자가 죽은지 오래죠) 영화가 자체적으로 어떤 프랜차이즈를 만들 것도 아니었으니 그냥 원작에 대한 <해석>의 문제일 뿐이죠. 영화에서 레골라스가 아라곤을 죽인다고 해도 설정이 바뀌지 않고 그냥 영화의 흑역사가 될 뿐입니다. 그 영화가 <원전>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워크래프트> 영화가 하나의 프랜차이즈가 될 것임을 생각한다면, 더구나 영화를 만드는 회사도 블리자드인 것을 생각하면, 영화의 설정 변경이 단지 <해석>의 문제로 볼수 있는지는 의문이 생깁니다. 


우리는 굴단의 꼭두각시에 불과하던 블랙핸드를 둠해머가 죽이고 권력을 장악했으며 굴단의 복종을 (물론 진심어린 것은 아니죠) 얻어낸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영화는 로서가 막고라에서 블랙핸드를 죽였다고 합니다. 우리는 훗날 먼치킨급 능력을 자랑하는 덕에 게임내에서 구현조차 못하고 있는 가로나의 아들 메단의 아버지가 메디브란 사실을 알고 있는데, 가로나는 로서와 엮일 분위기니 자칫하다간 메단의 아버지가 로서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영화의 시점에는 아직 얼라이언스도 없었고, 가로나의 레인 린 국왕 암살 사건과 함께 호드에 의해 스톰윈드는 망하는데, 영화에서는 오히려 그것을 계기로 얼라이언스의 주축이 되는 분위기입니다. 굴단의 음모였던 가로나의 린 국왕 암살은 국왕의 <요청>에 의한 피할 수 없는 선택이자 향후를 도모하는 커다란 플랜의 일환이 되어 버리고 말았죠. 인대남에서 모발이식으로 형변한 로서야 그렇다해도 카드가는 메디브와의 대결에도 말짱했는데 언제 백발로 만들 지도 의문입니다. 가장 어색한 건 흑막이던 굴단이 (드레노어의 전쟁군주들 오마주인 듯하게) 노골적인 끝판왕 악당이 되어버린 겁니다. WoW 확장팩에서 드레노어를 이상한 평행세계로 만들어 놓더니, 이젠 영화도 팽행세계를 만드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까지 생깁니다.   


원작 설정상의 로서와 카드가 - 인대남과 조로증은 어쩔 것이냐!



이런 설정의 변경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워크래프트라는 게임이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영화는 이 게임에 있어 과거에 이미 일어난 이야기를 하고 있고, 게임의 진행의 과거의 사건들이 유기적으로 얽혀 진행되는데 영화에서 틀어버린 과거가 공식적 설정이 되어버린다면, 게임역시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겁니다.



4. 그래서 보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①워크래프트, WoW의 유저라면, 지금은 플레이하지 않지만 즐겼었다면 어차피 보실 것이잖아요? 보고나면 약간 아쉽고 기대보다는 못하지만 잘 봤다는 생각을 할겁니다. 


②이 시리즈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거나 그런 사람을 동반한다면, 그분은 돈 많이 들인 B급 판타지 액션영화 정도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재미는 그럭저럭 있고, 시간이 아깝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꼭봐야하는 영화라 할 수는 없습니다.   


③아마 국내서도 1위의 기염을 토하고 있나본데 극장에 관객들을 보면 남-남 커플이거나 남자들 파티가 대부분이고 여성분은 전혀 없다시피 합니다. 무슨 뜻인지 아시겠죠? 

   

MF[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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