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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첫 음반, 첫 사랑 (2) - 주페 서곡집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 DG)

by 만술[ME] 2025. 1. 24.

카라얀 주페 서곡집 LP와 CD 버전

 

중학시절 음악선생님은 육사 군악대 지휘자 출신이셨는데, 군인출신이시면서도 가끔 군인들의 (음악과 관련한) 무식함을 한탄하시곤 했는데, 가장 재미있었던 에피소드는 연주를 위해 군악대가 도열해 있는 와중에 어떤 장성이 지휘자인 선생께 오더니 갑자기 군홧발로 조인트를 까면서 인원을 키순서로 정렬해야지 악대 정렬이 들쑥날쑥 이게 뭐냐며 호통을 쳤다고 합니다. 음악수업 중 상당 부분은 음악감상을 강요(?)하셨습니다. LP를 틀으신 뒤 조명을 낮추고 학생들에게는 눈을 감고 듣도록 지시하셨는데, 안 그래도 익숙지 않은 음악을 들어야 하는데 조명도 어둡고 눈도 감았으니 다수가 꾸벅거리며 졸곤 했죠. 이렇게 음악을 틀어놓으시곤 그 틀어놓은 음악에 맞춰 지휘를 하시곤 했습니다. 학생들을 흘깃 뜬 눈으로 그 모습을 보면서 킥킥거렸지만 저는 계속 그 모습을 보다 보니 점점 멋져 보이더군요.

군악대 출신이시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나마 친숙해질 수 있는 음악을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으셨는지는 몰라도 가장 자주 틀어주시던 음악이 주페의 <경기병 서곡>입니다. 어릴 적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을 통해 이미 익숙했던 음악인 데다 (<심포니 아워> / 1942) 특히나 이 곡을 열정적으로 지휘하시던 모습이 애니메이션 속의 미키, 구피, 도널드의 모습과 겹쳐 들을 때마다 흥겨웠습니다. 3학년 때에는 저희 반 담임을 맡으셨고, 제가 학급간부였기 때문인지 가끔 방과 후에 (지금이라면 논란이 될 일이지만 그때는 당연했던) 음반 구입 심부름을 시키곤 하셨습니다. 어떤 음반을 심부름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유독 기억에 남는 것은 <위대한 엔리코 카루소>라는 음반이었고 그 영향이 없지는 않아서 저도 카루소의 음반을 가끔은 찾아 듣곤 합니다.

낙소스의 카루소 녹음 전집



본론인 주페의 서곡 이야기로 돌아와서, 음악 선생님 덕에 즐겨 들을 수밖에 없었던 <경기병 서곡>의 음반은 제 LP 구입에 있어 당연히 초창기에 이루어졌는데, 당시 어지간하면 평타 이상은 보장하고 특히 이런 소품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던 카라얀의 음반으로 시작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마 당시 국내 음반 시장 상황을 고려하면 딱히 대안도 없었을 것 같습니다.

카라얀과 베를리너 필하모니커의 주페 서곡집 음반은 <경기병 서곡>, <아름다운 갈라테아>, <시인과 농부> 등 한 면에 세곡씩 여섯 곡을 담은 음반인데, 지금 들어도 풀 오케스트라 버전 중에 이런 곡을 이렇게 정성 들여 연주하고 예술성과 흥행성, 우아함을 모두 갖춘 음반은 찾기 힘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 음반은 묘하게 로시니의 <세비야의 이발사 서곡>등을 끼워 반반 서곡집 CD로 수록곡 절반만 재발매되었는데 (이름도 <로시니 주페 서곡집>으로 탈바꿈) 다행히 표지 이미지는 기존 주페 서곡집 LP를 재활용했습니다만 (로시니 서곡집 LP 표지도 멋진 카라얀의 모습을 담아 나쁘지 않습니다) 아날로그 시절 명반들을 OIBP 방식의 리마스터링으로 재발매하던 <The Originals> 시리즈로는 발매되지 않았고, 이후 국내 라이선스로 먼저 발매되었다가 본사에서 그대로 가져다가 베껴서 판매한 <카라얀 60년대 DG 녹음집>에 수록되면서 OIBP 방식으로 리마스터링 되고, 이때가 되어서야 최초로 LP 수록곡 모두 담기게 되었습니다.

 

카라얀 로시니 서곡집 LP 버전


결론적으로 만약 누군가가 주페의 서곡 음반을 추천을 원한다면, 여전히 망설임 없이 추천할 수 있는 음반입니다만 현재 완전체로 구할 수 있는 방법은 중고 LP나 CD로는 위에 언급한 <카라얀 60년대 DG 녹음집>을 중고로 구하는 방법 밖에 없고, 스트리밍에서는 아쉽지만 <로시니 / 주페 서곡집> 형태로 일부만 들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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