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당 클래식스 100> 박스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 음원이 다양한 패키징으로 나왔던 이야기를 했었던 김에 제가 가지고 있는 음반 중에 패키징이 고급스럽고 호화로왔던 음반 몇 종을 손에 잡히는 대로 소개할까 합니다.
[그때 그 시절의 조금 더 나은 박스]
종이슬리브를 통해 원가절감을 하기 이전인 80~90년대 일반적인 박스는 적당한 두께의 아웃케이스에 담긴 주얼케이스에 음반을 담는 스타일이었습니다. 그중 아웃케이스의 종이질을 업그레이드하고 두껍게 하면 더 고급 버전이라 할 수 있었는데, 대표적인 것이 필립스에서 <스비아토슬라브 리히테르 오쏘라이즈드 에디션>이란 이름으로 발매한 21장짜리 세트였습니다. 이 세트는 아래 사진처럼 21장을 몇 권으로 나누어 각각 두꺼운 종이 아웃케이스를 제공했죠.
[책자형 음반 패키지]
뭔가 기념하거나 설명할 이야기가 많은 경우에 많이 쓰는 방법이 책자형 패키지입니다. 제일 흔한 방법은 CD 사이즈에 맞춘 하드커버 책자형태로 만드는 것인데, 이런 크기의 책자형 음반의 끝판왕은 옛 실황중계 음원을 당시의 기록들이나 해설을 책자에 담아 발매했던 2000년대 초반에 반짝하고 사라진 안단테 레이블의 음반들이라 생각합니다. 안단테의 음반들은 내지를 거의 스케치북급의 용지를 사용한 덕에 책자의 페이지수에 비해 엄청난 두께였고, 가격도 너무 비쌌습니다.
책자가 CD 크기인 것은 일반적인 음반과 함께 보관하기 좋은 장점은 있지만, 책자를 읽기에는 여러모로 불편한 점이 있습니다. 특히 책자가 작아지면 사용하는 폰트도 작아지는 법이라 글의 가독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지게 되죠. 이런 문제를 해결하면서 보관이 좀 불편해진 방법이 세로로 두 배 늘인 책자형 음반입니다. 책의 두께도 얇아지고, 이런 책자형 음반은 CD를 한 장 넣기보다는 두장 이상인 경우가 많아 CD를 제공하기도 편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CD 보관장을 직접 붙박이로 맞추면서 일부러 윗공간에 여유를 두었기에 (제대로 만든 음반 보관장은 저와 같은 여유를 둡니다) 적절한 위치에 슬쩍 눕혀서 보관하면 되니 보관도 문제가 안됩니다. 이런 패키징으로 음반을 많이 낸 레이블이 (후기의) 타라 레이블입니다.
변형적인 크기의 책자도 있는데, <라 스칼라 극장의 기록> 시리즈가 이런 형태로 위 타라의 책자가 비율상 좀 기형적인 데 반해 이 시리즈는 비율이 더 잘 맞고 깔끔한 장점이 있습니다. 다만 엄청나게 두꺼운 종이를 이용해서 실제적으로 책자를 통해 볼만한 내용은 생각보다는 많지 않습니다만 당시의 사진, 프로그램 등을 볼 수 있기에 마리아 칼라스 등이 활약하던 당시의 스칼라 극장의 시대로 빠져들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좋은 패키지입니다.
기왕 책자로 만드는 김에 커피테이블 책자로 만들어 팬심을 자극한 사례도 있는데, 바르톨리의 마리아 말리브란 헌정 앨범입니다. 책자의 내용도 훌륭하고 다양한 사진도 있고, 일부는 바르톨리 화보집의 성격도 있기에 그야말로 커피테이블 책자의 역할을 착실히 수행합니다. 음반은 1장짜리 정규 CD(별도 일반버전으로도 발매)와 메이킹 등을 담은 보너스 DVD의 구성인데, 음반 구성의 곡들을 중심으로 부른 헌정공연 실황을 별도 DVD로 발매하는 꼼수를 부려 소비자의 지갑을 추가로 털어가는 사악한 단점이 있습니다.
[이런저런 박스로 멋 내기]
요즘에 가격이나 패키징이나 그 불편함이나 끝판왕 중에 하나는 베를리너 필하모니커의 자체 레이블 음반들일 것입니다. 일단 발매형태가 세트와 그 내용물의 별도 낱장발매로 나누어져 있고, 세트의 경우에도 CD+BD(오디오/비디오), SACD, LP 등 복잡해서 그냥 음반 제목만 보고 클릭 잘못하면 엉뚱한 구성을 구입할 수 있고, 제가 구입하는 CD+BD 패키지의 경우 두께 때문에 CD장 위쪽에 눕혀 보관하기도 어려워 따로 보관해야 하는 단점이 있습니다. 다만, 가격도 비싸고 패키징도 (불편함과는 별로도) 그럴듯한 바, 안 그래도 훌륭한 베를리너 필하모니커의 연주를 더 그럴듯하다 느끼게 해주는 플라세보 효과도 있습니다.
하이퍼리언의 슈베르트 가곡 전집은 피아노 협연자인 그레함 존슨의 두꺼운 해설로 유명한데, 처음에는 일반적 주얼케이스에 구겨 넣는 듯한 패키징으로 해결할 수 있었지만 자주 책자를 꺼내다 보면 찢어지는 사례도 제법 되었고, 책자를 넣고 빼기도 너무 힘들었습니다. 결국은 전에 언급한 이언 보스트리지의 <물방앗간의 아가씨> 음반부터 패키지를 바꾸어 책자를 넣고 빼기 쉽게 했죠. 이런 패키지로 슈베르트의 가곡 전집을 마무리 한 하이퍼리언은 다시 그레함 존슨의 주도로 슈만 가곡 전곡 녹음을 시작했는데, 이 녹음은 첫 음반부터 슈베르트 전집 후기형 패키지로 시작합니다.
이 디지팩 패키지는 결정적인 단점이 있었는데, 중간 부분이 고정이 안되고 쉽게 열려 안에 든 책자가 떨어지기 쉽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은 이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슈만 가곡 전집 3권부터는 이 단점을 보완한 두꺼운 주얼케이스로 패키지를 변경합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저같이 낱장으로 이 시리즈를 구매한 사람은 슈베르트 가곡집이나 슈만 가곡집이나 모아 놓으면 일관성이 없어 보인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다만 원가 상승 때문인지 이후에 발매된 포레 가곡 전집이나 브람스 가곡 전집의 경우에는 다시 일반적인 주얼케이스로 변경하고 책자의 두께를 좀 줄였습니다.
[구성물이 호화스러운 박스]
포장보다는 구성품이 호화로운 경우도 있는데, 영화 <타르>에 나온 엘리엇 카플란의 실제 모델인 길버트 카플란의 말러 교향곡 2번이 그런 사례입니다. 카플란의 박스는 말러 교향곡 2번과 보너스 음원을 담은 2장짜리 음반 외에 두터운 해설 책자는 물론, 교향곡 2번의 총보를 담았습니다. 사실 아마추어가 말러에 대한 열정과 재력으로 시작한 프로젝트인지라 연주가 특별히 뛰어나지도 않고, 오케스트라 총보의 경우에도 일반적으로는 딱히 필요하지도 않으니 그야말로 소수를 위한 패키지라 하겠습니다.
[염가 박스이지만 결코 염가스럽지는 않은 박스]
요즘의 박스들은 장당 가격 차원에서 엄청나게 저렴해진 탓에 그 패키징이 오리지널 커버를 쓴다는 것을 제외하면 아쉬움이 많은 편인데, 이런 박스 세트 초창기에는 그럭저럭 괜찮은 구성의 박스들이 있었습니다. 그중 가격이나 패키징이나 나름 염가버전이지만 결코 염가는 아니었던 박스가 루빈스타인 전집이었습니다. 원래 RCA에서는 자사에서 남긴 음반들을 모아 1999년 94장짜리 호화 박스 세트로 낸 적이 있는데, 당시 제가 가장 가지고 싶었던 박스 세트였지만, 당시 200만 원이 넘는 가격을 감당할 수는 없어 낱장으로 모으기만 했었습니다. 그러다 2011년 RCA 뿐 아니고 그가 남긴 모든 음반을 모아 오리지널 커버를 적용한 142장 + 2 DVD의 진정한 전집이 나옵니다. 구성은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단단한 박스에 제법 두터운 슬리브를 이용한 LP 미니어처 형식에 커피테이블 스타일의 책자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보너스 1 - 20세기의 위대한 피아니스트와 위대한 지휘자들]
90년대 말 필립스에서는 다양한 음반사의 협조로 20세기의 위대한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모아 피아니스트 별로 1, 2장으로 묶어낸 시리즈를 발매했고, EMI는 같은 스타일로 지휘자 별로 묶어낸 시리즈를 2000년대 초에 발매했습니다. 황금색 찬란한 디지팩에 담긴 피아니스트 시리즈와 검은색 오링 아웃케이스 하나에 2CD용 슬림 주얼케이스에 담긴 지휘자 시리즈의 차이는 결국 몇 년의 시간차가 없음에도 90년대와 2000년대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보너스 2 - 스타워즈 팬심을 위한 패키지]
일반적인 영화 OST와는 달리 영화에 삽입된 음표 하나도 놓치지 않고 음반에 담겠다는 거창한 시도가 가능했던 것은 존 윌리암스라는 작곡가의 위대함도 있겠지만, <스타워즈>이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97년 루카스와 윌리암스는 오리지널 3부작의 모든 음악을 각각 두 장의 CD에 담아 스페셜 에디션이라는 이름으로 발매했습니다. 수입 버전은 사진처럼 디지팩에 오링 아웃케이스로 되어있지만, 라이선스는 평범안 슬림 주얼케이스에 담겨 있어 소장가치가 떨어집니다. 이후 프리퀄 시리즈가 시작되면서 <에피소드 1>의 OST와 함께 얼티밋 에디션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음악을 두 장의 CD에 담은 버전도 발매되었는데, 책자형이 아니라 접는 스타일이라 불편합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제가 아는 한 <에피소드 2> 개봉 시에는 이런 얼티밋 에디션 발매를 하지 않았고, 결국은 이런저런 박스를 그렇고 그런 형태로 발표하는 조지 루카스 답게 박스 세트를 통해서나 모든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겁니다.
[보너스 3 - 그래도 K-POP 팬심에는 못 당합니다]
와이프 지인이 이승윤이라는 가수의 팬인데, 음반이 나오면 구입해서 와이프에게 선물하곤 합니다. 그 음반 중 하나를 보면 그 구성이 감히 클래식 음반 시장에서는 따라 하기 힘든 소소하지만 다채로운 구성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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