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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 예술 - 공연

[음악]음반구입 불감증

by 만술[ME] 2013. 8. 26.

제법 오랜 기간 동안 음반을 전혀 구입 안하고 있습니다. 물론 음악회도 꾸준히 다니고 음반도 꾸준히 듣습니다. 개인적으로 몇개월 프로젝트로 만들어 반쯤 의무감에 듣고 있는 것도 있고, 음악회 준비나 음악회를 다녀와서 복습차원에서 듣기도 하고 그냥 듣기도 합니다. 음악 듣는 시간은 많이 줄진 않았고, 다만 오페라나 영상물만 보는 양이 좀 줄었을 뿐이죠.


그런데 요즘은 그냥 집에 쌓여있는 음반들을 듣게 되지 신보가 딱히 탐나지 않습니다. 신보소식들을 보면 보는 순간에는 구미가 당기는데, 그냥 보관함에 담아 두거나 기억해 두는 게 전부입니다. 예전 같으면 끊임 없는 지름으로 한켠에 모셔둔 박스들이 쌓여서 그 박스세트를 듣기 위해 계획을 세워 추진해야 했는데 요즘은 구입후 분류되어 CD장으로 들어가기 전에 구입한 음반들을 쌓아놓고 집중적으로 듣는 말하자면 inbox에서 몇 달째 놀고 있는 음반들이 보입니다. 예전 같으면 새로 구입한 음반들에 밀려 몇 달전 구입한 음반들은 inbox에서 밀려 제자리를 찾아갔을 텐데 말이죠.


70분 정도 되는 CD 한장을 다 듣는 것도 버거워졌습니다. 예전 같으면 한번 걸어놓은 음반은 첫트랙에서 마지막까지 집중하며 들었는데, 요즘은 곡단위로 끊어 듣습니다. 베토벤 5+6번을 커플링한 음반이 있으면 예전에는 그냥 5번과 6번을 다 들었지만 요즘은 5번만 듣고 다른 작곡가, 다른 장르로 바꿔 듣습니다. 아울러 음악회처럼 한시간 정도 들으면 인터미션이 필요합니다. 중간에 커피를 탄다거나 하는거죠.


이런식으로 신보를 자제하고 음악을 듣다보니 어떤 곡을 들을 때 제가 선호하는 음반이 아닌 잘 듣지 않던 신선한 음반을 위주로 듣게 됩니다. 덕분에 10년만에 성은을 입는 음반도 생기고 어떤 음반이 inbox에서 체류시 집중탐구로 철저히 향유되지 못한채, 밀려드는 신보에 쫒겨 음반장으로 사라졌던 경우 그 음반의 숨겨진 가치를 찾게도 됩니다.


요즘이라고 지르고 싶은 음반이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박스만 해도 가디너의 SDG 바흐 칸타타 박스도 나온다고 하고, 호로비츠의 카네기홀 녹음 전집도 나왔습니다. 멜쿠스의 아르히브 선집도 예판중이고요. 이외에도 이미 나왔지만 아직 구매하지 않은 박스도 상당수 됩니다. 낱장 신보들도 매력적인 음반들이 많고, 늘 나오는 대로 신보를 구입하던 연주가들이나 시리즈의 음반들도 이미 여러장 나와 있습니다. 그럼에도 소유에 대한 욕망이 거세된 듯 구매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제 나름대로 생각해본 이 불감증의 원인입니다.


1. 독서량의 증가 - 집에서 책을 읽는 시간이 늘었습니다. 예전에는 문학 보다 경영, 마케팅 등 어느정도 회사에서 봐도 크게 뭐라하기 힘든 내용의 책을 읽는 비중이 높았고, 그 책들은 회사에서 나머지는 집에서 읽었기에 집에서 음악을 듣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았습니다. 지금은 문학의 비중이 높고 회사서는 책을 전혀 안보기 때문에 집에서 여유시간이 늘었지만 음악을 듣는 시간은 그대로이고 책을 읽는 시간이 늘었습니다. 아울러 이제 읽는 책의 70%가량이 문학이기 때문에 “정서적, 예술적” 감흥을 얻을 수 있는 곳이 음악 말고 생겼구요.


2. 해석상의 차이에 대한 민감도가 줄었습니다 - 예전에는 연주에 있어 어느 한부분의 리듬상의 특징이나, 만들어내는 소리의 작은 뉘앙스의 차이에도 크게 반응하고 그 때문에 음반 구입의 충동이 일었지만, 예를들어 발트시타인을 어떤 특이한 피아노로 연주한 특이한 해석으로 음반을 발매 했다고 해도 머리로는 땡기는데 감성으로 땡기지 않습니다. 그래봤자 늘 듣던 발트시타인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그냥 쌓여 있는 발트시타인 음반에서하나 골라 듣게 됩니다. 그리고 늘 듣던 음반에서 새로움을 찾아내고 그 새로 찾아낸 새로움만으로도 행복해집니다.


3. 공간의 부족 - 집이 포화상태입니다. 책들중 당장 급하지 않은 것들은 이미 박스로 포장해서 침대밑, 발코니 등에 분산 수용했고, 이미 2년전쯤 거실 한쪽벽면 전체를 책장으로 바꿨고, 회사에서 두 개의 책장에 보관하던 책은 그냥 대부분 버리고 퇴사했고, 본가에는 아직도 책이 쌓여있음에도 여전히 공간은 부족합니다. 본가서 몇 달전 강제로 배송되어온 LP들도 아직 포장도 안뜯은 채 발코니에 몇박스 쌓여있고... 결국 전원주택이 답이거나 그냥 디지털로 가버리는 수밖에...



(좀 오래된 참고 사진)


그런데 가장 중요한 불감증의 원인은 아마 3번 같습니다. 결국 취미는 공간과의 싸움...


MF[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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