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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 예술 - 공연

[공연]뮤지컬 스위니 토드 - Hommage a Rigoletto

by 만술[ME] 2007. 10. 5.

LG아트센터에서 하는 뮤지컬 "스위니 토드" (Sweeney Todd)를 다녀왔습니다. 저명한 뮤지컬 작가 손드하임의 최대 히트작인데 국내에서는 초연되는 작품입니다. 그간의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멜로디 중심의 뮤지컬들에 비해 기괴하면서도 음산한 스토리와 독특한 리듬과 음향으로 이루어진 작품인데 문학을 좋아하시는 분들에게는 장르 뮤지컬이라 하면 좀 이해가 될까요?

== 아래 부터는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제가 본공연은 양준모(토드), 박해미(러빗부인), 임태경(안소니), 한지상(토비아스)의 캐스팅 공연이었습니다. 평에 의하면 홍지민씨의 러빗 부인이대단하다 하는데 못봐서 아쉽더군요.

공연자체는 매우 좋았습니다. 비록 귀에 감칠맛 나게 달라 붙는 음악은 아니었지만, 극의 흐름을 이어가는데는 더할 나위없이 훌륭한 음악이었고, 원곡이야 작사와 작곡을 모두 손드하임이 했으니 문제가 없었겠지만 번역된 가사와 곡의 어울림도 제법 맛깔스러웠습니다. 무대도 기괴하고 음습한 분위기를 잘 표현했고, 특수효과와 조명, 스턴트(?)도 좋았습니다. 뮤지컬로도 충분히 스릴러를 즐길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이 놀라왔죠.

중간중간에 보이는 위트나 패이소스도 멋졌습니다. 부조리적이고 엽기적인 장치들이 더욱 더 주인공들과 관객을 동화되게 해주고 결국은 마지막 스위니 토드의 울부짖음에 더욱 공감하면서 전율을 느끼게 해주는 요소로 작용했습니다.

스토리로 보자면세상에 새로울게 없겠지만 이런저런 작품들과의 유사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중 가장 크게는 권력층에 봉사하는 직업을 가진 주인공, 빼앗긴 딸과 행복, 복수, 그리고 복수가 불러온 또하나의 비극이란 점에서 "리골레토"가 떠올랐습니다.덕분에 조안나와 토드가 이발소에서 연출하는 장면에서는 더욱 긴장했는데 다행히 "리골레토"에서와는 다른 대상이 희생되었죠. 물론 예민한 분들이라면 1막 중간쯤 가면 어느정도 결말이 짐작되실 수 있겠습니다.

배우들은 훌륭했습니다. 스위니 토드역의 양준모는 엄청난 카리스마를 지녔더군요. 토드역에 완벽히 몰입되어 마지막의 절규는 정말 관객의 공감을 끌어내기에 충분했습니다. 특히나 눈빛은 섬짓한 살인마에서 고통 받는 남편과 아버지의 모습까지 관객에게 충분히 전달되었죠. 다만 1막 처음부터 너무나 충분히 카리스마적이기에또하나의 악의축인 (이것은 박해미의 문제이기도 한데) 러빗부인의 포스가 약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설정상 토드는 러빗부인과 함께 하면서 점점 사악해지고 광기에 휘둘려야 하는데 양준모의 카리스마덕에 처음부터 러빗부인없이도 살인마로 느껴지는건 극의 자연스런 흐름에 좀 그랬습니다.이렇게주변과 상황의 꼬임에 의해 망가진 캐릭터 일 때, 그래서 토드가 살인마가 아니던 시절의 모습이 오버랩될 때, 마지막의 비극이 관객에게는 더 아프게 다가올 수 있으니까요.

이런 아쉬움은 박해미의 러빗부인이 약했다는데서도 기인했습니다. 안정된 노래와 위트를 보여주었지만 파이를 반죽하는 파워를 제외하고는 박해미의 러빗부인은 그리 설득력이 없어 보였죠. 충분히 요부스럽지도, 사악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늘 보아 왔던 박해미씨의 이미지만 느껴지는건 저뿐이었을까요? 눈을 크게 치켜뜨는 것 외에 다른 연기가 없는 느낌도 들었죠^^. (거침없이 하이킥이 생각나더군요) 만약 러빗부인이 좀 더 요부스러워서 때로는 섹시하게, 때로는 사악하게 토드를 점점 악의 소굴로 끌어 들였다면 극이 좀 더 박진감 있고, 설득력있었겠다 싶습니다.

한지상의 토비아스는 극의 진행에 따라 점점 중요성이 부각되고 마침내 극을 정리하는 흐름과 캐릭터의 성장에서충분하고도 남게 제역할을 해냈고, 조안나나 안소니도 호소력이 부족하기는 했어도 무난했습니다.

이런 주역들의 활약에 못지 않게 어쩌면 더 훌륭햇던 것은 조역들이었습니다. 멋진 목소리로 "Ladies in their sensitivities"를 부르던 비틀 형사역의 박완, 잠깐이지만 관객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가던피렐리역의 정현철, 처음 부터마지막의 반전까지 중요한 단서들을 남루함속에서도 번뜩번뜩 빛나는 아름다운 목소리로 일러주던 (그야말로 복선을 곳곳에 뿌리고 다니던) 거지여자역의 임문희 모두 훌륭했습니다.

우리말로 번역헤서 가사를 분명히 전달하기 힘든 곡들, 특히나 리듬감 덕에 익히기도 힘든 곡들을 부분부분 흐름이 매끄럽지 못해 아쉽고 가사전달이 미흡한 부분들이 있기는 했어도 대체적으로 모두 잘 소화했고덕분에 이런 아쉬움은 금방 잊혀진채 충분히 즐길 수 있었습니다.

결론 : "스위니 토드"는 연쇄살인범의 이야기입니다. 뮤지컬 치고는 하드고어적이고 이런 저런 이유로 등장하는 설정들이 싫으실 분들도 있겠습니다. 그런 분들에게는 당연히 비추고, 이런저런 사회적, 종교적 통념의 파괴와 비틀기가 불편하지 않은 분들이라면 꼭 봐야할 공연이라고 강력하게 추천할 수 있겠습니다.

MF[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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