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교보문고의 반값세일 덕분에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 3부작 전6권을 구입했습니다. 한가지 장르나, 한가지 시리즈만 읽는게 별로인 것 같아서 우선 1부를 읽고, 중간에 인문서적을 읽고 다시 2부를 읽고 하면서 3부작을 끝낼 생각인 관계로 3부까지 모두 읽고 포스팅을 하려면 제법 시간이 걸릴 것 같아 그냥 1부만 읽은 상태로 포스팅을 할까 합니다. 아마 3부까지 다 읽은 뒤 포스팅을 해도 지금 포스팅과 많이 달라지지는 않을 듯합니다.
“밀레니엄”은 영화로도 헐리웃 리메이크까지 나올 정도로 유명한 소설입니다. 주말에 읽기 시작하면 잠을 안자고 읽게 되니 주의하라는 서평을 있을 정도로 몰입감을 자랑하고 있구요. 여기저기 뒤지시면 기본적인 내용은 쉽게 찾으실 수 있습니다. 저는 1부인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을 기준으로 인터넷에서 잘 언급되지 않는 이야기들을 간단히 적을까 합니다. (스포일러는 “사실상” 없습니다)
1. 몰입도
무려 135쪽이 되어서야 “사건”이 나타납니다. 드디어 XXX가 죽었다 또는 죽은 것으로 의심된다는 내용이 나오는 것이죠. 흔히 뭔가 굵직하고 독자의 이목을 잡아놓을 사건을 우선 터뜨리고 시작하는 책들과는 전혀 다르죠. 그냥 프롤로그에서 뭔가 미스테리가 있는가 보다 하고 밑밥을 하나 던져주고는 135쪽에 사건을 보여줍니다. 135쪽까지는 그냥 캐릭터 소개와 사건의 배경이 되는 내용을 다룹니다. 그럼에도 “사건”이 나타날때까지 전혀 지루하지 않습니다.
2. 캐릭터
스티그 라르손은 스웨덴 작가입니다. 그래서인지 주인공들의 성에 대한 개념은 제임스 본드를 능가합니다. (그렇다고 야한 장면이 많이 나오진 않아요) 남자 A와 유부녀 B는 직장동료이자 애인입니다. B의 남편은 A와 B의 관계를 알지만 신경쓰지 않습니다. B와 남편은 금술도 좋습니다. A는 업무상 출장 갔다가 C와 같은 침대를 쓰게 됩니다. B가 우연히 방문했다 그 장면을 목격합니다. 우리나라 같으면 뭔가 큰 일이 터질 분위기지만 오히려 B는 A와 C에게 자기가 매너 없이 갑자기 방문해서 미안하다 사과합니다. 이후 A는 또 다른 여자 D와 사귑니다. B는 그 사실도 알게되죠. 얼마 뒤 A는 B와 데이트합니다. (이들의 데이트는 늘 침대에서 끝납니다) 대충 이렇습니다.
아무튼 미카엘은 소설내내 (좋은 의미로) 기자답습니다. 다만 수퍼맨도 아니고 그냥 현실에 이런 사람이 있을 것 같은 캐릭터입니다. 어찌보면 현실에서는 있을 법 하고 어디선가 본듯하고 전형적인데 그래서 장르소설의 주인공들은 가능한 특이해왔고 특출나왔기에 오히려 특이해 보이고 개성 있어 보입니다. 이에 비해 리스베트는 태도, 출신, 가치관, 능력 등 모든 면에서 극히 비현실적이며 따라서 오히려 전형적입니다. 문제 있는 성장배경과 출신성분, 사회적 부적응, 그럼에도 천재라는 이미지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탐정인 “셜록 홈즈” 부터 있었으니까요. (홈즈는 무료하다고 마약을 하고, 하숙집 벽에 총질을 하고, 슬리퍼에 담배를 넣어 보관하는 폐인이죠)
3. 트릭 또는 추리
미스테리는 그럴듯해 보입니다만 이런 쪽의 문학이나 영화를 보아온 사람이라면 그리 대단해 보이는 미스테리는 아닙니다. 작중의 표현은 섬 자체가 밀실이 되는 일종의“밀실살인”이라는 거창한 용어를 쓰지만 초반에만 그럴 듯 할 뿐 그리 신기하지는 않습니다. 어느 정도 주인공들의 행적을 따라 가다보면 사건의 윤곽이 나옵니다. 범인은 누구이며, 사건의 실체는 무엇인가 정도는 쉽게 눈치 챕니다. 그럼에도 재미있는 이유는 작가의 서술방식과 사건의 배치가 두 명의 주인공들이 이 실체를 어떤 방식으로 해결할까 하는 궁금증을 지속적으로 유발하고 빠져들게 합니다.
4. 해결 방식
사건의 실체를 어떻게 해결할까 궁금해 하는 독자들에게 그렇다고 엄청난 추리나 암호풀이 같은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보여주지도 않습니다. 주인공들은 전문적인 탐정이나 경찰이 아니니 당연하죠. 한명은 기자요, 한명은 해커입니다. 따라서 그들의 해결 방식은 기자와 해커의 방식입니다. 그냥 자료를 발로 뛰어 수집하고, 사람을 만나 인터뷰하고, 해킹하고, 인터넷 서핑하고 기존의 자료를 새로운 시각으로 검토하고 “상식적인” 차원의 추리에 약간의 운을 곁들이죠.
주인공 미카엘은 중간에 XX도 다녀오느라 정말 1년 가까이 자료 읽고 정리하고 사람들 만나고 하면서 문제를 풀어나갑니다. 의뢰인이 평생 모은 자료와 자신이 조사한 자료를 읽고 또 읽어야 했으니 정말 노가다 스타일의 해결방법이죠. 이런 장르의 범인들이 자주 그렇듯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에서도 범인은 스스로 주인공을 찾아옵니다. (007 제임스 본드의 진짜 능력은 악당들에게 잡혀 그들의 비밀기지를 알아내고 그들의 입을 통해 음모를 알아내는 거죠)
기자인 미카엘의 접근법과 능력이 설득력 있는 것과는 달리 저자가 곳곳에서 직접 웹싸이트, 메일주소, 프로그램명까지 언급하며 “현실성”을 부여하고자 했음에도 해커인 리스베트의 “능력”은 그리 현실적이지 못합니다. 물론 헐리웃 영화에서 흔히 보듯 도대체 어떻게 해킹했는지 모르게 뚝딱 하는 정도는 아니고 조금은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주기는 하지만 최소한 1부에서는 마카엘의 자료리뷰, 인터뷰에 의한 방법보다 리스베트의 해킹 기술이 그닥 마음에 와닿지는 않습니다. 상당부분은 그냥 세계최고의 해커니까 가능하다는 식이죠. 구글에 피해자 이름과 “살인”이라는 단어로 검색해서 중요 단서를 찾는건 해커가 아니어도 할 수 있죠.
5. 문학으로서의 “밀레니엄”
다들 극찬 일색이라 아쉬운 점에 대해 제법 많이 나열했지만 “문학”으로서 “밀레니엄”은 매우 재미있고 그럴듯합니다. 복지국가 스웨덴의 어두운 측면을 다루면서 여성에 대한 폭력, 언론의 문제 등을 다룬 주제와 소재들이 마음에 들고 내용의 전개, 캐릭터의 전개도 좋습니다. 엄청난 비밀, 기가 막히는 해법, 충격적인 결말, 마음을 뒤흔드는 주제의식은 없지만 작가가 하고픈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방식, 그리고 문학적 요소들의 배치, 기법 등은 장르소설적인 요소들이 약간 미진해도 “밀레니엄”을 매력 있게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밀레니엄”은 (1권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로만 봤을 때) 수많은 서평들과 달리 장르적인 요소의 강점이 아닌 캐릭터의 묘사와 전개, 사건들의 교묘한 배치, 정교한 스토리 전개와 표현기법 등을 통한 문학적 쾌감을 안겨준다는 점에서 재미 있고 추천할 책이라 하겠습니다.
MF[ME]
*출판상 아쉬움을 표현하자면 한권의 책을 2권씩 분책해서 출판하는거야 늘 있던 일이라 뭐라하긴 그렇지만 분책을 했다면 지도, 가계도와 같은 책을 읽어 나가는데 도움을 주는 부록은 1권 끝에만 달랑 넣지 말고 2권에도 다시 넣어줬으면 좋겠습니다. 그거 보자고 1권도 들고 다닐 수는 없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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