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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 예술 - 공연/역사와 음악 시리즈

[음악]역사와 음악 (12) 지중해의 역사와 음악 - 우리의 바다, 동-서의 대화 (MARE NOSTRUM, Orient-Occident : D

by 만술[ME] 2026. 1. 20.

'지중해의 정체성'을 규정하거나 혹은 (브로델이 강력하게 역설했듯이) 지중해의 어떤 물리적 특성이 인간의 경험을 형성했다고 주장하기 위해 지중해 역사를 몇 가지 공통 요소로 묶으려 하는 것은 일견 그럴듯해 보인다. 하지만 지중해의 기본적 통합성을 주장하려는 그런 시도야말로 지중해 유역과 섬들에 거주했거나 또는 지중해를 오간 사람들을 잘못 이해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통합성을 찾기보다는 다양성에 주목해야 한다. 게다가 인종, 종교, 정치적인 다양성은 지중해 일대로부터 오는 외적 영향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어 있었고, 그러므로 항상 유입 상태에 있었다. [중략] 지중해 유역은 언제나 지중해 자원을 이용하거나 혹은 지중해 산물을 여건이 좋은 곳에서 나쁜 곳으로 이동하여 생계를 유지하는 법을 터득한, 배경이 천차만별인 사람들에게 만남의 장을 제공해 주었던 것이다.

- 데이비드 아불라피아, 위대한 바다 : 지중해 2만 년의 문명사 (이순호 옮김, 책과함께)

 
 
지중해는 유럽의 역사에서 따로 항목을 만들어도 될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데이비드 아불라피아의 방대한 책인 위대한 바다 - 지중해 2만 년의 문명사나 아불라피아 편집의 지중해 세계사 - 세 대륙이 만나는 바다, 그 교류와 각축의 인류사 같은 책이 지중해를 주인공으로 엮은 역사서 일 것입니다. 이 시리즈의 지난 글에서 볼 수 있듯, 조르디 사발은 민족, 종교의 화합과 갈등의 역사 속의 음악의 역할에 주목해 왔습니다. 그런 그에게 다양한 민족과 종교가 어울려 살아가며 갈등해 온 지중해의 역사는 가장 흥미로운 대상 중 하나일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음반 우리의 바다, 동-서의 대화 (MARE NOSTRUM, Orient-Occident : Dialogues)는 두장의 음반에 지중해의 긴 역사와 그 역사에서 함께한 음악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표지그림 - 엑세키아스(Exekias), 바다를 항해하는 디오니소스 / 킬릭스(Kylix)의 그림 발췌 (BC540-530년 / 국립 고대미술관 / 독일, 뮌헨)
고대 그리스의 유명한 도공인 엑세키아스의 킬릭스에 새겨진 이 그림은 디오니소스의 해적들에 의한 납치 신화를 그린 그림입니다. 해적들이 디오니소스를 왕자 정도로 생각하고는 납치해서 몸값을 받으려 했다가 그의 신성(神性)에 놀라 바다에 뛰어들고 곧 돌고래가 되었다는 이야기인데, 이 신성의 드러남의 묘사로는 배안에서 포도나무가 자라고 와인이 넘쳐흘렀다는 것이 있습니다.

이 술잔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동생인 뤼시앵에 의해 불키(Vulci)에서 발굴되어 1841년 바이에른의 루트비히 1세에게 팔렸고, 당시 수도이자 지금은 주도인 뮌헨의 국립 고대미술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디오니소스가 납치되게 된 것이 포도나무를 전파하던 여행 중에 일이고, 이야기의 배경인 바다는 당연히 지중해이니, 술잔에 새겨진 디오니소스의 일화를 그린 그림은 지중해를 통한 문화의 전파와 그 영향을 다룬 이 음반의 표지로 제법 어울린다 할 수 있습니다.  

 
 
지중해의 물리적 환경
 
지리시간에 지중해성 기후(Cs / C는 온대 s는 여름 건조)라는 명칭을 배우기에 지중해의 기후가 천편일률 적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지중해에는 해안에 접한 높고 가파른 산들의 영향으로 유럽에서 가장 건조한 곳(스페인 알메리아)과 습한 곳(몬테네그로 츠르크비체)이 병존하는 극한성도 지니고 있습니다. 대략 지중해성 지후는 여름에는 덥고 건조하고 겨울에는 습하지만 상대적으로 따뜻합니다. 그렇기에 생육은 겨울-봄에 일어나고 여름은 오히려 우리의 겨울과 같은 휴지기가 됩니다. 하지만 지역별 강수량 등이 연도별 편차가 심해 예측하기가 힘들기도 합니다.
 
지중해의 섬은 단순히 육지가 바다로 인해 갈라진 곳이라기보다는 각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거대한 섬인 크레타의 경우에는 섬안에도 다양한 지형이 공존해서 사막, 숲, 산맥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이 섬들은 해적 같은 다양한 외침에 저항하거나 항해자들에게 항구를 제공하면서 각자들의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고, 또 외부와 영향을 주고받기도 하면서 독특함과 공통성을 모두 가지고 있는 문화로 발전합니다.
 
지중해의 햇살은 지중해로 유입되는 강물보다 더 많은 양의 물을 증발시킵니다. 그리고 이 부족한 물은 지브롤터의 좁은 해협으로 밀려오는 대서양의 바닷물로 보충합니다. 그리고 동쪽으로는 보스포루스 해협을 통해 흑해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아름다운 광장이 붉은 광장이 된 것처럼 흑해라는 명칭은 오스만 제국에 의해 북쪽의 바다라는 뜻으로 불린 것이 기원이 되었고(북방 = 검은색) 오스만제국 입장에서는 서쪽인 지중해는 백해(서쪽 = 흰색)로 불렀습니다. 대서양에서 물이 끊임없이 지중해로 흘러 들어오기에 지브롤터를 넘어 항해하기는 무척이나 위험하고 힘든 일이었고, 그래서 지중해 문명은 헤라클레스의 기둥을 서쪽 끝으로 인식하게 됩니다만, 반대로 대서양으로부터의 외부의 침입자들은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지중해로 유입이 가능했습니다.
 
지중해하면 떠오르는 올리브는 지중해 지역의 토종 식물이지만, 파스타 같은 지중해 요리의 주재료인 밀은 신석기시대에 서아시아로부터 도입된 외래종이 정착하면서 많이 재배된 경우입니다. 지금이야 상상하기 힘들지만 그리스에는 고전기까지 사자가 있었다고 하니 헤라클레스가 12 과업 중 첫 과제로 네메아의 사자를 죽여 그 가죽을 입고 다닌 것이 허황된 이야기는 아닙니다.     
 
우리의 바다(Mare Nostrum)의 탄생
 
우리의 바다라는 명칭은 카르타고와의 전쟁에 승리한 후 로마인들이 지중해를 부르게 된 이름인데, 로마의 세력이 확장됨에 따라 점차 그 사용 범위가 처음에는 로마의 근해나 헤라클레스의 기둥까지의 서지중해를 이르던 명칭에서 지중해 전역으로 넓어졌습니다. 그리고 지중해를 우리의 바다라는 이름으로 부를 만큼 동서의 전 해상을 지배했던 것은 로마가 유일하기도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지중해가 제법 깊은 바다임에도 장벽보다는 통로로 이용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장벽은 북쪽의 경우에는 산맥이 남쪽으로는 사막이 해안과 내륙의 교류를 차단하는 기능을 했고, 고대부터 지중해는 다양한 교역에 이용되면서 문화, 경제적인 교류와 통합에 이바지했습니다. 특히나 크고 작은 수많은 섬들은 고대의 항해술로도 지중해를 건널 수 있게 함과 동시에 정착지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물론 교류는 평화적인 것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처럼 아주 오래전부터 지중해는 침략과 정복의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바르바로사 같은 수많은 유명 해적의 온상이어서 로도스, 훗날 몰타의 구호 기사단도 하는 일은 해적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전쟁으로는 로마-카르타고의 전쟁,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의 악티움 해전, 레판토 해전, 그리고 나폴레옹 전쟁기의 트라팔가르 해전 등의 무대도 지중해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해전은 아니어도 주요한 많은 전쟁/전투가 지중해역에서 벌어졌고 이런 주요 해전과 전투는 지중해의 세력의 균형과 지형을 바꾸곤 했죠.
 
아울러 지중해는 다양한 문화적 상상력의 원천이기도 했습니다. 미의 여신인 아프로디테는 지중해의 거품에서 탄생했고, 오뒷세우스는 10년간 지중해를 방랑했으며, 하늘을 처음 날아본 인류인 이카루스는 지중해에 추락했습니다. 비단 신화의 상상력뿐 아니고 에드몽 당테스는 자신의 보물이 숨겨진 지중해의 몽테크리스토 섬의 이름을 따서 백작을 칭했고, 크레타가 아니면 조르바 같은 인물이 존재할 수 있을까 의문이며, 지중해를 배경으로 하지 않았다면 리플리의 행각은 뭔가 더 음험한 욕망을 반영했을 것 같습니다.    
 
지중해의 여러 역사적 사건들
 
BC 8-6세기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의 시대
 
BC 600년경 페니키아인들이 근동에 정착하고 서지중해 쪽으로 진출해서 그리스의 섬들, 북아프리카 해안, 이베리아 반도까지 식민지를 건설
 
BC 490년경 그리스 도시국가 연합과 페르시아와의 전쟁이 시작되고 살라미스 해전의 승리로 그리스가 페르시아를 몰아냄
 
BC 323년 알렉산더 대왕의 죽음으로 헬레니즘의 시대가 도래함
 
BC 146년 카르타고의 파괴와 함께 장기간에 걸친 로마와 카르타고 간의 전쟁이 막을 내리고 로마의 서지중해 정복의 기원이 됨
 
BC 29년 아우구스투스는 프린켑스가 되어 팍스 로마나(Pax Romana)의 시대를 열고 지브롤터에서 근동에 이르는 지중해의 바다가 로마인의 우리의 바다(Mare Nostrum)가 됨
 
AD 324년 콘스탄티누스 1세는 콘스탄티노폴리스를 건립하고 로마의 수도로 정함. 황제는 로마를 떠나서 다시는 돌아가지 않음
 
711년 무슬림에 의한 이베리아 반도 침략이 시작되고, 점령지역은 알-안달루스가 됨
 
1054년 동-서 교회의 분열. 서로마제국의 몰락으로 프랑크 왕국과 밀착 관계를 형성할 수 밖에 없었던 서방 교회와의 갈등은 급기야 동-서 교회의 대분열로 이어짐
 
1095년 십자군 전쟁의 시작. 이후 예루살렘 왕국의 성립과 살라딘에 의한 예루살렘의 재탈환으로 이어짐
 
1299년 오스만 1세에 의해 오스만 제국이 성립. 아나톨리아에서 셀주크를 몰아내고 세력을 확장
 
1347년 흑사병 발발. 그 여파는 인구의 1/3이 사망했다는 주장도 있음
 
1442년 알폰소 5세의 나폴리 정복으로 아라곤 왕조와 나폴리와의 관계가 시작됨
 
1453년 오스만 제국에 의한 콘스탄티노폴리스의 함락. 지중해를 둘러싼 기독교 세력과 오스만 제국의 갈등의 역사가 시작됨
 
1492년 이사벨 1세와 페르난도 2세에 의해 그라나다가 함락되고 알-안달루스에서 무슬림 세력이 축출됨 
 
1571년 레판토 해전으로 오스만 제국의 서지중해로의 진출이 중단됨
 
1605-1615년 레판토 해전에 참가했던 세르반테스가 돈 키호테를 출간
 
1659년 스페인과 프랑스의 기나긴 30년 전쟁이 종료
 
1798년 나폴레옹은 알렉산드리아에 상륙하고 이집트 정복을 시작. 이후 오스만 제국은 점차 쇄락의 길을 걷게 됨
 
1859년 프랑스 자본에 의해 지중해를 흑해와 대서양에 이어 새로운 바다인 홍해로 이어주는 수에즈 운하의 공사가 시작됨
 
1878년 산 스테파노 조약에 의해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루마니아가 독립하고, 보스니아-헤르체코비나는 자치권을 획득했으며, 불가리아도 자치정부를 수립
 
지중해의 음악
 
조르디 사발의 음반에 담긴 음악은 세파르드 유대인, 베르베르, 그리스, 아랍, 알-안달루스 등의 구전에 의한 음악과 중세시대 다양한 문헌에 남겨진 음악을 두 축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두장의 SACD에 담긴 28곡의 음악은 기악곡-성악곡이 번갈아 수록된 구성으로 되어 있는데, 각각의 곡을 통해 지역적, 민족적, 언어적, 종교적 독특함을 느낄 수도 있지만 다양한 민족과 종교, 그리고 문화의 침략, 이주, 확장으로 대변할 수 있는 지중해의 역사가 말해주듯, 이 이질적인 것들의 통합과 공통분모 또한 느끼게 해 줍니다.   
 
음반에 수록된 곡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CD 1]
 
La Guirnalda de rosas : Una matica de ruda
Romance Sépharade (Espagne XVe s. / Rhodes)

Saltarello
Alfonso X El Sabio. Cantigas de Santa Maria n.77-119 (Espagne)

Kamti Beivshan Layla (improvisation sur le Cantique des Cantiques)
Chant Hébreu (Israël)
 
Gagauski
Danse turque (Balkans)
 
Berceuse Amazigh
Tradition Berbère (Agadir, Maroc)
 
A la una yo nací (instr.)
Sépharade (Sarajevo)

Üsküdar
Chant traditionnel (Turquie)
 
Las Estrellas de los cielos (improvisation instr.)
Sépharade (Alexandrie)
 
LaMoledet shuvi roni
Asher Mizrahi (1890-1967) (Jérusalem)

Taksim & Makam Kurdi Pesrev (instr.)
Angeli. (Grèce ca. 1680)
 
Les Trois Principes Alef, mem, shin
Texte kabbalistique du livre de la Création Sépharade (Occitanie IXe s./Turquie)
 
Taksim - Pesendîde « Saz Semârsi » (instr.)
Selim III. Istanbul (1800)
 
Noumi noumi yaldati
Berceuse Hébraïque (Israël)
 
La Armada Turca (instr.)
Mélodie Sépharade (Istanbul)
 
[CD 2]
 
En la Santa Helena (instr.)
Sépharade (Sophie)
 
Shaar petach Dodi
Salomon In Gabirol. Chant Hébreu (Israël)
 
Taksim Kanun (improvisation)
Hakan Güngör (Istanbul)
 
Nana andaluza Duerme mi niña
Traditionnel (Espagne)
 
El Rey que tanto madruga (instr.)
Sepharade (Maroc)
 
Ana Av Rajman
Rabbin David Buzgalo. Chant Hébreu (Maroc)
 
Chominciamento di gioia (Istanpitta)
Mss. Trecento (Italie ca. 1300)
 
Berceuse Kimisou Haidemeno Mou
Chant traditionnel (Grèce)
 
El cant dels Aucells (instr.)
Chant traditionnel (Catalogne)
 
Hon Tahon
Chant Hébreu (Israël)
 
Taksim & Makam « Rast Murass'a »
Mss. D. Cantemir n. 214 (Istanbul, 1690)
 
Adonenu Elohenu
Sepharade (Tunisie)
 
Taksim & Danse Bulgare
Traditionnel (Bulgarie)
 
Mireu el nostre mar (Improvisation)
M. Forcano (paroles), F. Savall (musique)
 
수록곡을 보면 알 수 있듯, 음반은 음악의 기원을 지역, 언어와 함께 종교적 기원까지 짐작할 수 있도록 상세히 표기해 놓았습니다. 참고로 기악곡에서 많이 보이는 탁심(Taksim / Taqsim)은 즉흥연주로 발칸이나 동방에서 주로 연주되는 음악 형식입니다. 수록된 음악 중에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곡으로는 첫 음반 7번 트랙의 튀르키예 민요인 우스크다라일 것입니다.
 
조르디 사발의 음반에서는 두둑(Duduk), 우드(Oud), 모리스카(Morisca) 등 지중해 전역의 고악기들이 사용됩니다. 이 악기들이 내는 동양적이면서도 서양적인 묘한 음색이 대화(Dialogues)라는 부제에 부합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발은 단순히 여러 나라 곡을 모아 다양한 악기로 연주한 것에 그치지 않고, 서로 다른 종교(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의 음악가들이 함께 즉흥 연주(Taksim)를 하게 함으로써 음악적 공존을 실천합니다. 이 지점에서 이 음반은 앞선 인용글에서 아불라피아가 말한 만남의 장으로서의 지중해와 일맥상통합니다.
 
 
보너스 음반 - 크리스티나 플루하 / 메디테라네오 (Mediterraneo)
 
조르디 사발의 우리의 바다 음반에 곁들여 들으면 좋을 음반으로는 크리스티나 플루하의 메디테라네오 음반을 추천할 수 있습니다. (과거 제 블로그에서 간략하게 이 음반을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이 음반 역시 제목처럼 지중해 유역의 음악을 폭넓게 다루고 있습니다. 다만 두 음반은 추구하는 바가 상당히 다른데, 조르디 사발의 음반이 많은 부분을 세파르디 유대인의 전통에 많이 의존해 다양한 지역의 고음악을 다루고 있다면, 플루하의 음반은 그레코-살렌티노 노래(Canto Greco-salentino)의 전통에서 출발해 서쪽으로는 포르투갈, 동쪽으로는 튀르키예까지 그 영역을 확장하고 있고 전통에 영향을 받은 동시대 음악까지 다루고 있습니다.
 
그레코-살렌티노의 기원은 기원전 8세기경 남부 이탈리아 지역에 그리스인들이 정착하면서 시작되었는데, 시칠리아, 칼라브리아, 아풀리아 일대는 로마인들이 마그나 그라이키아(Magna Graecia)라고 부를 정도로 그리스인들이 밀집해 살았습니다. 이후 비잔티움 제국의 통치기에 그리스어와 정교의 성가 전통이 이어졌는데, 이후 이슬람 세력이 남부 이탈리아 지역에 진출하면서 아슬람의 세력을 피해 살렌티노 지역에 정착한 수도사 등이 정착하게 되고 이후 카톨릭이 남부 이탈리아 지역까지 진출하게 되면서 초기에는 그리스인들에 대한 별다른 제제가 행해지지는 않았지만, 15세기 무렵에는 정교회 세력은 모두 카톨릭으로 대체되게 됩니다. 그리고 살렌티노 지역의 그리스적인 전통은 20세기에 재발견되어 채록됩니다.
 

 
 
플루하의 음반은 그레코-살렌티노의 전통에서 출발해서 서쪽으로는 포르투갈의 파두(fado), 동쪽으로는 튀르키예의 민속음악까지 확장하고 있지만, 선별된 음악이 전통적인 고음악에 한정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카를로스 파레데스나, 알프레두 마르세네이루 같은 전통음악에 영향을 받은 현대 음악가의 음악도 다루기 때문이죠. 그리고 전통적인 곡이라 해도 모든 곡은 연주하는 악기에 맞춰 편곡을 가했으며, 조르디 사발의 음반이 최대한의 시대음악성을 갖추려 한 학구적인 측면이 강하다면 플루하의 음악은 지중해를 여행하다 광장이나 골목에서 마주치는 동시대적인 전통음악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지중해 지역의 영화, 다큐 등을 통해 접한 전통음악을 원한다면 플루하의 음반이 더 좋은 선택이 될 것입니다. 
 
음반을 녹음한 장소도 역사적 의미가 깊어 언급할 필요가 있는데, 파리의 팔레 드 베하그(Palais de Béhague)의 살레 비잔틴(Salle Byzantine)은 벨 에포크 시대의 유명한 예술 후원자인 마르틴 드 베하그 백작부인이 자신의 거처에 마련한 사설 공연장으로 지금은 루마니아 대사관으로 사용되지만 당대에는 백작부인이 이사도라 던컨, 사라 베르나르, 마를셀 프루스트, 오귀스트 로댕 등과 교류하면서 음악, 문예 발표, 낭송 등에 활용한 장소였습니다. 이곳에서 포레는 자신의 레퀴엠을 지휘하기도 했고, 바그너나 비제의 카르멘 같은 오페라가 공연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후 살레 비잔틴은 공연장으로서의 기능을 상실 한채 잊힌 곳이 되었지만, 수십 년 만에 이곳의 가치를 부활시키고자 한 루마니아 대사관에 의해 다시 문화적 공간으로 활용하게 되면서 2013년 이 음반의 녹음장소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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