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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게임 - 취미생활

[독서]서재 결혼시키기 - 앤 패디먼

by 만술[ME] 2013. 11. 26.


막스 베버가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 말한 “조건”과 “계기”가 맞아 떨어져 최근에 읽게 된 책이 앤 패디먼의 <서재 결혼시키기>입니다. 우연히 이 책에 대한 글을 접하고(거시다님의 블로그) 관심을 갖게 되어 알라딘에서 찾아보니 무려 반값 세일중, 여기에 미리보기로 에세이 한편을 완전히 볼 수 있고, 두 번째편의 일부까지 읽을 수 있었습니다. 직접 미리보기로 본 바, 바로 지를만 하다는 판단이 서더군요. 그리고 밀려 있는 다른 책들을 제치고 우선순위에 올려놓고 바로 읽었습니다. 


미리보기만 봐도 이 책을 좋아할지 아닐지는 바로 결정이 나기 때문에 관심이 있으시면 직접 미리보기를 읽어 보시기를 바라면서 저는 책에 대한 평가는 하지 않으려 합니다. 오히려 <서재 결혼시키기>를 읽으며 떠오른 생각들, 책과 관련된 저의 경험들을 저자의 방식과 유사하게 비록 저자의 편력에 비하는 보잘 것 없지만 나열해 보고자 합니다.   




1. 독서가 취미라고?


얼마전 인터뷰를 할 일이 있었습니다. 취미가 무엇인가요? 음악을 듣고, 또 책을 읽지요. 순간 상대방의 표정에는 ‘음악감상과 독서가 취미라구?! 한마디로 취미가 없다는 이야기군!’이라고 쓰여 있더군요.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서는 음악감상이나 독서는 취미로 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냥 딱히 취미가 없을 때 하는 말 정도? 그러니까 일년에 한두권 책을 볼지도 모른다는 뜻?


아무튼 저도 독서를 취미라고 한건 아마 이번이 처음일겁니다. 그전에는 그냥 생활이었는데, 읽는 책에서 문학의 비중이 좀 늘어나니 이번에는 취미라고 말하고 싶어졌나 봅니다. 여러분 취미가 없을 때 둘러대는 말이 아니라 진짜 독서가 취미인 사람들도 있기는 있다구요!  



2. 서재를 합치고 분류하고 정리하기


무엇보다 열정을 함께할 사람들(가족, 동료)이 곁에 있는 저자가 부러웠습니다. 그리고 국내의 현실과 비교할 때 느껴지는 공간적(수납공간) 여유가 부러웠구요. 방 한쪽 벽을 책장으로 만들어 안쪽과 바깥쪽 두줄로 수납하고 책위에 남는 공간이 있으면 테트리스 하듯 끼워 넣고 그 앞에는 슬라이드식으로 CD장을 만들어 보관하고, 한켠에는 DVD장을 놓았으며, 거실에는 TV반대편의 소파를 없애고 벽면을 책장으로 채우고, 안방입구 벽에 CD장을 하나 또 세우고, TV옆 거실장에도 아이들용 애니메이션 DVD를 채워놓았지만 여전히 책, 음반, DVD의 수납 공간은 모자라서 일부 책은 박스에 넣어 침대 밑, 발코니에 쌓아놓고, LP도 놓아둘 장소가 없어 그냥 박스들에 담아 발코니에 쌓아놓은 형편이라 미국적 주거 공간의 여유로움에는 질투의 감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모쪼록 지방에서 직장을 얻거나 빨리 돈벌어 은퇴한 뒤 넉넉한 공간에 서재를 꾸미고 그간 박스에 보관한 책들은 물론 본가에서 아직 가져올 생각도 못하는 책들, 그리고 LP들까지 제대로 수납하고 지낼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패디먼 처럼 보는 사람에 따라 약간 강박적으로 보이는 정리방법은 저도 사용하곤 했습니다. 음반은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죠. 다만 책은 아이들책, 와이프책, 제 책이 집안에 자기의 주요 영역을 거점으로 타인의 영역에 약간씩 섞여 있는 관계로 예전같이 제대로 분류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책은 거실을 주거점으로, 제 책과 CD, DVD는 가빈이 장난감과 함께 영토경쟁을 벌이는 이름만 가빈이방인 방을 거점으로, 와이프 책은 거실과 가빈이 방에 일부분을 자치령으로 할당 받아 있는 상태에서 주로 제가 이런 저런 책을 살짝 이쪽 저쪽으로 장소이동을 하면서 영토분쟁을 하고 있죠. 한번 읽고 넣어두는 종류가 아니라 상시로 뒤져 봐야하는 레퍼런스책을 손이 쉽게 닿는 곳에 둔다는 명목으로 거실로 하나 둘 옮기고 있습니다. 이런 침략 과정중에 반대로 아이들 책이나 아내의 책이 슬쩍 제 책들에 섞이는 것을 보면 싫습니다. 아내의 입장에서도 아동심리나 아이들 교육에 대한 책이 링컨 라임이나 리졸리 & 아일스 시리즈 옆에 있는걸 보면 기겁할 일이겠죠.


예전에는 듀이의 10진 분류법을 제 나름대로 개선하여 분야별로, 저자별로 분류하곤 했습니다. 정리되어 있는 책장을 보면 뿌듯했죠. 책장 아래쪽에는 파일박스들을 세워놓고 각종 학술지의 논문을 복사한 것들을 분류해서 묶어 놓았습니다. 초등학교부터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 초반까지 한집에서 살았고 단독주택이었던 관계로 제법 큰방을 갖고 살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겠지만 방에 책상을 두 개 놓아두고 한쪽 벽면은 책장으로 정리했죠. 그때나 지금이나 책이 많아서 책장에 앞뒤 두줄로 꼿는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책장은 유리로 된 문이 달린 것이었는데, 아마 부모님 생각에는 모양도 좋고, 먼지가 들어가지 않으니 좋겠다 생각하셨겠지만 저는 늘 책장을 열어놓고 살았습니다. (어머니께서는 매일 책장 문을 열어 놓는다고 불만이셨습니다) 책장에서 나오는 책들의 기운이 문을 닫으면 막혀버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으니까요. 당시로서는 드믄 완전 개가식 도서관을 가진 대학을 다녔기에 학기 중이건 방학이건 도서관에서 살았습니다. 그냥 쌓여있는 수많은 책들을 누비며 다니는 것만으로 뭔가 영감들이 제게 샘솟는 것 같았습니다. 늘 앉는 자리도 학생들이 가장 선호하지 않는 도서관 입구 쪽의 도서색인 카드 박스 근처였습니다. 이 위치가 아무래도 가장 많은 책들의 기운이 모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도서관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가장 빠르게 파악할 수 있는 자리였기 때문이죠. 덕분에 제 자리는 그야말로 도서관 사서와 같아서 선배, 후배, 동기들이 도서관에 누가 있는지, 있다면 자리는 어디인지, 또는 수업 갔다가 몇시에 돌아오는지 하는 사람의 흐름부터 책에 대한 조언까지 들으러 오는 사교의 자리였습니다. 


도서관에서 공부하다 지치면 제 자리에 와서 저랑 라운지 내려가 커피 한잔을 마시거나 간식을 먹는 게 보통이었기에 저는 평상시건 시험기간이건 거의 40분 공부하고 20분 놀고를 반복했습니다. 오죽하면 어떤 친구들은 제 자리에 와서 제가 없으면 “제발 자리 좀 지키고 있으라”고 메모를 남겨두기도 했죠. 물론 자기가 지금 어디 앉아 있는가 하는 정보도 함께 적어서요. 물론 제 공부걱정 때문에 그런 메모를 남긴 것은 아니고 자기가 커피 함께 할 사람이 자리에 없다는 게 이유였죠.


아직도 제 본가 한켠에는 예전에 보았던 철학, 인문학 리프린트 책들이 쌓여 있습니다. 일부만 지금 살고 있는 집의 서가 한모퉁이에 살짝 자리를 잡고 있죠. 포퍼, 푸코, 데리다, 라캉, 페이어아벤트, 프레게, 비트겐슈타인 등의 책들이죠. 지금 책장을 정리하면서 철학 서적들, 지금은 전혀 가치가 없지만 당시는 애지중지 했던 리프린트 판본들(특히 여백에 제 코멘트들이 빼곡히 적힌)을 다른 책들을 수납하기 위해 박스에 담는다면 어떤 느낌일까요? 정말 이제는 이런 책들이 내 삶에 있어 직접적 연관을 갖거나 최소한 학문으로 먹고 살지는 않아도 이 책들로 단순한 취미를 넘어 무엇인가 사회에 기여하고 사회적 맥락속의 나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닌, 그냥 취미로 책을 읽는 사람임을 드러내는 책장이 된다는 것 - 아마 저도 패디먼이 그랬던 것처럼 목메일 것 같습니다. 이제 나는 정말 책이 삶의 일부분이 아니고 독서를 “취미”로 하는 사람이구나 하는 뼈아픈 진실. 그래서 본가에서 책을 가져올 때 극소수나마 그런 책들을 가져왔을지도 모르고 아직도 그냥 서가에 상징적으로 놓여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3. 퀴즈와 단어 벌레


차인태가 진행하던 <장학퀴즈>가 전국민의 필수방송이었던 어린 시절을, <퀴즈 아카데미>가 국민방송이었던 청소년기를 보낸 관계로 주말이면 집에서 퀴즈 축제가 벌어졌습니다. 때로는 초등학생 주제에 주장원들과 겨루어 뒤지지 않는다는 생각에 뿌듯하기도 했고, 때로는 저 인간들은 뭐지 하는 생각에 좌절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퀴즈쇼 안봐요) 하지만 퀴즈자체에 대한 흥미 보다는 당시의 국민적 정서 때문에 그런 방송을 봤던 것 같습니다. 어느순간 그런 국민적 정서(?)와 제 정서를 일치시키는게 어려워지고 결국 점점 TV 시청 자체를 끊어서 요즘은 EBS에서 하는 영화 세편을 제외하고는 TV를 전혀 안보는 것 같네요.


단어에 대한 집착은 우리말과 관련해서는 없었습니다. 다만 대학 때 2~3년 정도 동료들과 영어로 된 학술적 단어들로 장난을 치기는 했습니다. 철학, 사회학, 경제학, 물리학 등 각종 분야의 책들을 원서로 읽거나 하면서 특이하고 상대가 모를 단어가 나오면 기억해 두었다가 문제를 내고 자랑하는거였죠. 물론 단어의 단순한 뜻만이 아니고 그 작가가 주장하는 맥락에서의 의미를 이해해야 하는 문제였고, 만약 당시 그 단어(개념)에 대한 우리말이 확립이 되어 있지 않은 경우 그에 적합한 우리말을 만들어 내는 것이었죠. 어려운 개념은 국한문 혼용세대였기에 한자들을 끌어들여 해결하곤 했습니다. 약간은 반칙이었죠.



4. 궁정 연애방식과 육체적 연애방식의 책 사랑 중 나는 어떤 쪽일까?


분명히 이전에는 책에 나온 패디먼 가족과 그 부류들 처럼 육체적 연애 방식(책의 물리적 존재 보다는 내용에 가치를 두는 방식)이었습니다. 저는 책 여백에 늘 메모를 했고, 그 여백이 모자라는 경우는 아예 뒷 면지나 앞 면지, 표지 이면 공백에 여러 가지를 적었습니다. 때로는 이도 모자라 포스트잇을 이용해 덕지덕지 붙이기도 했고, 한 장으로 모자라면 연속으로 붙여 본문은 볼 수 없고 포스트-잇만 보이는 페이지들도 있었습니다. 필요하면 자가 분책도 불사했죠. 


그런데 어느 순간 제게 책과의 사랑은 궁정식이 되어 갔습니다. 예전에는 하드커버와 페이퍼백 중 하드커버를 선호하기는 했지만, 그건 복사본(도서관의 원서를 주로 복사해 봤으니 - 이때는 저작권 개념이 확립이 안돼서 무려 도서관에서 서비스를 해주기도 했답니다)의 품질 때문에 그랬던 것이 주요 원인인데 (복사본의 한계 상 책장이 뜯어지면 불편해서) 요즘은 뽀대, 그리고 보관성 때문에 하드커버를 선호합니다. 예를들어 양장과 무선제본이 함께 나오는 문학동네 세계문학의 경우도 하드커버로만 구입합니다. 


제가 궁정식 사랑을 하게 된 계기는 언젠가 본가에서 예전에 저와 열정을 나누던 책들을 오랜만에 집어 든 순간, 예전에는 그 낡은 책들과 늘 함께 했기 때문에 그 낡음이 제게는 친숙했지만 (마치 함께 늙어 가는 부부가 상대가, 그리고 자신이 이제는 예전의 그 아름답던 모습이 아니란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분가를 하고 몇 년만에 다시 접하는 그 책들의 낡은 모습과 매퀘한 냄새가 너무 낯설다는 경험을 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마치 첫사랑의 연인을 오랫만에 다시 보았을 때, 분명히 여전히 사랑하고  또 그녀임을 알고는 있지만 이제는 내것이 아닌듯, 그 향취가 어색하고 주름도 눈에 띠고, 모든 단점이 이제는 그냥 단점으로 보이는 그런 충격 - 오랫만에 보았던 철학책들, 리프린트들, 복사본들, 그리고 각종 서적들은 마치 낡은 헌책방 한켠에서 눅눅하게 썪어가는 그 책들과 다르지 않은 책들로 느껴졌습니다. 제가 보던 제 손때가 뭍은 책이 아닌 남의 손때가 뭍은 책처럼. 


왜일까요? 제가 더 이상 학문의 길로 되돌아 가기에는 늦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과거에 그 책을 아끼고 함께 뒹굴며 무진장 육체적으로 그 책들을 사랑했던 사람이, (비록 그 책들은 늘 변함 없이 그냥 다소곳이 늙어 온 것 뿐이지만) 바로 제가 변했다는 것, 그 책들은 더 이상 제게 아픈 향수만 남겨주지 결코 뜨거운 열정을 다시 불러 일으킬 수 없다는 생각. 이제는 아무리 사랑해도 맺어지지에는 늦었다는 느낌. 


지금도 철학책, 인문학책을 구입하고 읽습니다. 하지만 그 책들은 더 이상 뜨거운 연애의 대상은 아닙니다. 그냥 제게 있어 앞으로 제 삶을 함께 할 뜨거운 열정의 대상이 아닌 그냥 단순한 의무감과 약간의 흥미가 곁들인 "교양" 또는 (복고풍의) "회고"의 대상이죠. 비유하자면 그냥 사교 모임의 파트너 일 뿐. 따라서 뜨거운 연애의 대상이 아닌 그 책들은 가능하면 늘 깨끗해야 하고 친절해야 하며, 때로는 낯설어야 하는거죠. 그리고 그 사교 모임의 파트너들에게 저는 정중해야 하고, 그 책의 여백을 제가 채움으로써 제 흔적을 남기고 그 책들과 다시 연애에 빠지는 "무책임함"을 경계하는 것 아닐까요? (또한 치밀함이 필요치 않고 읽어 나가기 편해야 하기에 이전과 달리 그냥 번역본만 읽습니다.) 


그 책들을 읽는 “순간”에 만족하고 그 이후에 대해서는 그냥 잊어버리는 그런 이유들, 과거에는 책 읽는 순간은 물론, 책들과의 첫 만남, 연애의 과정, 그리고 헤어짐과 다시 만남까지 책의 내용을 넘어 기억하고 기록했던, 다른 사람들이 그리고 스스로도 놀라와하던 책에 대한 기억력이 더 이상 저와는 무관한 일이 된 것은 제가 나이를 먹어서 기억력이 감퇴되어가는 것도 하나의 이유겠지만, 이제 책들과 저의 관계는 단지 사교적 만남 그 이상이 아니기 때문이 아닐까요? 


사교모임 - 그냥 읽은 순간에는 서로 웃고, 즐겁지만, 읽고 나면 그것은 더 이상 제 것이 아니고, 저도 그들 것이 아닌 관계, 그러니 그 순간만이 중요하고 기억도, 추억도 그리 소중하지 않은 관계, 행여 더 깊어지면 서로 상처를 주거나 상처를 받거나 정상적인 삶이 너무 그쪽으로 치우칠까 두려워 그냥 적당히 간격을 두는 관계. 이제 책과 나는 그런 관계로구나 하는 깨달음 - 예전에는 그냥 책이 일상이고 당연한 것이고 어쩌면 먹고사는 것과 직접 연관된 그 어떤 것일지도 모를 가능태를 가지도 있을 뿐 "취미"는 아니었는데 책에 나오는 이야기들이 제 삶이 아니고 "교양"이 되는 순간, 그 순간 제게 독서는 그냥 취미가 된거죠. 


슬프지만 인정해야죠. 전 도덕적인 사람이라 앞으로의 삶을 함께 할 생각이 없이 뜨거운 연애를 할 수 없습니다. 책, 그리고 그곳에 나오는 이야기들과 저는 더 이상 앞으로 삶을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아무리 제가 다시 연애를 한다고 해도, 제가 다시 여백에 제 흔적을 남기며 뜨거운 육체적 사랑을 나눈다 해도, 그건 제겐 무책임한 일일 뿐. 전 그냥 책과는 상관없는 인생을 살 수 밖에 없고, 그 책들은 여전히 저의 정부일 뿐 저의 아내가 될 수 없으니. 그리고 전 그런 연애를 하기엔 도덕적이고 이제는 그 짜릿한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모험심이 없습니다.  



5. 소네트와 시에 대해


누구나 그렇듯 저도 한 때 시인이었습니다. 자칭 시인. 이런 저런 시를 썼죠. 중학교, 고등학교 때. 나중에는 대학에서도. 실존하지만 결국은 제가 만들어 낸 가상의 여인이었던 사람들에 대한 헌시들. 지금도 잘 모르지만 그때는 더욱 몰랐던 “조국”에 대한 알량한 민족주의적 시들. 관념 덩어리의 저항시들.


대부분은 표절이었죠. 단 한줄도 직접적으로 무엇인가를 베끼지는 않았지만, 시 창작의 계기 또는 모티브가 제것이 아닌 표절이었으면 그 시에 담긴 감정은 완전한 제 것이라 할 수 없으니 어쩌면 표절이라 말하지는 못해도 제 시는 아니었다고 말할 수는 있겠습니다. 제 진실로 포장된 남이, 어쩌면 이 세상에 존재조차 않는 가상의 인물이 지어낸 시들.


크게 나쁜 짓은 아니었죠. 그냥 연애 빼고는 제대로 사랑도 못해 본 녀석이 주워들은 사랑의 감정, 소설에서 읽은 사랑의 느낌을 가지고 사랑 운운하는 시를 쓴 것이나 까페에서 혁명에 대해 이야기하며 저항시를 찌끄린 게 범죄는 아니지만, 그게 제 언어, 저의 생각이라 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 나이에 누군들 “자기” 생각이 있고, 자기를 온전히 토해낼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있었다면 진짜 시인이 되었겠죠. 


자신을 온전히 토해내지 못하는 한, 영원히 시인이나 작가가 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때나 지금이나 아마 전 시인이 되지는 못할 것입니다. 제 토사물을 보고 있을 자신감도 비위도 없고 남이 그것을 본다는 상상만으로도 움추려 들기 때문이죠. 이 블로그의 글들이요? 당신은 이 글들이 제 진심에서 쓰여졌다 생각하십니까?



6. 헌사


예전에 면지는 제게 소중한 부분이었습니다. 한 때는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책을 선물하곤 했고, 나름 이리저리 고민해서 헌사도 적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아무리 제가 선물할 책을 고르고 헌사를 짜내도 읽는 사람의 취향 따위는 생각지 않고 제 느낌에 따라 책을 선물하는 것 같아서 책 선물을 피하게 되었죠. 이건 제가 비슷한 선물을 받은 경우 제 취향이 아니면 잘 읽지 않았다는 점에서 제 딴에는 저의 취향과 고민을 담아 선정한 책, 그래서 제 마음을 상징하는 책을 상대가 그냥 어딘가에 치워 버릴 수도 있다는 “거절당함”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7. 책속으로 들어가기


저는 저자처럼 해보지는 못했지만, 그 책속으로 들어가기 또는 책에서 다루는 바로 그 장소에서 책을 읽기가 얼마나 멋진 경험인지, 최소한 어떤 장소에서 과거에 읽은 책을 떠올리것 것조차 얼마나 소중한 경험인지는 알고 있습니다. 출장 덕에 이곳저곳을 돌아다녔고, 그 장소들에서 이전에 읽었던 이야기들을 다시 읽을 수는 없더라도 그 장면을 떠올리며 제가 상상했던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요. 



8. 필기구와 PC


비록 악필이지만 예전에는 손으로 글을 쓰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손으로 쓸 때만이 그 글자들이 제대로 살아 저를 대신해 무엇인가를 말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럴 경우 (악필인 관계로) 제 의지와는 달리 글자들이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언어로 말하고 때로는 저 조차 그 글자들이 무엇을 말하는지 못알아 볼 때도 있었죠. 이미 쓰여진 순간 글자들은 쓰여진 순간 제 통제를 벗어나 스스로의 자율성을 갖게 된다고나 할까요? 


결국 타자기와 워드프로세서는 저 같은 이에게 있어 사실상 축복이나 마찬가지로 드디어 제가 발화한 문자 그대로 모든 사람들이 제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게 된 것이죠. 그럼에도 제게 이렇게 인쇄된 글자들을 “활자(活字)”라 부르는 것은 엄청난 아이러니로 다가왔는데, 우선 그 "활자"들은 전혀 제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의 생명력을 지니지 못한, 심장의 고동소리 따위는 이미 사라져 버린 일종의 박제된 시체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깔끔하기는 하지만 전혀 살아 있는 느낌이 들지 않는 그런 시체들. 이런 시체를 “활(活)”자라 부르니 정말 아이러니 였죠. 제가 보기에 이렇게 박제 되어 전시되는 활자들의 나열은 작가라는 주체로부터 쓰여진 내용을 분리 시키고, 내용을 객관화 시켜서, 그 결과물로부터 생산자를 소외시키는 도구로 보였습니다. 


덕분에 쓰여진 내용과 주체의 소외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 폰트에 대해 공부하고 마음에 드는 폰트를 구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영문폰트 디자인까지 공부하기도 했죠. 그러다가 <사고의 담지자는 문장이며, 문장의 담지자는 폰트다>, <사르트르 시대의 넘어설 수 없는 지평은 마르크시즘이고 우리시대의 넘어설 수 없는 지평은 언어지만 앞으로의 시대의 넘어설 수 없는 지평은 폰트다>라는 궤변까지 심각하게 늘어 놓곤 했습니다. 


물론 그 "활자"들 덕에 전 이렇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기는 합니다.


*  *  *


좀 더 생각해보면 책과 관련된 저만의 이야기들이 더 있을 겁니다. 다만 저자가 펼친 이야기들과 연관해서 언뜻 떠오르는 이야기들을 두서없이 적어보았습니다. 


MF[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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