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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번역에 대한 몇가지 이야기

by 만술[ME] 2013. 11. 7.

번역에 대해 떠오르는 생각을 몇가지 적어 보았습니다.



1. 근래에 몇편의 졸역을 포스팅한 바 있습니다. 앨리스 먼로의 편집자였던 데보라 트리스만의 글을 번역한 것을 빼고는 문학적인 표현이 중요한 글이 아니라 정보의 전달이 목적인 글들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직역을 하되 표현상 불분명한 경우는 제가 이해 한 바를 반영해 의역을 섞었습니다. 



예를들어 한번 이름이 언급된 경우, 영어는 이후 "he"로 일관하는데 이걸 모두 “그는”으로 번역하면 어색한 문장이 되거나 의미가 불분명해지는 경우가 있어 때때로 이름을 명확히 다시 해준다거나, 영어에서 모든 문장에 나오는 주어의 경우 우리말은 오히려 생략하는 경우가 더 자연스럽게나 하는 경우가 있고, 아예 의미의 명확화를 위해 몇 개의 단어를 첨가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정보 전달이 중요한 글의 번역이라면 이런식의 번역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2. 저작권이 살아 있는 외국 문학의 경우에는 번역본의 선택지가 사실상 없지만, 저작권이 만료된 소위 고전 세계문학의 경우에는 국내에 다양한 판본(때로는 수십종)이 나와 있고 그중 몇종은 내노라 하는 유명출판사에서 나와 있는 경우가 흔합니다. 때문에 흔히 말하는 추천 번역본이란 말이 가능합니다.


문제는 어떤 번역을 추천한다는 의미가 명확하지 않다는 겁니다. 흔히 말하는 “잘된 번역”이라는 말의 의미는 다음과 같은 여러 뜻 일 수 있다는 거죠.


①번역된 책이 쉽게 이해되고 술술 잘 읽힌다.  

②원문의 내용이 지나친 의역이나 부적절한 생략 없이 다 담겨져 있다.

③원문의 뉘앙스가 우리말로 잘 표현되어 전달된다.

④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등장인물의 관계설정, 성격, 시대적 배경 등이 번역된 문장으로 잘 나타난다.


①은 개인적 취향을 탈 수는 있어도 그냥 읽어 보면 알 수 있는 내용입니다. 일반적으로 인터넷 서평 등에서 번역이 좋다고 말할 때 대부분 ①의 뜻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독자들이 원문 놓고 대조하며 보지 않으니까요. 따라서 흔히 번역 잘된 책이라 말하는 경우 그냥 내가 읽기에 잘 읽히더라 이상의 의미는 없습니다.


②③은 원문을 대조하지 않고는 알 수 없는 내용입니다. 전문적인 분야죠. 물론 원문의 문구나 단어가 조금 일상적이지 않은 지식을 요하는 경우 (특히 장르적인 경우) 국문번역만 보고도 번역이 잘못된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있는 경우도 있지만 (“손잡이 두 개 달린 검”(two handed sword)의 유명한 예) 그건 번역자의 자격이나 자세 자체가 문제인 경우고, 일반적인 독자들은 ②③을 평가할 수 없고, ②③을 평가할 정도라면 “일반적”인 수준은 이미 넘어선 상태라 할 수 있습니다.


④는 언어적 능력 보다는 배경지식과 문학적 감각, 감수성을 요하는 부분입니다. 원어 능력이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이런 저런 공부를 통해 이 부분을 평가할 수는 있죠. 대표적으로 김화영 선생의 카뮈 <이방인> 번역에 대한 비평(?)에서 말하는 레몽의 성격 설정에 대한 논쟁 같은 거죠. (자세한 내용은 새움출판사 블로그의 해당 테마를 참조)


우선 “잘된 번역”은 무엇일까요? 당연히 ①~④를 모두 만족시켜야 합니다. 원어민 독자가 그 책을 원어로 읽고 받을 수 있는 느낌, 더 나아가 현대의 독자 뿐 아니고 당대의 독자가 느꼈을 느낌 까지 국어로 전달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사실상 거의 불가능하며 엄청난 노력이 요구되는 작업이죠. 이를 위해 필요하다면 보조수단으로 원문에 육박하는 해설이나 서문을 붙여야 할 수도 있구요. (많은 고전은 원문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이런 해설을 필요로 합니다)


아쉽지만 일반적인 독자는 ①은 파악할 수 있고, 좀 공부하면 ④를 느낄 수 있지만 ②③은 그냥 감으로도 느끼기 쉽지 않습니다. 때문에 독자의 입장에서 번역본 추천을 할 때는 그냥 XX출판사 판본이 잘 읽히고 자기가 아는 배경지식에 미루어 캐릭터 등이 잘 표현되어 있더라 정도가 독자의 신분에 어울리는 일이죠. 표현 방식도 “번역이 좋아요” 보다는 좀 더 구체적으로 “번역이 깔끔해서 잘 읽혀요” 정도가 올바른 표현이라고 할까요? 수많은 게시판에서 어느 판본의 번역이 좋다느니 하는건 이정도 수준의 대화라 생각하면 되고, 이건 그냥 직접 서점에 나가 다양한 판본을 직접 비교하면 쉽게 터득할 수 있는 내용이며 이렇게 하는 것이 다른 사람 이야기 듣는 것 보다 더 효과적입니다.



3. 저는 번역을 “복지”의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한 문제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으로 외국의 정보를 얻기 쉬운 상황에서는 외국어를 하는 경우와 못하는 경우 정보의 획득 가능성, 그리고 그 질적 수준의 편차가 너무 심합니다. 일반적으로 외국어 능력은 기득권층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 비해 더 좋기 때문에 결국 이 정보의 양과 질의 편차로 인해 불평등은 더욱 커지게 되죠. 


10년 이상을 영어를 배워도 “조중동”과 네이버 이외의 정보원을 생각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많은 국내 현실을 생각할 때 오래전 일본이 그랬던 것처럼 번역쪽에서 대안을 찾을 수 밖에 없는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 능력이 되신다면 블로그, 카페 등에 쓸데 없는 조중동 기사 퍼나른 블로그를 다시 퍼나르며 확대 재생산 하지 말고 해외자료를 국문으로 번역해서 정보를 제공하는데 힘을 기울이면 좋겠습니다.



4. 불법 동연상과 번역 - 저는 불법 동영상은 안보는 주의 입니다만, 이야기를 들어 보면 그 번역 자막의 수준은 문제 많은 상황인 합법 영상물의 자막을 노벨문학상급으로 만들어 버리더군요. 많은 사람들이 불법 동영상을 보면 볼수록 합법 동영상으로 출시되는 영상들은 줄어들게 되고, 합법 영상이 없으니 불법 동영상 이용자가 더 늘고, 결국 합법 동영상이 없어 모든 국민이 불법 동영상에 수준 낮은 자막으로 영화를 보는 상황이 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영어 듣기에 지장 없는 기득권층은 그래도 문제 없습니다. 그냥 원어로 들으면 되니까. 결국 원어로 듣고 보는 기득권층이 영화 한편에서 100을 얻을 때 불법 자막으로 볼 수 밖에 없는 피지배계층은 50도 못 얻는 상황이 되는거죠. 제가 생각하는 불법 동영상 유통의 가장 큰 문제는 이겁니다. 


아이들을 아무리 열심히 영어학원 보내고, 힘들게 벌어 어학연수 보내도 몇 년 유학하고 온 그분들 아이들과는 경쟁이 안됩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은 "저는 제 아내를 저장하지 못했습니다(I could not save my wife)" 같은 수준 낮은 자막 보며 영화를 봐야 한다는 거죠. 부자들은 비싼차 타는데 자기는 낡은 차 타고 다니는 것에 대해서는 분노하면서, 왜 누구는 대사의 뉘앙스 하나 하나 다 알아 들으며 영화 보는데, 자기는 줄거리 조차 이해 안되게 만들어진 쓰레기 자막으로 영화 봐야 한다는 사실에는 분노하지 않고, 또 그 현실을 자기 자신과 자기에게 그 동영상을 카피해준 사람이 만들어 가고 있다는 것에 위기의식을 느끼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MF[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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