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포스팅에서 열린책들의 세계문학전집 앱을 구입할지 고민하는 와중에 10년만에 집어든 바우돌리노를 읽었습니다. 움베르토 에코의 제4차 십자군 원정을 배경으로한 소설인 “바우돌리노”는 일종의 히스토리 팩션인데 fact와 자신이 지어낸 fiction외에도 당시의 문헌을 참고로한 현재는 허구임이 밝혀졌지만 당대에는 사실이라 생각되던 “전승”을 힘께 버무린 비빔밥과 같습니다. 특히 이탈리아어로 Storia는 역사(history)와 이야기(story)에 같이 쓰입니다. 따라서 바우돌리노의 이야기(storia)는 역사이기도 하고 지어낸 이야기이기도 한 거죠.
에코는 전작들에서도 “사실” 또는 사실이라고 전해지는 것과 “허구”를 교묘히 섞어 놓는데 탁월한 재능을 보이고, 어찌보면 무엇이 허구이고, 무엇이 진실인가에 대해 질문하는 것이 그의 소설들을 관통하는 맥이라 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만들어진 “허구”들이 가공한 힘을 발휘 할 때 그것이 진정 “허구”일 뿐인가 하는 문제를 제기하죠. “장미의 이름”은 악하다고 생각되던 “이야기”가 실제의 살인을 불러오고, “푸코의 진자”는 그럴듯하게 지어낸 허구가 그 허구를 믿는 자들을 만들어 내어 그 허구의 창조자들을 살해하고, “전날의 섬”은 만들어진 날짜선을 넘어 전날로 넘어가는 것이 문제의 해결이 되어 버리고, “바우돌리노”는 허구로 자기 자신의 일생을 만들어 내어 결국 그 만들어낸 인생을 실제로 살기 위해 떠나는 주인공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교묘한 사실과 허구의 비빔밥 덕에 독자는 배경지식이 많으면 많을수록 에코의 글에 빠져들게 됩니다. “바우돌리노”에는 역사적(이라고 알려진) 사실, 에코가 지어낸 이야기, 그리고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시대에 사실이라고 생각되던 이야기들이 섞여 있습니다. 예를들어 프리드리히 1세는 실존 인물이고, 바우돌리노는 에코가 만들어낸 인물이지만, 바우돌리노의 생부인 갈리아우도는 알레산드리아 지방의 전설적 (에코가 창조한 것이 아닌) 인물이죠. 전설에 의하면 “바우돌리노”에 묘사된 것처럼 갈리아우도는 암소를 이용해 프리드리히1세의 포위 공격으로부터 도시를 구해냈습니다.
에코의 소설을 오랜만에 읽었기 때문인지 “장미의 이름”, “푸코의 진자”(저는 “푸코의 추”이던 시절에 읽었어요^^), “전날의 섬”, 그리고 “바우돌리노”를 재미 있게 읽던 시절(모든 책을 초판으로 읽었습니다)과는 다른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에는 그냥 읽고 끝내지 말지 말고 기왕이면 몇가지 사항들은 정리해 놓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거죠.
하필 십년만에 “바우돌리노”를 다시 읽고 나서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지만 “사실”과 “허구”와 “전승”을 구분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모든 사건들까지 정리하자면 방대한 작업이고 금방 끝날일도 아니니 두가지를 우선적으로 정리할까 합니다. 첫째는 모든 인물은 아니지만 주요 인물들에 대해서 최소한 그들이 실존인물인지, 에코가 만들어 냈는지, 전승되어진 인물인지를 정리할까 합니다. 아울러 실존인물이라면 가능한대로 실제의 삶과 바우돌리노 속에서의 삶을 연관시켜 볼까 합니다. 두 번째는 바우돌리노의 여정입니다. 유럽쪽에서 벌어지는 일이야 정리하는 것이 의미가 없지만 바우돌리노가 요한사제의 왕국을 찾아 떠난 이후의 여정은 의미가 있을 듯합니다. 바우돌리노에서 나오는 특정 지명이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지도에서 어디쯤에 위치하는지 추정해 보자는 것이죠.
저의 게으름 때문에 몇회에 걸쳐 연재 스타일로 진행할 예정이며, 과연 완결이 될지, 완결이 된다면 언제나 끝날지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예를들어 2004년 3월 시작한 노르웨이 출장(여행)기는 2004년 10월말이 되어서야 9부작으로 끝났으며, 2007년 7월 시작한 유럽-남아공 출장(여행)기는 런던-파리-니스-모나코-바르셀로나를 거쳐 2009년 7월 밀라노의 첫회를 올린 뒤 아직까지 중단되 있습니다. (앞으로 이탈리아, 그리스, 남아공이 남아 있네요)
독자에 대한 책임감 따위는 없는 블로그의 단점이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MF[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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