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안톤 브루크너 탄생 200년을 기념하여 나온 음반들 중에 가장 회자되는 것은, 첫째가 브루크너의 음악이라고 할 때 첫 손에 꼽히는 비인 필하모닉이 연주하는 교향곡 전곡 박스로 줄리니, 카라얀, 마젤, 아바도 등의 지휘자가 녹음한 것을 묶은 음반일 것입니다. 나름 탐나는 구성이었는데 박스에 포함된 연주 중 좋아하는 지휘자들의 연주로는 이미 가지고 있는 음반이고, 음반 소비는 경제적 공간적 제약으로 수년 전부터 타이달에 의존하기로 한 터라 패스하기로 했습니다.
두 번째 회자되는 음반은 세르지우 첼리비다케의 브루크너 교향곡 등을 모은 박스인데, 2011년 발매된 기존 박스의 재발매이기는 하지만, SACD 하이브리드로 발매하면서 SACD레이어를 위한 리마스터링을 다시 했고 더구나 AI를 이용한 보정도 해서 공간감을 더 보강했다고 합니다. 대충 생각해 보면 소위 애플이 말하는 공간음향 정도 되는 보완 같습니다.
베를리너 필하모니커의 지휘자에서 카라얀에 밀려 나가고, 일부에서 상업주의에 찌든 카라얀의 악마화 분위기와 함께 이 사건에 대한 거짓 전설이 형성되고, 녹음을 극히 싫어하는 성향 덕분에 첼리비다케는 생전에도 그야말로 살아있는 전설의 위치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구할 수 있는 음반이란 것은 사실상 불법 음반들이어서 다들 음반으로는 그 진가를 알 수 없고 실연을 통해서만 그 진가를 알 수 있다고 <카더라> 전설만 회자되곤 했습니다. 그러다 그의 사후에 가족의 결단(?)으로 1998년 EMI에서 첼리비다케의 녹음들을 <First Authorized Edition>이란 이름으로 발매하게 됩니다. 이 에디션은 10장 남짓의 박스들로 나누어 발매되었지만, 당시 박스 세트가 그렇듯 동일한 음반을 낱장으로도 구할 수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취향 것 첼리비다케의 전설의 실제를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때 브루크너의 곡들은 교향곡 2~9번을 중심으로 12장짜리 박스로 나뉘어 발매되었고, 역시 낱장으로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이 최초 에디션은 어느 정도 세월이 흐른 뒤 절판되어 구할 수 없게 되었는데, 2011년 종이슬리브 박스세트 전성시대에 걸맞게 4개의 슬림박스로 재발매됩니다. 이 때도 브루크너는 최초 버전과 동일한 구성으로 하나의 박스로 제2권으로 판매되었고, 리마스터링도 별도로 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EMI는 워너로 넘어가고 워너는 EMI라는 레이블 자체를 없앴기에 위 박스는 EMI로고를 달고 나온 마지막 첼리비다케 박스가 되었죠. 워너는 2018년 네 개의 박스를 하나로 묶은 것과 EMI로고를 지운 것 외에 특별한 수정 없이 보너스 CD 한 장 얹어서 48+1장짜리 <첼리비다케 뮌헨시대>라는 이름으로 한정판을 내놓습니다. 한정판이 아니라도 절판이 다반사인 음반/책 시장이니 이 박스도 금방 품절이 되어 사라졌죠.
과거 EMI, 현재는 워너 보유 음악가 중에서 칼라스, 카라얀, 푸르트뱅글러 등과 함께 뽕 뽑기 좋은 음악가이자 브루크너 전문가인 첼리비다케를 브루크너 200주년에 가만 둘리가 없는 워너는 앞서 말한 대로 기존 EMI의 염가판 박스와 똑같은 포장에 로고만 바꾸고, 내용물을 AI에게 리마스터링 하라고 돌린 하이브리드 SACD로 또 한 번 첼리비다케를 재탕한 게 최근 회자되는 박스입니다. 아래 제가 가진 CD버전 박스와 똑같고 그냥 로고를 워너 로고로 바꾸고 CD라는 글자 대신 SACD 로고를 넣은 언듯 보면 기존 것과 다를 바 없는 패키지입니다. 다만 염가버전 슬리브의 한결같던 이미지를 기존 최초버전의 재킷 이미지로 바꾼, 말하자면 오리지널 재킷 에디션으로 발매되는 것이 다릅니다.
제가 예전과 달리 브루크너나 말러 같이 긴~~~ 곡을 집중해서 듣기 힘들고, 딱히 첼리비다케를 숭상하지도 않는지라 SACD의 장점도 알고 재생 장비도 있지만, 이번 박스는 전혀 고려하지도 않았습니다. 대충 설명을 읽어보면 일본에서 리마스터링을 했고 (그러면 그렇지 돈 들어가는 일을 본사에서 했을 리가!) 인터내셔널로 발매된 것입니다. 아무튼 기존 CD의 문제점을 고대역을 실현하는 DSD 컨버팅을 통해 리머스터링 했다는 건데... 기존 음반의 음질에 딱히 불만이 없었던 저로서는 오리지널 재킷 이미지 때문에 이 박스를 선택할 이유는 없습니다만, 어떤 형태로든 이 세트를 가지고 계시지 않은 분들이라면 브루크너 200주년을 기념해서 한번 장만하셔도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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