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 대한 이야기를 제법 오랫동안 포스팅 하지 않은 관계로 약간 의무감에 포스팅 하나를 할까 합니다. 인터넷에 워낙 고수/고수인척 하는 사람들이 많은지라 그냥 저처럼 하수는 물론 고수라는 분들도 가끔은 범하는 실수들을 생각해 봤습니다.
(iPhone4S 기본세팅)
1. 피사체 또는 상황에 대한 두려움
예전 김홍희 작가의 “나는 사진이다”에 보면 누드를 찍을 때 한치의 떨림 없이 셔터를 누르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하수들, 그리고 고수라는 사람들도 한두번은 피사체를 마주할 때 두려움 때문에 사진을 못찍거나 망치게 됩니다.
때로는 피사체에 한발 더 다가가는 것을, 때로는 피사체를 좀더 오래 기다리는/기다리게 하는 것을, 때로는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두려워 하기 때문에 사진을 놓치죠. 단순히 어떤 피사체를 찍는게 상황적인 맥락에서, 도덕적으로 옳은 일인가 갈등하게 되는 상황 말고도 이 순간 분명히 바닥에 엎드려 로우 앵글로 찍어야 더 나은 사진이 나온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내가 여기서 누우면 다른 사람들이 쳐다보거나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을까, 작가도 아니면서 흉내 낸다고 손가락질 하지 않을까하는 두려움에 굴복하곤 하죠.
만약 어떤 피사체를 찍어야 하고 그게 사람이라면 몰래 찍거나 두려워 찍지 못하는 것 보다는 먼저 양해를 구하는 용기를 발휘해 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예를들어 어떤 장면에 아이가 필요했고 (시우가 태어나기 전입니다) 그때 근처에 있는 아이 부모에게 부탁했더니 흔쾌히 모델을 허락해 준 일도 있습니다. (물론 크게 인화해서 보내드린다고 약속했습니다) 조금의 두려움만 극복하면 의외로 기회를 잡을 수도 있습니다.
2. 필름/메모리/배터리 부족
출사를 하다보면 어떤 상황을 마주할지 모릅니다. 처음에는 A산에 올라가서 B꽃 좀 담고 C로 넘어가서 섬을 배경으로 일몰 좀 찍고 오자면 이 정도 장비에 이 정도 준비면 되겠구나 했지만 갑자기 이동중에 특수한 상황을 만나 연사를 날려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고, 오늘은 접사할일 없다고 생각했지만 마크로렌즈가 필요해지는 상황이 언제 생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예전에 배를 빌려 바다까지 나간 상황인데 예상보다 많은 컷을 연사로 찍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당초 계획보다 오랜시간 촬영이 지속되었기 때문에 동료중 한분은 메모리 다쓰고 열심히 백업용 하드에 백업하느라 많은 장면을 놓쳐야 했죠. 저는 일본 시라하마에 갔을 때 그냥 오전에 대충 산책 삼아 나가는 거니 배터리 이 정도면 충분하겠다고 나갔다가 촬영할게 생각보다 많아서 배터리가 간당간당해지자 리뷰 LCD 끄고 촬영해야 했답니다. 그러고도 원하는 만큼 못찍었습니다.
가끔은 준비가 철저하다 생각했는데도 부족한데 준비를 안하면 답은 뻔하죠.
3. 장비 조작 미숙
처음 손에 잡게 된 장비는 아무래도 많은 실수를 야기시킵니다. 그 실수가 렌즈특성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해 발생하는그럴듯한 사진은 만들었지만 좀 더 나은 사진을 못만들게 된 정도의 실수도 있지만, 아예 사진을 망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제가 많이 경험한 것은 일반적인 보급형 DSLR의 경우 모드 선택이 휠로 A/S/M을 조정하게 되어 있는데 덜렁덜렁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 이게 돌아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조금 전까지 A모드로 촬영해서 어떤 피사체를 보고 조리개만 맞춰 연사를 날리는데 ... 아뿔사 어느새 모드 스위치는 M을 가리키고 있고 노출은 제멋대로고...
어떤 경우는 해상도를 낮게 해놨다가 깜빡한 덕분에 몇시간 동안 찍은 사진을 그냥 웹용으로 밖에 못쓰게 된 일도 있고, ISO 세팅을 다시 돌리지 않아 노이즈 지글지글한 사진을 잔뜩 만들어낸 적도 있습니다.
찍기전에는 서부시대 총잡이처럼 빨리 카메라를 꺼내 셔터를 누르는게 중요한 상황일 수도 있으니 찍고 나서 늘 지금 세팅이 내가 자주 사용하는 세팅인지를 늘 확인하는 습관을 들이는게 좋습니다.
4. 백업
요즘 하드의 성능이 좋아지기는 했어도 지난 세월의 추억을 담은 하드가 어느날 날아가 버릴 수도 있습니다. 저도 10년쯤 전에 한번 날려봤는데 이런 저런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80%정도는 복구했지만 20%는 날아갔습니다. 그뒤에는 두군데에 별도로 백업까지 해왔지만 그것도 어느순간에는 귀챦아서 안하게 되더군요. 하지만 분명히 하드는 날아가기도 합니다. 컴퓨터를 여럿이 쓴다면 누군가 실수로 날릴 수도 있구요. 의외로 전문적인 분들이 컴퓨터를 험하게 쓰기 때문인지 더 잘 날리는 것 같더군요.
하드값 싸니까 백업은 꼭 하세요.^^
5. 필요 없는 장비 지르기
다른 사람의 어떤 장비를 빌려 써보거나 하는 경우 그 상황에 맞춰 그 장비를 빌렸던 것이기 때문에 자신은 자기고 있지 않지만 다른 사람이 가진 그 장비에 대한 필요성이 과장되게 됩니다. 예를들어 플래쉬 없이 사진 찍던 사람이 플래쉬를 빌려 써보면 새로운 세상이 열리고 그동안 플래쉬 없이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는게 불가사의하게 느껴지면서 플래쉬 지름에 대한 욕망이 용솟음칩니다.
그런데 막상 그렇게 꼭 필요할 것 같고, 없으면 사진이 안나올 것 같고 한 장비도 막상 지르고 나서 그닥 쓰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세로그립, 플래쉬, 삼각대, 마크로렌즈, 앵글파인더 등등. 솔직히 그 장비가 정말 필요한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은 없습니다. 모든 장비는 있으면 좋아요. 다만 없는 살림에 지갑을 열 (있는 살림이면 무조건 지르시고, 몇 개 더 질러 주위분들 나눠주시면 좋습니다) 합리적 기준을 생각해 보라면 최근 1년정도 또는 6개월 정도 찍은 사진들, 그리고 찍고 싶었지만 못찍은 가상의 사진들을 모아 놓고 10% 정도의 사진에서 그 장비가 필요했다고 느낀다면 지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말은 이렇게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일단 질러봐야 필요한지 아닌지 알 수 있답니다.^^
6. 장비 분실/파손
처음 장비를 사면 박스까지 보관하고 거의 랩으로 싸가지고 다닐 기세지만 어느 순간 장비를 막굴리는게 멋있어 보이는 순간이 옵니다. “장비보다 사진이 우선”이란 말과 함게 뭔가 자기도 장비를 막굴리면 사진 고수가 된 느낌이랄까? 그런데 장비 막굴린다고 사진이 잘나오는 건 아니니 그러진 마시고... 가금 이런 저런 실수로 고수들도 장비를 날려먹고 도난당하고 합니다.
저도 피사체에만 주목하고 움직이다 카메라와 함께 몇 번 굴른적이 있습니다. 다행히 몸도 장비도 다치지는 안았지만 논두렁, 밭두렁에는 빠졌고, 제 사부님은 폐우물에도 빠졌습니다. 아마추어들인 이상 목숨걸고 찍어야만 할 사진은 없고 (물론 그런 상황을 만날 확률이 번개 맞을 확률이나 로또 확률정도는 있겠죠) 장비값 보다 더 비싼 사진을 찍기도 힘듭니다. 멋 때문에, 고수처럼 보이려고 장비 막다루지 말고 그냥 소중히 다뤄주세요.
7. 무료봉사
사진을 찍는다는 소문이 주위에 나면 가끔 청탁을 받게 됩니다. 회사 아유회를 가는데 니가 장비를 가지고와서 행사 사진을 담으라거나 내 조카 돌인데 스냅 사진을 찍어달라거나 하는 거죠. 이 경우 주로 공짜로 봉사해달라는 것인데 이런일 많이 해보신분 아니면 그냥 거절하세요. 이런 일 많이 하신분도 거절하세요.^^ 시간, 돈, 힘 낭비입니다. 결과가 상대 마음에 안들면 (보는 사람마다 호불호가 갈립니다) 오히려 욕먹고 찝찝해요.
사진도 아무리 디지털이라해도 돈들고, 시간들고, 노력들고, 장비 감가상각도 되니 돈 받아야 한다고 해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도 참석해야하는 행사에 사진찍으라고 한다면 돈을 준다고 해도 안하는게 좋습니다. 돈받고 카메라 드는 순간 손님이 아니라 “을”이 되니까요. 손님이 될 사람에게 그런 부탁을 하는 것 자체가 매너 없는 짓이죠.
혹시나 주위에 사진 좀 찍는 사람들 있다고 뭔가 부탁하시려면 명확히 돈주고 시키세요. 사진 잘찍으니 이것 좀 해달라는건 시간 남으니 집에와서 밥도하고 청소도 좀 해달라는 것과 비슷한 일입니다.
8. 귀챠니즘
사진을 찍다보면 가끔 귀챠니즘에 빠져 좋은 사진을 못찍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 초보들이 그런데 예를들어 한두발 피사체에 다가가면 더 좋은 사진이 될 수 있는데 줌으로 대충 땡기고 만다던지 (참고 : 렌즈줌과 발줌의 차이) 조금 높은데 올라가서 찍으면 좋은 앵글이 나오는데 안올라간다던지, 사람들 조금 지나가고 기다렸다 찍으면 되는데 그냥 대충 찍는다던지 하는거죠.
귀챠니즘이 극에 달하면 그냥 눈높이 사진만 찍게 됩니다. 잠깐 앉아서 찍어도 사진이 훨씬 좋아지는데 그냥 찍는 사람 편한 위치, 자세로 찍습니다.
피사체를 바라보는, 피사체와 공감하는 시간을 안갖는 것도 큰 실수입니다. 그냥 셔터 누르지만 말고 잠시 (빨리 눌러야 할 상황도 있으니 그땐 눌러야죠) 바라보면서 왜 내가 이 피사체를 사진으로 담고 싶어하는지 생각해보고, 어떻게 담을지 생각해 보는 것, 이게 정말 중요한데 귀챦아서 그냥 일단 찍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아무튼 저도 많이 하는 실수인데 다른 분들도 참고가 되셨음합니다.
MF[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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