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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Wonderful Life

퇴사 4개월의 소고

by 만술[ME] 2013. 3. 12.

어느덧 퇴사를 한지 4개월이 되갑니다. 서류상으로 퇴사처리 된 건 아직 한달이 안됬지만 실제로 퇴사한건 이제 만4개월입니다. 오늘은 4개월이란 짧은 기간을 무직으로 살아오면서 거의 20년 가까운 세월을 회사에 다니면서 느낄 수 없던 것을 새롭게 느끼게 된 것을 적어볼까 합니다.
 

[천리포수목원에서 겨울꽃의 향기를 맡는 시우와 가빈]


1. 나는 능력이 있다. 그러나 그들이 능력이 없다.

제 입으로 말하는게 좀 그렇지만 다니던 회사에서 제법 잘나가는 부장이었습니다. 회사가 휘청이지 않았다면 작년말쯤엔 이사를 달았을지도 모르죠.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비슷한 일을 하던 세 개의 팀이 둘로, 하나로 통합되면서 그 통합팀의 탐장은 늘 제가 맡았습니다. 자칭 타칭 언터쳐블이라 생각했죠.

그런데 나와보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제가 아무리 능력이 출중하다 해도 저를 뽑아줘야 할 기업들이 능력이 없습니다. 자신들의 인력을 줄이기도 바쁘고, 자기들 먹고살기 바쁘기 때문에 능력 있는 인재 따위는 관심밖입니다. 특히 저 정도 직급, 나이가 되면 뽑는 쪽에서 부담을 갖더군요.

조금 낮은 회사로 가려면 그리 높지 않은 연봉을 맞추기 힘들고, 직급도 애매합니다. 그래도 훨씬 큰 회사서 잘나가던 부장이니 이사 달라 하면 그 회사는 이사 달려면 50이 넘는건 기본입니다. 연봉도 더 낮구요. 복리수준도 때로는 망해가던 회사보다 못해요.

2. 그들이 너의 능력을 알 방법이 없다.

설사 어떤 회사가 부장급 팀장을 뽑는다 할 때, 지원할 사람들은 넘치고 이력서는 대동소이합니다. 자기들이 안한일도 한일로 포장하는게 이력서니까요. 아마 그 회사 일은 본인이 다했다고 쓸꺼에요. 자기 소개서에 자기 못났다는 사람도 없죠. 저도 면접관을 해봤지만 면접도 얼굴이나 보면 그만이지 디테일하게 알 수는 없죠. 기껏해야 쭉정이나 걸러내겠죠.

함께 일해보지 않고는 제 능력을 그들이 정확하게 인지하게 만들 방법이 없더군요. 결국 저를 알아주는 분들(퇴직임원, 협력사 사장, 다른 회사로 옮기신 임원들)이 직접 뽑아쓰거나 추천하는게 방법인데 직접 뽑는건 요즘 같이 자기들 살아남기 바쁜 세상에 쉽지 않은 일이고, 아무리 그들이 강력 추천 한다해도 인터뷰까지 엮어내면 잘하는 겁니다. 

3. 너를 원하는 사람들은 널려있다 다만 월급을 안줄뿐

이런 저런 관계로 알던 사람들, 예전 임원들, 소개로 알게된 사람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저와 일하기를 원합니다. 그냥 소문만 듣거나 몇마디 나눠보면 쓸모가 있다고 그들은 느끼나봅니다. 명함 파주고, 사무실 주고 함께 일하자 합니다. 자기 회사에 방도 따로 하나 마련해 주겠다고 하죠. 그리고 그곳을 발판으로 너같이 능력있는 사람은 꿈을 펼치라 말합니다. 다만 월급을 주겠다 하지는 않습니다. 마음껏 일하고 밥벌이를 스스로 하라는 겁니다.

물론 준비가 되어 있다면 정말 좋은 오퍼일 수 있습니다. 사업을 일으켜서 수익을 분배하고 아마 몇 년이면 평생 먹고살걸 벌수도 있겠죠. 다만 6개월에서 1년이상 먹고살게 준비되어 있어야 하고, 정신적으로도 무장이 단단히 되어 있어야 합니다. 아마 일반적인 조직생활을 한 사람이라면 제 생각에 이런 준비 전혀 안되 있습니다. 조직으로 일하는데는 능수능란 한 사람도 자기 이름걸고 개인으로 일하기는 능력부족인게 사실이랍니다.

퇴직금, 모아놓은 재산을 노리는 사기꾼들도 있습니다. 어떤 동료가 한달여를 어떤 사무실에 나가면서 사업을 함께 할 파트너들과 이야기 하더군요. 그래서 널 뭐하는데 쓰냐고 물었더니 카자흐스탄에 진행하는 사업의 자문을 해주고 있다나요? 카자흐스탄은커녕 러시아도 못가본 사람과 카자흐스탄 사업을 논의하는 녀석들이라면 사기꾼이거나 아니면 망할 놈들이라 해주었습니다. 아마 조금 있으면 투자하란 이야기 나오죠.^^

4. 너흰 아직 준비가 안됐다

WoW의 등장인물인 일리단 스톰레이지의 유명한 대사입니다. 저는 다니던 회사에서 최소한 부사장은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1000명 정도의 정직이 다니는 상장사의 부사장으로 은퇴하면 뭐 잘한 직장생활 아니겠냐 생각해왔죠. 차량에 기사도 지원되니 뽀대도 나고, 나중에 은퇴후 뭐라도 하면 부사장으로 퇴직했으니 모기업에 붙어 몇 년은 먹고살겠거니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오로지 직장생활에는 플랜A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플랜B, C는 준비 안된 상황에서 플랜A가 무너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저 정도 나이되면 플랜B도 큰 의미 없는게 비슷한 급의 회사에 비슷한 직급으로 가도 굴러온 돌로 3~5년 버티기 쉽지 않습니다. 결국 또 옮기고, 옮겨야 되요. 이렇게 옮기다 막상 갈데가 없어지고 나면 플랜C를 하기엔 너무 나이가 많아지죠.

그런데 조직생활에 익숙하게 살다보면 플랜C를 바로 결행 하는게 쉽지 않습니다. 금전적으로는 물론 정신적, 능력적으로도 준비가 안되있거든요. 실무자로 오래했건 팀장을 했건 막상 나가서 혼자 무엇인가를 해보려 하면 모르는게 너무 많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때로는 자기가 전문적으로 하던 일이 커다란 일의 일부에 지나지 않아 그 지식과 경험은 큰 조직에나 쓸모가 있다는 것을 깨닫거나, 자기가 운전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하는데 기름은 어디서 넣는지, 네비게이션은 어떻게 세팅하는지를 모른다는걸 깨닫는거죠. 

5. 여행가고 친구 만나라고?

흔히 퇴사를 한 사람들에게 여행도 하고 사람도 만나라 합니다. 사람을 만나는건 미래를 위해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자기돈 들여 만나면 손해가 대부분입니다. 저는 지난 4개월 동안 여러 사람을 만나면 밥도, 커피도 거의 얻어 먹었어요. 무직이니 다들 그정도는 알아서 해주더군요.^^

여행을 가면 좋지만 결국 시간도 돈도 써버리게 됩니다. 특히 준비가 안된 상태의 실업이라면 여행가는 일주일도 아깝고 여행경비도 아까와요. 그냥 하는 여행이 아니고 뚜렸한 목표의식이 있다면 돈 값을 하겠지만...


아마 이정도 읽으셨으면 “그래 잘난 너는 지금 뭐하는데” 라고 하실 분들도 있겠죠? 지난 4개월간 꾸준히 사람들을 만나왔고, 그 결과로 지금은 세군데 정도 조건, 시점 협의 중입니다. 막간을 이용해서 이번달부터는 돈벌이도 하고 있죠. 컨설팅을 해주고 있는데 일주일에 이틀 나가고 전에 받는 월급의 70% 정도 받습니다. 덕분에 고용보험 혜택을 한번도 못 받아보게 생겼어요^^.

세 회사는 일부러 조금 작은 곳으로 택했습니다. 그간 10명 정도의 팀원을 이끌었다면 옮기는 곳에서는 제가 좀 더 디테일한 부분까지 챙길 수 있도록 제 경쟁력을 강화해서 앞으로 2~3년안에 제 이름을 걸고 무엇인가 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50대 초반에 여유로운 은퇴를 하고 싶어요.^^ 
 
MF[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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