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다른 포스팅에서 제가 처음으로 접한 동화아닌 책이 쥘 베른의 “해저2만리였고 덕분에 상당기간, 그리고 어쩌면 지금까지 제가 좋아하는 문학장르가 그 시절 결정된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오늘은 바로 그 “해저2만리”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쥘 베른의 원작에 대해서는 워낙 유명하고 제게는 막대한 영향을 주었던 책이라 특별히 언급할게 없을 듯합니다. 그냥 지금처럼 핵잠수함이 바다를 누비는 시절에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으며 어쩌면 그래서 더 설득력이 있는 듯하다는 겁니다.
저는 해저2만리를 그간 (제 기억에 따르면) 세번 읽었습니다. 처음은 글을 모르던 유치원 시절 어머니께서 읽어 주신 어린이 문고본을 통해서서, 두 번째는 아마 초등학교 5학년 정도로 기억되는데 바로 그 문고본을 제 스스로 읽은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얼마전 완역본을 읽은 것이죠.
재미있는 것은 워낙 인상이 강하게 남았던 책이기 때문인지 무려 30여년만에 그것도 완역본으로 읽는 책임에도 모든 내용이 얼마전 읽은 것처럼 기억에 남아 있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완역본은 예전 청소년 문고판과는 달리 분량도 엄청나고 특히나 해저생물 이야기가 때로는 두세쪽 이상 진행되기도 하기 때문에 분명히 다르기는 하지만 주요 스토리와 사건들, 그리고 당시의 감흥까지 읽으면서 솔솔 기억이 나더군요.
우선 판본에 대해 이야기 하면 두종으로 나온 김석희 번역본 외에 대안은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열림원에서 쥘 베른 콜렉션의 일부로 나온 두권짜리냐 아니면 작가정신에서 나온 아셰트 클래식 판본이냐의 선택이 있을 뿐이죠. (번역은 같습니다) 만약 콜렉션을 구성해서 깔맞춤을 하실 생각이거나 책의 가격이 부담되시는 경우, 또는 휴대성이 중요한 경우라면 열림원쪽으로 추천을 합니다만, 그렇지 않다면 당연히 작가정신을 추천합니다. 2일정도 출근하면서 가방에 넣어봤는데 좀 무겁지만 들고 다닐만 합니다.
[참고로 아이보리 부분은 무진장 두꺼운 띠지입니다]
일단 열림원쪽은 콜렉션이란 거창한 이름에도 불구하고 양장본이 아니지만 작가정신판은 양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소장의 가치를 높혀주는게 열림원판에 들어 있는 에두아르 리우와 알퐁스 드 누빌의 삽화에 더해 프랑스판 아셰트 클래식의 칼라 일러스트들을 삽입했다는 것입니다. 다만 처음의 기대, 수많은 서평들과 달리 이 일러스트가 “해저2만리”를 조금 더 쉽게 읽거나 하는데 큰 도움을 주지는 않습니다. (이점이 이 포스팅을 쓰게된 동기입니다) 오히려 “소장욕구”를 자극하는데 더 큰 기능을 하죠.
기능성 보다는 장식성이라 이야기하는 첫 번째 이유는 일러스트가 적다고는 할 수 없지만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동화책 느낌으로 생각하시면 안됩니다. 아울러 노틸러스호의 선실구조, 탐험지역의 지형이나 지물과 같은 책을 읽는데 많은 도움이 될 정보는 없습니다. 양면 스프레드로 노틸러스호의 선체 단면도 하나만 (가능하면 수치도 곁들여) 들어있었어도 저는 “무조건” 아셰트 클래식을 칭송했을겁니다. 아쉽게도 일반적인 노틸러스호의 겉모습만 그려져 있고 지도는 열림원판에도 나오는 1, 2권의 지도 두장(태평양, 대서양)이 전부입니다. 아울러 잠수장비의 역사 같이 어떤 부분은 이해를 위해 도움이 되기는 하지만 다른 중요한건 일러스트에서 뺐으면서 생뚱맞게 깊게 들어간 것도 제법 됩니다.
[서점가서 한번 보시면 위 이미지 컷은 진자 "이미지 컷"입니다.^^]
바다생물에 대한 일러스트도 많이 부족합니다. 해역이 바뀔 때마다 아로낙스 박사는 박물학자답게 자기가 본 바다생물들을 늘어놓고 때로는 두페이지 이상에 걸쳐 이런 바다생물의 이름들의 나열이 나오는데 대부분의 경우 생소한 이름들입니다. 해역마다 대표 물고기 몇종이라도 일러스트가 있었다면 좀 더 좋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울러 이게 원본도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일러스트가 수채화풍이라 취향을 탄다는 겁니다. DK스타일의 쨍한 느낌의 일러스트 기대하시면 안됩니다. 물론 일러스트는 모두 원본에 대한 아쉬움이지 번역본이야 원본에 따라 달라질 뿐이죠. 그러고 보니 DK에서 특유의 스타일을 가미한 “해저2만리”를 주요 해양생물의 사진도록을 포함하여 발간하면 재미 있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김석희의 번역은 술술 읽힙니다. 번역계의 대가, 쥘 베른의 대가 답습니다. 물고기 이름이 나열되는 부분에서도 가능하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노력한 느낌이더군요. 아마 물고기 이름들의 나열이 독자에 따라서는 지루할 수 있지만 아로낙스 박사가 해저세계를 보면서 느끼는 경이로움에 동참한다는 의미에서는 꼭 필요한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결국 이런 이름의 나열을 읽기가 지겨워지는 순간 아로낙스 박사가 이제는 노틸러스와 운명적인 작별을 생각할 시간이 되었음을 함께 느낄 수 있는거죠. 또는 외국어 같은 그 이름들의 나열을 보면서 노틸러스호를 떠나고 싶은 네드 랜드의 심정이 될 수도 있구요.
결론 : 쥘 베른 콜렉션을 모으실 생각이 있거나 무조건 책을 들고 다니시며 읽거나 일러스트 따위에는 관심이 없으신 분들을 제외하고는 제가 적은 몇가지 아쉬움은 있지만 작가정신판을 추천합니다. 당분간 “해저2만리”에 있어 더 좋은 판본이 나오기는 힘들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MF[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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