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샘물에 젖은 동굴에 들어서자마자 남자의 출현에 깜짝 놀란
요정들은 발가벗은 그대로 가슴을 쳤고, 갑작스런 비명으로
온 숲을 메우며 디아나 주위로 몰려가 자신들의 몸으로 여신의 몸을
가리려 했다. 하지만 여신은 그들보다 키가 더 컸고,
그들의 위로 머리 하나만큼 우뚝 솟아 있었다.
디아나는 옷을 벗은 자신의 모습이 드러나자
마치 기울어지는 석양에 물든 구름 또는
자줏빛 새벽의 여신처럼 얼굴이 빨개졌다.
여신은 시녀들의 무리가 빈틈없이 둘러섰는데도
약간 옆으로 돌아서서 얼굴을 뒤로 돌렸다.
여신은 화살을 준비해두지 않은 것을 후회하면서
가진 것은 물밖에 없어 물을 떠서 남자의 얼굴에 끼얹었다.
그리고 여신은 그의 머리털에 복수의 물을 뿌리며
그의 불행한 미래를 예고해주듯 이렇게 덧붙였다. "자, 이제는
옷 벗은 날 보았다고 말해도 좋다. 말을 할 수 있다면 말이다."
여신은 더 이상 위협의 말은 하지 않은 채 물이 뿌려진
악타이온의 머리에 오래 사는 수사슴의 뿔이 돋아나게 했고,
목은 길게 늘였으며 귀의 위쪽 끝은 뾰족하게 만들었다.
손은 발굽으로, 팔은 긴 다리로 바꾸었으며 그의 몸에 얼룩덜룩한
모피를 입혔다. 이에 덧붙여 여신은 그의 마음에 공포를 불어넣었다.
오비디우스, <변신이야기> (천병희 옮김 / 숲), III 177~197
다른 글에서 한 때 아르테미스와 악타이온의 이야기에 심취했고, <아르테미스의 초상>이라는 습작 단편도 썼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따라서 미술작품과 그 작품을 표지에 사용한 음반을 소개하는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아르테미스/디아나와 악타이온의 이야기를 다룬 샤르팡티에의 오페라 또는 전원곡 <악테온>으로 시작하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악테온>에 붙은 전원곡 / 오페라라는 명칭에서 전원곡(Pastorale en musique)이라는 장르는 17세기 중반에 프랑스에서 유행했던 장르로 처음에는 노래와 발레 등이 이어지는 목동이 등장하는 전원문학극을 지칭하는 말이었지만 전원풍이 곁들여진 그리스/로마 신화 이야기를 기반으로 한 연극에 음악을 붙인 장르로 변모하면서 오페라와 구분화기 힘든 장르가 되었고, 때문에 <악테온>은 오페라 또는 전원곡으로 부릅니다. 단막극으로 구성된 작품은 총 6개의 장면으로 나뉘는데 그 장면은 아래와 같습니다.
(1) 악타이온을 위시한 사냥꾼들의 사냥
(2) 숲 속 깊은 샘물에서 디아나와 님프들의 목욕
(3) 사냥에 지친 악타이온이 디아나가 목욕하는 곳에 접근했다 발각되는 장면
(4) 디아나의 저주로 사슴으로 변해가는 악타이온
(5) 사슴으로 변한 악타이온을 동료들과 사냥개들이 추적하며 악타이온을 부르는 장면
(6) 헤라/유노가 나타나 사냥꾼들에게 진실을 알려주고 모두 슬퍼하는 장면
샤르팡티에의 <악테온>을 담은 음반이 많지는 않고, 윌리엄 크리스티와 레자르 플로리상의 음반과 오늘 소개하는 폴 오데트와 보스턴 고음악 음악 축제 실내악 앙상블의 연주를 담은 CPO의 음반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Charpentier: Actéon (Sheehan, Wakim / O'Dette, Boston Early Music Festival Vocal & Chamber Ensembles / CPO)
보스턴 고음악 축제 실내악 앙상블의 음반은 주세페 체사리의 <디아나와 악타이온>을 표지 이미지로 사용했습니다. 악타이온의 이야기를 담은 그림은 몇 종이 잘 알려져 있는데, 그중 작가의 유명도로 따지자면 렘브란트의 <목욕하는 디아나, 그리고 악타이온과 칼리스토의 이야기>와 티치아노의 <디아나와 악타이온>과 <악타이온의 죽음> 일 것입니다만, 렘브란트의 그림은 디아나와 연관된 두 개의 신화를 넓은 앵글로 각각 오른쪽(칼리스토)과 왼쪽(악타이온)에서 동시에 보여주고 있어 음반표지로 사용하기에는 인상적이지 않을 수 있고, 티치아노의 그림은 전체 줄거리보다는 디아나의 나신을 목격하는 순간과 악타이온이 죽어가는 순간의 묘사에 치중되어 있어 조금은 부족함이 느껴집니다. 반면 체사리의 그림은 목격의 순간, 사슴으로 변해가는 악타이온의 모습에 달려드는 사냥개까지 한 장면에 담아내고 있어 음악극의 내용을 충실히 담아내고 있습니다. 체사리는 같은 주제로 이런저런 작품을 남겼고, 같은 구도로 작업한 그림도 두 점이 있습니다. 하나는 음반 표지로 사용한 루브르 박물관 소장 버전이고, 다른 하나는 아래 볼 수 있는 부다페스트 미술관의 버전입니다. 루브르 버전은 목판에 유채(47.5 * 66 cm)이고, 부다페스트 버전은 동판에 유채(50 * 69 cm) 입니다. 자세히 보시면 악타이온의 팔 모양이나 색감 등 차이가 있습니다.
카발리에레 다르피노(Cavaliere d'Arpino)라는 별명으로 불린 체사리의 그림은 대표적인 매너리즘(Mannerism)/마니에리스모(Manierismo)의 작품인데, 우리에게는 미술사 서적으로 유명한 조르조 바사리, 스페인 황금시대의 대표적 화가 엘 그레코, 재치 있는 초상화로 유명한 아르침볼도 같은 화가들이 이 매너리즘에 속한 화가입니다. 많은 예술적 경향이 그렇듯, 바로크나 인상주의처럼 매너리즘이라는 용어도 중립적인 의미로 사용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바사리가 사용한 maniera(유행)이라는 말에서 비롯한 매너리즘은 르네상스와 바로크사이의 과도기로 폄하되고는 했으나 현재는 좋게 보자면 르네상스의 이념에 대한 세련화로, 나쁘게 보자면 이념에 대한 곡해로 보는 두 경향이 존재합니다. 세련됨의 극치로 우아함을 추구한 것으로 보던 과장과 곡해로 보건, 작품에서 드러나는 특징은 위 체사리의 그림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정교하고 세련된 기법, 과감한 색채의 사용, 크기나 원근법의 왜곡을 통해 긴장감이 넘치는 극적 장면을 보여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악타이온의 갑작스러운 등장은 디아나 여신과 함께 있던 님프들을 놀라게 하는데, 체사리는 다섯 여신의 동작을 각각 다르게 표현하면서도 그 동작을 과장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과장된 동작은 이들이 진짜로 놀란다기보다는 뭔가 놀람을 가장하고 있다는 의심이 들게 해 줍니다. 유혹하는 듯한 자세로 관객에게 등을 보이며 돌아선 맨 왼쪽의 님프 곁에서 그녀를 부축하는 듯한 포즈를 취한 두 번째 님프의 모습을 보면 이 점이 더 명확해지는데, 그녀는 오히려 악타이온 쪽으로 몸을 돌려 고혹적인 눈길로 악타이온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시선은 악타이온의 시선과 마주칩니다. 아울러 왼쪽에서 세 번째 님프는 비록 고개는 돌리고 있지만 손의 자세는 악타이온과 일치하고, 막상 상체는 살짝 악타이온 쪽으로 틀어서 나신을 그쪽으로 향하게 함으로써 유혹하는 듯합니다. 맨 오른쪽의 님프 역시 이 상황을 피하기보다는 상체를 악타이온 쪽으로 틀어 악타이온을 바라보며 그의 시선을 갈구하는 듯한 표정을 짓습니다. 물을 끼얹는 디아나 역시 시선을 피하기보다는 오히려 악타이온을 바라보며 여섯 명 중, 가장 노출이 심한 자세로 악타이온을 정면으로 바라봅니다. 그리고 이들의 성숙하고 여성적인 육체와는 상반된 앳된 소녀 같은 얼굴은 관객에게 묘한 에로스적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사냥개들 마저 위협적이라기보다는 이 순간을 즐기며 깡총거리며 주인의 시선을 갈구하는 것 같습니다. 사슴뿔이 머리에서 돋아난 악타이온의 자세와 표정은 저주를 받아 고통에 찬 모습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디아나와 님프들의 마음과 육체를 정복한 정복자로 보이며, 사슴뿔은 이 정복을 상징하는 왕관으로 보입니다. 더구나 악타이온은 파란색 상의에 붉은 망토를 입어 고귀한 존재로서의 상징성을 드러냅니다.
(몇몇 사건에서 냉혹한 모습을 보여준 아르테미스이기는 해도) 단지 자신의 나신을 보았다는 이유로 악타이온에게 내린 형별이 지나치게 잔인하다는 관점들도 있어 이에 대한 해결로 오페라 <악테온>에서는 마지막 6장에서 유노/헤라가 유피테르/제우스가 바람을 피운 에우로페(악타이온의 아버지 카드모스와 남매지간)의 핏줄인 악타이온을 벌주겠다는 의도로 디아나/아르테미스의 손을 빌렸다는 이야기를 직접 전달하는 장면을 배치해서 악타이온이 단순히 처녀신의 나신을 보았다는 것만으로 죽음을 맞이한 것이 아닌 골이 깊은 복수의 서사 구조를 만들어냅니다. 하지만 체사리의 그림은 디아나와 악타이온의 이야기에 그런 사족 같은 뒷이야기 따위는 필요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림은 <시선>을 다양한 방법으로 강조하는데, 본다는 것, 그것은 인식을 의미하고, 그 인식은 인간 남성인 악타이온이 디아나를 신이 아닌 여성으로 인식했음을 상징합니다. 중세에 성상(聖狀)에 대한 논쟁이 지리멸렬하게 이어진 이유도 결국은 고귀하고 신성한 존재를 감각으로 인식한다는 것의 필요성/정당성에 대한 문제제기였고, 악타이온이 디아나를 <바라보았음>은 그녀의 신성을 벗겨버린 신성모독적인 사건이라 해석할 수 있고, 디아나가 견딜 수 없었던 것은 바로 이 시선 = 신성성의 강탈 = 여성성의 획득이었던 것이죠. 그리고 체사리의 그림은 역설적으로 이 시선을 상호적인 것으로 표현함으로써, 더 나아가 악타이온의 시선을 희구하는 존재로서 여신들을 묘사함으로써, 이 비극적인 사건을 전혀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게 해줘 익숙한 신화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뒤집으며, 예술이 가진 해석의 힘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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