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협력사 사장님께서 수술차 신촌 세브란스에 입원하셔서 정말 오랫만에 신촌에 갈 일이 있었습니다. 태어난얼마뒤부터 결혼하기 직전까지 삼십여년간 쭉 신촌을 근거로살아 왔기에 오랫만에 찾은 신촌은 정말 야릇한 감정을 불러 일으키더군요.
처음에는 신촌로타리에 그리고 초등학교 5학년 때 부터는 서교동에 살았기에 어릴적 뛰어 놀던 곳도 신촌 로타리의 골목길이었고, 유치원도 근처를 다녔으며,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까지 신촌을 중심으로 하는 생활을 했죠. 이후 학생 가외를 본업으로 하며 놀고 먹던(?) 시절에도 홍대앞과 신촌이 주 활동무대였답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평일에는 강남에서, 주말이면 신촌과 홍대에서 지내게 되었지만당시만 해도 어딘지 신촌이 더 정감 있던 곳이었죠. 물론 지금은 강남에서만 누구를 만나거나 하구요.
지금 껏 살아오면서 어찌보면 가장 힘들었던 투병생활도 세브란스에서 했고, 그러다 보니 병문안을 마치고 세브란스 (멋지게 새로운 건물이 들어섰더군요) 정문에서 굴다리를 지나 신촌로타리 까지 걸으며 옛날 기억에 사로잡혔습니다. 십여년전 바로 그길을 비쩍마른 환자로서 걷곤 했으니까요. 정기적 진찰을 받고 돌아가는 길에 어머니와 함께 지금은 현대백화점이 된 그레이스 백화점의 "대화(大和)"라는 소바, 우동 전문점에서 늘 먹던 얼음이살짝 얼려있는 소바도 생각나고...
한곳에 오래살다보니 전 모르는 분들이 절 알아보시는 경우도 많았죠. 백화점이 되기전 신촌시장의 아주머니들이나 각종 상점의 아저씨들... "XX댁 아들이지?" 아마 때돈 버셨을 것으로 생각되는"그레이스 백화점" 사장님댁이나 "형제갈비집" 주인댁과는 부모님들이 아시는 사이었고, 지금은 없어진 크리스탈 백화점에 영화관이 생기고는 영화표는 늘 공짜로 얻을 수 있기도 했죠. 허긴, 신촌 로타리 빌딩들의 상당수가 고모부님과 그 형제분들 소유였으니...
여전히 연대의 독수리는 날아가지 않았고, 굴다리도 그대로지만 정들었던 까페, 술집, 맛집들은 많이 달라졌더군요. 가난한 대학생들의 만남의 장소로항상 붐비던 "홍익서점"은 여전하지만 이제는 스타벅스에서 만나기 때문인지 올사람을기다리는 사람은 별로 없고, 대학시절 이런 규모의 레코드샵이 있었다면 돈 많이 썼겠구나 싶은 신나라 레코드가 멋지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그러고 보면...
제세대가 그나마 "혁명"을 꿈꿀 수 있던 마지막 세대가 아닌가 싶습니다.87년 유월을 승리로 착각하고 그 뒤에 수많은 패배와 좌절을 맛보기는 했지만...
스쳐 지나가는 학생들을 보면서그들이 무엇인가 꿈을 꾸지 못하고 토익점수와 학점에 매달리게 만든건, 이제 불혹의 나이에 다가가는 우리들의 잘못이 크지 않은가란 생각을 해봅니다. 결국 우리는 까페 혁명가에 불과 했던 것일까요? 헤겔을 부모보다 더 사랑한다던 선배가 금은방을 하고 있는 모순은, 자본주의의 얼굴에 침을 뱉겠다던 친구가 증권회사 차장을 하고 있는 현실은...
그러고 보면 신촌의 사진 대신 유니온 스퀘어의 거리 모습을 올리는게 그리 모순된 일은 아닌 듯 싶습니다.
MF[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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