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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 예술 - 공연

[음악]음질과 명연에 대해서

by 만술[ME] 2013. 3. 21.

어떤 동호회에서 (라고 말하지만 뭐 다 아시죠) 음질과 명연에 대한 이야기들이 오갔습니다. 저는 요즘은 동호회 활동은 그냥 정보 취득만 하기 때문에 참여 하지 않았지만 제 생각은 정리해봐야겠다는 의미에서 음질과 명연(또는 명반)에 대해서 포스팅 할까합니다. 혹시나 하는 우려에서 미리 말씀드리면 그냥 개인적인 생각을 정리한 것이지 위 동호회에서 발제하신 분이나 댓글 다신 분들과 토의하기 위해 올리는 것은 아니란 것입니다. (따라서 몇몇 부분은 토의 주제에서도 벗어납니다)



제 본격적 음악 감상의 행로는 소니의 일체형 (당시 유행하던 대형) 카세트 플레이어로 처음 시작 했습니다. 몇개 안되던 당시 성음의 라이센스로 발매된 DG, Decca 등에서 나온 카라얀, 뵘, 앙세르메 등의 연주를 들었죠. 이후 대입 끝날 무렵 당시 국내서는 고사양이던 인켈의 CS9000인가 하는 컴포넌트 LP시스템을 갖추고 집에 있던 부모님이 가지고 계신 3-40장 정도의 원판들을 들으면서 라이센스로 LP를 구입하기 시작했습니다. 


단독주택에 살았고 옆집과 오디오가 놓인 거실과의 사이에 정원이 있어 거리가 제법 되서 마음 놓고 음악을 크게 틀 수 있었기에 연주회장을 다니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볼륨으로는 연주회장에서 듣는 것 이상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카라얀, 뵘에서 시작된 거장에 대한 탐구는 푸르트뱅글러, 토스카니니, 발터 등으로 옮겨갔고, 점점 명연, 명반에 대한 집착이 커져 갔습니다. 이때는 음질 따위는 중요치 않다, 그 속에 담긴 음악, 그리고 연주자의 정신을 듣는게 중요하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정말 10년 이상을 이런 방식으로 음악을 들었던 것 같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회사에 들어가고 우연히 지금의 B부장 (당시는 나이는 같지만 입사는 고참인 B선배)를 만나 취미가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되고 (B부장은 음악적 스펙트럼이 저보다 넓습니다) 그가 오디오에도 매니아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따라다니며 귀동냥을 했죠. 그래도 제 고집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음악은 음질에 우선하고, 소리를 듣지 말고 음악을 들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그 생각이 좀 바뀌더군요. 실제로 좀 더 나은 시스템을 구축하고, 다른 소리들을 들으면서 음악을 듣는 방법이 점차 변하기 시작합니다. 과거에는 구조와 흐름에 주안점을 둔 감상 위주였다면, 음색의 디테일도 많이 신경쓰게 된거죠. 덕분에 과거에 잘 안듣던 음악, 음반들도 듣게 됩니다. 


음악이 무엇일까요? 생각하는 바, 느끼는 바, 그냥 절대적 아름다움, 그게 무엇이건 작곡자와 연주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것을 "소리"의 형태로 표현하는 예술입니다. "소리"는 고저, 장단, 강약, 음색 등으로 표현되죠. 그리고 이런 것들이 어떻게 배열되고, 함께 하느냐에 따라 전달 받는 입장에서 많은 것이 달라집니다. 작곡가와 연주가들이 한음의 미묘한 느낌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데 그냥 큰 줄기만 듣는다면 (특히 곡에 따라서) 제대로 된 음악 감상법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이건 마치 리듬 따위는 중요치 않아, 음악이 중요하지라고 말하는거와 비슷하죠. 음질은 음악의 요소들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조건이기에 결코 무시될 수 없습니다.


다른 포스팅에서도 이야기 했던 바인데 뼈대만 남은 파르테논 신전을 보면서 감동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당연히 감동을 받죠. 저도 파르테논 신전을 직접 보는 순간 뭐라 말할 수 없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다만 이런 감동은 순수한 파르테논 신전의 아름다움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릴적 부터 접했던 수많은 그리스 신화의 이야기들, 그리스 민주주의에 대한 이야기들, 신전이 파괴되었던 역사에 대한 지식, 바이런과 얽혔던 이야기, 그리스라는 유럽 여행에서도 쉽게 루트로 넣기 힘든 곳에 왔다는 감회 등의 얽혀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어떤 음반에 담긴 낡은 연주에 대한 감동도 이 연주가 만들어진 시대적 배경이나 연주자에 대한 사전 지식 등이 그 연주에서 만들어지는 소리 보다 때로는 더 감동적일 수도 있죠. 솔직히 그 유명한 바이로이트 9번의 경우 순수한 음악적 완성도 보다 이런 배경이 더 감동을 이루어 내지 않던가요? 


저는 이런 귀로 전달되는 소리 외적인 요인이 명연을 만들고, 명반을 만드는 것에 대해 절대 반대하지 않습니다. 그 유명한 3중협주곡의 음악적 완성도가 떨어진다 해서 당대 최고의 (더구나 귀한 몸인) 연주자 세명(오이스트라흐, 리히터, 로스트로포비치)이 최고의 지휘자, 악단과 만들어 낸 음반의 가치를 완전히 깍아 먹는다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냥 그런 이벤트가 이루어졌다는 것, 그리고 그 기록을 음반으로 들을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가치 있고, EMI에서 "세기의 레코딩"이라 부르는데 딴지를 걸 생각도 없습니다. 어떤 음반이 푸르트뱅글러의 연주라고 알려졌을 때는 명반이지만 카바스타의 연주로 알려지는 순간 시시한 음반이 되는 것에도 딴지를 걸 마음이 없습니다. 


다만, 흔히 오디오에 투자하고, 좋은 녹음으로 된 음반을 찾으며 좋은 소리로 음악을 들으려는 사람들에게 푸르트뱅글러나 토스카니니의 음반을 권하면서 "소리를 듣지말고 음악을 들으라"며 음질을 음악외적이라 이야기하는 것에는 반대입니다. 오히려 이런 음반들이 음악 외적인 부분에 의존해서 팔리고 감동을 주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어느날 티볼리 라디오에서 무명의 연주자가 연주하는 음악을 듣고 감동을 받았다? 그래서 음악 외적인 부분 보다 음악이 중요하다? 그럴 경우 세가지 입니다. 원래 나오던 음악이 좋은 음악이거나 (많은 음악이 어찌 연주하건 대충 좋아요) 연주자나 음반사가 노골적으로 이런 상황을 목적으로 음반을 만들었거나 (저렴한 오디오로 로비에서 틀기 좋은 음반 등) 아니면 듣는 사람의 기분이 좋거나죠. 또는 이 세가지가 섞여있거나요.


얼마전 알라딘에서 음반 세일을 했습니다. 전에부터 고민하던 토스카니니의 전집이 있더군요. 그냥 싼 맛에 주문했습니다. 그리고 그 기념으로 오랜만에 토스카니니의 브람스 2번을 들었습니다. 한 10분쯤 지났을까 급히 PC를 다시 켜고 주문 취소를 했습니다. 그 보다 음질 좋은 브람스 2번이 널려 있는데 열악한 음질을 감내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구나 80여장의 음반을 그런 음질로 듣고 싶지도 않고 들을 수도 없을 것 같았습니다.  


세상에는 좋은 연주를 담은 음반들이 널려 있습니다. 요즘의 오디오들은 예전 소위 “거장들”이 활동 하던 시대에 비해 좋아졌습니다. 그리고 요즘 나오는 음반들은 요즘 오디오에 더 적합하게 녹음되 나옵니다. 엣음반들은 리마스터링을 잘해야 요즘에도 들을만한 소리가 나오죠. 유명한 비발디 “사계”는 비욘디건, 정경화건, 까르미뇰라건, 피셔건 다 좋아요. 워낙 곡이 유명하고 좋으니까요. 그냥 누군가 난 비욘디는 좋은데 피셔껀 못들어주겠다거나 비욘디는 역시 첫 녹음 갑이고 나머지는 쓰래기지 뭐 이런 소리를 하면 그냥 그런갑다 하세요. 아다지오는 카라얀 연주로 들어도 아름다워요. 


카잘스의 역사적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들으면 정신적 가치를 열심히 찾아서 얻어지는 것 보다는 그냥 요요마를 듣더라도 곡의 아름다움에 빠지는게 더 가치 있고, 좋은 일일 수 있습니다. 지글 거리는 잡음속에서 옛 거장의 정수를 찾아 헤매는건 나중에 해도 되고, 안해도 됩니다. 그거 말고도 들을 음악이 넘칩니다. 그런 이상한 일은 그냥 저를 포함한 몇몇 사람들에게 맡겨두시고, 그 사람들의 말은 귀담아 듣지 마세요. 제 말도 포함해서. 그냥 잘난체 하는가보다 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음악은 가능한 연주회장에서 들리는 정도로 크게 듣는게 더 좋습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오디오들이 작은 볼륨에서는 저역과 고역을 제대로 재생을 못해 중음대만 부풀린 소리를 내거든요. 가진 오디오에서 최대의 효과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어느정도 볼륨은 높혀야 저음도 고음도 나옵니다.^^ 아님 헤드폰을 사용하는 것도 (청력 손상의 문제만 빼면) 괭장히 좋은 방법이죠.


음반 많이 사지도 마세요. 저 같이 엄청 지르는 사람이 이런 이야기하면 웃기지만 그거 별로 도움 안됩니다. 그리고 이거 습관되면 무서워요. 남들이 이거 명반이다 하면 금방 품절될 것 같죠. 언젠가 그 음반을 들을 땐 염가판으로 나오고, 요즘은 국내 품절되도 해외주문으로 저렴하게 구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완전히 폐반되면 어때요. 다른 음반 들으면 되지. 저를 포함해서 어떤 신보가 나왔을 때 엄청 띄워주는 음반들 불과 몇 달 지나면 그 사람들도 잘 안듣습니다. 그 곡을 들을 때 제일 먼저 손가는 음반도 그 음반이 아닌 경우도 많아요.  


음반사들은 팔려고 음반을 만듭니다. 역사적 사명을 가지고 음반을 만들지는 않죠. 음반이 장사 잘 되던 시절에는 뭐 약간 사명감도 있었겠지만 그래도 시장성이 우선입니다. 녹음 기술도 마찬가지죠. 정말 음질 향상을 위해 당대의 최고 기술을 들여 최선을 다했겠어요? 그냥 그 시절에는 그렇게 마케팅해야 팔리니 그런거죠. 요즘 핸드폰에서 삼성, 애플이 하는걸 보면 비슷하죠. 여전히 음반이 잘 팔리던 시절에 나온 CD의 스펙을 보면 장사속이지 최고의 기술력을 적용한건 아니죠.


제대로 된 프로듀서라면 팔릴 연주자, 팔릴 음악을 팔릴만한 기술에 담아 냅니다. 그런데 이 “팔릴”은 시대마다 달라지죠. “라우드니스 워”를 보세요. 제 정신인 기술자들이라면 그리 만들리 없지만 그래야 고객이 음질 빵빵하다 생각하니 그렇게 만드는거죠. 그점에서 그렇게 만드는게 제정신인 거구요. 


요즘 중견 연주자들이 DG나 Decca 같은 곳과 새롭게 전속 계약했다는 이야기 들어 보셨나요? 주로 이쁘게 생기거나 잘생긴 젊은 천재들하고의 계약이죠. 다 시장성 때문입니다. 녹음하는 레파토리도 마찬가지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두서 없이 늘어 놓았는데, 결론은 그냥 값싸고 이름 들어본 검증된 음반들 중에 음질 좋은 것(녹음 연도가 1990년대나 2000년대가 좋죠)으로 열심히 듣는게 중요하다는 겁니다. 연주의 질도 중요하지만 녹음의 질도 감동에는 무척 중요한 요소고, 가능하면 좋은 오디오로 좋은 음질로 듣는게 좋다는 거죠.


MF[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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