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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 예술 - 공연

[음악]Leo Borchard - BPO 음반

by 만술[ME] 2004. 12. 30.

지금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지휘자입니다만, 2차 대전 직후 소련의 지배하에 있던 베를린에서 Furtwangler의 공석을 지키고 베를린 필을 이끌었던 지휘자는 첼리비다케가 아닌 레오 보챠드(Leo Borchard)였습니다.

1899년 러시아에서 독일인 부모 밑에태어난 보챠드는 발터와 클렘페러 밑에 있기도 했으며 베를린 필의 파퓰러 콘써트를 지휘해 인기를 모으기도 했었죠. 특히 러시아 레파토리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여 주었던 그는 아쉽게도 나찌가 등극한 뒤에 정치적인 이유로 활동이 금지되고 전쟁중에는 레지탕스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독일이 전쟁에 패하고 소련이 베를린을 점령 했을 때 보챠드는 기존 베를린 필의 단원들을 규합하고 소련군의 지도부를 설득 1945년 5월 26일 당시의 BPO 콘서트 홀로 사용되던 티타니아궁에서의 전후 첫연주회를 비롯한 여러 연주회를지휘했습니다.

계속 이어질 것 같던 보챠드와 BPO의 관계는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3개월만에 막을 내리게 됩니다. 1945년 8월 23일 연주회를 마치고 영국군 장교의 차를 타고귀가하던 보챠드가 당시 수상한 차량에 대해서는 무조건 발포하라는 명령을 받고 있던 미군병사에 의해 사살되었기 때문이죠.

타라(Tahra)에 의해 복각된 BPO와의 음반은 보챠드-BPO의 관계가 지속되었으면 어땠을까란 가정을 추정해 볼 수 있게 해주는 음반으로 34/35년의 텔레풍켄 녹음과 45년의 실황을 담고 있습니다. 특히 글라주노프의 "Stenka Razin"은 한때 푸르트뱅글러의 연주로 오인되기도 했을 정도의 호연이며 이밖에 베버나 차이콥스키의 연주도 발군입니다.



보챠드의 사후 많은 분들이 알고계시는 대로 첼리비다케가 지휘봉을 잡았고, 이후 푸르트뱅글러가 복귀를 해 베를린필을 이끌게 됩니다. 카리스마 넘치는 자켓 사진과 러시아 레파토리에 강했던 점, 레지스탕스로 가담하고 소련군을 설득 연주회를 이끌어 낼 정도의 용기와 기백등의 인간적 면모, 타라의 음반에서 느낄 수 있는 음악성을 생각할 때보챠드가 그렇게어이없는 사고로 세상을 떠나지않았다면 어땠을까란 아쉬움이 많이 생깁니다.

아마... 지금처럼 지워진 역사의 그늘에 있지만은 않았겠죠...

MF[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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