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리히 법칙은 실업자에게도 적용된다]
안전/재해와 관련해서 하인리히 법칙이라는 유명한 법칙이 있습니다. 300 대 29 대 1이라는 법칙인데, 1건의 중대한 재해가 발생하기 전에는 300건의 사소한 징후가 보이고, 29건의 크지 않은 사고가 발생한다는 것이죠. 즉, 대형사고는 예후 없이는 그냥 발생하지 않는다는 법칙인데, 이게 제 경험에 의하면 실업자와 그 지인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을 듯합니다.
제법 영향력 있는 자리에서 실직한 경우라도 리멤버에 300명의 사람이 저장되어 있다면, 밥 또는 차나 한잔하자고 전화 오는 경우는 29명 정도이고, 그중 실제로 만나서 밥이나 차를 마시게 되는 경우는 한건 정도에 불과하더군요. 물론 그것도 퇴임 초기에나 해당되는 일입니다. 그런데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놀다 보면 나가기도 귀찮고 상대가 밥을 사더라도 밥 먹고 균형을 위해 보답으로 차라도 한잔 사는 것도 실업자 입장에서는 아까울 때가 있더라고요.^^ 아울러 이제 산 날 보다 살아갈 날이 적게 남은 입장에서 귀한 시간을 제가 딱히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과 단지 <네트워크>라는 명목으로 보내는 것이 낭비라는 생각을 수년 전부터 해왔기에 만나면 좋은 친구가 아닌 사람들로부터 연락 오는 것도 반갑지 않습니다.
이전 회사에서도, 그전 회사에서도 제발 사내/그룹 내 영업 좀 하라고, 만수산 드렁칡처럼 살아달라고 직원들이 사정사정을 해도 독야청청을 하다 결국은 실업자가 되었는데도 제 버릇은 개 못주는 듯합니다.
[실업급여 이야기]
제법 긴 직장생활을 하면서 해외 답사라는 명목으로 개인돈으로는 타지 않을 비즈니스 클래스를 타고 유명 관광지를 돌아다니며 하루에 수백만 원짜리 호텔에서도 자보고, 회사돈으로 영어회화도 배우고, 와인 아카데미도 졸업하고 학위는 안주지만 속성 MBA 과정도 다녔습니다. 술을 좋아하지 않음에도 늘 다니는 룸살롱에 소위 말하는 지명도 있어봤고, 매달 사회 저명인사를 초청해 특급호텔에서 저녁을 먹으며 강연도 듣고 환담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반면 IMF, 리먼브라더스 등의 풍파도 격고 워크아웃이나 부도/법정관리도 경험했습니다. 몇 번 없는 이직 중에 두 번을 비자발적 강제 퇴사를 당하기도 했죠. 그래서 실업급여도 최근을 포함해서 두 번 받아봤습니다.
이번에 실업급여를 받으면서 놀랐던 것은 상한선은 예전과 거의 다름이 없음에도 하한선은 많이 올라 상한 금액과 하한 금액이 하루 3천 원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상한 금액을 받는 입장에서는 약간 억울한 감정이 없지는 않으나 하한 금액의 상승은 너무나 잘 된 일이란 생각을 했고, 이 금액이 더 높아져서 월 250만 원, 가능하면 300만 원 정도로 올라갔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특히 실업급여와 관련해서 일부 문제점을 지적하고 부정적인 여론이 있지만, 실업급여를 수급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는 것 자체가 우리나라와 같이 고용에 대해 수급자 중심으로 된 시장에서는 끔찍한 상황이며, 일반적인 소득 수준을 생각하면 실업급여조차 못 받으면 저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지금 보다 더 불리한 입장에서 취업 시장에 임할 수밖에 없어 실직으로 인한 여파가 단기간에만 미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영향으로 수급될 수 있는 위험이 있습니다. 지금 실업 급여에 대해 부정적인 여론을 동조하는 사람들이 어떤 처지의 사람들인지는 모르겠으나 한 번이라도 실업급여를 수급해야 할 상황에 처해 그 혜택을 받아보면 실업에 대한 좀 더 견고하고 긴 안전판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입니다.
[다시 비룡재천을 하게 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만에 다시 일하게 되었습니다. 제법 오래전에 인터뷰를 하고 대표까지는 어느 정도 결정된 사항이었는데, 작금의 정치적 상황 때문인지 그룹 쪽의 의사결정 지연으로 무기한 연기되어서 인연이 아닌가 보다 생각하고 잊고 있었는데, 갑자기 연락이 와서 출근하게 되었습니다. 그룹 자체는 이전 다니던 곳 보다 재계순위도 높고 여력도 좋은 것 같은데, 입사 조건을 좀 박하게 제시해서 다소 고민도 되었지만 허생도 10년 간 책을 읽기로 했다가 마눌님 성화에 못 이겨 7년 만에 돈을 벌러 나섰는데, 더 놀고 있자니 눈치도 보이고 요즘 같은 경제상황에 하루라도 월급 받고 사는 게 남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더군요. 이전 회사는 본부제여서 본부장이었는데, 이곳에서는 실을 맡아야 해서 실장이 되었습니다. 드라마에서는 <실땅님>은 젊은 총각이 해야 맛이지만 현실은 1년씩 계약연장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美중년일 뿐… 새로운 곳으로 옮기면서는 늘 <마지막 직장>이라는 각오를 다지지만 본의 아니게 현실은 요미처럼 질기게 죽었다 살아나기를 반복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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