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음악 - 예술 - 공연387

[음악]역사와 음악 (10) 발칸의 역사와 음악 - 발칸, 꿀과 피 (BAL·KAN - Miel et Sang) 이번 글에서 다룰 조르디 사발의 음반 발칸, 꿀과 피(BAL·KAN - Miel et Sang)의 내지 해설은 발칸이라는 지역의 명칭이 오스만 튀르키예어 Bal=꿀과 Kan=피의 조합이며, 이는 오스만 제국이 발칸 지역을 바라보는 시각을 담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꿀은 풍요를 상징하며, 피는 그 지역을 정복하고 지배하면서 겪었던 지역민들의 저항을 상징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꿀과 피라는 상징은 오스만 제국 시절은 물론, 이후에 펼쳐져 지금까지 이어지는 발칸 지역과 그곳에 거주하는 많은 민족들의 역사와 맞물려 그럴듯한 음반 제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쉽게도 음반이 견지하는 발칸이라는 명칭에 대한 이런 해석은 역사적 사실보다는 후대에 만들어진 민간전승에 가깝습니다. 아직 확고하게 자리 잡은 설명.. 2025. 11. 4.
[음악]역사와 음악 (9) 베네치아 1000년의 기록 (VENEZIA MILLENARIA 700-1797) 짐승 털로 만든 예복을 걸치고, 공화국의 군주를 상징하는 뾰족 한 모자 코르노를 쓴 도제는 그의 궁전 앞에 있는 부두에서 전용 평저선에 올랐다. 바다에 대한 도시의 자긍심을 가장 화려하게 표현한 것이 바로 황금 배인 부첸타우르였다. 이중갑판이 설치된 위풍당당한 이 선박은 금박으로 꾸며졌으며, 사자들의 문장과 바다 동물들이 호화롭게 그려져 있었고, 주황색 지붕이 씌워져 있었다. 168명이 노를 저어 배를 먼바다로 이끌었다. 황금빛 노들이 석호의 바닷물을 때렸다. 뱃머리에 정의를 대표하는 선수상이 저울을 높이 치켜들고 칼을 뽑아 들었다. 제비 꼬리 형태의 성 마르코 깃발은 돛대 꼭대기에서 펄럭였다. 대포가 발사되고, 관악기들이 연주되고, 북소리는 얼이 빠질 정도로 크게 울렸다. 곤돌라와 노 젓는 배들로 구성.. 2025. 10. 21.
[음악]최근에 즐겨 들은 음반들 (2025년 10월) 아래 소개하는 음반들은 글의 제목과 달리 최근에 발매되거나 최근에 열심히 들은 음반만을 포함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지난번 같은 제목의 글을 올린 이후에 즐겨 들었거나 아직 즐겨 듣고 있는 음반이 더 정확한 표현입니다. 따라서 따끈한 신보보다는 약간 잘 숙성된 음반에 대한 평가라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아울러 제 음악 생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각종 음반 듣기 프로젝트와 관련된 음반은 대상에서 빠져있습니다. 지금과 같은 거대한 박스물이 없고, 세장짜리 세트도 가격에 대한 부담으로 쉽게 구입하지 못하던 시절, 보자르 트리오의 하이든 피아노 3중주 전곡 세트를 구입하면서, 평생의 동반자를 마련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리고 현대악기로 연주된 보자르의 세트는 수많은 시대연주 음반 속에서도 언제건 돌.. 2025. 10. 16.
[음악]역사와 음악 (8) 루이 14세 시대의 음악 - 태양왕의 오케스트라 (L’ORCHESTRE DU ROI SOLEIL) 프랑스의 역사적 인물을 이야기함에 있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를 제외하고 가장 먼저 언급할 수 있는 인물로는 루이 14세를 선택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음악과 관련해서는 나폴레옹 1세에 비해 루이 14세가 더 많은 영향을 주었고, 음악에 있어 새로운 시대를 여는 동력을 제공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그가 한 말로 알려져 있지만 근거는 부족한 "짐이 곧 국가다(L'État, c'est moi)"라는 말과 함께 절대 왕정이라는 명칭과 결합하여 일종의 역사적 클리셰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현실은 차치하고 루이 14세가 국민들이 믿게 하고 싶었던 태양왕의 이미지를 생각한다면 나름 성공한 마케팅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죠. 이런 점을 생각한다면 지난번 루이 13세에 이어 루이 14세 시대의.. 2025. 10. 13.
[음악]첫 음반, 첫 사랑 (7) - 바흐 관현악 모음곡집, 카를 리히터, 뮌헨 바흐 오케스트라 (아르히브) 제가 처음 들은 바흐의 곡이자, 첫 음반은 카를 리히터 지휘 뮌헨 바흐 오케스트라의 관현악 모음곡집이었습니다. 80년대에 바흐 연주자를 꼽으라 할 때 누구나 첫 손에 꼽을 연주자는 거의 이견 없이 카를 리히터(Karl Richter) 일 것입니다. 지휘는 물론, 건반악기 연주에 있어서도 그의 음반은 언제나 첫 추천 목록에 올라 있었고, 가장 교과서적인 지위를 점유하고 있었습니다. 우선 곡의 제목부터 이야기하면, 요즘은 주로 관현악 모음곡으로 불리지만 당시에는 관현악 조곡(組曲)이라는 일본식 명칭으로 주로 불려, 한자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조곡(弔曲)인데 왜 즐거운 춤곡 느낌인지 의아심을 자아내는 경우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더구나 바흐가 붙인 제목은 음반 표지에 크게 나와 있듯 네 개의 모음곡의 첫 .. 2025. 9. 23.
[음악]알프레드 브렌델 - 필립스 레코딩 전집 (Alfred Brendel - Complete Philips Recordings) 10년 전 이 박스 발매시 늘어가는 음반 박스를 보면서 나중에 브렌델 사후에 추모한다는 명목으로 오리지널 재킷으로 다시 나오면 그때 구입을 검토하자는 생각에 넘겼고, 절판이 되어 핑계김에 잘 되었다 생각하며 지난 세월을 보냈는데, 얼마 전 브렌델이 진짜로 세상을 떠났고 그를 추모하겠다는 뜻으로 (라기 보다는 이 기회에 한몫 잡자는 뜻이겠지만) 기존의 박스가 재발매되었습니다. 한몫을 잡으려니 시간도 돈도 많이 드는 오리지널 재킷을 할 생각은 없고, 아마 이 카드는 몇 년 더 묵혔다가 2031년에 탄생 100주년 기념을 핑계로 시도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제가 뒤늦게 이 박스를 손에 넣은 이유는 몇 가지 있는데, 첫째는 지난번 추모글을 쓰다 보니 제 젊은 시절 위시리스트에 브렌델의 베토벤 소나타 박스(물.. 2025. 9. 18.
[미술]후지산에 오르다, 야마나시(山梨) - 국립청주박물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판화, 최소한 동양에서 가장 유명한 판화인 가쓰시카 호쿠사이(葛飾北斎)의 의 진품이 국내에 최초 공개되는 전시회인 를 다녀왔습니다. 후지산에 오르다, 야마나시(山梨) 전시 개요 일본의 야마나시(山梨)현은 후지산의 북쪽 기슭에 자리한 지역으로 센고쿠시대 등장인물 중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등의 주역과 함께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가이의 호랑이 다케다 신겐의 고장입니다. 물론 다케다 신겐의 생애를 보면 그 지명도나 인기와는 별개로 그가 차지했던 땅은 크지 않았지만 말이죠. 아무튼 이번 전시는 야마나시현립박물관과 인연을 이어온 국립청주박물관이 야마나시박물관의 유물을 제공받은 전시회로 전반기(2025. 9. 4. ~ 11. 2.)와 후반기(2025. 11. .. 2025. 9. 16.
[미술]음반 표지로 본 명화 (3) -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 (외젠 들라크루아)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와 관련된 음악을 다루는 글의 댓글에서 나르신수님이 파우스트와 관련해서도 글을 부탁하셨는데, 파우스트에 관련된 음악을 정리하기는 좀 벅찬 과제라 살짝 방향을 틀어 파우스트와 관련된 음반 표지 그림이야기를 하면서 몇 가지 양념을 더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오늘 표지 그림을 제공할 음반은 베를리오즈의 로 솔티 지휘의 시카고 심포니 연주의 데카 음반입니다. 동향 작곡가인 구노의 와 달리 베를리오즈의 작품은 오페라는 아니고 오페라와 칸타타 중간에 있는 연주회용 오페라 느낌입니다. 솔티의 음반 표지에 쓰인 작품은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친구 쇼팽의 초상화로, 일반인들에게는 으로 유명한 외젠 들라크루아(Eugène Delacroix)의 그림 입니다. 괴테의 는 출간 후 요즘으로 말하자면.. 2025. 9. 11.
[음악]세온 피아노 듀오 시리즈 I (최의종 / 이세란) 후기 저는 제가 즐기는 예술이나 취미에 대해 후기나 감상평을 쓰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데, 연주회 후기는 특히 그렇습니다. 이미 지나가버린 연주회를 누군가에게 추천하는 것은 의미가 없고, 제게도 이미 지나간 좋았던 경험일 뿐, 다시 반복재생 하면서 뭔가 더 깊이 있는 반추를 해내기도 힘들고, 해낸다 하더라도 그것이 맞는지 확인할 길도 없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모든 감상이 그렇지만 특히나 연주회는 저의 정신적, 감정적, 육체적 상태가 미치는 영향이 너무 크고, 여기에 시공간적 상황이 또 큰 역할을 하기에 오롯이 연주에 대한 평가를 내린다는 것이 쉽지 않고, 또 위험하기까지 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예술도 섣부른 평가를 내릴 수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반복 감상이나 다른 기회를 통해 그 판단을 교정할 수 있는 .. 2025. 9. 2.
[음악]역사와 음악 (7) 라 만차의 돈키호테 - 로망스와 음악 (DON QUIJOTE DE LA MANCHA - Romances y Músicas) 동이 트기 얼마 남지 않은 시각의 일이었다. 여인들의 귀에 어떤 구성진 고운 목소리가 들려와 모두 귀를 기울였다. 특히 도로떼아는 잠이 깨어 있던 차라 더욱 열심히 들었는데, 도로떼아 옆에는 끌라 데 베에드마라고 불리는 판관의 딸이 자고 있었다. 그렇게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아무도 상상할 수가 없었다. 무슨 악기를 따라서 부르는 것도 아니고 목소리만 들려왔는데, 어떻게 들으면 마당에서 노래하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어떻게 들으면 마구간에서 들려오는 소리 같기도 했다. 모두들 열심히 귀를 기울이며 어리둥절해 있는데 문 앞에 까르데니오가 와서 말을 했다. "주무시지 않는 분 있으면 들어보세요. 노새를 모는 소년의 목소리 가 들려오는데 저 노랫소리가 사람 마음을 끄네요." "우리도 듣고 있어요. 나리!.. 2025. 8. 25.
[음악]첫 음반, 첫 사랑 (6) - 오이스트라흐와 리히테르의 브람스 3번, 프랑크 바이올린 소나타 (멜로디아) 지난달 하순 콘서트 고어 활동을 재개하겠다는 글을 올린 후 한 달간 네 차례의 음악회를 다녀왔습니다. 갑작스런 회장 보고 등으로 날려 먹은 연주회까지 계산하면 주당 한번 이상의 연주회 스케줄을 잡았던 것인데, 오늘은 그 연주회 중 정말 오랜만에 실황으로 프랑크 바이올린 소나타를 들은 김에 음반을 하나 소개할까 합니다. 소개드릴 음반은 1968년 12월 모스크바 실황을 발매했던 멜로디아의 음원을 빅터 레이블로 라이선스 발매했던 LP를 서울음반에서 다시 국내 라이선스로 1987년에 발매한 LP입니다. 오이스트라흐야 작고한 지 제법 된 시절이지만, 리히테르(요즘 명칭으로는 리흐테르)는 생존해 있을 뿐 아니라 연주 활동을 이어가고 있었고, 지금도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는 두 연주자의 명성이지만, 당시는 둘의 .. 2025. 8. 19.
[미술]음반 표지로 본 명화 (2) - 세속적인 쾌락의 동산 (히에로니무스 보스) 존 부어맨의 영화 를 처음 보았을 때,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동화로만 알던 이야기를 어른들의 이야기로 만든 줄거리도, 피로 뒤덮인 영상도, 근친상간이나 친모살해 같은 충격적인 장면도 아니었고, 영화에서 울려 퍼지던 음악이었습니다. 음악은 동명의 중세 시가집에 음악을 붙여 칸타타로 구성한 현대음악인 카를 오르프의 중 "오, 운명의 여신이여"라는 제목이 붙은 첫곡인데, 이 영화 이후 정말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어 이제는 아마도 이곡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 듯싶습니다. 해당 동영상 클립 보기 오이겐 요훔이 이곡을 처음 녹음한 것이 1954년이고, 재킷에 버젓이 작곡가의 친필 싸인과 함께 "authorized"라는 마크를 달고 있어 지금도 이곡을 말할 때 가장 먼저 언급되는 그의 두 번째 녹음(DG)이.. 2025. 8.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